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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학명문인 게이오대학의 설립자, 그보다는 일본 만엔권의 인물이라하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도쿠가와 막부말기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난 봉건적 가치를 거부하고,
서양중심의 학문을 적극 받아들여, 일본의 근대화및 교육발전에 크기 기여한
인물이다.
인물을 미화한 자서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본인의 성장과정과 사상적
발전의 토대를 이룬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이보다 진솔하게 서술한 책은 없을듯싶다.
본인의 치기어린 행동까지도 별다른 가식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인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현대적 의미의 100% 민주적 이념을 지닌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그 누구보다도 봉건적 가치로 인해 정체되어 있고, 기득층의 권리만이 존중받는
시절에 서양문물,사상을 받아들여 서구적 발전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 봉건적 잔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사람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서구의 발전된 산업문물을 중심으로 일본이 발전하기를 누구보다도 열망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상적 이념적인 면보다는 한 인간으로 격변의 시기를 지나는 지식인으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삶을 관통하는가 하는 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다.
꾸밈없이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사족같지만, 100여년전 일본의 지식인이 본 우리의 모습 그때와는 어떻게 달라
졌을까 궁금하다.-아니면 저자의 단순한 한국 비하인가?-
"일단 내 손에 쥐면 빌린 돈이나 받은 돈이나 마찬가지니, 나중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의리고 체면이고 없는 그 모습은 조선인이 돈을 탐하는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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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생의 전반부에 대한 이야기가 주이다. 출생에서 메이지유신 몇년까지만 자세히 나온다.
이 사람은 일본 지폐의 최고액인 만엔의 인물로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근대에 영향력을 많이 준 사람으로 게이오 대학의 전신을 만든 설립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선(대한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 이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본 지방의 하급 무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양학에 관심을 두어 오가타 후쿠자와가의 데끼주쿠에 입문하여 네델란드 학을 배운다. 청년들의 장난끼와 패기 그리고 당시 학생들의 문화 및 당시 일본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다.
에도(도쿄)로 옮긴 후 네델란드보다는 영어(미국학)을 공부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국제감각과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다. 막부의 1차 미국행에 동행하여 미국을 갔다온다. 이어 유럽 각지행의 기회가 있어 갔다 온다.
후쿠자와가 미국을 간 것도 본인의 의지에 의해 방법을 찾아 갔으며, 유럽 시찰도 마찬가지로 방법을 구해 갔다 왔다. 이때 영어로 가진 책을 많이 사 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갔다 온 후 서양에 대한 여러가지 책을 쓴다.
영학주쿠를 세우고 이것을 연호를 따 게이오지주쿠(흔히 게이오 의숙이라고 하나)를 설립한 후 후학을 양성한다.
저자의 생각에서 막부 말기의 분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고, 저자는 어느 쪽도 편을 들지 않고, 둘다 틀렸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양이를 주장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아마 더 했을 것이다. 어쨌던 근왕파나 막부파나 모두 양이였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가 양이에서 개국으로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역사를 참고해야겠다.
그리고 조선인에 대한 비하가 몇군데 나온다. 현재도 마찬가지인, 탈 아시아와 서양을 동경하는 사상이 어쩌면 후쿠자와씨에게서 발현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서구는 옳고, 일본이나 중국, 조선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게 흐른다. 그 중에서도 조선인에 대한 것은 모독에 가깝다. 조선인을 열등민족으로 몰고 있는 것은 그 당시의 일본 지식인의 보편적인 관념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분에 대해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장점으로 보자면 소신을 가지고, 꾸준히 자기 할바를 다하여 교육을 기반으로 일본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소신이 편견으로 흐를 수 있고, 포옹력과 조화가 부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분에 대한 객관적인 평전을 보고 싶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리일 것 같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십만원 인물이 될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번역되고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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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개항 과정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되었는데 역시.....역사의 뒷 이야기를 알려면 이런 개인적인(?) 기록을 읽기가 도움이 되는 듯하다. 다른 리뷰에 없는 말만 하자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듯한 배경을 말하자면,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양반과 농민, 노비 등등이 섞여서 살았는데 일본의 전통 사회에서는 각 계급마다 따로 따로 거주지를 만들어서 살았기에 사무라이 마을, 농민 마을, 천민 마을 등등이 따로 존재했다. 또한 일본의 전통 사회는 유럽 전통 사회가 그러 했듯이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었던 중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이 꽤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 등등이 내세운 문명 개회론은 중국의 지식인들까지도 혹하게 만들고 일본의 지식인 중 몇몇까지도 혹해서 그 속에 숨겨진 일본의 영토 팽창의 야욕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였다. 내용 별이 4개인 이유는 그 당시에도 꽤 유명했던 저자가 스스로 도벽을 이야기할 정도로 나름 솔직하게 썼다는 점을 크게 보았고 편집 별이 4개인 이유는 영어 번역본을 참조한 탓인지 인명과 지명에서 오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