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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인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내게 시아버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분이었다. 권위적인 것을 싫어해서 그런 삶을 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가 생활했던 환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하긴 부모님이 권위적인데도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을 테니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어쨌든 결혼 초에는 아버님의 말씀에 아무 말도 못하는 형제들을 보며 무척 답답했었다. 내가 보기에는 괜한 고집이고 아집인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뀔 분도 아니거니와 그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시아버지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떠나가실 내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은 두 아버지가 모두 살아계시지만 언젠가는... 사람은 어차피 그런 것이니까. 레이첼의 할아버지(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외할아버지다.)를 보니 어쩜 그리 우리 시아버지 같은지. 손주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따스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는다. 레이첼의 할아버지처럼 어깃장이나 놓기 일쑤다. 그나마 레이첼은 가까이 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아버지를 만나기 때문에 나중에 선뜻 할아버지를 돌보게 된 것일 게다.
레이첼의 할아버지는 모든 사람에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서 불편하게 하는 분이다.(이 또한 시아버지와 똑같다.) 그래서 아들과 손자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만 간직한 채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물론 레이첼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소리를 듣고는 의무감도 아니고 할아버지에게 잘해드리고 싶어서도 아닌, 그야말로 뭔지 모르는 것에 이끌리다시피 할아버지의 산책길에 기꺼이 동행한다. 그리고 결국 할아버지를 진정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의 고약한 말과 행동을 무조건 참지도 않는다. 때로는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다가 그런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는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혼동을 겪는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처음에는 자잘한 글씨와 두께, 그리고 자세한 묘사 때문에 어느 만큼 읽었나를 가늠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레이첼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떠나 보낼까 안타까웠고 또한 레이첼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려나 걱정하기 바빴다. 내내 훌쩍이면서. 예상했던 대로 할아버지는 떠났고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모두를. 하지만 누가 뭐래도 레이첼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대신 진작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못해 할아버지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레이첼은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루이스와 데이트도 하며 할아버지를 가끔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효를 무척이나 강조하는 동양권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가족으로서 부양하고 떠나 보내고 그리워하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열여섯 소녀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지은이 소개에 '세대와 인종 국가를 초월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들어있는 작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책을 읽으며 계속 훌쩍거렸던 이유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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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나 성격적인 것에 대한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스스로의 성격에 있어서도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는데 상대적인 이들의 모습은 더욱 눈에 잘 들어오기에 자꾸만 부딪치고 엇갈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쉽사리 나와 상관 없는 이는 그저 무시하고 경우에 따르는 대응을 하면 되지만, 가족간에 서로가 맞춰지는 것이 아닌 어긋나는 듯한 외면으로 서로가 답답한 갈등을 하게 된다면......
뭐든 정한 것에 따라야 하고, 자아를 찾아 방황하거나 새로운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 따위는 시간을 낭비하는 부질없는 것쯤으로 여기는 할아버지기에 가족을 대함에 있어서도 살갑게 사랑스러운 자신의 혈육에 대한 애정표현의 것이 많은 다른 할아버지,할머니들과 다르게 레이첼의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경직된 삶의 방식으로 모두를 대한다. 물론 속 깊은 정의 따스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는 말과 행동의 것이 핀잔과 지시처럼 들리게 하는 것에 대한 헤아림을 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그저 집안의 어른이기에 따라야 한다는 공경심에, 가족이라는 관계의 것으로 임했던 의무적인 행동의 것으로 만남을 해간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질병에 걸리신걸 알게 되고 그러한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작한 의무감과도 같은 것으로 시작된 산책의 걸음들은 이전과 다른 느낌의 할아버지와 마주 대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 왜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고 자신으 마음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어른이 되었는지 또한 자신은 어떠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대하고 또 어떻게 성장해 갈지를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얻고 깨닫게 되어가니......
그것은 아마 할아버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러한 모습의 것에 익숙해지며 그런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대하게 되는 스스로를 알아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 생각에 따라 우선적인 편견의 것에 맞는 판단을 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장, 단점을 두루 헤아려 이해하기 보다 단점으 것, 나를 힘들게 한 것, 내가 싫어했던 것만을 더 많이 담아 두기에 그만큼의 인식의 것을 흘려 버리는 것인지도 모를 수 있다는 반성을 해본다.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이후의 삶이 별반 달라지는 것 없듯이 보이지만 가슴에 담긴 그리움, 아쉬움의 것은 어떻게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오해와 원망의 것이 남겨진 경우는 그 존재에 대한 생각의 것이 다르기에,조금더 다가서고 가슴에 깊이 새겨두는 관계의 정을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흐릿해질 존재이지만 그를 통해 느끼게 되는 아릿한 추억과 행복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