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 앞선 리뷰에서 지적된 것처럼 오역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공자도 아닌 미학과 대학원생이 번역을 하게 된 이유는 십중팔구 전공교수에게 맡기는 것 보다 돈이 싸게 먹히기 때문일 겁니다. 오역 투성이인 번역을 한 것을 보면 번역자 역시 돈벌려고 대충 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구요. 오역의 예를 하나만 들어보죠. 1권 한글판 59페이지 중에서: "예를 들면, 기독교 전통 속에서 악마는 다음을 포함해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1) 악마는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 존재여서, 즉 인격화된 악을 스스로 지각할 수 없게 되었다. (2) 악마가..." 원서를 봅시다. 페이지 50쪽이군요: "The christian tradition of the Evil, for example, may yet have any one of a number of fates, including the following: (1) the Devil may lose his reality; that is to say that there will cease to be personal perceptions of personified evil; (2) the Devil...." 위의 한글 번역은 정말 이상하죠? 그럼 원문을 보면서 대충이라도 직역해서 비교해봅시다. (제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저 정도 수준의 사람이 봐도 위의 번역은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 "악마[의 개념]의 기독교 전통은, 예를 들면, 여러 운명들 가운데 어떤 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 운명들이란] 다음의 경우들을 포함한다: (1) 악마[의 개념]은 그의 현실성을 상실할 것이다; 즉, 인간화된 악의 개인적 지각들이 존재하기를 멈출 것이다. (2) 악마는..." 김영범 씨의 번역은(다른 곳도 포함해서) 일단 용어를 정확하게 고르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문장을 쓰고 있고, 제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문장을 번역하지 않고 빼먹기도 하며, ''악마가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 같은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내는 대단한 번역 내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이 이러니 미주(원서는 각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만 다 미주로 바꾸었군요)는 더 화려합니다. 영문법을 무시한 번역이 속출합니다. 저도 바쁜 인간이고 이책 결국 원서로 읽은 터라, 김영범씨의 번역을 전부다 꼼꼼히 원서와 대조하지는 않았지만 틈틈히 대조해보는 족족 오역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군요. 이런 번역을 하고서도 역자후기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374 페이지의 마지막 문단을 보면 굉장히 폼을 잡고 시를 쓰셨군요. "...두려움과 무지가, 역사적 문맥과 지성으로 진실을 밝혀보겠다는 용기를 통해 극복된다면..." 김영범씨, 죄송하지만 본인의 가슴에 먼저 손을 얹고서 자신이 과연 성실한 번역을 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용기를 내서 번역을 엉터리로 한 자신의 무지와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을 반성하세요.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이런 식의 무성의한 번역은 당신이 아무리 적은 액수의 번역료를 챙겼다고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금전적인 어려움을 잘 아는 바이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픈 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대중을 상대로 불량품을 파는 데 동조하는 것은 대중에 대한 기만이고,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기만이고, 저자인 러셀 씨에 대한 기만이고(만일 저자가 자신의 저술이 엉터리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그리고 다름 아닌 당신 자신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역 투성이로 번역하는 사람은 교수도 있고 소위 전문 번역가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고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나쁜 관행이 바뀌어야 하고 그런 개혁에 동참해야 할 학생인 당신이 번역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더욱 더 비판 받을 소지가 크다고 생각해서 감히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래도 이런 번역이 안좋은 책이라도 양서가 번역이 되기라도 하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신다면 어느 정도 동의는 하겠습니다. 출판사들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수준이라면 곤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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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한 '악의 역사' 시리즈 4권 중 가장 첫 번째 책이다. ‘악의 역사’를 탐구하는 첫 번째 성과로서 서양문화사에서 '악'의 등장과 의미,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천착이 돋보이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서양사 특히 종교에서 '악'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때로는 그것이 권력자들의 의도에 따라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4권의 책들은 서양사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고 있는데, 그 중 1권인 <데블>은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종교적으로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왜 선과 함께 악을 창조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다양한 신화들과 단편적인 기록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면서, 명백히 존재하는 ‘악’의 기원과 개념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악의 존재'에 대한 납득할 설명을 내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악은 목적의식적인 힘으로 느껴지고 인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에, 저자는 그처럼 인격화된 존재를 '악마'라 지칭하면서 '악은 절대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엄연히 실재하는 '악'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설명이 1권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고 할 수 있으며, 자칫 관념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악의 문제'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풀어나가고 있다. 이미 '악마'라는 단어를 흔치 않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개념화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기존의 연구서들을 검토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들을 '악마를 찾아서'라는 항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동서양의 악마'와 '고전 세계에서의 악'이란 항목에서는 초기 힌두경전과 고대 원시 문명에서 제시하는 악을 대표하는 존재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악'의 기운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히브리적인 악의 인격화'라는 항목에서는 비로소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에서 악이란 관념이 인격화된 존재로 등장했고, 이를 이어받은 기독교에서 이에 관한 설명이 더욱 다듬어졌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악마'라는 항목에서 '사탄'이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악의 역사' 시리즈 2권의 제목이기도 한 <사탄>으로 논의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악을 인격화환 전통은 '히브리-기독교적 사유에서 가장 철저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밝히고, '그 개념을 관념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마지막 항목인 '악마의 얼굴'에서 정리하고 있다. 어쩌면 초기 기독교에서 자신의 종교를 탄압하는 이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지칭된 '악'이란 관념이 생겨났고, 이후 기독교적 전통을 고수한 서양사에서 그것이 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있지만, 전능한 신이 왜 악을 창조 혹은 방치했는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칫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이해되며, 단지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철학의 주제로 혹은 서양사의 관점에서도 그 흐름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분명한 것은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규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악' 혹은 '악마'라 할 수 있으며, 역사를 지나오면서 그것을 나름의 개념으로 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삶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끔찍한 상상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혼자만의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도 있고 무턱대고 건물을 부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상상 속이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적의에 찬 행동 말고도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일삼고 비도덕적이며 육욕과 방탕 그리고 무절제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옳음, 또는 선(善)과는 대립되는 이러한 생각들 아니 개념들은 과연 역사적으로 어떻게 사고되었고 표현되었으며, 평가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악(惡)으로 지칭되는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인간 내면에 의식화 되고 개념화 되었는가? 제프리 버튼 러셀의 저작 『악의 역사』는 바로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하는 악에 대한 역사적 탐구서이자 개념서이다. 고대와 원시기독교에서 보이는 악을 파헤치고 분석한 『THE DEVIL』은 악의 형성과정과 인격화 단계에 대하여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접근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는 고대에 신성(神性)과 다름 아니었던 악의 개념들이 어떻게 인격화되었으며 신의 파괴적 본능이라 여겨졌던 악이 일원론에서 이원론으로 발달되는 과정들을 살펴봄으로써 악의 개념화에 대한 객관적 담론을 가감 없이 펼치고 있다. 이집트의 호트에서 보듯이 악의 개념은 신이 가지는 전능한 능력의 한 부분이었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선함을 추구하는 신이 아니라 때로는 광폭한 악의 이미지로써의 신이 고대인들의 신성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일원적인 선악의 개념들은 이란과 유대인들의 종교관이 유럽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선한 신과 악한 악마 또는 사탄으로 이분화 된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신성은 분명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악함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가 악의 인격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인간 개개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악은 분명 역사 속에서 개념화 되어 발달되는 것이고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악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결국 필요에 의해 인간이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면 신성의 한 부분으로 악을 정의 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에는 악을 인격화하여 신에게서 분리시켜 악마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인 악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악을 경계하고자하는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을 악마라는 인격체로 개념화 했다면 악마란 결국 인간 스스로가 주체할 수 없는 악한 행동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볼 때 인간은 결국 신성에 기대어 악을 인격화는 과정을 거치면서 악으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가다듬고 악함을 경계하려는 이성적 고뇌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악에 대한 연구와 악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은 인간 스스로 신성에 빗대어 표현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에 대한 일정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시한폭탄처럼 지니고 있는 개개인들의 악함이 공동으로 폭발하거나 그것에 대한 제어에 실패한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고통과 파멸이 현실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악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풀어 무수한 재앙을 겪기도 했다. 악에 대한 개념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악함을 제어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격화되어 있는 악마든 아니면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악이든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변하면서 악 또한 지속적인 발달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에 알맞은 악의 개념화가 선행되어야만 파멸을 막을 수 있고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악의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현실에 악은 분명이 존재한다. 흉측한 얼굴과 힘을 상징하는 뿔을 달고 날갯짓을 하며 인간의 선함에 대항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이야기들은 환상이다. 누구든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적이 될 수 있고. 무질서한 타락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더욱 그러하다. 악이 악마로 인격화 되어 인간을 잠식하기 전에 그 악마에 대해 우린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악에 대한 연구는 그래서 역사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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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독재 아래, 많은 유대인들은 이유도 없이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일제시대 때는 우리나라의 선량한 여인들이 말 못할 고통을 겪었다. 미국의 광기 어린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이라크 아이들이 전쟁고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 도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들어있는 악한 기질이 그렇게 몹쓸 짓을 저지르도록 충동질했기 때문이다. 그 무분별한 충동질에 넘어가 버렸으니 분명히 악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행한 만행을 악한 기질 탓으로만 돌리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악한 기질은 분명 한 개인 안에 들어있는 그 자체요 속성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인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분명히 인간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듯 악에 대한 부분을 나름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악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악이 신화와 역사와 철학과 종교와 맞물리면서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악은 과연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인지, 그리고 악을 둘러싼 인간의 책임부분은 어디까지 규명돼야 하는 것인지, 좀체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분석·통합하여 역사적인 방법으로 ''악''에 대해 규명해준 책이 나왔다. 이른바 ''악의 의인화''라는 광범위한 문제를 다룬 제프리 버튼 라셀의 <데블>(김영범 옮김·르네상스·2006)이 그것이다.
"악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악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악을 정의할 수 없다. 제한적이나마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은 애매모호한 개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적인 일관성을 갖지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범주를 통해 정의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실존적으로 악을 인식해야 한다."(16쪽)
그렇다. 악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악한 감정이나 악한 기질에 관심을 두고서 그 실체만을 따지려 든다. 그리하여 그 기질에 따른 악습이라든지 폭행이라든지 범죄 같은 실제적인 죄악을 쏟아내는 경우만을 악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와 달리 악을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악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선의 부재''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를테면 플라톤은 악이란 절대로 실재하지 않으며 완벽하지 못함과 그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데아의 세계는 완벽하고 전적으로 선하지만,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를 적절히 반영할 수 없고 부족한 만큼 덜 실재적이기에 그것이 곧 악이라는 것이다.
그렇듯 악에 대한 일관성을 찾기란 힘든 법이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있는 관점이 다 다르기 때문이고, 그들이 겪는 모습들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악을 악이라 생각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악'' 또는 ''악마''의 실체보다는 ''악의 의인화'', 곧 사람의 인격 속에 존재하는 악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 있다. 역사란 그 시대의 정치·사회·문화·경제·종교 등 모든 것을 망라하기에 사람의 인격 속에 존재하는 악도 그렇게 모든 것을 통틀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악은 본래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출발은 일원론이다. 일원론이란 선의 출발 선상에서 악마저도 선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악은 선의 한 부분에 속하기에 선에 의해 그것은 흡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원론에서 악은 선과 대립되는 또 다른 확고한 정신 개념이다.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같은 정반대의 경우를 생각게 되는데, 바로 악도 선과 반대되는 확실한 정신적 실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서히 이원론이 서양 세계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는데, 악마의 개념은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 문명에서 점차 이집트로, 그 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문명으로, 그리고 수메르 문명이 히브리와 가나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가나안 문명은 미케네와 고대 그리스 문화에 선행하는 이스라엘 문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더욱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비롯하여 그리스 신화도 그렇고 판도라의 이야기들도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상들은 원시기독교를 형성한 시대 배경에까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기독교의 성경에 등장하는 ''옛뱀'', ''바알세불'', ''악마'', ''사탄'' 등이 바로 그러한 영향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곧잘 인간의 인격을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서 악은 그렇듯 의인화된 인격으로 존재해 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악''이나 ''악마''란 것에 그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대체물에게 전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악마에게 악을 전가함으로써 악덕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별적인 책임, 부당한 사회, 법, 고통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심사숙고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330쪽)
그래서 원시기독교라는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을 보면서,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기독교인들도 책임회피의식을 지녀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불의나 불법에 대해서 혹은 종교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악마(사탄)이 하는 짓'' 또는 ''악마가 하는 짓에 대해 대항했을 뿐''이라고 떠넘기거나 단정하지 말고, ''나의 잘잘못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책임지는 의식이 필요할 듯싶다. [인상깊은구절] "악마에게 악을 전가함으로써 악덕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별적인 책임, 부당한 사회, 법, 고통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심사숙고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데블> |
| 이 책이 출판될때, 제목과 책 겉표지가 눈에 띄어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 중에 하나였는데, 이렇게 읽을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그냥 '데블'이라는 심플한 책 제목이 제겐 무척 자극적이었습니다. 악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사악하고, 비열하며 음침한 존재라서인지 공포영화나 만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그런것을 원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읽는동안 제가 잠시 착각을 한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은 악의 역사를 다루다보니 제가 기대했던 자극적이거나 섬찟한 공포보다는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그래서 졸음마져 오더군요.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것은 저자가 악에 대해서 알리고 싶은 욕망때문인지 너무 많은것을 쏟아붓는 바람에 정리가 잘 안되어서 말이죠. 동서양의 악마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읽는동안 그냥 서양의 악마라고 해야하는것이 옳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정말 동양과 서양이 악마를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이야기의 98% 부분이 서양의 악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2%는 불교의 악마에 대한 도판이 전부 같더군요.그러면서 동서양의 악마를 논하다니... 대체로 서양의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와 역사가 함께 얽혀 만들어낸 악의 소개였습니다. 악은 모든 장소, 모든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악은 종교적으로 불교에서는 선의 부재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고전 시기에 알려진 각 신들이 양면성을 갖는 이유는 여러지역의 제의에서 유래한 수많은 다양한 요소들과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악과 선은 시작이자 끝이며, 알파와오메가, 빛과 어둠...그래서 악을 알려면 선을 알아야합니다. 반대로 선을 알려면 악을 알아야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종종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신에 대해서 읽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곤했어요.^^ 이원론-절대적이고 과격한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최초로 악마적인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것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고전기에 그리스 문학, 철학, 신화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구약을 통해 악은 인격화되며 신약을 통해 신의 존재를 높이기 위해 악은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죄 때문에 여성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은 (마치 여성을 남성을 타락시키는 존재 그려짐으로써)여성이 사회에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된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안 좋더군요. 어쩜 그점은 검은색에 대한 편견으로 빗어진 흑인들 입장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 속의 도판이 아닌가 싶어요. 책속의 도판은 예술적으로도 아름답지만(물론 내용상 좀 거친것들이 많지만)그 속에 내포되어있는 신화속의 악, 신앙속의 악등을 찾아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 악을 설명하고 싶어하지만, 그래도 어쩔수없이 종교와 신화 (신화 역시 원시 종교와 함께 만들어진 이야기니깐요.)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악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고, 접근할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어 좋았습니다. * 이 책을 읽는 동안 '천사 금렵구'라는 만화가 생각 났어요. 타락한 천사와 순수한 악마이야기죠.악마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추천해드리고 싶은 만화예요.이 책을 먼저 읽고 만화를 본다면 더 재미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 별 넷반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반개가 없어 네개만 선택했습니다. |
| 악의 역사1 - 데 블 책이 도착하기 전 무료한 마음에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렌 와이즈만 감독의 “언더월드 2”이다. 극중 캐릭터인 “마커스”가 유난히 기억이 남았는데, 이 책을 받은 순간 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악마의 형상이 “마커스”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마커스’가 아니더라도, 그 동안의 영화 및 드라마 등 여러 매체 속에서 표현되는 악마캐릭터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① 머리에 뿔이 나있고, ② 등엔 박쥐와 비슷한 모양의 날개를 지녔으며, ③ 손엔 항상 저팔계가 지녔을 법한 삼지창을 소지하고 있는 등 대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악마의 형상이 이렇게 표현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역사적인 접근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는 아주 극히 일부분으로서, 정작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과연 ‘악 또는 악마’가 무엇인지, 또 도대체 왜 악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 역사적(고대에서부터 원시 기독교 -신약시기- 까지)으로 또한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아닌 책을 저술하기까지의 저자의 동기 및 태도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즉, 책의 내용을 차체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을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책을 읽기 전 즉, 책의 제목으로만 쉽게 유추하여 짐작했을 때는, 사실 이 책의 목적이 단순히 악마나 공포 등의 그로테스크한 것을 쫒는 어느 한 광적인 학자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측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하지만, 당장 저자의 서문 첫 문장을 읽게 되는 순간, 책의 주제가 단순한 ‘호기’에서가 아닌, 역사적 사명감(?)이었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책은 역시나 제목이나 표지로써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상품이라는 것을 실감케 해주었다. ^^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엄연한 역사학적 연구 논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적 연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악 또는 악마’의 실체와 그 발전과정을 살피고 있다. 이렇듯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물론 저자는 인간의 정신 속에 분명한 개념이 실재하고 있기 때문에 ‘악 또는 악마’는 실재한다고 서술한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역사란 사료의 탐사·수집·정리·음미·해석 등을 통해 얻어진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개념’이라는 것을 대상으로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어느 한 쪽으로의 편중됨 없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고집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여러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 중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증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있었던 일이라고 믿었던 증거는 상대적으로 분명하다. 개념- 사람들이 있었던 일이라고 믿었던 것- 이야말로 실제로 있었던 일 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진실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 p. 8~9 (서문 중에서...) 이처럼 소재 그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될 법한 대상을 저자는 어는 한 부분에 편중됨이 없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모습은 현재 학위논문이라는 연구물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큰 감명을 주었고, 앞으로도 나의 연구하는 태도에 무한한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 책을 쓰고자 했던 결심 및 동기를 엿볼 수 있는 몇 문장을 남기며 글을 마치겠다. 오류를 피할 수 없고, 해석이 논쟁을 불러온다고 해서 어떤 한 작가가 인류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문제를 다루지 못해서는 안 된다. 학문 연구는 단순한 연습 이상이어야 한다. 글을 쓸 때 작가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고, 독자가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변화하기를 바란다. - p. 8 (서문 中...) 2006년 4월 2일 오후 12시 50분 한 창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