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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리쉬에 대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들을 몇 가지 기억했다가 가끔 상기하면서 일상을 살아내는데 나침반으로 사용하곤 했다. 떠올리면 살아내는데 힘을 실어주는 말들이 있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뒤집힐 그런 말들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습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을 살아온 탓에 그 말이 삶의 구석구석 파고들기엔 역부족이다. 일상의 틀을 잠시 벗어난 듯 하다가 다시 이전 궤도로 돌아간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알게 된다. 깨달은 사람들의 지혜는, 그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 되기 힘들겠구나. 내 것이 된다면 그게 바로 깨닫는걸테니까. 인간은 영혼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가장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_ 칼 쿠스타프 융 (13쪽) 정신을 잃고 태엽을 감은 로봇처럼 사는 중에도 잠시 잠깐 깨어나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삶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들을 곁에 두고 자주 들춰본다. 머리로 아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고,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매일 나를 깨워주는 책이 된<나는 누구인가> 는 다른 책을 읽다가 작가가 이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한 문장들을 보고,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원제도 <Who AM I?> 다. 원서 내용은 짧다. 번역분도 32페이지까지고, 나머지는 다른 내용으로 옮긴이가 엮었다.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 (22쪽) 내가 울고 웃으며 경험하고 있는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져야만 진정한 나,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고? 하며 깜짝 놀라거나, 에이~ 말도 안 돼! 이래 버리면 깨달음으로 가는 먼 여정에 발도 못 붙인다. 진짜 그럴까? 이런 의문이 들어야 출발선에라도 선 셈이다.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헷갈리는 나 역시 갈 길이 멀다. 내 안에 있다는 그 진아라는 존재를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 매일 같은 시간에 이 책을 펼쳐 같은 문장을 만난다. 그리고 늘 밖으로 향한 시선의 방향을 안으로 돌려놓으려 애쓴다. 밖에는 아무것도 찾을 게 없다고 하니 말이다. <진아 아닌 것>이 사라지면 진아만이 남는다. 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우기만 하면 빈 공간은 그냥 나타난다. 그 빈 공간은 다른 곳으로부터 가져온 것이 아니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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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 마하리쉬 <이호준 옮김> 라마나 마하리쉬 1879년 12월 30일~ 1950년 4월 14일. 침묵으로 가르침을 펼치는 '라마나 마하리쉬'.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벵카타라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브하가반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브하가반>은 전능하신의 뜻이며 <스리>는 존칭어이고, <라마나>는 벵카타라만에서 따온 것으로 <진아에 머무르는 자>라는 뜻이며 <마하리쉬>는 위대한 성취자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해서 <벵카타라만>은 <라마나 마하리쉬>로 불리게 되었다. 벵카타라만이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의 주검을 본 벵카타라만은 인간의 육체는 그 인간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열일곱 살 되던 해에 벵카타라만은 갑작스럽게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면에서 울리는 <나>의 소리를 느꼈다. '나는 이 육체를 초월한 영靈이다. 육체는 죽어도 육체를 초월한 이 영은 죽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 불멸의 영이다' <나>즉 <진아>는 강력한 힘으로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벵카타라만은 아루나찰라로 떠났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괴로움은 <진정한 나> 즉 <진아 眞我>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진아를 알면 풀리지 않는 문제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아를 아는 길이다.' 진아는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려 다시는 마음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상태이다. 진정한 나, 즉 진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준 길은 우리 모두가 결국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길이다. 영적인 근원으로서의 진아는 신과 다르지 않으며 진아 안에 안주한 사람은 신 안에 안주한 것이고 나아가서 스스로 신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했다. 그의 가르침은 침묵이었다. 이 침묵의 가르침은 글이나 말을 통한 가르침보다 확실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그는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내면 상태를 직접 전달하였고, 이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언어를 통해서 가르침을 전하였다. 실제로 그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단 몇 시간 동안의 침묵을 통하여 진아를 체험한 자들도 있었다. 언어를 통하면 이미 제한되어 버리고 왜곡되어 버리는 진리가 침묵 속에서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면서 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언어를 통한 가르침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또 그때그때의 상태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결코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해야만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세상 속에 살면서도 얼마든지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으며, 진아를 깨닫기 위한 특별한 고행이나 계율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주의 注意를 내면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라마나의 가르침이었다. 진아는 항상 실재하며 우리가 늘 체험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때는 오지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경향을 가진 마음이 사라졌을 때뿐이라고 강조하였다. 마음이 영원히 사라져서 진아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상태가 바로 깨달음 Self-realization이다.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상태는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이지 무엇을 안다거나 무엇이 되는 상태가 아니다. 그대가 바로 <순수한 앎>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나는 '나로서의 나'이다. 행복이란 인간 속에 내재해 있으며 결코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기지 않는다. 그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는 결국 진아를 깨달아야 한다. 진아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진아 아닌 것>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스스로 드러난다. <순수한 앎>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질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그릇된 것들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자연히 드러날 뿐이다. 진정한 지혜란 그대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그대의 무지를 제거할 뿐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만이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본래 영원하지만 단지 장애물에 가려서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항상 진아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자신을 진아 아닌 것 또는 육체와 혼돈하고 있다. 이 혼돈은 무지 때문이며 무지가 제거되면 혼돈도 사라지고, 진정한 지혜가 드러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각 개인이 자신을 행위자라고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달성될 것이다. 각자의 운명은 자신의 카르마 Karma에 따라 정해져 있다. 일어나지 않도록 되어 있는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진정한 출가出家란 표면적으로 가족이나 사회 규범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애증과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욕망을 버린 사람은 세상 속으로 스며들면서 자신의 사랑을 우주 전체로 확산시킨다. 진정한 구도자라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집을 떠난다. 마치 다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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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이책은 몇년 전에 시도했을 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만 나고 다 읽지도 못한 채 책을 덮었다. 이번에 시도했을 때 코발트빛 얇은 책자와 케미가 통했다. 매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삼아 수행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명료하고도 간결한 가르침으로 진아와의 만남을 안내해준다. 인상깊은 구절 옮겨두기. 내가 깨달은 사람이라면 나에게는 진아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깨달은 사람도 깨닫지 못한 사람도 없다. 또 만약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그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으며 그대보다 많이 아는 것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나 나는 그대의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자기자신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이런 것들을 묻는다. '깨달은 사람도 현상계를 지각합니까?' '육체를 떠난 다음의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육체를 떠난 뒤에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아니면 육체를 가지고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깨달은 사람의 육체는 빛 속으로 속으로 녹아들어가버립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시야에서 사라집니까?' 그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왜 쓸데없는 질문들로 자신을 괴롭히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음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유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고, 우선 구속이 존재하는지부터 살펴보라. 가장 먼저, 그대 자신을 바라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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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는 인도 영적 스승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이 담긴 깊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아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내면의 평화와 자각을 찾는 길을 안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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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탁으로 구매하게 된 라마나 마하라쉬 작가님의 나는 누구인가 리뷰입니다. 제가 읽을 생각은 없었고 아버지께서 읽어보고 싶으시다고 해서 구매하게 되었는데 구매한 김에 저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나는 누구일까, 내가 이 세상에 왜 내려오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 짧은 생을 살면서 무엇을 이뤄야할까 라는 고민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완전한 해결을 얻진 못하였지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잘 읽을 수 있던 책이였던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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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난다의 위대한 요기의 자서전을 읽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라히리 마하샤의 온화한 모습처럼 라나마 마하리쉬도 역시 온화함의 압권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호준 님은 송광사로 이 책 번역 후 송광사로 출가하셨다니 경이롭다. 책의 내용은 나 마하라쉬가 제자들과 문답형식으로 주고 받았던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나와 같이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 지혜롭게 설명한 글로써 두고두고 보며 깊이 사유해야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데다 매일매일의 근면함도 없는 나는 어찌할 것인가 라는 탄식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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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명상이나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구입을 한다. 특히 최근에 관심이 가는 사람은 라마나 마하라쉬로 대부분의 책을 구입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하며 깨달음을 주려고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가면서도 참 어려운 대답인 나는 누구인가. 난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수 있었다.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듯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