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무나도 선명한. 생각하는 사람의 깨어있는 조언] - 바로 월레 소잉카의 공포의 계절 이라는 책을 가장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세계를 읽고 국가가 아니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유사 국가"에 대하여 경계하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마땅히 그들의 행위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과도한 반응은 더욱 큰 반향으로써 세계를 다시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주지 해야 한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종교는 한편에서 집단적 책임이라는 속성에서,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타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회피하는, 잘못으로 가득한 언어를 통해 극단적 반응들을 부추기는 현상이 되고 있다." 라고 현대의 종교가 일으키는 폐단화 현상을 밝이고 있기도하다. 유사국가의 진보적 반체제 운동이 갖는 입장을 공유하며 형성된다는 점이다. 그들을 눈에 보이는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함은 물론이고 또한 그들을 제압하고 독촉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의 장으로 안내하여 함께 (반체제적이지 않은, 혹은 불만을 해소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존중만이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다가가는 것이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손이 될 것이다. 그들은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 되어야 할 우리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총을 겨누는 것은 절대 답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반체제 주의도 아니고 서양의 위주의 사상이 담기지도 않은 적절하게 안배된 좋은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강의가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반미는 애국이 아니다. 친미도 애국이 아니다. 누구에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기들이 좋아하는 말만 들을 것이아니라) 좋은 강의를 듣는 다면 이보다 훌륭한 책이 어디 있겠는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은 중요한 책이고 남음이 있는 책이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있어 세상은 무엇으로 돌아가는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진지하고 깊은 물음을 갖게하는 소중한 책이다. 재미를 위주로 하는 책들이 팔려나가기 보다는 이렇게 조금이나마 깊더라도 폭 넓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세계를 읽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지금 세상을 읽고 싶은 깨어있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 했을때 뉴스위크에 이런 인터뷰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북한은 좋겠다. 석유가 없어서.." 대충 이런 내용의 총은 든 이라크 소년의 인터뷰였다. 14살 소년을 전쟁으로 내몰은 어른들의 이해할수 없는 이유... 그 소년은 더이상 소년이 아니었고(그들의 종교에 의하면 그 소년은 전사가 되었다), 이제 그 소년의 손에 총이 들려진 이상 소년은 더이상 아이로 있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월레 소잉카는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공포에 대해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리, 더 이상 외국의 이야기가 아닌, 스펙타클한 영화의 주제가 아니, 일상의 공포에 대해 쓰고 있다.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나라간의 간격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느껴지는 건 거리상의 낳설음 보다는 정신적인 이질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나와 같은 생각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자료와 생각이 넘쳐나고 있다. 다들 자신 들이 생각하는 완전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보고 있다. 내 것이 옳다고 소리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생각과 지식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서로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마치 치매걸린 노인의 떼처럼 계속적으로 칭얼거리며, 내것이 옳다고 소리지는다. 소리지름에 지져, 이제는 소리없이 서로의 목에 총을 겨눈다. 이것이 현재의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세상을 살아간다. 9.11 테러이후 미국의 중동(이슬람)에 대한 보복을 누군가는 3차 세계대전이라고 했다. 1세기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이고 평화적인 전쟁은 없다. 인간의 가장 최소한의 존엄성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것이 전쟁이다. 지금 이 세계 어디에서는 또 누군가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있을 것이다. 다들 안심하시라. 다행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존엄이 파괴될 정도의 전쟁 상태가 아님을... 이 책을 읽고 느낀건..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월레 소잉카가 말한 테러는 나라간에도 개인 간에도 일어날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정치와 종교, 이념과 경제의 대립상황은 더 이상 국가간의 문제가 아니다. 나름대로 읽기 어려운 이 책을 보면서 느낀건 공포의 계절이 이제 다가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옮겨가는 계절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극화 되어버린 세계에... 나와 나 아닌 anti-만이 존재해버린 이 세상에 봄이 오길 바란다. |
|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길고 지치고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펼쳐진다면 눈꺼풀은 금새 제 힘을 잃어버리고 말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요즘의 날씨가 그렇듯이 하룻밤사이에 많은 것이 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대체 그 변화의 축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 무엇인지 한번이라도 궁금해한 적이 있는 이라면 쉽지 않은 이 책일지언정 쉽게 덮어버리고 싶지 않은... 각성과 통탄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노벨상을 받은 대단한 경력을 가진 저자의 생각을 오롯이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허나, 분명한 건 사실의 언저리만을 헤매곤 했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는 여러 근거를 저자가 제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라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길 원하신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
| 소잉카의 "공포의 계절"은 참 오래간만에 접한 인문사회계열 교양서였다. 내가 이 책을 교양서로 분류하는 것은, 이 책의 기본 줄기가 되고 있는 BBC의 리스 강연이 기본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오픈된 지적 문제제기의 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쉽다. 우리 독자들에게 다소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소잉카가 예로 들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례들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정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일반인들에겐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백그라운드 지식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에 자행했던 역사, 더 가까이로는 민주화시기의 우리나라를 떠올린다면 소잉카의 논리가 비교적 쉽게 다가올 것이다. 소잉카가 제시한 ''유사국가''의 개념은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었고, 테러리스트들과 그 테러에 맞대응하는 쌍방이 ''내가 옳으니 너는 죽어야한다''며 거대한 폭력으로 치닫는 극단주의에 대한 그의 우려도 이해할만한 것이었다. 인간을 분노하게 하고 한계선의 끝까지 다다르게 하는 것이 굴욕감이라는 것,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다움을 잃게 하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나 적의 존재감이 아니라 공포, 대처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라는 이야기에는 100% 동의한다. 그러나 다만, 그가 이번 강연, 그리고 이 책 "공포의 계절"에서 견지하고 있는 태도는 평범한 서구 지식인의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은 폭력군부에 대한 저항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제 3세계 지식인의 날카로운 눈이었다. 911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국 지식인의 서툰 균형감각은 아니라. 그는 왜 중동문제에 있어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못할까, 굳이 이스라엘 총리가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 언급해야 했을까. 그것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공기처럼 삼키는 굴욕감이 불화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나는 이스라엘 총리에게 용감하게 말했다오, 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해가면서. 어쩌면 서구에서 일종의 영웅으로 불리우며 수많은 도피의 나날을 보낸 소잉카에게 어느 쪽에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온전한 제 3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이 리스 강좌가 대상으로 한다는 그 일반인들이 바로 서구인들 아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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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공포의 계절Climate of Fear : The BBC Lectures, 2004 저자 :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역자 : 이완기 출판 : 루비박스 작성 : 2006.05.05. “뇌를 조여 오는 이 압박감. 그래, 잠들어버린 뇌를 깨워라. 그리고 생각하라. 우리의 주위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는 ‘공포’에 대하여.” -즉흥 감상- 예비군 훈련을 받으며 틈만 나면 이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덕분에 책이 상처를 입긴 했지만, 도저히 다음 글자, 다음 문장, 다음 문단, 다음 페이지를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훈련 3일차 아침, 우선은 꼬깃꼬깃 접어둔 종이에 시작해 시골의 조부모님 댁에서 감상기록을 정리해보는 바입니다. 이 책은 사실 어떤 시나리오의 흐름을 가진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마치 대학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었기에, 이때까지의 감상기록과는 달리 줄거리가 이러니저러니 같은 말은 하기가 그렇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변하는 공포의 가면’, ‘권력과 자유’, ‘예속과 맹종의 수사학’, ‘인간 존엄성의 추구’, ‘내가 맞아, 그러니 너는 죽어야 해!’와 같은 다섯 강의를 통해 그동안 관심을 자지지 않았던 각국의 정치의 역사와 서로 관계없을 듯한 사건 사고의 연관성, 종교와 교육, 공포로 인한 지배와 그것에 대한 사회 현상 등 TV와 같은 대중 매체를 통한 뉴스에 대해 가졌었던 이유모를 거부감의 진상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자칫 지겨워 질수도 있을 내용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전 생애에 대한 경험을 포함하여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강의 하는 것이, 저의 언어능력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강의의 현장에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더군요(웃음) 사실 처음 ‘공포’라고 하기에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실력일지라도 소설이라는 창작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공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의 그 안일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바로 그 엊그제 일어난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2001년 9월 11일의 국제무역센터였던 쌍둥이 빌딩에 대한 대테러의 숨겨진, 아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등 현 시대의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인접한 ‘전쟁’에 대한 불감증을 경험하며, 정작 중요할 수도 있는 예비군 훈련에 그저 한 없이 늘어지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최근에 본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2005'가 떠올랐습니다. 시대는 가까운 미래. 공포정치로서 완벽하게 통제되는 삶 속에 익명의 'V'라는 이름으로서 ‘변화를 위한 공포’를 통해 ‘지배의 공포’를 정화하는, ‘악은 악을 부르고 선은 선을 부른다’라는 내용으로 받아들였던 작품. 영화는 비록 영웅을 만들고자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고는 하지만, 정보의 해일 속에서 진실을 향한 항로라는 것에 공포를 느껴버린 나머지, 결국 조난당한 기분으로 바로 주위에 만연해 있는 공포라는 관찰자마저 망각해버린 현 실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번밖에 못 읽고 급한 기분에 쓰게 된 감상기록이라지만, 분명 이 책은 여러 번 두고두고 읽어야할, 잃어버린 ‘공포로의 관심’을 찾을 수 있을 지표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 책을 소개해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감상기록을 마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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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겪고 들은 체험들과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독자에게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게끔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신적 여유는 낯선 소재를 접했을 때에는 발휘되기 어렵다. 역사적 사실과 같은 경우라면, 일방적인 지식처럼 보이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역설적이지만(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렇기에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진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역사의 표면과 실체의 괴리를 이해하기엔 그 시간과 공간의 사이가 너무 크다. 처음으로 보는 사건들, 사실들에 대한 이해 만으로도 첫 독서는 벅차다. 공감을 느끼기 이전에 배경 지식을 머릿속에 정리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국사를 배울 때에는 그 효용성을 의심하며 지겨운 공부 하듯이 역사책을 뒤적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독서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한 복잡하고 새로운 사실의 물결속에서 작가는 그의 주장을 명확히 펼치고 있다. 바로 현실과 공포에 대한 인식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꿈, 목표를 이루기 위해 권력을 탐하고 행사한다. 그것은 유사국가, 종교, 심지어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도(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대상을 공포로 몰아 넣어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의 행사는 그 주체가 목표를 잃어버리고 (물리적인 요구를 뛰어 넘어) 권력 자체를 탐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공포에 휩싸여 굴복한 채로 눈에 띄지 않으며 공포의 대상에서 벗어나려 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인식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도록 공고화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전제 될 때에야 비로소 불특정, 범세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공포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례들은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한 명확한 토대를 제시해 주며, 새로운 사실에 대한 인식과 충격으로 더욱 더 설득력 있는 문장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난해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되는 수 많은 사실들에 대한 이해와 진실에의 탐구가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은 공포가 노리는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이며 ...(후략)" - 28page |
| 오늘날 세상은 평안한가? 냉전이후 평화의 시대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히려 오늘은 끊임없는 테러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세상이 더욱 뒤숭숭하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더 힘들고 피곤하다. 이 책의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아프리카의 지성인이다. 제 3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오늘은 어떠할까. 그는 아주 독특하고 새로운, 그렇지만 누구가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논리를 펼친다. 오늘날의 테러와 대 테러 전쟁은 결국은 권력집단간의 힘겨루기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형태를 갖춘 공식적인 권력집단과,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진 못했지만 심정적인 동조를 얻고 있어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준 권력집단간의 파워게임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벌이는 파워게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이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해준다. 물론 이 책이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러나 올바른 통찰은 새로운 해결을 위한 첫단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이 책은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레 소잉카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다. 과연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보는 관점에선 세상이 어떻게 공포라는 것에 맞서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 책을 펼쳤다. 첫장부터 그다지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다. 책의 굵기에 비해 유난히 더디게 읽혀지는 그런 책.. 한자한자 꼼꼼하게 읽어내려가야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지극히도 중간적인 입장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사람과 그 공포에 맞서려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공포를 조성하는 사람들은 과연 아무런 의식없이, 생각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공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한 그 공포에 맞서려는 사람역시 그저 방어할 목적으로만 맞서고 있는 것일까.. 911테러당시, 정말 세계는 충격을 받았고 나또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백화점에서 풍선만 터졌을 뿐인데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포에 맞서기위해서 또다른 힘없는 자들에게 공포를 제공하는 미국에 대한 태도를 얘기하는 작가의 말에는 99%동감하는 바이다. 양극화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공포에 맞서기위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먼저 나선다는 망상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글인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분석은 그다지 명쾌하지는 않다. 그저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공포의 정의와 그에 따른 정치적 속셈들에 대한 분석은 속시원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세계의 공포에 대한 어느정도의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한번만 읽기에는 어려운 책, 그래서 두,세번 읽어야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
| 지구에서 전쟁이 끊인 날이 있었던가. 누군가는 죽음 앞에 불안해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충만한 안락함에 젖어 살고 있다. 공포와 평화가 공존하는, 하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쩌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는 세계화도 단절된 인류의 삶을 하나로 통합시키진 못하는 듯하다. 객관적인 상황을 뛰어넘어 그에 대한 논평 역시, 영미를 축으로 소위 ‘선진국’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시각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왔다. 그로 인해 ‘진실’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들 역시 변화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공격하는 것은 독재자를 처단하고 그 곳의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란다.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날, 그 독재자는 강대국의 무한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본질은 사라지고 과도한 이미지만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우리 안에 없다. 여전히 대자연이 숨쉬고 있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파괴되지 않은 원시성에 대한 동경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나, 이어 떠오르는 생각은 미개, 미발달 등 부정적인 것들이다. 기본적인 생존이 힘든 상황에서 왜 그들은 그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서로를 배척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곳에서는 이미 수 십 차례의 내전이 있었고, 셀 수 없이 많은 난민들이 발생했다. 나아지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는 식의 말로 그 모든 것은 설명되곤 하지만, 대륙 곳곳을 나누는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국경선에 대해 우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 것이 그것만은 아니다. 나이지리아의 반체제 인사라는 월레 소잉카, 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설명도 이 이름을 익숙하게 만들어주진 못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세상의 부조리 역시 그의 존재에 대한 무관심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온 듯하다. 이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 우리는 공포의 계절을 살고 있다. 애초부터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과 같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인간이 인간을 미워할 수 있는 최악의 정도를 보여준다. 최후의 저항이라 일컬어지는 자살폭탄 테러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숭고함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목숨이 하찮듯 타인의 목숨 역시 하찮은 듯 여겨진다. 미 권력을 뒤에 엎은 이스라엘 군의 보복 행위 역시 잔인하긴 마찬가지이다. 왜 죽어야 하는지는 알 길 없고, 그저 죽음 앞에서 신음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허락된 전부이다. 이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비록 한 편의 입장만이 집중 부각되면서 우리 모두 왜곡된 시각을 갖는데 기여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이에 대해 들어봤으니까.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일은 어떠한가? 니제르에서 있었던 여객기 폭파사건에 대해 세계가 보인 것은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었음에도 그 사건에 분노한 이는 거의 없었다. 알제리와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총선 과정에의 군부 개입 역시 수없이 많은 생각할 문제를 낳았으나 그로 인해 고민하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서양이 찬양한 민주주의적 선거 제도 결과 민주주의 파괴를 강령으로 택한 정당이 승리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다며 등장한 군부 쿠데타의 폭력성을 과연 민주성 수호 운동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 국가들이 봉착한 모호한 민주주의를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로 인해 양산된 공포를 제거치 못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문제의 은폐된 공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로부터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일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폭력일 것이다. 여느 종교나 기본적으로는 가지고 있을 ‘광신주의’가 직접적인 폭력을 야기하진 않는다 하여도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데는 충분하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성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근본주의적 흐름은 권력과 융합되어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식의 논리로 귀결되고, 더 나아가 나와 다른, 그렇기에 틀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세력에 대한 온갖 보복을 허용한다. 9.11 테러는 분명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미국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적 차원에서 행해졌다고 말하는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 공격이 낳은 결과는 어떠한가? 그 공격이 파괴한 것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인간다움뿐이었다. 저자의 처방은 구체적이기 보다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찌 해야 된다는 요구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저자의 목소리였다.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만 되는 인간이라는 것, 세상에 아무리 다채로운 삶이 존재한다 하여도 이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당위성이 바탕에 깔렸을 때 비로소 우리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공포’라는 단 하나의 계절만이 존재하는 지역이 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는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눈속임일지도… 하지만 월레 소잉카에게 공포는 계절에 불과했다. 그의 목소리는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
| ''한 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아프리카 대륙에 퍼져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끌려가 교수대 줄 끝에 매달려 삶을 마감하게 되는지 모르게되는 부조리한 악몽의 밤들이 흘러 월레 소잉카가 BBC에서 마련해준 대담을 통해 미약하지만, 작은 외침으로 이제 세계에 부당함에 대한 눈을 놀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실 1970년대, 80년대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던 군부독재의 폭력은 멀리서까지 그 예를 찾아볼 필요가 없는 우리가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 3세계에 속하는 비슷한 입장으로서, 월레 소잉카가 밝히는 검은 아프리카의 공포에 귀 기울여 보며, 과연 우리는 어느 만큼 독립된 자유를 확보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의미가 깊다. 존엄성은 자유의 다른 면이며, 그 인간 관계 속에서 공포를 통해 같은 힘으로 증식되는 또 다른 축인 힘과 지배의 이면이다. 두 축은 끊은없는 갈등 관계에 놓이지만, 적대적 보완관계를 이룬다. 자연 앞에서는 인간 누구나 그 지배력 앞에서 무기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한 개인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하는 지배자가 있어 개인의 의지 작용을 박탈해버리는 경우, 개인은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고, 그 개인들이 모여 지배자에 대한 대응으로 맞서게 되는 것이 인류사의 필연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인류에게 굴욕감을 심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 심한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월레 소잉카는 아프리카에 만연한 바로 이 굴육을 실제로 목도하고, 계츠을 막론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대학의 교정에서, 굴욕 앞에 놓인 많은 이들이 전하는 굴욕의 경험을 듣게 되었다. 그들 눈 속의 굴욕은 결국은 어떤 결의로 전이되고 빼앗긴 자신의 가치인 존엄성을 양보할 수 없다는 힘으로 응집된 것이다. 오늘날 지구의 동서 문제보다 남북의 문제가 오히려 첨예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기독교 중심의 문명, 서구 자본 중심의 경제 논리가 거대한 아메리카의 힘의 논리 속에서 제3국의 소외를 낳았고, 그들의 문명을 저급한 것으로, 그것을 이룬 인종을 하류의 종족으로 계급화시키는 양태를 낳고 있다. 아프리카, 그 검은 대륙 속의 가난은 결코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닌, 착취로 인한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세계가 아프리카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들끟고 있는 분노의 목소리를 줄어들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관용이며,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니 넌 죽어야 해''로 오만하게 번져가는 세속적 종교적 패권주의의 남용만큼은 자제해야할 것이다. 이제 세계는 경제 논리와 인종 문제를 넘어 첨예화된 종교적 패권주의로 이교자들에게 더 없이 잔인하게 군다. 그 이면에는 물론 경제 논리와 인종 청소까지 들어가 있다.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니''가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지만, 우리 서로는 살아야 해''의 정신이 가장 원식적이라 말해지는 그 곳, 가장 어둠에 휩싸여 제 정체를 여지껏 드러내지 못하는 땅, 아프리카에 까지 미칠 때, 지구는 비로서 그럴싸한 지구촌이 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픔의 5월이 시작되었다. 군부의 독재에 맞서 가녀린 청춘을 날린 친구들, 그리고 아픔의 시대에 꽃다운 목숨을 바친 그들, 또한 이념이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도 없이 생존 그 자체에 허덕이는 굶주리고 헐벗은 검은 사람들, 그들의 땅이 짚밝힌 치욕의 붉은 피로 도배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윌레 소잉카가 백인 사회를 향한 외침이 메아리도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되어 우주 공간을 유영하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