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이 글을 쓰는 일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뛰어나게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늘 느끼지만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이 많다. 얼마전에 글쓰기의 전략이라는 책이 나와서 구입했는데 솔직히 그리 큰 도움이 된건 아니다. 근데 고모는 저자가 연대 교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교육열을 확인하듯 말리기도 전에 사버리더라. 이 책은 내용을 보기 전에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 들었다.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글을 쓴다는 것 만큼이나 고치는 것이 더 힘들다. 예전에 장하늘 선생이 쓴 글고치기 교본을 개정한 책인데 글고치기 교본을 아주 잘 고친 글고치기 전략이다. 각설하고 내용상의 별점을 준다면 별 다섯이다. 편집자가 애쓴 흔적이 보이고 다른 책에 비해서 실용성이 뛰어나다. 글 쓰는 것을 배우고 싶거나 언론고시, 논술과 같이 필연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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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자주 쓰는 만큼, 다른 사람의 리뷰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어떤 때는 리뷰가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글 고치기 전략>은 리뷰도 참고하고 또 전문인의 추천을 받아 산 책이지만, 과문해서 그런지 취향이 독특한 건지 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올바른 우리 문장론을 세우기 위해 헌신해온 대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생경한 우리말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13쪽부터 등장한 '일고동(일의 성패가 결정되는 요긴한 목)'에서부터 '고부탕이(피륙에서 필을 지을 때 꺾이어 겹치는 자리)', '들떼놓고(꼭바로 집어 말하지 않고)', '쩍말없을(썩 잘되어 더할 나위 없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바로 14쪽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등장하는 단어, '센텐스'. 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중간 중간에 '센텐스'와 같은 말로 '월'을 썼는데, 이 때도 주석이 없어서 한참 뒤에 월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다음으로, 예시문 수정이 적절하지 않았다. 다음 예문을 보자. "사랑하던 외아들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어머니는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혼절했다." 저자는 풍유, 압축, 여운의 미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바꿨다. "브루투스, 너마저냐!" 아들의 배신에 겨운 어머니는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까무러쳤다." 과연 여기에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한 말을 쓰는 게 적절한지 의문스럽다. "브루투스, 너마저냐!"를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배신'이 아닌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이미지다. 아들과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기사 문장을 예로 들면서 축약을 할 때도 문제다. 간추려서 보면 원본 기사에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9개 교육관련단체로 이뤄진..."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것을 저자는 '위한'이 지나치게 많다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민주화 전국교수협의회'로 바꿔놓았다. 이건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위한'이 많다 하더라도 고유명사는 글자를 고치면 안되는 것이 원칙아닌가? 무조건 보기 좋게 바꾼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화체가 더욱 생동감있다며 저자는 서술형기사 일부분을 아예 대화체로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대화체는 기사 제목이나 일부분 강조할 때를 제외하고는 화자가 실제로 한 말을 그대로 전할 때 쓴다. 아무데나 큰따옴표를 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 물론 이 책이 문장을 다듬는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 사실이다. 우리가 잘못 사용하는 표현도 짚어주고 있고, 문장을 더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도록 다양한 조언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글'에 맞추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거북했다. 무조건 정해진 한 가지 기준에 맞추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강의로 들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P.S. 물론 이 역시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국 주관이 개입된 리뷰일 뿐이므로 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고는 할 수 없다. 역시 참고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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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리고 1. 숫자 두 개가 전선을 타고 날아다닌다. 지구 저편까지 몇 초면 간다. 못 하는 일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 인류는, 최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온 세상을 하나의 망(網)으로 묶었다. 이름하여 인터넷(Internet). 이 인터넷은 탄생과 동시에 세상을 바꿨다. 그것도 '완전히'. 그렇게 세상이 바뀐지, 이제 꽤 됐다.
세상이 바뀌던 무렵, 인터넷의 강맹한 위력을 목도한 몇몇 이들은 크게 걱정했더랬다. '인터넷'이 끝내는 '활자'를 죽이고 말 거라며. 그렇게 10년. 과연 활자의 입지는 좁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인쇄'라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이 '인터넷'이라는 더 위대한 발명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지만 '자동차'와 '마차'를 떠올리며 활자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은 활자를 결코 죽이지 못 한다. '힙합'이 '베토벤'을 죽이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활자의 입지를 좁힌 대신 인터넷은,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글의 시대'를 열었다. 감히 단언컨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글'이 이토록 높은 비중을 차지한 적은 일찌기 없다. 선뜻 안 믿긴다면 그것은 mp3와 jpg, 그리고 avi의 현란한 몸짓에 눈이 팔린 탓이다. 세상을 살려면 말을 해야하듯, 인터넷 세상을 살려면 글을 써야한다. 지금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글'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생산되는, 명실상부한 '글의 시대'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 거대한 그물망의 한 끝에서 누군가는 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글이 천지간에 넘쳐나는 글의 시대! 그 중에 '진짜 글'은, 얼마나 될까. 물론 '가짜 글'같은 건 없다. 그런데 '글 같지 않은 글'은 있다. 많다. 온라인 세상에서 흔히 만나지는 '글같지 않은 글'의 대표적인 유형은 '말을 그저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말 하나 굳이 만든다면 - '문차(文借)'랄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작 이 '문차(文借)'나 하면서 스스로는 '글'을 쓴다고 착각한다. 이들에게 '글쓰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음성'이 안 되니까 '문자'로 대신하는 다소 번거로운 과정일 따름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아무나' 글을 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무나' 글을 쓰지는 않았다. 쓴다한들 그 글을 남에게 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은 '아무나 글을 쓰고 그 즉시 아무에게나 보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러나 그 덕에, '글'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자모의 조합'이 온 세상에 넘쳐난다. 그 구렁속을 헤집고 다니노라면 숨이 턱에 닿고 멀미도 난다. 그러다가 가끔, 정말 아주 가끔 - '진짜 글'을 만난다. 건빵 속 별사탕만큼이나 반갑다. 정말 별처럼 반짝- 빛이 난다.
하지만 '진짜 글'과 '좋은 글'은 다르다. 물론 좋은 글은 진짜 글이다. 하지만 진짜 글이 다 좋은 글은 아니다. '좋은 글'에 대해서라면 구구한 설명보다 방송작가 김수현의 일화 하나를 들추는 것이 간명하겠다. 후배작가 하나가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자 '그건 연습해서 되는 게 아냐. 타고나야지.' 대답했다는, 이젠 유명하지도 않은 이야기. 인정하기 싫지만, 그녀가 옳다. '좋은 글'은 타고나야 쓸 수 있다. 수영연습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박태환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누구라도 배우고 연습하면 - 박태환처럼은 아니더라도 - '수영'은 할 수 있다. 간혹, 배우지 않았는데도 물위에 떠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다. 열심히 허우적대는 본인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그건, 물보라 요란한 물장구일 뿐이다. 수영하는 '시늉'일 뿐이다. 그걸 뭐라 부른들 상관할 바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건 - '수영'만큼은 결코 아니다. 이처럼 누군가가 수영을 한다고 할 때, '박태환 수준의 수영인가 아닌가'는 중요치 않다. '수영인가 아닌가'가 먼저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인가 아닌가'는 나중얘기다. '글인가 아닌가', 그게 먼저다. 그것이 '글'일 때 '진짜 글'이라 하고, 그 글이 좋을 때 '좋은 글'이라 한다. 이것이 '진짜 글'과 '좋은 글'의 차이다.
수영과 마찬가지로 '글'도 배워야한다. 그리고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쓸 수 있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과정을 건너뛴다. 그들에게 글쓰기란, 말을 글자로 옮기는 하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숨쉬기나 잠자기처럼 굳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도 무엇인가 쓰고 있겠다. 자신들이 쓰는 그것이- '글'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심지어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그 무엇'을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다.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요즘에도 본다. 아니 '늘' 본다. 보인다.
자꾸 말해 안 됐지만 좋은 글은 '타고나야' 쓸 수 있다.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박태환의 수영을 누구에게나 바랄 수 없듯 '좋은 글'을 누구에게나 바랄 순 없다. 하지만 타고나지 않아도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타고나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다. 다만 배우고,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많이도 필요없다. 조금만 하면 된다. 조금만 하면 누구라도 '진짜 글' 정도는 쓸 수 있다. 그런데 그 '조금만'을 '조금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 '글 같지도 않는 그 무엇'을 주야장창 써 댄다. 요란하게 물장구 치는 사람이 '수영한다'고 하면 비웃을 사람들이, '글 쓰는 시늉'을 하면서 스스로는 '나 글 쓴다'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 쓰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냥 많이 쓰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이런 생각부터 버리자. 어떻게 되지 않는다.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는 한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전혀 타고 나지 못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오죽할까! 그런데도 우리는, '글쓰기' 배울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숨쉬기'처럼 당연히 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에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글 비슷한 것'은 많지만 '글'이 귀한 세상을 산다.
이렇게, '글 비슷한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만나는 장하늘 선생의 책 <글 고치기 전략>(다산초당,2006)은 그야말로 차고 맑은 한모금의 물이다. 따끔하지만 청량한 죽비(竹篦) 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장하늘 선생의 죽비가 떨어진다. 찰싹-찰싹-찰싹-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죽비를 받느라 어깨놀이는 금세 얼얼해진다. 찰싹- '일문일사(一文一思)'의 미덕을 배우고, 찰싹- '읽혀야 문장'임을 배우고, 찰싹- '메타 디스커스(meta-discourse)' 걷어내는 법을 배우고, 찰싹- 선명한 말꼬리의 위력을 배우고, 찰싹- 길고 두루뭉술한 문장의 무력함을 배우고, 찰싹- 너저분한 수사(修辭)의 역겨움을 배우고, 찰싹- '윗옷'과 '웃옷'의 차이를 배우고...그렇게, 평생을 우리말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바친 노학자에게 '글쓰기'를 배운다. 드디어 마지막장, 얼얼해진 어깨를 어루만지며 책장을 덮는데 아차, 마지막 죽비가 세차게 떨어진다. 찰싹- 유난히 서늘한 그 죽비소리에 그만, 내가 그간 '글'에게 행한 지독한 무례(無禮)를 깨닫는다. 부끄러워진다.
그렇다고 이 책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말자. <최신판 올컬러 수영교본>이 당신을 박태환으로 만들어주지 않듯, 이 책 역시 당신을 김훈이나 김연수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줄 뿐이다. '글다운 글'을 쓸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책 한 줄 한 줄 진득히 배어있는 노학자의 고집과 깐깐함이 가끔은 거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 비슷한 것' 혹은 '글이라 하기에 민망한 그 무엇'이나 쓰던 사람이 '진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데 - 노인네의 꼬장꼬장한 잔소리쯤, 백번이건 천번이건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 평생을 두고 남는 장사다.
꼭 이 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꼭 책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어떠한 형태, 어떠한 방법이 되었든 '글쓰기'를 배웠다면, 아니 배우기 위한 시도를 한 번이라도 했었다면, 당신이 쓰고 있는 것은 '글'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런 기억이 전혀 없고 지금도 그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지금 글을 쓰고 있다면...묻고 싶다.
그대 지금 '글' 쓰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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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어렵다는 걸 느낀 계기가 있다. 십 여 년 전 봤던 '한국어 능력 시험'이다. 시험을 보면서 직감했던대로, 토익보다도 훨씬 못한 점수가 나왔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면서는 '그래도 모국언데!'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결과를 받고 나서는 '하긴...국어보다 영어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왔으니...' 하며 현실인정 내지는 자기보호를 하게 됐던 것 같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한국어 능력 수험서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오래전 그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글쓰기는 정확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글은, 어감을 느끼면서 이해하고 오해를 푸는 대화 보다 훨씬 어렵다. 소재 선택, 주제 잡기, 체계적 구성, 게다가 어휘력, 수사법, 글센스 등 수 만 가지가 필요한 게 글쓰기다. 다들 느끼겠지만, 일기 한 장 쓰기 (독자가 자신이기 때문에 훨씬 낫긴하다), SNS에 글 하나 올리기가 에징~간히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대게는 생각나는대로 엄지 몇 번 휘젓고는 '알아서 이해허것지~' 하며 돌아서게 된다. 그런데, '글은 일단 독자에게 넘어가면 독자의 글이 된다'는 저자의 말에, 움찔한다. 글은 양날의 칼 같다. 소울 메이트에게 말하듯 내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게 돼서 힐링이 될 때,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분명하게 다듬어 간다고 느낄 때, 전에 쓴 글 다시 읽으며 마치 내면을 찍은 사진처럼 '그때의 나'를 돌아볼 수 있을 때 유익하다. 반면, 글은 말 보다 망각의 혜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고, 기억이 각색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또, 일단 공개되면, 말보다 오래 남는다. (유투브 등, 시대가 바뀌면서 이 또한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게 됐다) 지우고 싶은 사진이 더 이상 내 손에 있지 않은 것 처럼. 그나마 SNS나 각 종 싸이트에 올린 글은 수정과 지우기가 가능하지만 (몇 번 째 이 글을 수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send'를 누른 이메일은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의사소통의 6할 이상을 이메일 교신으로 하기 때문에 이메일 하나 작성할 때 마다 얼마나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는지 모른다. 영원한 외국어일 수밖에 없는 영어로 써야해서, 내용은 명확한 지, 문법은 맞는 지, 어휘는 적절한 지, 스펠링은 확실한 지 등을 짧은 시간 안에 수 없이 고심하게 된다. 이 부서에서 벌써 2년 째지만 일 자체 외에 이민자로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그런 수고로움은 여전하다. 글이란 게 기록이 남기 때문이고, 수신인이 렉쳐러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천성이 말을 잘 하는 편이 못 되지만, 중학교 때부터 펜팔과 일기로 연습된 글빨로 영이를 꿰어냈기 때문인지, '역시 난 말보다 글!'이라 믿으며 글을 강점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나는 영민하기 보다는 좀 우둔한 노력파라서 그런지 말보다는 글이 더 체질에 맞는다. 다산의 '삼근계'를 초서해 책상 머리에 붙여 놓은 이유다. 맘에 드는 사진 나올 때까지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맘에 안 드는 사진은 골라 낼 수 있다는 점이 글의 장점이기도 하다. 사진 수 십 장 찍는 것이 글 한 꼭지 쓰는 것 보다 훨씬 수월하긴 하겠지만. 이 책은 좀 '올드'하다. 세세한 문장분석하며, 대안으로 제시한 어휘들이나 문체가 학창시절 문법교과서를 읽는 것 같다. 건너 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영어식 문장에 대한 지적이나 신문 기사와 칼럼 등에서 뽑은 애매한 문장의 예시 그리고 문장부호 사용, 띄어쓰기 등은 나의 필요에 딱 맞았다. 자기계발서 많이 읽는다고 자기 계발 잘 하는 것 아니고, 글쓰기 책 많이 읽는다고 글 잘 쓰게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이든 여러번 해 보는 것 말고 지름길은 없고, 행여나 얻어 걸린 게 있더라도 그만큼 빨리 잃게 되더라 하는 것이 지금까지 파악한 세상 이치다. 다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노우하우는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 요령을 얻어 보려고 했지만, 책 제목을 다시 보니, 김밥집에서 스파게티 찾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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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일까 우선 ‘짧은 글’이 좋은 글이다. 단락도 센텐스도 짧아야 하고, 한 센텐스는 길어도 50자를 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바른 글’이 좋은 글이다. ‘바른 글’이란 문맥도 자연스럽고 문법도 바르며 표기도 바른 글을 의미한다. 셋째로는 주제, 구성, 표현이 뚜렷한 글이 좋은 글이다. 넷째로 어휘, 구문, 표현이 쉬운 글이 좋은 글이다. 마지막으로 내용(화제)이 재미있고, 들머리나 마무리가 매력적이며 수사법이 참신해 이끌리는 글이 좋은 글이다. p.15 짜임새 있는 글을 쓰려면 도입부에는 독자로 하여금 읽고 싶은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중간 부분에선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서 변화로 긴장감을 주었다가, 끝부분에서는 전체를 묶는 결말이 필요하다. p.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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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치기 전략] 장하늘, 다산초당, 2005 · 1. 저자에 대해서 · 저자는 20년간 강단에서 문장론을 가르쳤다. 한국 문장론의 구조를 세우는 일에 한평생을 바쳤다. 대표 저서로는 [문장표현사전],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문장표현의 공식], [알짬 문장술], [악문의 진단과 치료], [현대문의 지름길] 등이 있다. · 2. 초보자를 위한 문장 구조 중심의 글쓰기 전략 ·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글쓰기가 생활화되고 있다. 직업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학교에서 글짓기 한 후로, 글쓰기는 특별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 카페· 페이스 북을 활용하려면 글을 써야만 한다. 그런 활동을 위해서 급히 쓴 글을 보면, 문법이 무너지고 맞춤법 틀고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휴대전화의 문자나 짧은 댓글에서는 상대방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좀 더 긴 문장을 쓰다 보면 고민을 하게 된다. 분명히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인데, 왜 글을 잘 쓰지 못할까? 한글을 아는 것과 한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헤밍웨이는 책을 출판하기 전까지 200번 이상을 고치고 다시 썼다고 한다. 대작가도 자신의 글을 수없이 읽어보고 고치는데, 생각나는 대로 쓰고 완료버튼을 누르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글을 잘 쓰기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 문장의 4요소 : 명확한 주제 · 참신한 소재 · 긴장감 있는 구성 · 개성 있는 표현 ·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감정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담을 참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글을 읽는 사람을 잡아들 수 있는 긴장감과 개성 있는 표현을 고려해야 한다. · 문장의 기능적 3대 조건 : 실용성 · 정확성 · 속도성 · ‘좋은 글’이란 것에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이가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쾌한 문장이 필요하다. 명쾌한 문장을 위해서는 군더더기가 없고, 구체적 표현을 사용해야한다. 어렵고 고상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좋은 문장이 될 수 없다.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완성된 글을 고치는 것은, 독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며 더 좋은 글을 만드는 방법이다 · ‘좋은 글’을 위해서는 이론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서만으로 부족하다. ‘좋은 글’과 내가 쓴 글을 많이 읽고 열심히 고쳐 쓰는 것이, 멋진 글을 쓰는 방법이다. · ------------------------------------------------------------------------------------------------------ 문장력을 키우는 10가지 방법 · 1. 어휘력이나 표현술을 늘린다. (우선 나 자신에게 감동을 줘라) 2. 항상 메모하라 (좋은 글은 메모해라) 3. 문맥적 의미에 유의하며 사전을 뒤져라. (국문학박사도 사전을 옆에 둔다) 4. 좋은 글을 모방하라. (표현술에 유의해서 읽어라) 5. 장소를 달리해가며 읽고, 제삼자에게 읽혀보아라. (조용한 커피숍이나 공원으로 가라) 6. 명쾌한 구성 / 쉬운 어휘와 표현 / 구체적인 소재 / 재미난 표현기법 /을 익혀라 7. 구체적이며 독특한 경험이나 실례를 통해서 임장감을 주어라 (지루한 글은 취침용이다) 8. 소리 내 읽으며 쓴다. (잘 읽어지는 글이 좋은 글이다) 9. 후려 쓰기를 숙달하라. (집중해서, 몰아 써라) 10. 책을 찢고, 붙여라. (좋은 글을 눈앞에 두어라) ----------------------------------------------------------------------------------------------------------- · 글쓰기의 10가지 원칙 · 1. 구체적이고 유익한 주제로 좁혀서 써라 2. 꼭 써야 할,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강한 주제의식으로 몰아붙여라 3. 화제는 문장 성패의 일고동이다. 기어이 전하고 싶은 화제로 잘 골라 쓰라 4. 교훈적인 맺으므로 끝내지 마라. 부득이한 경우에는 표현을 에돌리라. 5. 독자의 가슴으로 직진하는 표현을 꾀하라. 군더더기는 글심을 약하게 한다. 6. 기승전결의 명수가 되라. 그리고 변형을 알아 두라. 7. 이끌리는 들머리, 짧고도 적극적인 들머리를 꾀하라. 8. 쉬운 표현에 깊은 내용을 곁들이라. 9. 글 꼬리는 문장 평가의 저울대다. 인상적인 맺음을 꾀하라 10. 때로는 형식적인 표기가 내용을 더 돋보이게 한다. 시각적인 문장에 유념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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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 읽는 주제의 책이다. 다 알고 있는 듯해도 막상 펼쳐 보면 모르는 것 투성이에, 잘 지키고 있는 줄 알았는데도 비교해 보면 온통 틀리게 쓰고 있는 말투들. 어쩌겠는가, 읽고 고쳐 나가고 다시 읽고 고쳐 나가는 수밖에. 그래서 쓰는 동안은 내내 더 잘 쓰려고 애쓰는 수밖에.
책은, 이런 책은 읽을수록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와 같은 책을 읽는 동기는 자신의 글에 있을 문제점을 찾아 확인해 보고 더 나은 표현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 테고,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고치게 될 테니 안 읽는 것보다는 분명히 낫지 않을까.
글투라는 게 사람의 개성과 같아서 같은 마음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드러내는 모양은 다르게 마련이다. 문법적으로 바른 표현이라면 다양하다고 봐 줄 수 있겠지만 틀리고 어색하고 장황하고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 글이라면 읽고 싶지 않게 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자신이 쓴 글이 안 읽고 싶어지는 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늘 써 온 말인 것 같은데, 글은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쓰면서 머리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외운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수영하는 방법을 글로 다 외우는 것과 실제로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은 다르다고 말하면 비유하는 상황이 비슷하려나. 쓰고 또 쓰다 보면 스스로 걸리적거리는 지점을 만나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얼른 떠오르지 않는 낱말 때문에 답답해지면 찾아 보게 되고, 그렇게 고치면서 나아가는 게 글 쓰는 기술을 익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데 그럴 때 이 책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더러는 낯이 뜨거워지기도 할 것 같다. 잘못 쓰고 있었구나 확인하게 될 테니까.
어김없이 또 그랬다. 한동안 무심하게 지냈는데 이 책을 넘겨 보면서 나의 흠을 줄줄이 발견했다. 좀처럼 완성시키지 못할 영역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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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글 고치기 전략...글을 잘 쓴다는 건 잘 고친다는 것 천재 작가조차도 글을 한 번에 잘 쓰진 못한다고 한다. 대신 수 많은 글 고치기를 통해 보다 좋은 글을 지을 순 있다는 얘기. 결국 글을 잘 쓸려면 그만큼 손을 봐야 한다. 좋은 글은 분명하고 정확하며 간결하고 정중해야 한다는 4C 원칙에 충실해야 하지만 정작 이를 잘 실천하기는 어렵다. 머릿 속에서 걸러 질서를 가다듬고 주제를 강하게 내세울 구성을 짜고 군더더기 없는 옹골진 표현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 쉬운 글 짓는 첫 걸음(P.50)임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처럼 쉬운 글은 짧은 길이, 뚜렷한 문맥, 쉬운 어휘, 분명한 설명과 비유, 시각화를 전제로 한다. 앞으로 살펴볼 대목은 쉬운 글 쓰기를 위한 팁이다. 세세한 내용이라 다소 복잡할 수도 있으나 꼭 활용해야 할 내용이기에 감히 다루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단기기억이 20초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한계이기에 가능하면 짧고 간명한 글쓰기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길어지면 자칫 지루하고 독자의 외면을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단말마 성격의 현대인들에게 만연체 문장은 최악이다. 단백한 글 쓰기가 강조되는 이유다. 쉬운 어휘를 지향한다는 건 외래어보단 토박이말로, 한자말은 쉬운 국어로, 고사성어는 우리말로, 전문어는 주를 다는 것이다. 똑똑한 티를 내던 시대는 지나가고 보다 쉽고 분명하게 다가서는 문장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명쾌한 문장은 개인의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중심인 구체적 내용으로 비유적 표현, 격언, 속담, 고사 인용등과 더불어 사자성어도 가능하면 풀어쓰고 풍유와 압축의 여운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결국 좋은 글은 짧은 글이자 바른 글로 주제, 구성, 표현이 뚜렷하고 어휘, 구문, 표현이 쉽고 내용이 재미있다. 또한 도입부와 마무리 매력과 수사법이 참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좋은 글 쓰기 명제는 생생한 표현력과 솔깃한 설득력, 메모와 관찰, 다시 읽고 쓰는 과정을 반복할 때만이 가능하다. 나아가 글 쓰기의 10원칙으로 구체적이며 유익한 주제로 좁혀 꼭 써야할 주제의식으로 몰아붙인 후 화제를 골라쓴다. 결코 교훈적 문장으로 끝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끔 한다. 기승전결 원칙은 지키되 응용도 곁들인다. 도입부는 특히 짧으면서도 자극적인 출발을 요한다. 내용은 쉬우면서도 심도있게 다루고 인상적인 끝맺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각적인 문장과 형식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좀더 세부적으로 보면 잘못된 표현이나 명확하지 못한 표현은 피하고 묘사적이고 인상적인 표현을 위해 접속어는 생략하거나 최소화한다. 중복표현은 쓰지 않는다. 표현은 수동형이나 번역투에서 벗어나 능동형, 긍정적으로 쓴다. 예를 들면 ‘불리어지는’은 ‘불리는’ 혹은 ‘부르는’으로, ‘주어진다’는 ‘준다’로, ‘~시키다’는 ‘~하다’로 바꾼다. 한자어의 ‘~적, ~화, ~성’은 구체로 바꾼다. 예를 들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꾸는 것이다. 한편, 설명문 글쓰기 요령은 두괄식 구성에 전체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글머리와 고유명사, 숫자, 체험등의 구체적인 사실을 곁들여 쉬운 문장으로 긴 문장이 되지않게 한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은 압축과 여운을 통해 인상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고 시점 변화, 화제 변화, 문체 변화에 신경쓴다. 글꼬리도 가능하면 참신하게 맺는다. 전형적인 ‘~다’에서 ‘~까, ~가’등으로 변화를 준다. 주석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경우라든가 언중이 읽기 불편한 경우, 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의 난해한 수준일 경우에, 생소하거나 전문용어, 동음이의어등은 정확한 뜻 전달을 위해 달아주어야 한다. 간결체를 지향하는 현대인에게 있어 ‘배고픈 문장’은 필수다. 중복 표현은 피하고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있으나 마나 한 주어, 꾸밈말 역시 배제하고 준말이나 접속어는 최소로 하는 등 무언가 여운이 남기는 글쓰기를 한다. 접속어 사용을 최소화 한다는 건 전달이 목적인 문장에 있어 군더더기를 없애는 게 중요하며 이를 통해 리듬과 힘을 되살린다. 최소한의 접속어 사용이 전제되지만 생략시 이상한 곳은 사용한다. 긴 단락의 머리엔 사용해야 쉬운 문장, 친절한 문장이 된다. 접속어가 많으면 딱딱한 문장 혹은 논리성에 치우친다. 그러므로 소설 같은 묘사적 표현시엔 생략하되 설명시엔 쓴다. 마침표 역시 원칙이 있다. 완결되는 문장 끝에만 쓰되 한 문장, 한 마침표 원칙을 지킨다. 중간 마침표에는 쉼표를 쓰고 인용부호가 있을 땐 생략한다. 괄호 역시 마찬가지. 문장의 끝 종속 괄호가 이어지면 괄호 친후 사용한다.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꼼꼼하고 세심한 글쓰기 전략이 돋보인다. 다만 토박이말 범람으로 인해 평소 접하지 않던 단어의 생경함이 이해에 어려움을 주었고 익숙치않은 우리말이 많아 혼란도 겪었다. 또한 우리말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저자 역시 월, 센텐스라는 표현을 애용하고 있어 우리말의 사용 취지를 무색케한다. 원칙이 좀더 철저하게 고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도 아울러 느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글 쓰기에 있어서 하나하나 신경써야 할 사항이 너무 많고 그만큼 글 쓰기가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그러므로 글을 잘 쓴다는 건 결국 얼마나 글을 잘 고칠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는다.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한 저자의 노력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자 글을 잘 쓰고자 하는 독자 제현에겐 필수 교과서로 다가오는 이유라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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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글이지만 못난 글이 싫어서 읽게 된 책이다. 틈틈이 필요한 부분만 보는데도 무척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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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기는 삶을 살았다.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비겁하지 않았었다면...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공부잘하는 애들보다 글 잘 쓰는 애들이 부러웠고, 글 잘 쓰면서 말도 잘 하는 사람은 더 부러웠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든 노력하면...그래도 조금 나아지겠지, 싶었다.
책장 한 켠에 빽빽하게 글쓰기 책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문장강화'에 이은 두 번째 책.
나는 정말 글을 잘 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