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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리의 비밀을 탐사하는 뇌과학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직접 뇌과학에 관한 다양한 실험에 참여하여 그 효과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온라인 잡지의 창간인이면서 또한 복잡계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저술가로 활동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뇌과학의 사례들을 통해 최신 성과들에 관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시도한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주지하듯이 뇌과학은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상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해법을 모색했던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겠다. 인간의 뇌를 직접 촬영하여 이를 입체적으로 화면에 보여줌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뇌과학은 이제 ‘정신분석’의 새로운 차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뇌과학은 단순히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만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가치 있는 도구’로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담자와의 대화를 통해 상대의 ‘정신’을 분석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의 방식을 대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원저(Mind Wide Open)과는 달리 번역본의 제목을 <굿바이 프로이트>라고 했다고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뇌과학은 인간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을 띠고, 어떤 약물이 뇌에서 분비되며,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런 약물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촬영된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이 동반되어야만 체험자가 이해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목차에서부터 뇌과학의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뇌과학으로 마음 읽기’와 ‘심리 장애의 비밀’ 그리고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 등에 대한 항목의 제목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일상생활 속 신경과학’이라는 항목에서는,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아드레날린’이나 ‘세라토신’ 등 신경화학물질들이 우리의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잇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는 이어지는 ‘감정은 호르몬을 타고 흐른다’라는 항목에서 더욱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서 조절될 수 있음은 이제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뇌과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다양한 임상 사례를 경험했음을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막대한 비용이 투자된 신형의 장치(fMRI)를 통해 저자의 뇌가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뇌’라는 말을 듣기도 했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마지막 장의 제목인 ‘마이 브레인 스토리’는 저자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는 내용이지만, 또한 독자들을 뇌과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정신분석학을 정립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뇌과학의 이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개척한 이론들에 뇌과학의 방법론이 더해진다면, 여전히 많은 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인간의 ‘정신’에 관여하는 ‘뇌’의 역할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우리와 프로이트의 관계는 프로이트 자신이 만드는데 기여한 양극성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양극화되어 있었다. ...... 그리고 곧 이어 프로이트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격을 받았다. 조울증 치료는 어떠한 대화 치료법보다 리튬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약학자들로부터, 심리학을 정신생활에서 떼어내 외면 행동을 다루는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던 행동주의자들로부터, 프로이트가 연구한 아동 학대 사례들이 희생자를 비난하는 행위라고 보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선량한 의사가 불편할 정도로 성에 집착한다고 보며 분열된 자아와 무의식적 충동 같은 개념들 자체도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신보수주의자들로부터, 뇌영상 장치들을 이용하여 뇌의 내면 지리를 들여다보았지만 이드 자아 초자아의 왕국들을 찾아내지 못한 뇌과학자들로부터 말이다.”
저자가 결론 부분에서 제시한 위의 구절이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저자의 이러한 진단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더 이상 매력적인 분야로 여겨지지 않는 현실을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아직까지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나에게도 뇌과학이라는 분야는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굳이 밝혀둔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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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 탐구를 위해 첫 발을 딛는 로드무비와 같은 책이다. 원제는 'Mind Wide Open!'. 주목받고 있는 과학 저술 작가인 스티븐 존슨이 발로 뛰어 직접 취재한 신경과학 분야의 최전선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설명한다. 작가 자신이 피실험자가 되기도 하고 관련 분야의 아마추어가 실질적 지식을 얻어 내는 과정을 통하여 신경과학 분야의 발전이 일으키고 있는 혁명을 친절히 서술한다. 대부분의 과학 분야의 혁명은 발생 초기에는 소수의 주도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은 그 혁명의 여파를 느끼지 못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 임계점이 지나면 모두들 그 혁명에 놀라기 시작하고 그 혁명의 영향하에 놓인다. 제품수명주기 같이 S 커브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경과학 분야의 빠른 발전도 이와 같은 듯 하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순간을 영상화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미스테리의 대상이었던 많은 부분이 어렴풋이 밝혀지고 있다. 십수년전부터 시작된 이러한 발견을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는 과장일 수 있지만, 신경과학 분야의 발견이 앞으로는 우리 실생활에 혁명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은 섣부른 예측은 아닌 듯 하다. 저자는 신경과학 분야의 발견들과 그 것들이 내포하는 의미를 초보자의 시각에서 추적한다. 그리고 신경과학, 아니 심리학 분야에서 100년이 넘게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프로이트의 여러 견해에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동안 행동주의자들을 필두로 한 여러 학자들이 프로이트를 맹공격 한 접근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신경과학의 발견을 통한 프로이트의 재평가라고나 할까? 고등학교 시절,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신도 아니기에 철학을 한다고 배웠다. 철학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단순화 할 수 있고, 일부 신경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우리는 우리의 뇌다."라는 명제를 대입할 수 있다면 우리 뇌의 작용기제를 알아가는 과정인 신경과학이 철학에 많은 통찰을 제공 가능하다 할 수 있다. 발간된 지 시간은 지났지만, 신경과학 분야의 발전상과 이를 통한 프로이트에 대한 재조망, 그리고 신경과학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양 과목 같은 책이다.
목차
들어가며 마음을 이해하는 새로운 문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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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프로이트』. 이 우리말 제목만 보면, 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한
고별
선언
같아
보인다. ‘뇌과학 이야기’라
했으니, 현대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학’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아니다. 스티븐
존슨은
현대
뇌과학의
성과를
뇌과학의
용어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쓰고
있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지만, 결코
프로이트를
내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프로이트가 잘못 본 것, 오해한
것, 너무 단순화시킨 것들을 지적하긴 하지만, 결국엔
오히려
프로이트를
어떻게든
현대
뇌과학과
화해시키려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제목은 ‘굿바이
프로이트’가 아니라 ‘굿모닝
프로이트’가 되어야 더 어울릴 듯도 하다.
프로이트와의 관계는 아무튼 그렇지만(그게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저자가 현대 뇌과학에 접근하는 태도는 다른 책들과 좀 다르다. 뇌과학이라는
분야가
하도
빨리
발전하는
분야니
이미 10년이 된 책이니 ‘현대’라는 접두사가 과연 어울리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따라가고
있는
뇌과학은
상당히
현대적이다(『이머전스』에서 SNS를
다루고
있지
못한
걸
생각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뇌과학은
정말
현대적이다. 그 이야기는 네트워크 쪽이 훨씬 발전이 빠르다는 얘기도 될 듯 싶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뇌과학을, 저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뇌과학자가 아니므로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쪽
분야의
어느
하위
분야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
저자가
그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바로
‘자기화’이다. 즉, 거의
모든
얘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나간다.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나아가거나, 이론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을
반드시
거친다. 그리고 현대 뇌과학의 성과, 혹은
방법들을
시험해보기도
한다. 자신을 통해 이해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보다 덜 현학적인 용어로 뇌과학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질문이 있다. 이런
걸
아는
게
도대체
왜
중요한가? 그저 교양과 상식을 늘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아는
것, 특히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아드레날린, 옥시토신, 도파민
같은
것들을
용어로
아는
게
아니라
실제
언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아는가가
왜
중요한가? 스티븐 존슨은 그건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쓰고 있다. 내 몸의 약물과 신경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미묘한
특성들을
파악하고, 부작용을 깨닫는 것은, 그것들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것들로 인해 우리의 판단이,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미리
예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결국은 일반인의 뇌과학 공부는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를 위한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원제(Mind Wide
Open)가 이해가 된다.
마음을 열자! (실수로 올렸던 리뷰를 다 날리고, 이전에 썼던 리뷰를 다시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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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4월의 햇살아래 바람 한 줌 담아 보려하니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먼저 달려 온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3.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4. 인간이란 무엇인가? 첫째 물음은 형이상학적인 물음이다. 둘째 물음은 도적적이고 윤리학적인 물음이다. 세째 물음은 종교적인 물음이다. 네째 물음은 철학적인 물음인데 인간학이 해답을 준다. 따라서 최초의 세 가지 물음은 마지막 물음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 모두를 인간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칸트는 부언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3가지 질문이 있다.
1.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2.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3.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나오는 답이 바로'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이다. 위의 세 가지 질문은 우리 존재(생명)의 근원과 삶의 목적 그리고 우리의 결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 하고, 신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곰이나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일정기간 마늘이나 쑥을 먹으며 인내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우리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나 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세상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로 만들어 졌다고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장1절)"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사람의 결국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 역시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다. 즉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로마서 11:36)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삶에 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12:13) 구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던지는 3가지 질문이 있다. 1. 아담(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이 질문은 공간이나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대한 물음이다. 2. 네 아우 아벨(이웃)이 어디 있느냐(창 4:9) 가인의 죄를 묻는 물음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인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뜻이다. 이 질문은 가인의 양심을 깨우는 창조자의 소리이기도 하다.
3.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창 16:8) 이 질문 속에는 인간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존재를 다시 회복시키시려는 사랑의 음성이다. 탈무드는"인간은 세 가지 벗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했다. 아이, 부(富), 선행이다." 아이는 인간에게 웃음과 순수함을 주고, 부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통로가 되고, 선행은 이웃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한다. 질문은 관심이다. 인생의 세 가지 질문은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필연이다.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손님이 들어 닥치기 전에 우리는"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
| 내용을 떠나서 이 번역체의 문장들을 제대로 읽어나갈 수가 없다. 말은 꼬이고 늘어지고 ... 도대체 문장 하나 읽는대도 몇번을 봐야 겨우 그 뜻을 알 정도로 문장들이 턱턱 막힌다. 옮긴이의 약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난 30년 동안 과학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거나,사야 될 채소 목록을 작성하거나, 단어들을 이어서 문장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뇌의 각기 다른 영역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밝혀냄으로써, 뇌의 내부 지리를 자세히 훑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물이 흐르듯이 깔금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뜻은 한눈에 들어오게 써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내가 무심결에 읽은 다른 번역서들이 얼마나 훌륭했었는지 깨닫게 되곤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