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뭐하러 그곳에 가는 거요? 그저 알기 위해서지요. 나는 쿠르티우스가 깊은 심연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이 여행에 뛰어들었다. 비록 몇 개월 전부터 이 여행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 인생의 모든 주요 사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저 알기 위해서, 그저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거창한 이유나 목적 없이 다른 풍경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러 가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라는 말은 사라져버린다. 여행길을 통해 얻은 무언가가 ''그저''라는 말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드에게 콩고여행은 ''나이 들어 실천에 옮겨진 젊은 시절의 한 계획''에 불과할 뻔했으나, 여행 중 그가 겪은 경험을 통해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오래 남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욕심에서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항상 글을 써왔던" 지드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참상을 보며 "곧 소멸되어도 좋으니, 목소리가 즉가 대중에게 미치는 저널리스트들이 부럽다"고 적은 것이다. 여행 이후 지드는 아프리카 식민지의 끔찍한 실상을 고발하여 프랑스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회사 조사 위원회''가 발족되고, 식민지 장관은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지드 개인에게는 자신의 "문학적 방향을 바꾼 운명적인 여행"이라고 할 만한 이 여행의 기록은 아프리카 지역의 풍광 및 풍속에 관심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리 읽을 만한 것은 못된다. 더군다나 지드와 그의 동행이 "예순 명의 짐꾼 외에 민병대원 한 명, 원주민 안내자 한 명, 우리의 두 보이와 요리사, 거기다 예의 그 민병대원과 원주민 안내자와 동행하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이라는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아가며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씁슬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 "우리가 지나온 각 지역의 종족들은 처음부터 천한 종족이라기보다는 보잘것없는 안락만을 갈망함을써 천하게 되고 노예화 된, 그리하여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종족들"이라는 제국주의적 시각은 실망을 불러일으킨다(물론, 지드는 후에 "다시 읽어보니, 이와 같은 지적이 좀 과장되게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썼을 때는, 오랫동안 빠져 있는 그 혼돈상태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적기는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