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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가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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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의 소위 '평등주의'담론을 일종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생각해왔고, 더군다나 이 책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왔기에 무슨소리를 할런지는 안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에 언제나 그냥 지나쳐왔다. 그럼에도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저자의 명성 때문인데,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저술을 접해본적이 없기에 짧은 책으로나마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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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의 소위 '평등주의'담론을 일종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생각해왔고, 더군다나 이 책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왔기에 무슨소리를 할런지는 안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에 언제나 그냥 지나쳐왔다. 그럼에도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저자의 명성 때문인데,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저술을 접해본적이 없기에 짧은 책으로나마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망이었다.

우리가 소위 '한국의 평등주의'를 이야기하려면 두가지의 전제 즉, i)과연 한국의 경우 유달리 평등성향이 강한것이 사실인지 ii)평등주의의 의미는 무엇인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책은 이 두가지에 대해 전혀 설명해내지 못했다.

우선 한국의 경우 유달리 평등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에 대해 저자는 그저 '다들 그렇단다'는 언급만하고 넘어간다. 수필이 아닌 이상 비교를 하거나 분석을 하는 등 나름의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사회과학 서적의 기본 요건이 아닐까란 점에서 책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사돈이 땅사면 배아픈 감정'은 인간의 경우라면 누구나 느낄법한 감정이며 이는 외국의 영화나 소설을 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정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한국인의 경우 실제 강하기나 한건지 아니면 표현만 과장된 것인지, 그리고 (만약 강하다면) 그러한 개인적 감정이 사회현상으로 확장되어 표출되는 데에는 어떤 기제가 숨어있는지 정도는 언급을 해주는 것이 성실한 자세이겠건만, 그런 언급은 정말 '전혀'존재하지 않는다.

두번째로-이는 첫번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저자는 '평등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등주의에 대한 개념규정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덧 갑자기 다원성의 반대되는 '일원화'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사적재산권과 자유를 동일시하는 폭력성(?)을 보이다가 자기결정권과 다양성으로서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니 저자도 헷갈리고 독자도 헷갈린다. 지방분권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평등주의적이지만 어떤측면에서보면 서울로 일원화된 사회를 분산시켜 다양화한다는 점에서 평등주의적이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사유재산권의 완전보장 측면에서보면 자유주의적이지만 다양한 것들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일원화 시킨다는 측면에서 평등주의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란 노조는 죄다 귀족노조 운운하는건 평등주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정작 자본가에 대해서는 귀족운운 안하는걸 보면 엄청난 귀족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것을 저자 또한 알긴 아는지 스스로도 계속 헷갈리며, 그에 따라 읽는 나도 계속 헷갈렸다. 따지고보면 저자가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파시즘(혹은 국가주의)에 의한 사상통제 및 일원화, 돈이라는 그 단한가지 기준만으로 줄을 세우는 천민자본주의, 아버지 밑에 일렬로 줄서게 만드는 가부장주의(그리고 권위주의), 전공을 불문하고 점수하나에 맞춰 학력, 아니 심지어 인간의 됨됨이까지 판단하는 학력주의, 오로지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중잣대 뭐 이런 것을 오로지 '평등주의'라는 센세이셔널한 단어 단 하나로 담아내려니 그게 어디 담아내지겠는가? 뿐만아니라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에 사회현상을 끼워맞추려다보니 여러가지 만행아닌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를테면 독재자로부터 받은 억압이-그 정도의 심대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채-민중이나 상류층이나 똑같았다고 이야기를 하며(푸코가 이런 곳에 인용될줄이야~!!), 권리만 주장하지 의무는 외면하는 것은 상류층도 마찬가지(외려 사회적 여파는 그들이 더 강하다)임에도 중산층과 하층민만의 습속인것처럼 이야기할 뿐만아니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자유를 평등의 반대말로 사용하고 있다. 빈민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심각한 불평등으로 학업을 관두게 되는 슬럼가 자녀들이 자유로운가?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이고 평등의 반대말은 불평등이지, 자유와 평등 그 자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때문에 루소는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주의'사상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빡센(?)평등사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위와같은 헐거운(?) 논의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바로 원인과 결과의 혼동이다. 그래, 평등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도 안되었고, 평등주의가 실제 만연한건지 실증적인 검토도 되지 않았다해도 일단 평등주의라는 것이 '있다'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그게 한국인의 마음속의 '습관'으로 치부할 문제인건가? 평등주의가 우리사회 병폐의 어떤 주된 '원인'인걸까? 한국인들은 '원래' 평등주의적인걸까? 한 집단이 '원래'그렇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유태인은 원래 사악해, 아랍인들은 원래 과격해, 전라도사람들은 원래 속을 알수없어, 이런 '원래'의 결과가 인류사에 어떤 비극을 야기했는지 안다면 말이다. 외려 한국의 평등주의-그런 것이 만약 있다면-는 원인이라기보단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경험은 친일파들만을 대거 상류층화시켰으며, 이러한 상류층은 실패한 과거사 정리로 오늘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화과정에서 상류층이 보여준 행태는 설령 저자 말마따나 그들도 똑같이 국가에 의해 탄압받았다 하더라도 실망스럽거나 외려 반동적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힘쓴 민중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런 고리타분한 역사적 배경을 제쳐두더라도 국가경제가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은 비슷한 경제발전 시기의 서구국가들과는 비교하는게 민망할 정도이며, 소득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보수세력마저 인정할 지경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측면에서 시민들은 일제시대부터 오랜기간 '사상통제', 그리고 그로인한 '자기검열'을 받아왔다.(아울러 그 가장 큰 원인이 된 악법은 지금도 안녕하시다) 자, 이런데도 '평등주의'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인지해서인지 계속적으로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에서야 이야기한다. '평등주의를 드러내기'위해 책을 썼다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평등주의는 저자가 드러내어주어 우리가 처음 알게된 새삼스러운 무언가가 아니다. 이미 독재권력과 재벌들은 당면한 문제해결을 회피할 목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따라 멋대로 끼워맞춘 평등주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왔고, 이로인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합의'는 번번히 우회되고 지연되어왔다. 어쨌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후편을 쓸 계획이 있다는 것.(물론 거기에 '언제 착수할지 모른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_-;;;;) 후편에서는 과연 이 평등주의에 대한 나의 편견-결국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불과할 뿐이라는-을 깨주실 수 있으려나, 하여간 지금까지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것만큼은 사실이다.

ps.그나마 이 책에서 건질만한 것은 우리의 모델, 우리의 합의, 우리사회에 맞는 교양과 도덕이 형성되지 않은 점을 개탄하며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는 저자의 지적 뿐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정작 저자 스스로 불분명한 근거로 이데올로기 공세를 한 꼴이라 사회적 합의를 촉진하기보단 방해만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j***8 2006.05.18. 신고 공감 3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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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큰 주제지만 해결해야할 과제...
"너무나 큰 주제지만 해결해야할 과제..." 내용보기
매주 TV에서 하는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책이 소개된것을 본적이 있다. 당연히 다음날 바로 책을 사게 되었는데 가격도 싸고 삼성경제연구소라는 메이커가 붙은 출판물은 어느정도 믿을만한것 같다. 페이지도 분량도 많지 않고 가격에 비해 내용의 질은 상당히 높은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평등주의에 관한 국가전체적 합의는 영원히 불가능할것이다. 아니 그보다 자
"너무나 큰 주제지만 해결해야할 과제..." 내용보기
매주 TV에서 하는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책이 소개된것을 본적이 있다. 당연히 다음날 바로 책을 사게 되었는데 가격도 싸고 삼성경제연구소라는 메이커가 붙은 출판물은 어느정도 믿을만한것 같다. 페이지도 분량도 많지 않고 가격에 비해 내용의 질은 상당히 높은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평등주의에 관한 국가전체적 합의는 영원히 불가능할것이다. 아니 그보다 자본주의와 경제위주로 더욱더 다가가는 현재의 사회는 더욱 악화될 것 처럼 보이는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국가 전반적인 계층과 국민들의 평등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잘 말한것 같고 전체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물론 그렇기에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수가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처럼 수많은 아이러니, 딜레마, 모순, 부조화, 그렇지만 뛰어난 인력, 발전, 높은 기술력등 나쁜것과 좋은것을 한꺼번에 다 같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평등또한 우리가 합의를 이루어야 할 문제인데 이문제는 정말로 답을 알 수도 없고 알았다 한들 해결책 또한 바로 나오는 그런 쉬운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지난 몇십년간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더욱더 나누고자 한 문제의 근원이자 발전을 이루게 한 원동력인듯 하다.   작가는 중간중간의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담고 있다. 티비에 나와서 토론때의 모습처럼 책에서 역시 그가 말한 설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우선 계층을 나누는 3P (재산-Property, 지위-Prestige,  권력-Power)가 우리사회에도 많은 문제점을 낳게 하는 요소이며 이 안에서의 평등에 관한 여러가지 기준과 합의가 문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결과에 대한 평등을 이해 못하는것, 기회에 관한 평등의 기준, 평등의 진정한 의미등 우리 사회가 평등을 어떻게 잘못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떤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외국 학자들의 인용과 외국의 사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한 설명등 연구에세이라 그런지 내용이 쉽지많은 않지만 이해하기 좋게 잘 설명해준것 같다.   후반쯤에는 자신의 주장도 피력하고 있으며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뜻은 어찌보면 이상적인 측면이 많다고 본다. 난 이미 우리사회가 교육과 방향제시 그리고 어떻게 하자고 해서 그렇게 될거라곤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강제력과 시스템의 변화등 어떠한 물리적 변화많이 그 해결 방안이라고 본다. 물론 그 위의 이상과 목표는 이런 작가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찬성하는 바이다.   어찌되었건 우리사회의 평등에 관한 문제를 이해하고자 할때 싼 값에, 조금은 어려워보이지만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p*******2 2006.05.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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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분배, 성장에 대해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
"평등과 분배, 성장에 대해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 내용보기
SERI 의 이 작은 문고판은 꽤 영양가가 있다. 가격대비 내용이 꽤 알차고 200페이지 이내의 짧은 분량에 아주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수박 겉핥기'로 그 영역이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하게 해주는 역할은 하니까 말이다.   사회학이란 학문도 왠지 친근해보이지만 그리 만만한 동네는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송호근 교수의 '한국의 평등주의
"평등과 분배, 성장에 대해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 내용보기
SERI 의 이 작은 문고판은 꽤 영양가가 있다. 가격대비 내용이 꽤 알차고 200페이지 이내의 짧은 분량에 아주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수박 겉핥기'로 그 영역이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하게 해주는 역할은 하니까 말이다.   사회학이란 학문도 왠지 친근해보이지만 그리 만만한 동네는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송호근 교수의 '한국의 평등주의'라는 책은 한국인의 심성이란 측면과 한국의 사회적 구조, 역사적 통찰등을 잘 엮어내면서 내가 평소 생각해오던 평등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보이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측면에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평등주의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제로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했던 한국의 역사적 질곡이 어떻게 급속히 빠른 속도로 한국인의 기본심성을 '날때부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나'는 평등주의로 동화되게 되었는지, 그리고 6월항쟁이후 문민정부, DJ정권, 참여정부로 넘어오는 과정의 분배우선주의가 득세를 하게 되는 이유, 그 문제점에 대해 꽤 설득력있게 얘기를 하고 있다.   한편 평등주의가 한국의 급속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꽤 재미있는 얘기.   마지막 부분에 해결점으로 제시하는 다원적 평등주의라는 내용은 좀 이상적인 것 같긴 하고 현실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국민총생산이 3만불을 넘어가면 삶의 질을 추구하고 삶의 목적이 모두 개인을 중심으로 상대적인 가치로 다변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 그리 멀지 않은 장래로 내다보고 있는데..나 역시 사회의 발전은 '다양성의 수용가능성'이라는 것, 마이너적 가치의 존중, 마이너가 자가 생산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으로 측정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동감하는 바다. 그러나 한국이란 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까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의 입장에 그리 동조하는 바는 아니고..   어찌되었건 일독을 할만한 책임은 사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a 2006.04.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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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평등주의를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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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주의라는 어떻게 보면 생소한 단어 (영어로 equalitarianism, 정말 생소한 단어이다)를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글에서 논의 되고 있는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은 요사이 우리나라의 최대의 현안이기 때문이다. 행정도시 이전 및 국토의 균형발전, 교육의 문제, 강북 신도시 또는 강남 부동산 문제, 나아가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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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주의라는 어떻게 보면 생소한 단어 (영어로 equalitarianism, 정말 생소한 단어이다)를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글에서 논의 되고 있는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은 요사이 우리나라의 최대의 현안이기 때문이다. 행정도시 이전 및 국토의 균형발전, 교육의 문제, 강북 신도시 또는 강남 부동산 문제, 나아가 비정규직을 포함한 고용 및 노사의 문제, 재벌의 부의 세습 문제 등 이 이슈가 발 디디지 않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탁월한 책임에 틀림없다. 사회학은 분명히 살아있는 학문이고(비록 후행한다 할지라도), 나아가 서구중심주의적인 이론의 틀을 어설프게 가져다가 껴맞추는 식의 아카데미즘한 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2가지 방향에서 이글은 공격당해질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첫번째는 당연하게도 일원론적 구조주의자로부터의 공격일 것이다. 그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이는 "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즉, 논의의 시작자체가 "분배"에 관련된 문제인것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위에서의 문제점들은 문제점이 아니고, 사회의 모순이 표출되어 나오는 과정인 것 뿐이다. 즉 최종의 결론을 위해 진행중인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은 무의미함 그 자체이다는 공격이 될 것이다. 두번째는 그 반대편의 신자유주의자들로 부터의 공격일 것이다(일부의 독자는 이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즉, 평등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및 현 집권정부의 비효율성이 이렇게 노출되었는데, 왜 비판의 수준이 아니고, 담론의 수준에 머무르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 일것이다. 즉, 위의 문제점들을 정책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출 시키고, 문제를 확산, 증폭시키는 현 집권당의 의도론 또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속 시원히 그것에 대한 비판해주길 바라는 목마름이 앞설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회학이든 정치학이든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서 구체적인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논의들이 일어나고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자유주의든, 민주주의든, 아님 구조주의든 간에 그들은 그들대로 움직여 가고, "한국의 평등주의"는 분명히 앞으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가족이든, 기업이든 여러 주체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귀납적이지 않고 직관론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그런들 어떠 하겠느냐?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인 것을. 당장에라도 주위에 질문을 던져보자. "팀장님! 내가 일도 많이 하고, 성과도 좋은데 왜 저 직원하고 임금을 똑같이 받아야 합니까?"     
YES마니아 : 로얄 s******n 2006.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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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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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의 평등주의는 다름 아닌, 한국민의 공통적인 심성을 의미한다. 그 심성은, 저자에 의하면, 불평등에 대한 불관용증이며, 결과의 평등에 집착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세간의 독자들에 의해  이 평등주의의 실체에 대해서 밝히는 작업에서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모양이다. 저자는 드러내기가 사회과학자의 일차적 작업이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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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의 평등주의는 다름 아닌, 한국민의 공통적인 심성을 의미한다. 그 심성은, 저자에 의하면, 불평등에 대한 불관용증이며, 결과의 평등에 집착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세간의 독자들에 의해  이 평등주의의 실체에 대해서 밝히는 작업에서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모양이다. 저자는 드러내기가 사회과학자의 일차적 작업이며,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이차적 작업이라고 변명한다.

 

우선, 나는 저자가 말하는 한국민의 평등주의 자체가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앞부분과 중간 중간에 저자가 평등주의가 발현되어 나타나는 모습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사례를 적어놓았다. 이 사례들은 1번 주석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가 '사회과학자로서 터득한 다양한 체험'과 비슷할 터이다. 단지 개인적인 체험과 몇가지 사례 만으로 한국이 평등주의적 심성이 가장 높은 국가군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부실한 근거로 평등주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는데, 물론 '드러내기' 차원에서는 그것이 자세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수용가능한 근거를 내놓았어야 했다. 그래야, 인과관계를 찾아낼 때 그 수용가능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평등주의가 만연하다는 것은 사실 한국의 민족주의, 어떤 민족의 특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함석헌 선생이 쓴 책에는 우리나라의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탁월함을 보이려 할 때에는 광개토대왕이 고대 고구려를 확장시키던 실례를 드는데,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박노자씨가 이미 지적했듯이- 고구려민족은 평화를 깨고 전쟁을 일으킨 덕분에 대규모 영토 확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베트남전의 한국군 파병만 하더라도,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민족은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을 단지 베트콩과 구분이 안된다는 이유로 학살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등주의가 과연 한국민들에게 유독 높게 나타난다는 저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장이 여느 민족주의 주장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사민주의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들은 많이 가진 자에게 고율의 누진세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북유럽민들의 평등주의 심성이 세계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 않는가? 그것도,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말이다.

 

만연한 평등주의의 결과로 지적한 현상들인 시기와 질투, 분노와 불신, 존경의 철회, 자기부정, 기회주의, 법치주의의 약화 등은 모두 평등주의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중간' 역참'으로 분류한 한국의 자유주의 계층의 결층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듯하다. 한국전쟁이 부정적인 제조건의 평등을 초래했고, '교양있는' 부르주아지가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 이후 권위주의적 정권이 집권하면서 정글 자본주의가 실현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근대 유럽과 같이 부를 획득한 부르주아지가 시민 윤리와 사회 계약을 확립하는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어버렸다. 즉, 사회는 재산 축적과 출세를 향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가 얼룩진 부정의의 온상이 되어버렸고, 진정한 시민의 '자유주의'는 책 속의 구호로만 남았다.

 

굳이 평등주의라는 모호한 실체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부정의한 사회에서는 불신과 출세한 자들에 대한 존경의 철회, 기회주의가 넘쳐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자유주의의 실천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적 경험이 결핍된 한국의 중산층은 중산층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교양을 배양하고 내면화할 겨를도 없이 산업화 공간에 던져졌'던 것이 원인이라는 말이다.

 

저자의 평등주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다원적 평등에 대한 이론과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은 처음 접했기에 생소했지만 흥미로웠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루소의 불평등기원론, 그리고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란 책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l*****5 2007.09.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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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전제된 평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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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등한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등주의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상향적 계층 이동의 의지가 서려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특히 연고주의와 결합된다. 평등주의란, 자유와 대척점을 이루는 개념이다. 자율적 경쟁보다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같은 권리를, 부자들은 겉으로 싫어하고, 정치적. 행정적 수혜를 받은 존재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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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등한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등주의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상향적 계층 이동의 의지가 서려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특히 연고주의와 결합된다. 평등주의란, 자유와 대척점을 이루는 개념이다. 자율적 경쟁보다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같은 권리를, 부자들은 겉으로 싫어하고, 정치적. 행정적 수혜를 받은 존재로 생각하지만 결국은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닌, 그런 개념일 테다. ‘자유가 너무 지나치다’를 견제하고 비판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공한 사람을 인정하기 싫은 욕구가 지배적이다. 나아가 존경심을 철회하고자 하는 욕망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러한 평등의 전제에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연결돼 있다. 바로 구별/차별에 대한 담론의 차이이다. 차별(discrimination)과 구별(distinction)은 엄연히 틀린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구별=차별의 코드가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구별’의 개념은 분명 다르다. 이를 사람의 생활에 적용해 볼 때, 하나의 생활양식, 교양과 격식, 형식에서 우러나오는 높은 품격의 삶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계층’이 이러한 양식에 따라 나뉘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구별/차별을 운운하며 평등을 논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미국을 여행한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제 조건의 평등’을 주장했다. 미국은 모든 사회적 인프라, 제도, 시스템과 더불어 사람들의 자발성과 자율적인 참여가 ‘평등’을 창조한다고 봤다. 제 조건의 평등이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상황이 아닌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산권을 부여받은 개별적 인간들의 자율경쟁이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출발선이 동일하게 주어졌다면, 훗날 야기될 수 있는 ‘불평등’은 인정해야 한다. 미국사회의 유력 고위층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들이며, 일본도 기업입사 환영회 때 대학 순위별로 사람들을 앉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최소한의 생활 보장’과 ‘사회적 불평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서열’을 없애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 평등이란 개념은 어느 정도의 자유가 전제된 것이다. 대척점에 있지만, 상호보완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불평등 요인은 ‘사회적 인정‘이다. 어떤 정책이나, 특정 인물이나, 삶의 스펙트럼에 대한 ’인정‘은 곧 ’기준‘을 말하게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이 평등이며,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가? 반대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전제된 평등이 올바른가? 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담론은 다시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평등을 위해서는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이 자유는 앞서 설명한 생활양식으로서의 교양이 가미된 ’품격‘이 그 주춧돌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을 통해, 올바른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했다. 올바른 시민사회란, 자유에 대한 공론화의 장을 형성하고 ‘평등’의 원리를 가미한 사회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축적이 자유와 평등의 척도다. 권위주의 정권을 통해 중산층(송교수는 ‘교양 없는 중산층’이라고 명명한다. 앞서 설명한 자유주의의 전제가 부재한 중산층을 의미)에게 남은 것은 ‘재산과 자유’가 아니라 ‘재산과 평등’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평등주의’를 강요했지만, ‘억압을 위한 평등’이었다. 불평등 때문에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중산층은 시민윤리나 도덕교육에 대한 고민 없이 산업화에 던져지게 됐고, 교양을 ‘내면화’할 겨를도 없었다. 1970-80년대 중산층이 갈구한 자유는 권위주의에서의 탈출이었지, 정당한 재산 축적 , 공익 함양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위층과 부유층의 반발을 최소화, 혹은 없는’ 평등원칙의 실현이다. 그러나 급증하는 세계화의 논리는 평등의 원칙을 자꾸 축소시킨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능력과 경쟁 위주이지만, 한국의 스탠다드는 잘나가는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 위주의 지배 논리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등은 인정(人情)과 공정성에 기반을 둔다. 또한 평등의 기준에 대한 관용 수준을 높여야 한다. 능력으로, 실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는 말이다.

 

존 롤스의 단순 평등 체제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평등, 즉 평등 분배보다 불평등 분배에서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올 때를 상정한다. 대체로 사회의 최소 수혜자 또는 약자가 분내 몫을 더 할당받아 그 불평등을 합의해줄 때를 말한다. 이를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가 돌아간다는 뜻에서 맥시민 원리라고도 부른다. 나아가 송교수의 대안은 다원적 평등이다. ‘상이한 가치들은 상이한 분배 원칙에 따라 상이한 주체에 의해 분배’되는 것으로, 결과의 평등(주로 재산)에 얽매인 가치관을 버리자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평등을 가지자는 말이다.

 

송교수의 결론은 다소 허무하지만, 한국의 ‘평등주의’라는 개념 자체도 처음 들어보거니와, 이를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했다는 측면은 박수를 쳐줘야 한다. ‘교양 없는 중산층’이 주는 어감은 좋지 않지만, 일리 있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억압적 평등’에서 1917년 레닌의 ‘레닌식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사회 대다수는 ‘농민’들이어서 조직적인 시민사회가 형성되지도 못했다. 나아가 해방이 된 이후에도, 한국전쟁은 근대적 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여전히 시민사회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절충이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87년 민주화 이후, 자유/평등의 논의도 해보기 전에, 세계화 담론은 더욱더 ‘사회적 가치로서의 평등’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이쯤 되면 송교수의 저서는 대단히 흥미롭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평등은 무엇일까? 송교수의 말처럼, 확실히 ‘평등주의적 심성’에 얽매인 시기, 불신, 분노를 버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부유층,고위층도 수긍할 만한’ 평등적 정책을 시행함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참여정부’는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강남의 집값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최근 종부세와 양도세, 공동세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있다. 용돈연금이라지만, ‘최소한의 생활이 힘들 수 도 있는’ 노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초노령연금법을 시행하려 한다. 국가 재정 고갈시기가 정해졌는데도 말이다.

자유/평등의 개념이 배치된다는 생각만 했던 나로서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짧은 분량에 토크빌, 한국의 역사에 얽힌 평등주의, 조금 부족하지만 제시한 결론은 알차다 못해 차졌다. 꼭 한 번은 더 읽어둬도 나쁘지 않을 책이다.

m********1 2007.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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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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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러 현상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한국인이 가진 '평등 지향적 심성'(equality-oriented mentality)에서 유래하고, 이 '평등주의'(equalitarianism)는 한국인의 마음에 내장된 일종의 습속으로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평등을 지향하는 심성이 국내의 역사 속에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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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러 현상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한국인이 가진 '평등 지향적 심성'(equality-oriented mentality)에서 유래하고, '평등주의'(equalitarianism)는 한국인의 마음에 내장된 일종의 습속으로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평등을 지향하는 심성이 국내의 역사 속에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형성되어 왔으며, 현재 한국 사회 도처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를 연구하여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를 위한 학문적 증거 자료로서 사회학, 경제학, 윤리학, 정치학의 주요 이론들 - 특히 토크빌, 막스 베버, 로크와 루소, 애덤 스미스, 롤스의 정의론과 왈처를 아우르는 - 을 제시하고 적용함으로써 한국 고유의 평등주의적 심성의 실체에 대한 근거를 획득한다.

먼저 평등주의가 빚어낸 긍정적 · 부정적 풍경을 다양하게 소개한 후, 논리 체계와 집단정신으로서의 평등주의의 의미를 분석한다. 이후 평등주의가 증폭된 이유와 평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할 대안인 '다원적 평등의 논리'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사회과학적인 지적 연구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 책이다.

결론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공정한 정치적 제도의 마련이지만, 한국 평등주의의 부정적 현상을 극복하고 저자의 이상적 목표를 앞당기는 방법은 (필자도 지적했듯이)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시민 윤리의 함양(개별 이익보다는 공동 이익을 중시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이해와 양보, 그리고 배려, 준법정신과 관용의 정신 등), 즉 교양으로서의 도덕 교육이라는 소견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덧붙이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16.1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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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고민해볼 '평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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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롤러코스터의 노래 가사다. 몸에 밴 ‘습관 고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말은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랑도 초반의 ‘설렘’보다 시간이 흐른 뒤의 ‘정’이 더 무서운 것처럼 습관은 소리소문 없이 제 자리를 꿰찬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이라는 책에 눈길이 간 까닭은.   송호근 교수는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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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롤러코스터의 노래 가사다. 몸에 밴 습관 고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말은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랑도 초반의 설렘보다 시간이 흐른 뒤의 이 더 무서운 것처럼 습관은 소리소문 없이 제 자리를 꿰찬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이라는 책에 눈길이 간 까닭은.

 

송호근 교수는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평등주의적 습관에 대해 말한다. 평등주의는 권위주의 정권이 즐겨 활용했던 통치 이념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위협 없이 우리의 생활양식으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고. 누구에게나 가능하게 보였던 재산 축적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고. 그 불만은 억제된 자유가 아니라 무한한 평등 심성으로 폭발됐다고. 타인이 재산 축적에 성공하면 나도 성공해야 한다는 대결 의식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면 평등 이념에 호소하는 매우 묘한 마음에의 습관이 형성됐다고 말이다. 그리고 상황적 인프라 제공 없는 부의 축적이 결국 교양 없는 중산층을 형성했다고 본다. 이는 프랑스 등의 유럽과는 다른 사회성을 형성한 까닭으로 지목된다.

 

노력, 의지, 능력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는 규범적 성격의 평등주의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수용됐다송호근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얼핏 생각하면 어떻게 자유주의평등주의을 형성했나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독재와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성장 위주의 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그 결과 빈부, 계급의 차이가 벌어지고 이는 한국인의 평등주의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는 논리다. ‘나도 돈이 있었으면, 나도 빽이 있었으면잘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열등감이 평등 이념에 호소하는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단다. 저자는 평등주의를 한국인의 습관이라 감히 말한다. 이는 사회 곳곳에서 여러 양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이다. 짧은 분량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순 없어 스스로도 원론적 제시에 그친 점을 아쉽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명료한 그의 분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쉬운 점 하나. “‘부자 되기(being rich)’는 출세와 고소득이라는 단일 기준을 평등에 적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윤택하기 살기(well being)’는 경제적 기준 외에 정서적, 심리적 만족도를 또 다른 기준으로 내면화한다. 그것은 단일한 평등다원적 평등으로 전환시키는 계기일 것이라는 말. ‘웰빙 열풍은 과연 다원적 평등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가? 물론 부자 되기보다 다양성이 강조된 측면은 인정한다. 허나 웰빙은 그저 또 하나의 한국적 평등성 지향을 보여주는 게 아닐는지.

YES마니아 : 로얄 s**p 2007.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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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 새겨지듯 마음에 남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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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나보다 잘되면 배가 아픈 마음이 한국 사회에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이 송교수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어느정도 공감한다. 성공한 사람은 왠지 부정과 부패 혹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섰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본받으려는 마음보다는 부정적인 마음들을 많이 가지게 된다. 이는 급격한 성장 가운데, 땅부자나 정경유착과 같은 실례들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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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나보다 잘되면 배가 아픈 마음이 한국 사회에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이 송교수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어느정도 공감한다.

성공한 사람은 왠지 부정과 부패 혹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섰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본받으려는 마음보다는 부정적인 마음들을 많이 가지게 된다. 이는 급격한 성장 가운데, 땅부자나 정경유착과 같은 실례들이 이제껏 많이 존재해왔음을 볼 때 상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사실의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은 예들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불법을 통해 성공하기보다는 자신의 성실과 정직에 기반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턱대고 성공한 사람에 대해 획일적인 비판적 시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들의 좋은 성품과 실력에 대해서는 찬사와 존경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균형잡힌 시각이 아닌가 한다.



YES마니아 : 골드 s*******1 2010.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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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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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좋은 것이다. 자유도 물론. 다섯번을 읽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가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자유, 권리, 평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뉴스를 보면 혹은 미디어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일들을 알게 되도 요즘은 분노가 생긴다.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나, 기가 막힌 일들도 많고 말이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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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좋은 것이다. 자유도 물론.

다섯번을 읽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가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자유, 권리, 평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뉴스를 보면 혹은 미디어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일들을 알게 되도 요즘은 분노가 생긴다.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나, 기가 막힌 일들도 많고 말이 안되는 일들도 많고.

막연하게 빈부의 격차가 커져서 사회가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알고 싶어서 이런 책을 읽게 된다.

편하게 읽히는 분야는 물론 아니었고.

 

저자는 우리나라의 평등주의를 회를 친다.

저 시골 동네의 자식교육부터 말도 안되는 강남의 교육열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등주의 심성에 뿌리를 둔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근거와 예시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으나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사회학도 재밌는 분야구나 생각했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 있으니...

여튼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하는 심성이 발전을 부르고 그 심성이 질시를 부르고 결국 그 심성이 사회의 혼란까지 만든다고 한다.

 

두번째장인 평등주의는 무엇인가? 부분이 평등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를 주긴 하는데. 효율성과 분배를 만족스럽게 균형잡으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데, 개개인의 중요성이 엄청스레 강조된 요즘 세상에 대다수가 인정할 만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려면 의견을 취합하고 이끌어가는 정치인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부분을 저자는 간과한 듯하다.

 

우리나라가 채택한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어찌된 것이 중요한 정치를 하는 인물들이 도덕적이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다. 사회적 합의까지 가는데 의견을 내고 이끌어가야하는 정권을 잡는 권력집단이 자신의 이익? 또는 아집에 치우쳐 있으므로 효율성, -대다수의 효율성이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 또는 자신의 기준의 효율성에 치우치다 보니 분배의 개념은 효율성을 잘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듯하다.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독재를 했던 정치 집단조차도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대다수 국민의 행동을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그들이 이용한 평등의 개념이 효율성에 치우쳤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평등이란 모두가 쌀밥을 먹을 수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데서 출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모두가 쌀밥을 먹기 위해 하등한 존재들은 희생당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쨌든 저자는 이런 우리나라의 평등주의는 근대화과정에서 제도나 다른 제반조건- 저자는 제대로된 중산층, 좋은 제도를 받아들일 만큼 수준이 높은 국민들,여기서는 아마 정치인도 포함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근대화를 향해 가면서 교양없는 중산층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라고 풀어나간다.

잘못생각하면 여기서 나는 교양있다는 식으로 돌아설 수 있는데 여기서 교양이란 무엇일까, 철학적 소양을 갖춰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는? 물론 세상엔 선악이 존재하고 선악에 따른 인간의 구분이 있을 수 있으나, 교양이 있거나 없거나 인간은 귀한 존재이다. 저자와 같이 많이 배우고 말도 안되는 벽들에 부딪혀 본 이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인간의 급을 나누는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실제로 교양없는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나, 그 반대편에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문제가 되는 평등주의와 분배보다는 효율성에 치우친 사회 안에서 다들 한숟가락씩 얹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가 인정하는 가치가 '부'로 결정되어지는 이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급을 나누는 그런 기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근대화를 지나오고 민주화과정에서 분배의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하자 평등주의가 문제적 진보세력으로 변질되어버려서 지금의 노사환경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일면에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 과정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지려고 한 이들이 있었고, 과거로부터 그래왔던 이들이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래에 속해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보상받지 못했다는 부당함을 계속 느끼고 자신의 보상을 위해 새로운 부당하게 분배받는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은 개개인의 도덕성이 갖추어져야 사회전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으나, 개개인의 도덕성을 논하기엔 사회자체가 너무나 각박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박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으려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졌던 사람들이 잘해야된다는 사회적 분배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런 사람들조차 모자람을 느끼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나는 그냥 나하나라도 잘하자는 냉소로 돌아서게 된다.

 

저자는 남들처럼 나아지려는 평등주의의 장점을 살리고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한 공정성을 실현하며 서로 참아주고 다원적 평등을 실현해야한다고 맺고 있으나...

이것은 정말 끝맺음 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걸 읽을 수록 느끼게 되더라는

 

YES마니아 : 로얄 s******1 2015.10.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