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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좋아해온 몇몇 책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결심한 건 쉰세 번째 생일을 맞은 2년 전이었는데, 겹겹이 포개지고 복잡한 과거의 세계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암담한 혼돈을 반영하는 듯한 모습에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소설 속의 한 구절이 불현듯 어느 신문 기사에 통찰력을 제공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면에서 반쯤 잊었던 일화가 떠오르고, 낱말 하나를 단초 삼아 긴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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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옹졸한 독자이다.
늘 독자는 작가에게 있어 신성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취미 역시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자란 존재는 바닥 저편 어딘가에 독을 숨겨 놓은 잡곡밥 같은 존재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말없이 글자만으로 날 삼켜버렸다. (뱉어내!! 뱉어내!!!)
알베르토 망구엘을 욕할 수만은 없다.
왜냐.. 그는 일기를 썼을 뿐이니까..
그러나 기분 나쁘게도 그는 아주 사적인 부분들의 집합체인 일기를 떡하니!! 공개적으로, 것도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것으로 펼쳐 놓았다.
그는 일부러 생각을 드러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라는 독침에 난 꽂혀 버렸다.
책을 읽을 땐 그 책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읽는 것''을 즐거워 하고 ''읽기에 미치는 것''이 행복하고, ''읽은 내용에 생각을 굴리는 것 ''이 비록 버벅대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극히 생산적이라는 자아도취적인 생각에 또다시 기뻐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독서의 즐거움을 만들어 놓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옹졸한'' 독자인가...?
그를 질투하기 때문이다. 질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다.
작가임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직업이 독서가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그는 독서광이며, 또한 그것은 그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많은 책을 읽어 왔다고 자부하나, 그의 목록에 나의 자부심은 발끝으로 끄적거리고 만다.
나의 생각들에 도취하고 있었으나, 그의 깊이 있는 생각들을 읽고 나의 도취감에 물을 끼얹어 버리고 만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줄거리를 읊어 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줄거리보다는 그만의 생각, 혹은 그가 읽었던 다른 책들의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다.
일기라는 형식이 가지는 있었던 일들과, 생각과,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섞어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방대하게 펼쳐지는 책들의 세계에 난 메모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수없이 많이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그는 다시금 읽고 싶은 책들을 선정한다.
그리고는 1년 동안 한달에 한권씩 읽고서 그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책으로 인해, 나는 이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말았다.
방대한 책들의 목록과.. 처음 알게 된 작가들... 행복함으로 소리소리 질러야 하는데... 난 지금 무척이나 불쾌하다.
지금처럼 내가 천재이길 바랬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게 산타가 와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모르는 언어가 없게 해달라!!!라고 말하고싶다.
이 책에 나오는 목록들 중 많은 책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없다.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어려운 일이다.. (ㅠㅠ.. 정말이지 눈물이 절로 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무척이나, 무척이나 밉지만 그로 인해 늘어난 목록들과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 생겨난 어학공부라는 목표 때문에 조금은 이뻐해 줘야겠다는 얄팍한 이기심 하나 생겨난다...
해야할 말, 하고 싶은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아야 한다고 혼자서 생각했던 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키보드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소심하고 감정적이다.
그러나 취미는 취미일 뿐.(글쓰기 말이다)
나 역시 잘하는 것은 글읽기이기에 미련없이 이쯤에서 3할 부족한 만족감을 내려 놓으려 한다.
물론 [독서일기]가 극찬을 받아야 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책이라는 게 있을까?
세상에 완벽한 독서라는 게 있을까?
세상에 아직은 없는 그 부족함들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난 책읽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색하고,(사색이라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냥 생각이라고 할까?) 메모하고, 경험하고...
언젠가 나만의 목록에, 나만의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같은 감상문 하나 세상에 내어 놓고 싶다는 욕심도 자그마하게 자라나고 있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빌려온 책은 어쩐지 그만 가줬으면 하는데도 눈치없이 앉아 잇는 손님같다.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책을 읽으면 개운치 않은 느낌, 즐기다 만 느낌이 든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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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석양이 뉘엿뉘엿 저무는 시기에 이르러 다시금 읽는다면 그 독서는 어떠한 것이 될까? 책장마다의 단어와 문장이 이미 쉬이 넘어 갈 수 없는 수많은 추억을, 연상되는 언어와 이미지들로 들어차 미소를 머금게도, 슬며시 눈물이 흘러내리게 하기도 할 터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젠 처음 펼쳐든 책에서도 순수한 독서는 더 이상 가능치 않고, “문학적 암시가 빼곡해지면서”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과 복잡한 책으로 다가서는 것은 삶의 세월이 훌쩍 넘어선 제법이나 나이가 들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망구엘’이 50대 중반에 들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고 어떤 면에서는 지배하기도 했던 추억이 담긴 열두 개 작품을 매월 한 편씩 1년에 걸쳐 읽어나가면서 매순간 떠오르는 일화, 인상, 사색을 스케치하듯 적어나간 일기이다. 주제가 되는 열두 작품의 대부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전이거나 명작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이나 ‘디노 부차티’의 『타르타르 스텝』, ‘호아킴 마리아 마차도 데 아시스’의 『브라스 쿠바스의 유고 회고록』은 국내에는 낯선 작품들이다. 또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떠오름』은 국내에 『떠오르는 집』으로 번역되어 출간 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절판되어 더 이상은 찾기 힘든 책이 되어버려 작자와 공명하기 어려운 아쉬움도 있다. 또한 인용되거나 비유, 연상을 통해 등장하는 낯선 200여 문학작품들도 ‘망구엘’의 사색의 길을 좇는 일을 여간 벅차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감상적인 환상에 영속적인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일기를 쓰듯이, 현재를 기반으로 하는 이 매력적이고 세련된 통찰과 사색의 여담은 삶의 성숙한 관조(觀照)와 달관(達觀)의 평온함을 선사한다. 사실 작자가 선정한 열두 작품의 대개는 디스토피아적 이거나 인생역정에 대한 회고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작품들이어서 삐딱하게 경사진 시선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적 인상과 염세적인 가치관이 엿보이기도 한다. 소년 킴과 라마승의 여정을 담고 있는‘키플링’의 소설 『킴』에서,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영국의 무지한 이성을 야만에 견주기도 하며, ‘샤토브리앙’의 『무덤저편의 회고록』을 통해 오늘의 우리사회인 “짧은 속보, 반복, 즉시성, 시공간의 어떤 거리도 허용하지 않는 끝없는 순간 같은 것”을 지옥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에 빗대어 현재의 인류사회가 지옥의 다름 아님으로 고뇌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페르디난도 카몽’의 기독교의 ‘타인’에 대한 관계의 목적론적 접근의 성찰이나, 현대 정치사회의 방관자적 구경꾼인 시민들에 대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여유로운 독서가 만들어내는 명상과 통찰의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내 시체의 차가운 살을 갉아 먹은 첫 번째 벌레에 헌정(獻呈)”한다는『브라스 쿠바스의 유고 회고록』처럼 독특한 ‘여담의 책’이나 “정의를 성취하는 것은 단순히 불가능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의로운 사람이 계속해서 정의를 추구해 나가도록 우리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는지도 모른다.”는 정의의 단상은 우리사회의 현실과 어우러져 새로운 연상을 낳기도 한다. ‘망구엘’의 자유분방한 독서일기가 새로운 독서를 추구하게 한다. 더구나 그의 사유의 날개를 자꾸 놓치는 탓에‘괴테’의 『친화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이리라. “원하는 대로 읽어라! (LYS CE QUE VOUD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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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구엘은 쉰세번째 생일을 맞은 어느 날,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한달에 한 권씩 골라 다시 읽어보기로한다. '다른건 몰라도 해박한 독자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자부하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달에 한권씩 선정했다뿐이지, 그 책과 관련된 책들과 그 책을 읽어내는 독자인 알베르토 망구엘의 일상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술술, 먹기 좋은 밥마냥 보기좋게 펼쳐진다.
저자는 '독서는 일종의 대화'라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와같이 책에 대한 책은 그야말로 독과도 같다. 독서는 연상이다. 그의 일기에서 이야기되어지는 많은 책들이 내 책장에서 끌려 나오고, 이야기되지 않은 연상된 다른 책들도 함께 끌려나온다. 책을 읽는 동안 미친듯이 바쁘게 수다를 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체할 염려는 없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그에게 '책'은 '일상'이고 '생활'이지만, 그 옆에는 친구도 있고, 고양이도 있다. 과수원도 있고, 좋은 이웃도 있다. 여행하면서 책을 읽고, 여행의 소회를 펼쳐놓고, 또 생각나는 책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냈다가, 작가의 취미이자 특기인 '목록만들기' 놀이를 하는 등 읽고 싶은 책에 조바심칠 필요없이 가만가만 읽어나가면 된다.
다행히 대부분 아는 작가에, 이런 책치고는 반 정도나! 읽은 책이어서, 지루할틈이 없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당연히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이었다.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셜록 홈즈가 코카인을 흡입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웠다. 그레이엄 그린이 말하길 "오늘날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 중에 주인공을 별안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놓고도 독자들에게 항의를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관용적인 사회가 되었다," 작가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에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파리에 산다. 그 전에는 유럽 여러국가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들의 책을 읽어보면 간간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현대사에 대한 비판들도, 그리고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세계사 기록될 또 하나의 전쟁(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냉소도 종종 나온다.
이 책이 다른 책에 대한 책에 비해 사랑스러운 것은 작가의 통찰력이다. 위의 셜록홈즈 부분을 예로 들자면, 대표작품인 <네 사람의 서명>을 이야기하지만,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추리소설 전반에 대한 통찰과 함께 작가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목록 따위도 함께 쓰는 것이다. 이와와 같은 글을 보면 그저 책을 읽을 뿐인 나와 같은 독자는 '같은 책을 읽었으나...' 저 멀리 가 있는 저자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책 읽는 내내 작가가 이야기하는 책들과 말들이 마음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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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구엘의 저서를 처음 접했다. 오히려 저자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망구엘은 한달에 한권씩. 1년동안 12권을 읽으며 쓴 일기들을 모으면 책도 아닌 일기도 아닌 그 사이에 위치하는 무언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실천에 옮겨 탄생한 것이 '독서일기'다.
감각적인 작가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수많은 코드들에서 독서에서 닮은꼴을 찾기도 하고, 독서에서 일상과의 닮은꼴을 찾아내기도 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찾는다기 보단, 육감적으로 느낀다는게 옳다고 본다. 닮은꼴을 찾아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새로운 방향의 창작으로 연결시키는 그의 마인드맵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의 감성과 이성속에선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순간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이것을 느꼈을 때, 나는 그가 부럽고 열등감까지 느꼈다. 나에게 있어서 독자란 단순히 작가의 창작물인 책을 통해서만 정체성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망구엘은 독서일기를 통해 이런 나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그는 독서를 단순한 소비행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있기에 책이 존재하고 작가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독서가 일부가된, 삶이 독서이고 독서가 삶이 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진정한 독서가(광)의 내면을 겨우 책 한권에 모두 녹여낼 순 없다. 하지만 망구엘의 독서일기를 통해 갈피를 잡을 순 있다. 색다른 느낌을 원하거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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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눈이 되어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소년, 알베르토 망구엘은 반 백의 작가가 되어 독서일기를 써내려갔다. 책과 글쓰기, 독서 행위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남겨오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 자신이 충실한 독자다. 거의 10년 전에 출간된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독자로서의 그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나와 다를 것 없이 책을 좋아하고, 불면을 책으로 달래며, 독서 중 수시로 공상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독자와는 다르다. 저명한 작가답게 독서의 기록, 독서 중에 거친 공상의 기록을 아주 세련되게 남긴다. 그의 독서일기는 단편적인 생각들의 나열이고 누군가의 일상이 기록된 것일 뿐이지만, 하나의 예술로 보일 만큼 우아하다.
반면, 그 우아함이 주는 거리감도 적지는 않다. 물론 대부분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부담 없이 들여다 볼 만한 생각들이지만, 그의 상당한 지적 유희를 따라가는 게 버거울 때도 종종 있다. 그가 읽은 책 대부분이 너무 생소하다는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알고 있는 책이거나,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책이라고 해도 낯선 작가의 이름과 낯선 문학 작품이 인용될 때면 정자세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의 독서도 나쁘진 않지만, 그는 일기로서 비교적 편하게 써내려간 글을 긴장하며 읽는 기분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의 일기가 독서 활동의 산물인만큼 인용 부분이 많다는 점에 이런 아쉬움이 배가됐다.
쉽게, 가볍게만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영감을 준다. 그가 독서일기를 쓰게 된 동기, 즉 내가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성찰한 것들과 이러 저러하게 받은 인상들을 기록하면 개인적인 일기와 일반적인 책의 중간쯤 되는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비단 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했듯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복잡한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읽은 책들이 우리가 읽는 책과 다르지 않기에, 우리가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독서일기는 그의 것과 기본적으로는 다른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의 독서일기를 읽을 때 멋진 레퍼런스를 마주하게 될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의 반영물을 독자로서 겪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일을 쓰는 일보다 더 하위의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읽고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특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해볼 수 있게 됐다. 독서는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다. 한때는 글쓰기도 비슷한 특징을 지녔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 작가라는 직업이 예전의 장돌뱅이나 순회극단 배우와 비슷해지는 것 같다. (10쪽)
나는 사춘기 후반 이후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 터득한 것들은 여전히 유효한데, 나머지는 사소하거나, 없어도 그만이거나, 기껏해야 주석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74쪽)
지옥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 지나갈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된 채 어떤 행동이 영원히 재현되는 것. (94쪽)
주변의 것들이 사라지는 이런 잔인한 변화에 화가 치민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는 빨라진다. 친구들이 사라지고, 풍경이 어질러진다. 친구들이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우주에서 믿을 수 있는 고정불변의 어떤 지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얼굴을, 이름을 잃고서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 (170쪽)
아무것도 없어서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별 일 없는, 특별한 생각이 없는, 아무런 유쾌한 감정도 들지 않는, 원인 따위에는 아랑곳 않는 느낌. 조용히, 느닷없이, 압도해오는 느낌. (227쪽)
경지에 달한 불면증 환자들의 직업은 독서다. (2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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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를 편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일 년 동안의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듯 수많은 책들의 한 단어, 한 문장 속에서 깊은 철학적 명상을 만들어 낸, 어찌 보면 책을 나침반으로 삶을 여행한 한 해를 기록한 기록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방대한 독서의 흔적들을 따라 갈 수는 없지만, 얼마 전 심취하여 내 삶의 큰 지침이자 방향성을 제시해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을 다룰 때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진실은 어느 민족 어느 국가, 또 어떤 학식과 배경이 다르더라도 진실한 자아성찰에 대한 길은 통한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칭찬에 인색한 니체는 유일하게 괴테를 민족주의, 민족주의문학을 초월한 존재로 인정했습니다. 그의 책 속에서 “괴테는 단순히 훌륭하고 위대한 인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유쾌한 철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 속에서의 진리에의 접근 또한 알베르토 망구엘의 깊은 사색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 합니다. 끊임없는 파이프라인의 용솟음처럼 괴테의 시각을 읽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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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독서일기를 읽는다는 건, 인내가 필요하다.
그는 읽었으나 나는 읽지 않은 책의 감상을 구구절절 말하고 있다면,
도대체 어느 밑줄에서 동조의 감탄사를 연발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매력적이다.
많은 책들을 읽었으면서도 겸손하다.
지인은 '난척하지 않아서 좋았다'라고 표현하던데
정말 그렇다!
무수히 많은 작가들과 인용문을 주렁주렁달고도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날씨와 고양이와 꿈으로 가득찬 잠들지 못하는 밤을 얘기하면서
들려주는 독서일기는 자장가처럼 잔잔하다.
침대옆에 한동안 자리잡은 '독서일기'를 내려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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