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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테이크 원신으로 된 롱테이크의 실험적(?) 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이다. 무대 전환 없는 이인극. 혹은 정신분열자의 모노드라마. 한 사람과 그가 듣는 또 하나의 목소리. 한 사람과 혹은 그의 분열된 또 하나의 목소리. 캐릭터도 없고 플롯도 없는데 그래서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책 읽는 내내 생각한 건데... 이 작품을 가지고 이런 퍼포먼스(?)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텍스트, 그러니깐 문자 언어와 소설가의 육성, 그러니깐 음성 언어가 한 공간에서 어울려 춤을 추게 만드는 건데...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정영문의 <하품>과 배수아의 <동물원 킨트>를 오디오북으로 만드는 거다. (기왕이면 작가들의 육성으로 녹음하면 좋겠다.) 그리고 종이책의 페이지에 맞게 트랙을 매긴 후, 정영문의 7쪽과 배수아의 55쪽을 같이 트는 거다. 혹은 정영문의 49쪽과 배수아의 107쪽을 함께 트는 거다. 각 페이지에 담긴 소리들이 흘러나오도록. 그리고 그 두 소리(혹은 작품)가 불협화음처럼 어우러지도록. 여기에 서준환의 <골드베르크변주곡>까지 섞어도 좋겠다. 아니면 정영문 5, 27쪽에 배수아 98쪽 혹은 정영문 100쪽에 배수아 3, 83쪽, 정영문 46쪽, 배수아 76쪽, 서준환 17, 253쪽 이런 식으로… 소리를 켜켜이 얹거나 쌓아 보는 거다. 소리 그 자체가 어떻게 음악이 될 수 있는지, 문학이 그 자체로 어떻게 음악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퍽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시도가 될 듯. (목)소리의 콜라주. 아니면... 이런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음성언어로 흘러나오는 해당 페이지의 종이책을 프로젝터로 사방의 벽에 비추는 거다. 아니면 그 페이지의 각 문장을 해체해서 각 문장들을 문단 단위, 문장 단위, 단어 단위로 사방의 벽에 쏘는 거다. 문장들이 춤을 추게. 그리고 춤을 추는 문자언어가 있는 그 공간에 음성 언어가 흐르게. 아, 그렇다면 천장이 있는 방이어야겠다. 천장 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우게 하면 더 근사할 듯.
이 작품은 스미스 소니언의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에 있는 콜더의 모빌 작품인데, 모빌 작품이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졌던 그 공간이 주는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이면 좋겠다. 여기에 (목)소리의 콜라주들이 얹히는 거다. 혹은 이런 분위기.
이건 어떤 이의 꿈이라고 2011년 11월 12일에 포스팅했던 글인데... (자세한 건 포스팅 참조)
가령 이런 느낌.
가끔 주말에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다 누운 채로 잠들곤 하는데,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책을 싼 표지에 반사되어 천장에 이런 추상적인 그림들을 만들어낸다. 사진만으로는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가 오롯이 표현되지 않지만 우물 속처럼 조용한 정적 가운데 무척 신비로운 느낌이다. 빛의 반사각에 따라 무척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보다 보면 책이, 소설이, 매우 다양한 의미에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리뷰를 문자로 국한시키려는 건 상상력의 빈곤이다. 아마 이 퍼포먼스가 실행된다면 이 책에 대한 가장 최상의 리뷰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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