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거리에 나가면 깨닫는다 함께 세상에 나가면 이제까지 하나인 나 여럿인 나를 깨닫는다 -「이의남」 『萬人譜』! 1986년 11월에 첫 권이 발행된 이래 거의 이십 년이 된 지금 23권까지 발행되었고 이제 이 민족 서사시도 마칠 때가 되어간답니다. 앞으로 나올 몇 권의 초고마저 끝냈다고 하니 우리는 장강의 하구에 다가온 셈입니다. 첫 권부터 깊은 감동을 받으며 읽어온 열혈 독자로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원식 교수에 의하면,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고은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고난으로 축복 받은 이 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萬人譜』는 진실로 민족 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발행된 세 권의 작품은 1960년대 초 혁명 전후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이 주로 그려졌습니다. 긴박한 데모와 최루탄, 총성이 울려 퍼지는 현장입니다. 하나의 죽음이 혁명의 꼭지에 솟아올랐다 뜨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목이 탔다 이제 마산은 전국 방방곡곡이었다 -「김주열」 전국이 혁명의 열기로 뒤덮인 때이다 보니 평균적 인물들의 어느 누구도 그 들뜬 열기를 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 세상밖에 아무것도 없었’(「구두닦이」)던 구두닦이 오성원은 죽음으로 그 열기를 받았고, 왕대폿집 마누라는 유일한 희망이 죽은 줄도 모르고 ‘하루 내내 아들이 궁금했’(「꿈」)습니다. 신문팔이 김두철은 ‘15사단 무장병사들 모두 다 총구멍을 내’(「김두철」)리게 설득했는가 하면, 마산 제일여고 2학년 노원자는 마산의 유관순이자 잔 다르크(「노원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혁명의 열기를 읽어 나가며 문득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숱한 목숨이 혁명을 완성하려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어갔다면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미쳐버리거나 먼저 간 죽음의 길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시대는 진정과 순수가 지배했기 때문일까요. 자식의 목숨과 아내의 정신을 잃은 사내의 애달픈 시 한 편과 서시 격인 다른 차원의 시 한 편 옮깁니다. 김위술 나는 하루 150환을 버는 막일꾼이올시다 구공탄 배달하는 막일꾼이올시다 허위허위 비탈길 오르면 한겨울에도 내 몸에서 하얀 김이 한 소쿠리씩 피어납니다 나는 구공탄 친구올시다 나는 구공탄 쓰는 언덕배기 가난한 집들 친구올시다 내 자식놈은 야간학교 고학생이올시다 김영호올시다 구공탄 배달 김위술의 아들 김영호올시다 마산 남성동 파출소 찾아가 어는 놈이 내 자식 때려죽였느냐 어느 놈이 내 자식 죽였느냐고 부르짖는 내 마누라마저 수갑 채워 형무소 보낸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이올시다 내 자식 총 맞은 뼈 그대로 땅에 묻었습니다 마누라는 콩밥 먹고 나왔습니다 정신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구공탄 리어카 끌고 오르막길 오르고 내리막길 내려갑니다 영호야 영호야 영호야 속으로 불러봅니다 소리내어 불러봅니다 오늘 빈 리어카하고 나하고 비탈길 굴러버렸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자식 잃은 막일꾼이올시다 어떤 임종 바람이 온다 나는 간다 몽골독수리 둘이 나를 본다 이내 내려앉으리라 내생 필요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