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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전에 쓴 소설이 깊은 공감과 흥미진진함으로 읽힐 수 있다니, 새삼 고전의 힘을 느낀다. 포스터에게 영국이 위선과 오만, 체면과 허식이라면 이탈리아는 열정, 사랑, 무모함과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가 이탈리아를 대하는 태도는, 이해하고 동경은 하지만 속해서 살 수는 없는 곳. 대부분의 우리가 낯선 문화와 사람을 만났을 때 보이는 경계나 막연한 불안보다 그저 한발짝 앞선 것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인 지노를 사랑하게 된 두 여자, 릴리아와 캐럴라인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캐럴라인의 선택은 릴리아의 삶의 괘적을 알고 난 이후이니 두 사람의 선택의 상황이 엄밀하게 공평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릴리아가 불행했다면, 소설에서 보여주지 않은 캐럴라인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되새길 이렇다할 추억하나 작은 희망하나 없이 쓸쓸히 외롭게 늙어가는 것, 그런 삶이 릴리아보다 나은 것이라 말 할 수 있나. (혹, 이탈리아에서 사랑을 배운 캐롤라인이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상황은 다르겠지만) 결국, 무언가. 이탈리아는 열정을 주고 사랑도 주지만, 그 안에 발을 딛어 그들 삶에 빠지는 순간 불행해지고 만다는, 그런 불행을 캐럴라인은 현명하게도 비켜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듯해 김이 빠지고 말았다. '뭐뭐스럽다'는 표현만큼 어느 한 사람의 성격과 가능성을 묶어놓고 규정짓는 표현이 있을까. 그러한 규정과 단정은 대부분 편견과 독선에서 비롯된다. 마치 아는, 익숙한 그림에 처음 만난 누군가를 끼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와 상식을 넘어서는 사람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듯한.. 그런 의미라면 포스터의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이탈리아스러움'에 대한 지나친 집착말이다. 세상은 넓고 낯선 사람을 만나 우연히 그를 사귀는 행운을 갖는다면, 그 사람 그대로 인정하고 좋아하면 된다. 이탈리아 사람은 어떻고, 전라도 사람은 과격하고, 이혼녀는 드세고, 직업이 공무원이니 답답할 거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익숙한 규정, 악의가 없다고는 못할 편견만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는다. 낯선 문화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져야 하는 태도는 하나다. '사람'먼저, 좋아지면 친구가 되고, 그게 아니라면 그 뿐이다. 그의 삶은 우리의 이해와 악의 섞인 관심 없이도 무던히 지속돼 왔다. |
| 수년전 절판 상태였던 에드워드 모건포스터의 전집을 한권씩 어렵게 모든 책을 구하고 제일 먼저 읽은 책입니다. 두껍지도 않은걸 릴라아의 죽음에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걸까하는 충격으로 덮었다가 며칠후 다시 읽기 시작하고 또 아기의 죽음에 놀라서 다시 덮고 하며 오래걸려 다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다시봐도 전집 중에 제일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