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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를 읽고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한창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서적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다.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잔티움의 시각 문화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특히 비잔티움 문화에서 '빛'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비잔티움의 이콘은 양감과 공간감이 거의 없다. 지극히 평면적일뿐더러, 도식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이콘들은 원근법을 숭상하는 관점에서 보면 붕 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비잔티움 이콘이 '열등'하다는 증거일까?
천만에. 처음부터 지향점이 달랐다. 비잔티움 성화는 보다 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문득 라파엘로의 성모상을 비잔티움에서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짖궂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야말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충격받고 경악하지 않았을까. 라파엘로의 성화는 성화라는 느낌도 들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부드럽고 현실감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6세기 경에 만들어진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목판 이콘을 보았을 때 가장 놀랐던 점도 그것이었다. 세상에, 예수의 목 부분에 명암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숫제 경악해버렸다. 그리고 비잔티움 이콘에서 현실적인 터치가 결여된 것이 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모자이크는 비잔티움 이콘의 대명사다. 수많은 모자이크가 남아 있으며, 그 모자이크들은 비잔티움 이콘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현실 초월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는 적합하지만 정교한 명암이나 세심한 세부 처리는 곤란한 모자이크 자체의 특성도 거기에 한몫했다.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는 카타콤베 시절의 벽화로 거슬러가 비잔티움 시각문화의 원류를 추적하고 있다. 단지 문화재 자체만 다루지 않고, 시대적 상황이나 교리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며 그런 외적인 요인이 도상문화에 미친 영향을 더듬어낸다.
적지 않은 초기 기독교 도상이 그리스 신화나 로마 문명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저자는 이것을 나태한 모방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갓 창립된데다 박해받는 종교의 입장에서는 정교한 이미지 체계를 구축할 여유가 없었고, 익숙한 이미지를 변용하는 것이 종교를 전파하는 데에도 유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점차 자리잡으면서 독자적인 도상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콘 파괴 논쟁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성상을 반대한 사람들은 성상을 우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흔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내막은 훨씬 더 복잡했다. '신성'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예수를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보는 입장에서 성상은 예수의 인성을 나타낸 이미지였고, 예수가 신성만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성상은 그야말로 우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갈등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는데, 성모를 신을 낳은 여인으로 보느냐 신성을 가진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이런 입장 차이는 성상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을 불렀고, 잠정적으로 성상 제작 찬성측의 승리로 논쟁이 끝난 뒤에도 이콘의 도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덧붙여서, '제작비'가 유물 제작 및 유적 건설에 알게 모르게 미치는 영향들도 자잘한 재미를 준다. 프레스코 벽화가 모자이크를 대체한 가장 큰 이유가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어서라는 것을 보고 쿡 웃었다. 특히 러시아 사원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일명 '양파 지붕'이 폭설에 대비하기 위해서 고안된 디자인이라는 걸 보고는 그야말로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감탄했던 요소가 그런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는 어딘지 허무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귀족적인 문화와 서민 친화적인 문화 중 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재를 만들어내는 문화는 단연 전자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에 치우치면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문화'가 되어버리고 만다. 비잔티움 문화는 이 역설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일 것이다. 교육받고 부유한 상위계층만을 위한 문화였기에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할 수 있었지만, 종국에는 상위계층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답적인 문화가 되어버렸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은 비잔티움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특히 그 난해함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쓰였을 때에야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그 상황에서도 비잔티움 시각문화는 화려한 꽃을 피웠고, 찬란한 빛의 화성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비잔티움의 문화재에는 신비로운 기품이 감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모자이크 이콘이다.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한 듯한 신비로운 이미지는 엄숙하면서도 장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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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이 책을 선택하게된 동기는 사실 학교 과제 때문이었다. 비잔티움 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고자 관련된 서적을 찾아 보았으나,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몇가지 후보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하게 된 것이 이 책이었다. 일단 고급스러워 보이는 표지가 많았고, 두껍긴 했지만 풍부한 사진자료가 우선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욕심내서 한꺼번에 읽으려면 힘들겠지만, 시간을 내어 차근차근 읽기에는 적합한 서적인듯 싶다. 필자처럼 아예 비잔티움 문화에 대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아마 이 책을 통해 쉽게 비잔티움에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내용 구성이 종교적인 내용, 역사적인 내용, 예술적인 내용이 아우러져, 조금은 정신이 없긴 했지만, 다 같이 합쳐져 있는 편이 배경 지식을 쌓고 이해를 쉽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비잔티움문화에 대해 여태껏 이름만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한번쯤 품었을 만한 비잔티움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비잔티움 문화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제국주의 이념과 법률 제도를 계승하고, 언어적으로는 그리스어를 말하는 제국의 동부 지역을 말하며,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 요소에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등의 동방적 요소를 받아들인 복합 문화를 지칭한다. 비잔티움 문화는 로마 제국주의의 정치적‘보편성’과 헬레니즘적인 그리스-로마 문화유산,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보편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을 지속해나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비잔티움 문화는 10세기경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다른 여러 나라에도 문화를 전파 하는 등, 문화적으로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문화사 속에서 비잔티움 제국은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예로, 프랑스인들은 비잔티움 제국을 ‘열등한 제국’이라고 평가절하 하고 있으며, 19세기 영국에서도 비잔티움 제국을 비속한 문명이라고 폄하하는 것들이 있다. 중세 서양 미술사 또는 중세 서양 예술사에서도 비잔티움 문화와 예술에 관한 항목을 거의 제외시키고 있거나, ‘암흑시대의 모호한 예술’로 여기곤 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서구 문화에 비해서 비잔티움 문화를 깊이 있게 알 수 없었던 이유는, 서구 중심주의에 입각한 시각 때문이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볼 때, 7~11세기에 가장 낙후한 지중해 문명은 오히려 서구 라틴 유럽의 가톨릭 문화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우월주의사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의 우수성은 역사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의 문화적 정체성이 비잔티움 제국의 천 년 그리스도교 문화를 역사 속에서 배재시켜 버렸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진정 역사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올바른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하고, 그 문화에 대해서도 후세에 알렸다면, 이렇게 편향된 문화지식이 만연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잘못 심어진 문화에 대한 생각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역사와 문화의 전달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순수하게 역사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가와, 역사를 탐구정신을 가지고 학술적으로 연구한 학자에 의해서 후세에 전달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온전히 문화의 의미가 우리에게 전달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잔티움 문화는 이렇게, 서구권 문화에 의해 평가절하 되지만, 실제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를 보존하였고, 중세 유럽의 문화 발전과 슬라브-러시아 지역의 정교 문화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특히 종교 예술분야에서는 그리스도교 바탕의 세계관을 전개시켜 13세기 이후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한다. 비잔티움 문화가 없었다면, 12세기 이후 스콜라 철학과 로마네스크 및 고딕양식을 포함한 서구 유럽의 중세 문명 역시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비잔티움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교차점에 위치하면서 이집트, 시리아, 이란, 카프카스 지역의 다양한 변방 문화를 흡수하였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여 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통일성을 유지시켰다. 결국, 비잔티움 제국은 지정학적인‘이질적 다양성’들을 하나로 결집하고‘보편성과 통일성’을 문화적으로 실현한 동로마 지역의 중세 그리스도교 국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주요한 인물 중 눈여겨 보아야 할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로다. 그는 당시 보편적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장한 로마 시민이면서 동시에 이민족의 종교에 배타적인 유대교도 였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그리스도교의 전파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고, 이는 후에 비잔티움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로는 전도 여행을 통해 오늘날 이문화 접촉에 해당하는 세계화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그를 평가하자면 진정한 세계인이라고도 평가 할 수 있겠다. 책에 언급된 구절 중 현재에도 커다란 의미를 주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문화 현상을 설명한 부분일 것이다. 문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원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이 서로 조합되면 문화는 생성되고 탄력을 받게 되지만, 이 둘 사이의 균형이 다른 하나로 치우치게 될 경우 문화는 종종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문화는 총체적인 보편성과 국지적인 특수성이 교차하는 직물이라는 비유가 상당히 적절한 비유이다. 필자는 이러한 직물과 같은 일련의 과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될 때, 문화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성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문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가진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확산 과정도 바로 이와 같은 문화의 생명력에 가장 잘 부합되는 역사적 실례가 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외적인 보편성에, 자기 고유의 내적인 특수성을 마련하여 세계 종교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비잔티움 문화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유에 적용시켜 보면, 오랜 세월 보편성과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까지 전해 내려오는 거대 문화를 이룩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잔티움 문화의 역사와 의의에 대하여 재조명 하고 있다. 전체 내용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세밀하며, 문체가 화려하고 길게 만연되어 있어서, 독자가 읽는 동안 잠시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저자의 초점은 비잔티움 예술 속에 살아있는 미를 밝히는 것이다. 그 미란 바로 영원의 속성이자 신성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는 실체의 하나이다. 비잔티움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교회 내부의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이콘 속에서 성스로운 이미지의 형상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초월과 내재의 매개적 요소로서 ‘빛’은 비잔티움 미학에서의 색과 더불어 중요한 교리적, 상징적, 심미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모르고 지나쳐 버린 비잔티움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그 아름다움을 새겨보며, 깊이 있게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
![]()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내부 - 이스탄불
움베르토 에코의 풍자적인 소설 '바우돌리노'의 첫 장면은 십자군에 의해 점령된 비잔티움에서이다. 골든 혼의 찬란한 새벽풍경과 거대한 지하수조, 장엄한 대성당 등 우리가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또 하나의 문명은 그에 의해 눈부시게 재현된다. 이제껏 자신들 보다 우월했던 문명들에 대한 질시로 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이란 관점을 덮어씌워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질식시켜온 유럽의 오만함이 작가의 가르강튀아적 풍자에 의해 외려 미개한 야만인과 파괴적 약탈자로서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비잔틴 제국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동로마제국은 또 하나의 서구이자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인상적인 시 구절로 시작하는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는 스스로도 '그리스어를 쓰는 라틴인'으로 정체성을 인식했지만 서구역사에서 버림받은 자식이었던 비잔틴인들의 종교,사상,문화를 '빛의 모자이크'라는 화두를 통해 녹여내려 한 저자의 역작이다.
기독교가 경험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예술로 평가받는 비잔티움 예술은 서구의 종교미술과 다른 발전양태를 보인다. 그것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초월적 예술이었다. 그리고 단지 새로운 기법의 개발이 예술사를 분절하는 동인이 되는 것이 아닌 정치와 신학, 그리고 사상이 밀접하게 관련된 예술사였다. 따라서 저자의 서술은 주로 사상적 흐름에 집중하고 있기에 상당히 건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잔틴 예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콘은 신학적 논쟁과 그 맥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비잔틴 예술을 조망하고 싶은 이들에겐 더 없이 충실한 개론서이자 사전이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성립에서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미지 논쟁까지 단숨에 써 내려가는 저자의 박학은 힘있는 필치가 가미되어 사상의 벼리로써 예술이라는 그물을 무리없이 끌고 간다.
교회의 신학 논쟁과 관련된 비잔티움 예술 -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자칫 우상숭배로 여겨질 수 있는 초월적 절대자의 예술적 표현에 있어 당대의 사람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콘이 비잔틴 예술의 총화로 자리잡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초기 교회사의 숨막히는 이단논쟁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신의 아들이자 그 스스로가 신으로서 지상에 현현한 그리스도의 본성을 두고 발생한 이견들 - 인성을 강조한 네스토리우스파, 신성만을 강조한 단성론자들-을 물리치고 교회의 정통교리가 된 양성론, 즉 예수는 신인성을 가진 존재라는 교리는 절대자를 인간의 손에 의해 육화된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아울러 육화된 성령의 교리 즉, 성육신의 교리는 그리스도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성모인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 즉, 테오토코스(Theotokos)로 숭앙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규범적으로 마련된 이콘의 주요한 형식에 고정되도록 했다. 이처럼 공의회를 통해 공인된 교리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또한 인간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외양이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논거가 마련된다.
![]() 하지만 인간에 의해 표현된 초월적 실체의 형상은 반드시 상징이어야만 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미지 자체가 원형을 대신할 수 없도록' 비잔틴 예술에서 표현된 형상들은 '물질적인 요소가 쉽게 연상될 수 없어야'했다. 따라서 비잔틴 이콘에서 나타나는 2차원적인 표현, 역원근법, 해부학적 관점에 어긋난 표현등은 원시적인 조야함이 아니라 사상에 의해 채택된 예술적 기법일 따름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비잔티움에서 모자이크 예술이 성행하였던 주요한 이유가 된다. 그들의 종교예술이 간직해야만 하는 '초월적 신비성'은 색유리나 금박의 찬란한 빛에 의해 구현되었다. 위대한 교부철학자들은 타불 산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성용'을 가능케 한 '빛'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빛'에 의해 인간은 신적 존재와 합일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 의해 모사된 초월적 존재의 형상이 자칫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3차원적인 묘사보다도 모자이크가 갖는 '정면성'은 '이데아'를 가리키는 데 더 적합했다. 그렇기에 2차원적 평면성이 갖는 원근감의 부재는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거리감을 해소하여 천상적 이미지들과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우주의 구현이라는 명제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콘의 규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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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 파괴운동이 수그러든 이후 이콘에 대한 흠숭(adoration)이 아닌 공경(veneration)은 가능하다는 입장이 재차 확인됨으로써 그것은 어느 정도 가역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동시에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을 단절시킨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비가역적이이도 했다. 그리고 이콘에 대해 어느 정도 규준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교회에 의해 이콘은 이제 단순한 작가의 영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화(perigraphotai ; 본문 455쪽 참조)된다. 이콘 규범집(Painter's Mannuel)이 마련되고 아무리 단순한 요소라고 해도 화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덧붙여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잔틴 이콘 예술을 몇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고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부가하는 이 책의 내용은 도상학적으로도 충실한 해설서가 된다. 그리스도의 이콘에 나타나는 독특한 손 모양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성 모자의 이콘이 호데게트리아나 엘레우사(또는 블라지미르의 성모)와 같은 특정한 유형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와 삼위일체의 교리가 이콘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충분한 도판과 함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과 사상을 넘나드는 지적 향연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영원과 초월의 예술
현실적 감각과 유리된 과거로부터 일관된 표현 양식은 흔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리고 항상 일정한 기준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낙후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에스트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가 그러한 평가를 받았던 것 처럼 비잔티움의 예술도 서구사회로부터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하지만 첼리비타케가 그 특유의 표현방식인 유장하고 호흡이 긴 선율미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찰나적 예술을 구현했던 것 처럼 비잔티움 예술도 독특한 표현방식을 통해 초월적 존재를 향한 관조를 통해 영원의 미학을 성취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저자의 인상깊은 통찰은 선이 굵은 두 주체에 대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이콘은)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미술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원한 (신적) 세계의 반영이므로 인간 세계의 가변적인 기법의 변화나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콘 규범집에 따라 화가들은 인물의 표정과 동작, 신체의 균형까지도 일정한 규준에 따라 표현했다. 인물의 신체는 코의 길이에 따라 코 끝과 양 미간 사이의 점을 중심으로 하여 점점 확대시킨 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러한 비례의 조화와 세심한 인물배치는 교회의 도그마(Dogma) 즉, 교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방법과 관련이 있었다. 비잔틴의 건축이 '돌의 신학'이라 불렸던 것 처럼 이콘은 '이미지로 된 도그마'라 불릴 만 한 것이다.
![]() 이러한 이콘의 특징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특이한 구도이다. 비잔틴 예술이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공간감의 부재에 있어서 그것은 기법상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교의를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다. 3차원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점투시의 기법은 시선의 주체가 관찰자이지만 산점투시에 가까운 이콘의 역원근법은 여기저기에 있는 누군가들의 시선이 중첩된 시점이다. 유한한 주체가 건물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할 수 없다. 그것은 공간적 제약임과 동시에 시간적 제약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어느 곳에나 편재하고 있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주체는 공간적인 제약을 초월한다. 그리고 시간적인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영원함을 가진다. 결국, 이콘이 채택한 역원근법은 그것에 나타나는 초월자의 형태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 것일 뿐(이것은 불교에서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란 표현과도 비슷한 개념이다.)이라는 신학적 입장에 충실히 부합하도록 교의를 이미지로 효과적으로 재현해 낸 것이다.
![]()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궁륭천장 정교회의 교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예술이 주로 이콘의 형식이었고 비잔티움 예술의 대종을 이루었기 때문에 저자의 서술은 주로 이콘의 발전과정과 그것에 나타난 도상학적 은유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한 시대의 예술에 대한 해설서라고 보기엔 아쉬울 정도이다. 오히려 저자가 서문에도 밝혀 놓았듯 비잔티움 세계의 사유방식과 문화 예술적 구성원리를 풀어내는 저서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책의 초반부에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언급한 부분은 이러한 '미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의 기본원리에 대해 훌륭한 통찰을 제시하고 그것을 사도 바울로의 전도여행과 중첩시키면서 초대 교회에 있어 온 대립을 분쟁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에서 저자의 박학과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비잔티움의 문화예술을 다루기 위한 필연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서술된 교회의 역사와 분화과정도 흥미롭게 지켜볼 만 하다. 서양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 온 독자라면 익숙하긴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교회와 관련된 사건 또는 인물들을 간결하지만 너무 간고하지는 않게 풀어 쓴 부분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생경하지만 플로티노스나 위(僞) 디오니시우스와 같은 비잔틴 교부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교회 예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즉, 빛으로 둘러싸인 초월자로부터 유출된 빛이 흘러넘쳐 현상계가 생성되었다는 것과 관조를 통해 그 빛의 존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잔티움의 예술이 빛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비잔티움은 '빛의 모자이크'의 세계 그 자체이고 그 제목의 정당성을 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암호의 해답을 두꺼운 책장속에 숨겨 놓은 것 처럼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예술의 기저를 밝혀 낸 해답이자 사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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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봤을만한 ‘비잔티움’, 가끔씩 보고 들어왔지만 비잔티움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부터 초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비잔티움 역사와 문화의 성격, 비잔티움 예술의 발전과 변화, 이콘의 기원과 그 의미, 이콘의 유형 등 많은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특히 정말 생소한 개념이었던 이콘에 대한 설명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책을 통해 각종 매체에서 가끔씩 볼 수 있었던 그림이나 건축물들의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정말 거리가 멀었던 미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눈 뜰 수 있었고, 비잔티움과 관련된 어떠한 작품을 보게 된다면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세부적인 의미를 이해하며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비잔티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어려운 감이 있긴 하지만 풍부한 시각 자료가 담겨 있어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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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사게 된 동기는 수업의 교재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였는데, 구입 후에는 그러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가격에 걸맞게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재질에다 엄청난 수의 컬러 도판이 제공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대학교재들과는 다르게 되팔지 않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도 매우 충실해서 비잔티움의 역사, 초기 기독교의 역사, 빛과 이콘의 미학, 성상논쟁 등 많은 분야가 망라되어 있습니다. 비잔티움이나 동방 정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국내 출판 현실에서 이러한 류의 책이, 그것도 마이너한 비잔티움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시게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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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그 숨겨진 이면과의 대화. 흔히들 말하여지는 소위 '잘 팔리는' 책이 아닌 비잔티움 문화 속에 담겨진 '역사적, 철학적, 종교적' 이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학술서로서도 뛰어날 뿐더러, 교양서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더 자세한 서평은 http://cafe.naver.com/skkup/68 을 참고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