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8%
  • 리뷰 총점8 40%
  • 리뷰 총점6 21%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1%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7.0
  • 50대 7.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디지로그 배를 띄우다.
"디지로그 배를 띄우다." 내용보기
작가는 이 책에서 상당부분을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머루주는 담가주었으되 그 머루주를 얼마나 숙성시켜 맛있게 먹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섣부르게 먹을 것인가 향과 맛을 다 음미할수 있을 만큼 상상력을 발휘할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원망했었다. 작가만 알고있는 듯한 그 말투에 나는 머리속으로 작가가 던진 실마리하나에 상상력과 내 얕은 지식과 경험
"디지로그 배를 띄우다." 내용보기
작가는 이 책에서 상당부분을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머루주는 담가주었으되 그 머루주를 얼마나 숙성시켜 맛있게 먹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섣부르게 먹을 것인가 향과 맛을 다 음미할수 있을 만큼 상상력을 발휘할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원망했었다. 작가만 알고있는 듯한 그 말투에 나는 머리속으로 작가가 던진 실마리하나에 상상력과 내 얕은 지식과 경험을 떠올려야했다. 작가는 내게 능동적인 수신자가 되길 바란것이다.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로지 독자의 몫인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데로 받아들여라. 작가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내게 한국적인 방법으로 책을 보기를 요구한다. 한국인은 상대방의 얼굴이나 행동 말투에서 그말을 한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고 받아들인다. 외국사람들처럼 티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장점은 상대방에게 섬세하리만치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작가의 말투와 보이지 않는 감정을 보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알았으니 나는 작가에게 투정할 수 없다. 나는 작가가 뛰어준 디지로그라는 배를 나만의 방식으로 치장해야한다. 그 치장이 내 짧은 견해로 틀린거라 하더라도 전혀 겁먹을 필요가없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이 책의 후편인 전략을 내 배의 인테리어 담당으로 보내주기 했기 때문에. 이 책은 ''선언''이다. 배가 출항의 포를 올렸으니 내가 탄 배는 이미 출발했다. 뛰어내리면 망망대해니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럼 디지로그의 배를 천천히 편한 마음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배의 겉은 견고하며 정교하다.이것이 디지털의 기술이다. 디지로그는 앞에서 말했듯이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감성의 결합이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라는 표현은 이제 너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테니 그면에서는 더 설명할 말이 필요없다.(배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더 말할 필요가 없게죠?) 우리는 디지털강국으로 안주해야하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디지털 강국을 뛰어넘어 디지로그의 강국이 되라고한다. 디지로그는 차가움과 따스함의 공존이다. 디지털강국이라는 이름으로 차갑지만 튼튼한 갑옷을 만들었다면 옷을 입을 주인을 구해야한다. 그 주인을 어떻게 고를것인가?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이 전장에서 승리할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병사들을 함께 데려가지는 못한다. 병사들을 이끌 사람은 따스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어야한다. 그 주인이 아날로그인 것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은 어느한쪽 발을 담그고 있으면 힘들기 마련이다. 둘을 합한다면 그 따스함속에는 언제든 몸을 담그고 있어도 빼고 싶지않을 것이다.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감성의 융합은 우리에게 기분좋은 온도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배의 외관을 다 살펴보았다면 그속의 아날로그로 내려가 보자.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뒤떨어졌다고 무시했다. 과거를 토대로 서지 못함은 사상누각이 될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밝혀줄 단하나의 열쇠라면 그 탑은 입김하나에도 무너질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위해 지은 집에서 살아야 편안하다. 한국적인 아날로그는 무엇인가. 작가는 한국적인 아날로그를 한국인의 식습관과 연결시키고 있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가 매일 매일 먹는 식습관이 디지로그로 가는 열쇠였던 것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챔피언까지도 먹는다. 먹는것은 무엇인가? 남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 먹는게 남는것이란 속담을 작가가 말했을때 ''옳커니!''하고 무릎을 쳤을만큼 이말은 굉장하다. 여태까지 우리가 먹은게 얼마인가. 그 모든게 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남아있는 것이다. 먹는게 남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어금니로 꼭꼭 씹어먹어 우리 속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먹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존을 위한 삶보다는 한단계 높은 단계를 지향하며 살겠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거기에 작가는 한소리한다. ''당신들은 먹는것을 너무 우습게봐.'' 우리는 먹기 위해산다. 음식을 먹기 위해 사랑을 먹기 위해 칭찬을 먹기 위해 행복을 먹기위해 말이다. 그런데 먹는게 뭐 그리 대수냐니!! 우리는 식구로 출발해 어디서든 식구로 살아가는데 말이다. 집식구 학급식구 회사에서 한식구 월드컵때는 전국민이 붉은악마라며 한식구라고 부르짖는것이 한국이다. 이런데 먹는것 만큼 중요한게 어딨겠는가. 한국이 먹는것만 잘한다고 디지로그의 강대국이 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로그인 이배는 나무로만 이루어진 것이아니다. 수천가지가 수만가지가 모이고 모여 배를 만든것이다. 모아놓았다고 다가 아닐것이다. 모아놓더라도 섞어놓더라도 그것은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만의 자리에서 제 기능을 다해야 배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한국인의 비빔밥정신은 놀랄만큼 디지로그의 길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러 재료가 섞였 새로운 맛을 내지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 속에든 모든 것들의 맛이 난다. 이것이 한국의 경쟁력이다. 합하여 새로운 맛을 내지만 그 속 맛또한 변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아날로그가 디지털 속에 들어간다하더라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사라질거라고 겁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속에 들어가 새로운 맛을 창조하고 있지만 또한 우리에게 아련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있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인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한국을 좋게 좋게 보는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한국을 청룡열차라고 부르며 한국의 불안정성을 인정한다. 그 불안정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작가는 그 불안정성까지 품어주려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그것에 안주하지는말라. 우리는 청룡열차가 아슬 아슬 하더라도 타는 것처럼 그 청룡열차는 반드시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청룡열차에서 떨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 청룡열차 타기를 포기한다면 한국인이아닌것이다. 한국인은 그 사고를 낸 청룡열차의 문제점을 찾아내 고치고 앞으로의 예방을 한후에 다시 청룡열차를 타는 용기를 가진 민족인것이다. 첩첩산중에서 먹을게 없어 고민하는게 아니라 그곳에서 나물을 뜯어 그것을 먹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인상깊은구절]
* 그러므로 이 책은 와성된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 조금씩 발효되어 가는 머루주이다. * 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한국인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 파워가 희망의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쌀밥은 여든여덟 번 손이 가야하다는 농업시대의 전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도 밥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산업과 정보시대의 두 기술을 한데 모은 자동 전기밥솥으로 지은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7 2006.05.03. 신고 공감 2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어령씨, 이건 정말 아니다!
"이어령씨, 이건 정말 아니다!" 내용보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단순히 디지털은 0과 1, 아날로그는 유동적.. 이렇게 말했다간 공과대학의 ‘디지털개론’ 같은 1학년 교양수업에서 당장 D학점 맞기 십상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그렇게 명백한 차이가 아니다. 무한한 점들의 집합으로 연속성을 갖는 아날로그라고는 하지만 그 작은 단위까지 파고들면 물리학에서의 원자나 퀘이
"이어령씨, 이건 정말 아니다!" 내용보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단순히 디지털은 0과 1, 아날로그는 유동적.. 이렇게 말했다간 공과대학의 ‘디지털개론’ 같은 1학년 교양수업에서 당장 D학점 맞기 십상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그렇게 명백한 차이가 아니다. 무한한 점들의 집합으로 연속성을 갖는 아날로그라고는 하지만 그 작은 단위까지 파고들면 물리학에서의 원자나 퀘이크 같은 단위 상정이 가능하며, 디지털 또한 100% 완벽한 0과 1이 아닌 일종의 역치 개념을 통해 차이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책 이름을 ‘디지로그’라고 붙이려면 그래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관해 제대로 공부는 했어야 한다. 솔직히 이어령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함부로 욕하기도 어려운데, 이점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는 디지로그라는 책을 쓰면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기초개념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단지 한국의 옛날 것이 아날로그고, 전자정보시대의 모든 것이 디지털이다. 이는 명백히 성의없는 이분법에 책의 기초 이론이 서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디지로그는 이른바 디지털 하드웨어에 아날로그 감성을 싣는다는 개념이 가장 큰 개념인 듯 싶은데, 이조차도 뭔가 명백하다기보다는 사례를 끌어다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사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디지털로 디지털의 감성을 표현한 제품은 있는가? 아니 애초에 디지털 감성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가?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DMB폰… 모든 첨단기기들은 컨텐츠가 아닌 컨텐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이고, 그 다루는 내용은 당연히 인간이 사용하는 컨텐츠다. 따라서 디지로그라는 말은 동어반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게 다 디지로그다. 디지털 컨텐츠들이 로봇이 읽는 신문과 잡지, 컨텐츠를 만들지 않는 이상 모든 디지털 제품은 디지로그이다. 디지로그와 한민족을 연관시키는 것도 지독한 자민족중심주의의 소산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MP3는 미국의 애플 제품이며, 디지털카메라는 소니, 올림푸스, 캐논 등 미/일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럼 걔들의 뭐가 디지털 감성과 연결되었길래 그토록 전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디지로그 제품을 내놓았단 말인가? 한국인 특유의 여러 감성들이 디지로그에서 빛을 발할 것이라는 건 자가당착이며 자기 위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논리 자체도 얼마나 조잡한가? 예를 들어보자. 한국인은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데, 젓가락은 한짝만으로는 음식을 집을 수 없다. 이른바 페어 시스템인데, IT에 관련된 도구들 또한 하나만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메일, 채팅, 휴대폰 등…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젓가락 정보 모델은 한국이며, 그렇기에 한국의 IT는 강하다….. 애들이 장난으로 글을 써도 이것보다는 낫다. 괜시리 조잡하게 링크걸기를 종이책에서 따라하고 하는 모습들은 안쓰럽게 비쳐질 정도다. 디지로그라는 것이 그런 흉내내기가 아닌 개념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던데, 왜 책 자체는 그런걸 따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어령의 이번 책은 선언일 수 있겠으나, 그 선언 자체가 무척 공허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크게 내포한다. 한국인의 습관과 특성에서 디지로그가 만들어진다는 논리 전개는 매우 취약하며, 다분히 민족정서에 기대어 논리 비약을 보이는 모습을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오직 성공사례만을 간단하게 긁어모아 예쁘게 포장하고 사후에 논리를 갖다댐으로써 치장해 낸 조잡한 책에 불과하다. 이어령이 설마 이런 책을 쓰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다. 하긴 애초부터 느낌이 수상하긴 했다. 서재에 컴퓨터 7대를 갖다놓았노라고 자랑하는 것부터가 수상했으며, 뭔가 괜시리 포장된 듯한 느낌의 제목과 몇몇 단어에의 집착은 이어령이든 이어령에게 책을 쓰라고 권유했던 주변인이든 뭔가 오버해서 생각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어령이 쓰면 좀 뽀대나겠구나 싶은.. 이어령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필력에 도취된 것이 아닐까? 게다가 2권도 곧 근간이라니. 그나마 신문에 연재하던 글을 모았다고 하길래 조금 위안을 가져보려 한다. 만약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집필한 글이 이랬다면 아예 리뷰는 커녕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적으로 책의 내용에는 조금의 신선함도 없으며, 이미 일본에서 한국에서 몇 년 전에 거론되던 개념들을 괜한 ‘한국인의~ 뭐뭐~’ 식의 사족만 덧붙여서 책을 냈다. 실망이다.

[인상깊은구절]
젓가락은 짝으로 쓰고 IT기술도 쌍방향이므로 젓가락 쓰는 나라가 IT기술이 좋다고 한다.
r****r 2006.05.02. 신고 공감 2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어령을 처음 읽다.
"이어령을 처음 읽다." 내용보기
이어령은 내게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미지라는 것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영원무궁 신문의 인물 동정란을 채우는 귀한 손님... 그 인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내가 신뢰해마지 않는 장정일이 이어령의 을 최고의 문화론(정확한 표현은 모르겠다) 이라 평한 글을 읽고 나서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 이어령을 읽지 않았다. 올초, 그는 그가 직장으로
"이어령을 처음 읽다." 내용보기
이어령은 내게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미지라는 것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영원무궁 신문의 인물 동정란을 채우는 귀한 손님... 그 인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내가 신뢰해마지 않는 장정일이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최고의 문화론(정확한 표현은 모르겠다) 이라 평한 글을 읽고 나서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 이어령을 읽지 않았다. 올초, 그는 그가 직장으로 있는 거대 신문의 지면을 빌어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들고 세상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때 처음 나는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디지로그’는 결국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으며 애초부터 자웅동체의 운명을 지닌 것임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아날로그의 한계를 디지털 기술이 극복(?)하게 하며, 디지털 문명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선 (사람이 쓰는 것이기에) 결국 사람(아날로그) 지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지만, 그것을 개념화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법. 더구나 그 발상의 근거로 이어령이 들고 있는 수많은 사례들은 그의 박학과 다식(잡학다식이 아니다. 일정한 맥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을 거듭 자랑한다. 깔끔하고 잘 정리된 1급의 디지털 기기 사용자 리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지만, 그 기기의 문명적 의미에 대해 말과 글로 ‘썰’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이어령이 유일하지 않을까? 노인네, 대단하다.
t*******k 2006.04.13. 신고 공감 17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디지털 문명속에 잠재된 한국인들의 아날로그적 상상력
"디지털 문명속에 잠재된 한국인들의 아날로그적 상상력" 내용보기
불과 십여년 전의 일이긴하지만 느낌상 상당히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는데...오방이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직 다이나믹 코리아는 다분히 아날로그적 시대였었다...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친필 연애편지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녘에 몽유병 환자처럼 이불안에서 스르르 기어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아마 모르는 이들이 봐서는 엄청나게 공부 열심히 하는 수험생으로 알
"디지털 문명속에 잠재된 한국인들의 아날로그적 상상력" 내용보기
불과 십여년 전의 일이긴하지만 느낌상 상당히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는데...오방이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직 다이나믹 코리아는 다분히 아날로그적 시대였었다...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친필 연애편지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녘에 몽유병 환자처럼 이불안에서 스르르 기어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아마 모르는 이들이 봐서는 엄청나게 공부 열심히 하는 수험생으로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ㅋ)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던 짜릿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당시의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랫도리가 시큰하게 저려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한자 한자 꼬옥 꼬옥 눌러쓴 낯이 간지러워 미칠것만 같은 편지지를 고이 접어 예쁘게 꽃으로 수를 놓은 편지봉투에 넣은 뒤 딱풀로 밀봉하고 겉봉에 그녀의 집주소를 적을 때 느꼈던 환희는 요즘처럼 생일이건 결혼기념일이건 가리지 않고 그 잘난 e-mail카드를 통해서 픽!! 하고 던져버리고야 마는 정성의 부재를 비웃을만한 쾌감이었다...사실 초고속 internet의 중심에 서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클릭과 동시에 상대메일 서버로 송신되는 신속함과 편리함을 거부할 독불장군은 없을 지 모른다...하지만 우체통 세대와 이메일 세대의 정확히 중간지점에서 잔뼈가 굵은 오방세대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아날로그적 낭만 역시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애절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핸드폰은 귀하고 삐삐만 가지고 있어도 엄청난 뽀다구가 나던 시절이 있었다...되돌아보면 좀 불편하긴 했어도 그 시절의 낭만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애절함이 있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사랑하는 연인과의 약속시간...부득이한 사정으로 급하게 약속장소에 도착할 방법이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는가...오방은 군에 간 친구를 의정부 306보충대에 바라대 준 기억이 있는데...안타깝게도 그 날은 여친과 충무로의 대한극장(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니고 ㅋ 국내 최대의 와이드 스크린을 자랑하던 추억의 극장이었지 ㅋ)에서 리차드 기어가 아더왕 역할을 했던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기로 한 날과 쫑이 나고야 말았던 것이다...으윽...사나이의 진한 우정을 나누는 석별의 자리에서 그깟(?) 여친과의 약속때문에 배신을 땡길 수 없지 않은가...우여곡절끝에...친구넘은 무시무시한 빨간 모자의 손에 이끌려 지옥으로 끌려들어가고 나자...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오방...충무로까지 미친듯이 달리기(물론 차타고 ^^) 시작하는데...눈앞에선 극장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그야말로 미칠 지경 -_-; ㅋ 이십일세기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왠일이야~ 핸폰 한통 아님 문자 한통 귀엽게 날려 오빠 조금 늦을테니 어디 들어가서 팥빙수라도 먹고 있으라고 말해주면 간단하겠지만...삐삐조차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에 이미 집에서 출타하여 집전화로 전화해도 늦는다는 사연을 전달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과연 어떤 방법이 있을쏘냐...그냥 눈딱감고 뛰는 수밖에...생각해보면 다소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피식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이유는 몬가 애절하고 절절한 기다림의 미학이 핸폰 한방으로 오래전 약속을 과감히 뭉개버리는 요즘의 세태에 비해 너무도 낭만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애절함...왜 빨리 오질 않을까 오다가 깡패라도 만나 두들겨 터지고 있는 것일까...아님 집에서 나오다가 부모님께 걸려 머리를 빡빡 깎여 버리고야 만 것일까...교통사고라도 당해 중환자실에 실려간 것은 아닐까...약속을 어기거나 늦을 사람이 아닌데...머릿속에는 만감이 교차하고...저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앤이 모습을 본 순간...그 환희...희열...눈에서는 어느샌가 쪽팔리게도 짠한 감동의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고...ㅋ 약간 오버하긴 했다...인정하마...하지만 조금 늦는다고 해도 안심하고 전화 한통으로 무마한 후 제 할일 다하고 천천히 약속장소로 나타나는 싸가지없음이 여과없이 허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라면...약속에 대한 소중함을 물씬 느낄 수 있던 과거의 아날로그적 낭만을 조금이라도 맛봄으로써 보다 세련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잠깐이나마 모든 디지털 문명의 우산속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퍼붓는 아날로그 단비를 맞는 낭만...바로 이 책은 그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을 조용히 깨우쳐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디지털 문명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아날로그적 외침이다...최고이 석학 이어령 선생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박학다식한 지성을 통해 현재의 디지털 문명은 다분히 아날로그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하며 독자들을 한 칼에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는데...어리버리한 독자들은 저자의 화려한 언어와 전문적 지식에 혀를 내두르며 진도를 따라가기에도 헉헉 대고야 말 지경이다. ㅋ 저자의 주장은 우리들이 이제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기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디지털 문명안에도 한국인들의 아날로그적 상상력이 깊숙하게 심어져 있으며...이는 세계 어떤 민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군산하 백의민족만의 최대 장점이라는 것이다...이 책을 읽는 한국인들이라면 피가 끓어오르는 쾌감과 동시에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십분 만끽하게 되게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내노라하는 서구 코쟁이들의 선진문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들만의 특수한 디지털 문화를 조목조목 짚어 설명하는 말을 듣게 되면...첨엔 설마 그런 의도까지^^ 하고 한장 한장 넘기다가도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아니 정말 그렇군!! 하는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대체 그 장대한 나이에도 어쩜 이런 신지식을 속속들이 전문가 수준으로 섭렵할 수 있는지...맨날 술이나 처먹을 생각만 하고 살아가는 오방과 같은 무뢰한에게는 읽을수록 대가리에 경종을 울리며 저자에 대한 존경심이 하늘로 솟구치기만 한다...ㅋ 이 책의 인상깊은 차별화는 책 머리에도 설명되어 있는 ''컬러짚(Color Zip)''인데...저자의 말을 빌면 아날로그적 종이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가 서로 힘을 실어주는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이다...바코드의 차세대 개념으로 핸폰을 통해 접속하면 그 상세한 정보가 펼쳐진다고 강조했지만 ㅋ 상당한 요금이 청구될까 해보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다...ㅋ 과거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이어령 선생이 이제 디지털 시대에서 새롭게 큰 획을 긋는 재미난 책...생각보다 잘 맞는 궁합이 신기할 뿐이다.바이.
리뷰 총점 종이책
자신감으로 꽉찬 안내 지도
"자신감으로 꽉찬 안내 지도" 내용보기
연초에 신문에 연재된 글로 만났다. 간결면서도 생명력 있는 어휘로 시대의 큰 흐름을 보여준 저자의 높은 식견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관심있게 보았다.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용어의 등장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새롭게 도래하는 문화로, 우리가 일구어 나가야할 시대적인 사명으로까지 언급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저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자신감으로 꽉찬 안내 지도" 내용보기
연초에 신문에 연재된 글로 만났다. 간결면서도 생명력 있는 어휘로 시대의 큰 흐름을 보여준 저자의 높은 식견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관심있게 보았다.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용어의 등장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새롭게 도래하는 문화로, 우리가 일구어 나가야할 시대적인 사명으로까지 언급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저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합성어로 멋을 부린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사물과 행동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해석하여 새로운 용어를 자신있게 내세웠다. 이러한 힘을 빌려 디지로그는 또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보이며 출렁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휩쓸리고 말았다. 저자가 사물을 보는 눈은 놀랍다. 세심한 관찰에, 풍부한 지식에,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에 놀란다. 주변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하며 더 나아가서 시대를 표현하는 마음이 놀랍다. 저자가 보고 읽고 체험한 것들은 우리도 체험한 것들이다. 그것에 혼을 넣고 생명력을 넣어 준 것은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디지로그라는 비빔밥을 만들어 한 상 차려낸다. 단순한 융합이 아니라 앞으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로, 미래의 주 메뉴로 디지로그를 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제일 잘 만들고,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세상에 차려 내놓아야 할 민족은 우리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환한 미래를 주도하는 길에 기꺼이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디지로그의 정서로 조화된 삶을 살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정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미 우리는 새 시대로 향하는 선단의 앞에 서있다. 먹는다는 단어와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디지로그로 가는 입구이다. 이를 수행하는 젓가락의 문화는 이를 여는 열쇠이다. 여기에 디지털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기능이 있고, 정보라는 디지털의 어휘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힘이 있다. 아무리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지키고 있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여러 가지가 융합되는 시대에서 진정한 정보는 사람이 중심이라는 생각은 디지로그 선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해 준다. 동시에, 우리가 가슴을 펴고, 우리 자신의 문화로 새로운 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일이 있을 때, 특별한 말을 보태지 않고 이웃에 돌리던 떡처럼 굳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 않았더라도 저자가 희망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야 할 세대들이 새로운 정신으로 자신있게 바라볼 것을 원하는 메시지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우리의 문화를 접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던져주는 자신감이다. 디지로그가 가져다 줄 무한의 열매를 찾으러 가는 출발점까지 안내해 주는 지도이다. 큰 줄기가 보였다. 저자의 말처럼 뗏목의 키를 꽉 잡고 있는 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 줄기를 더욱 알차게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형태로,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다음 저서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k*****6 2006.04.18. 신고 공감 1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전자공학도가 읽은 "디지로그"
"전자공학도가 읽은 "디지로그"" 내용보기
10대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었다. 그때만 해도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자 기술은 우리를 앞서 있었다. 10년 20년을 앞선다고 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그러한 일본의 기술을 문화로 바라본 유일한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자세한 내용들은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어린 학생의 마음속에 큰 파장이었던 그 느낌은 여전히 마음속에 출렁인다. 나는 전자이론, 엔지니
"전자공학도가 읽은 "디지로그"" 내용보기
10대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었다. 그때만 해도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자 기술은 우리를 앞서 있었다. 10년 20년을 앞선다고 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그러한 일본의 기술을 문화로 바라본 유일한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자세한 내용들은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어린 학생의 마음속에 큰 파장이었던 그 느낌은 여전히 마음속에 출렁인다. 나는 전자이론, 엔지니어링수학, 신호-정보이론 등을 배운다. 얕은 전자지식으로 작은 로봇도 만들고 학비 마련 겸 작은 전자 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대학, 대학원에 와서는 전자공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클라우드 샤논의 정보이론을 깨우치고 있다. 유-무선전화, 인터넷 등을 위한 통신이론, 암호화, 데이터-영상압축, 결정(Decision) 이론 등 대부분의 전자공학에서 정보이론은 그 뿌리가 된다. (학문적 이론이 도구로서 만의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는 적어도 그런 목적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 수학이 우주와 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여겼던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는 이런 현실에 무척이나 화낼 것이다.) 이런 이론들은 일종의 훌륭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농부이시던 아버지가 삽과 쟁기를.. 어머니가 호미를 들고 논과 밭을 일구어 우리를 키우셨듯이 나는 H(x)=-sum( log(p(x)) )이라는 엔트로피로 대표되는 정보수학을 손에 들고 정보화 세상에서 쌀을 얻고 고구마를 캐고 있는 격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느낀 것은 나의 부모님께서는 농경사회를 살아오신 것이고 나는 디지털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손에 든 도구가 달라진 것 뿐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기술의 모습은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기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좁다. 또한 내가 익히는 도구들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하는지..", "어떤 기술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런 걸 만들면 쓸모가 있기나 한 것인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가야만 하는 것인지.." 나만 이런 기분이 아닐 것을 안다. 나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디지로그"의 가치가 있다. "디지로그"는 많은 경험을 하신 어른이 "역동적이지만 방향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가르침이었다. 책을 거의 읽고 난 후 2006년 4월14일에 "이어령 선생님 디지로그 강연회"에 갔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생소했지만 귀중한 시간이었다. 책에서의 오해했던 부분들, 내가 잡아내지 못했던 메시지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했던 부분들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책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한 가지 가졌던 느낌은 "디지로그"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이끌기 위한 작은 논거들에 비약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단순한 텍스트는 "정"이 없고 플래시("Flash")나 다른 미디어 다양한 글자체로 이뤄진 웹페이지는 "정"이 있다는 부분 등은 다른 생각도 가능했다. 단순함의 아름다움으로 치자면 "무정"한 것이 더욱 "정"이 있게도 느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과 0의 숫자로 만들어내는 비트의 세상은 무정한 세상이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는 원래 "수학"이란 학문이 껍질과 구체적인 것을 버리고 뼈대만을 남기는 추상화의 산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이 없는 곳에 "정"을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논거는 옳은 부분이지만, 혹시나 1과 0이 무정한 세상이라고 해서 이러한 체계가 미흡하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학" 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무정"함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읽으려고 했음에도 결국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은 "디지로그"에 일관되게 담겨진 메시지였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라", "우리는 디지로그 세상을 이끌 수 있는 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희망을 갖고 새로운 세상을 리드하라" 전자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장은 "킬러어플리케이션을 찾자" 이다. 굉장한 응용예가 있어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굉장한 응용예"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한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님의 "디지로그"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라"는 구체적인 길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킬러어플리케이션 찾자"보다 "디지로그를 찾자"라는 문장이 더욱 명확하다. "디지로그"가 내가 걷는 길에 이정표이자 등불이 되어준 것에 감사한다. 또 하나의 파동이 마음속에 생겼음을 느낀다.

[인상깊은구절]
정보기술은 생물이든 기계든 끝없이 변하는 대상과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말하자면 독백이 아니라 대화의 기술이며 제압이 아니라 소통이다.
f******c 2006.04.16.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구촌 시대의 문화강국!! 대한민국!!
"지구촌 시대의 문화강국!! 대한민국!!" 내용보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에 지구촌 속의 한국은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저자는 문화, 특히 언어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아니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현재 한국은 반만년 역사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다. 흔한 예로 IT산업과 월드컵 4강, WBC 4강이 보여주듯이 우리 민족의 저력에 세계가
"지구촌 시대의 문화강국!! 대한민국!!" 내용보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에 지구촌 속의 한국은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저자는 문화, 특히 언어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아니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현재 한국은 반만년 역사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다. 흔한 예로 IT산업과 월드컵 4강, WBC 4강이 보여주듯이 우리 민족의 저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힘은 먹는 것, 비빔밥의 문화에서 출발한다. 모든 아날로그적인 것이 빠르게 디지털로의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미각과 먹는 것에 담겨진 것의 의미는 대체할 수 없다. 디지털을 바라보는 저자의 참신한 시야로 함께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생각 기술 중심이 IT에서 RT(Relationship technology)로 바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기술뿐만 아니라 RT는 곧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보면 기존의 미국 산업의 대부분은 인도 같은 신흥 개발국으로 아웃소싱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다니엘 핑크 역시 기존 산업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일의 관계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 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유비쿼터스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2010년경에 이르면,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산업화된 공간, 사이버 공간이 아닌 새로운 제 3공간의 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직업이 생겨날 것으로 생각한다. 유일한 진리는 하나이듯이 이어령 씨와 다니엘 핑크의 미래를 보는 시각이 유사하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배고프다와 보고프다. 배고파서 죽겠다와 보고 싶어 죽겠다. 관계를 우리 민족처럼 절실하게 생각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가까운 예로 중국에는 이처럼 죽겠다는 예가 없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두 가지 언어를 알게 되면 두 개의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한다. 수많은 언어들 중 한글은 세계 10대 언어이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언어와 그에 따른 문화를 가진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지구촌시대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시간뿐만 아니다. 한국인은 마음도 먹는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무엇이든 먹을 수가 있다. 돈도 먹고 욕도 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 점 잃었다고 하는 축구 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을 먹었다고 한다.
y*******s 2006.05.13.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명불허전
"명불허전" 내용보기
어제 별 생각 없이 강남을 돌아다니다가 교보문고에서 강연회를 한다기에 갔다(사실 추첨 상품에 눈이 멀어서....). 고등학교 때 읽은 이 하도 아기자기 하고 재미나서 그런 글을 쓴 양반이 강연 때는 어떤 스탈일지가 궁금했던 것. 예순은 확실히 넘으셨을 테고 한 일흔 되었을랑가, 여튼 어찌나 재담을 늘어놓으시던지 별 기대없이 갔다가 웃느라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내 옆에
"명불허전" 내용보기
어제 별 생각 없이 강남을 돌아다니다가 교보문고에서 강연회를 한다기에 갔다(사실 추첨 상품에 눈이 멀어서....). 고등학교 때 읽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하도 아기자기 하고 재미나서 그런 글을 쓴 양반이 강연 때는 어떤 스탈일지가 궁금했던 것. 예순은 확실히 넘으셨을 테고 한 일흔 되었을랑가, 여튼 어찌나 재담을 늘어놓으시던지 별 기대없이 갔다가 웃느라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내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는 노트필기까지 해가는 틈틈히 넋을 잃고 듣는데, 거의 우리 어머니 교회부흥회 가셨을 때 수준. 나같은 30대 이상말고도 어린 대학생 층들이 꽤 많았는데, 이 아이들은 대체 언제 어디서 이어령 선생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지 잠시 궁금하기도 했다. 여튼 혼자놀이를 한 금요일 오후치곤 꽤 즐거웠다. 마이크 상태때문인지, 아니면 이어령 교수님 연세 탓인지 가끔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지만. 강연을 듣고 책을 사서 집에 와서 읽었다. 대체로 강연에 모두 나왔던 핵심 컨셉들이 좀더 자세히 죽 소개돼 있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 혹은 예로 든 정보량이 역시나 엄청나다. 도대체 이런 걸 언제 다 수집하고 공부했는지. 여튼 그 나이많은 양반이 강연회 때 리니지가 어떻고 ''사이''월드가 어떻고 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인과 디지로그의 관계에 관한 풍부한 정의와 소개는 넘쳐나지만 앞으로의 비전이 빠져 있다는 것. 뭐 2권이 나온다고 하니까 그런 거겠지만. 사족 하나. 여튼 강연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20대 대학생 아이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니들이 앞으로 겪을 10년이 참 파란만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화 시대를 앞서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그래, 너그들이 좀 잘해봐라 라는 생각과 함께.
m****a 2006.04.15.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의 식문화와 한국인이 지닌 특성은 디지로그 시대로 가는 필요충분한 조건이군요
"한국의 식문화와 한국인이 지닌 특성은 디지로그 시대로 가는 필요충분한 조건이군요" 내용보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이라는 말에 많은 기대를 하고 책을 선택했는데 시작하는 말을 읽어보고는 어느 신문에 실렸던 칼럼 모음이라는 것에서 이어령의 데뷔 50년 역작이라는 선전문구가 너무나 거창하게 느껴지는건 나뿐일까. 한편 예스24에서의 책 분류가 트렌드와 미래예측으로 되어 있어서 디지로그 선언이라는 키워드가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제레미 레프킨의
"한국의 식문화와 한국인이 지닌 특성은 디지로그 시대로 가는 필요충분한 조건이군요" 내용보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이라는 말에 많은 기대를 하고 책을 선택했는데 시작하는 말을 읽어보고는 어느 신문에 실렸던 칼럼 모음이라는 것에서 이어령의 데뷔 50년 역작이라는 선전문구가 너무나 거창하게 느껴지는건 나뿐일까. 한편 예스24에서의 책 분류가 트렌드와 미래예측으로 되어 있어서 디지로그 선언이라는 키워드가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제레미 레프킨의 소유의 종말과 비슷한 무게를 갖고 그런 구성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다르게 책은 예쁘고 글씨도 읽기 불편하지 않을 만큼 큼직해서 금방 읽어진다. 책의 앞부분은 줄곧 한국인의 식문화가 등장하고 이것을 아날로그에 빗대어 설명하고 이 아날로그 방식은 현재의 디지털 기술이 갖고 있지 못한 우수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모든 문화적인 현상을 디지털과 비디지털로 양분하여 설명을 하는데 디지로그라는 용어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디지털의 대칭점에 있는 아날로그를 너무 넓게 포괄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첫째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시대, 둘째 디지털화 되기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 그리고 셋째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 그리고 저자가 주장한 디지로그 시대 이렇게 4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첫째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시대와 둘째 아날로그였던 시대가 하나로 묶여있다. 즉 디지털이 아닌 것은 모두 아날로그라는 전제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과 미덕과 옛 부터 내려오는 좋은 풍습은 전부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것이 성립되고 이것들은 현재의 디지털 기술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디지털에 버금가는 훌륭한 것이므로 우수한 전통문화와 기질을 가진 우리 민족이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책은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되어있는데 앞마당에서 먹는 것으로 우리민족의 정보 송수신 체계를 설명해 낸 저자의 생각은 재밌고 참신했다. 설명방식은 단어나 용어의 기원을 분석으로 이뤄진 것이 상당 부분이고 여기에 정치 문화 사회적인 현상과 한국인의 기질적인 특성까지 곁들여져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한 듯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의 풍부한 식견이 놀라울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뒷마당은 앞마당의 보충 설명을 하기 위하여 링크를 걸어둔 것을 모아서 글이 정리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뒷마당의 글들이 더 유익했던 것 같다. 이미 디지로그라는 용어이전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은 시작되었다. 인맥을 중시하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온라인으로 확장시킨 싸이월드가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디지털의 정확성과 차가운 이미지에 대안으로 감성기술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기술이 여기저기서 실현되고 있다. 다만 이 책은 그것과는 초점이 다르다.현 기술 수준이나 디지로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기보다 우리 문화를 되짚어보며 한국인이 가진 아날로그적인 기질이 너무나 우수하기에 디지로그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은 민족이 우리민족이다라는 것으로 디지로그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먹고 살기에 바빴던 지난날이 가져다 준 문화에서 비롯된 열등감은 이 책을 읽은 후 부터 자긍심이 되고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벅찬 감동으로 이어져 디지로그 시대로 나아가는 희망을 찾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선언만으로는 아직 그게 뭔지 모르겠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으며 속 시원할 만큼의 대답도 얻지 못한 것 같다. 책은 재미있다. 미래 예측은 없어도 문명과 문화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예시와 어르신의 입담은 강연으로 들었더라면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기대한 것과 내용상의 차이가 아쉬웠을 뿐이다. 전략편도 곧 나온다고 한다. 그 책을 기대해야 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식문화가 디지털이 갖추고 있지 못한 아날로그 방식의 장점을 모두 갖추었고 그것을 절대 디지털 기술은 구현해 낼 수 없기에 공존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철저하게 수와 문자로 프로그램된 매트릭스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네오와 오라클이 사탕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행위와 프로그램된 인물이 쿠키는 사랑으로 굽는 것이라는 대사와 사티가 갖는 가족간의 사랑을 이어령 선생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시루떡에 비유한 아날로그 정보의 자기조직화를 디지털 정보와의 차이로서 구별했는데 디지털 정보도 댓글로 인해 자기 스스로 확대 재생산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y*******i 2006.05.06. 신고 공감 1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