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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함석헌 선생의 글을 자주 읽고 있다. 함석헌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여러가지 정신적·영적 유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주의와 우매한 미신주의에 대항하는 과학주의, 그리고 고상한 목적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주의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김용준 선생의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 2006)은 단순한 함석헌 평전이 아니라 함석헌과 함께 저자가 몸소 경험했던 20세기 한국 현대사에 대한 회고와 평가다. 함석헌 생애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함석헌의 원숙한 사상이 본격적으로 구현되어가는 과정과 국면을 그려냈다. 가령 1949년부터 1989년 타계까지의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4?19 혁명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꽃피웠던 함석헌 사상의 면면이 저자 자신의 삶과 함께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다만 김용준 선생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은 되도록 말씀을 아끼기에 좀더 디테일한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의 불만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저자의 동생이 되는 도올 김용옥의 반정도만 자기 이야기를 했어도 이 회고록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함석헌 선생은 언론인, 시인, 역사가, 교육자였지만 이런 꼬리표를 모두 거부했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의 일대기를 지켜보면 무엇보다도 진지한 씨알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 무비판적인 무조건 수용은 참된 교육이 아니라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나, 참된 교육이란 나의 지식화를 통해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어가도록 돕는 일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 함 선생과 사모님과의 관계도 이야기하고 있다. 함 선생은 사모님 황득순 여사의 병수발을 10년간 해왔다. 중풍에 걸려 자리에 몸져 누운 황 여사는 1978년 5월 8일 영면했다. 열여섯의 나이로 시집살이를 시작했고 집안의 맏며느리로 어른들을 섬기며 살아온 분이다. 함 선생은 딱 한번 아내에 대해서 성실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다. 간디가 아내의 선생 노릇을 했던 것에 비하면, 선생은 아내를 믿음의 친구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을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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