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향살이 이 강산 낙화유수 단장의 미아리고개 이별의 부산정거장 지나 노란 샤쓰 입은 느릿느릿 걸어나오는 리승만 각하 대신 뚜벅뚜벅 걸어가는 박정희 장군 그 씩씩하고 무뚝뚝한 걸음걸이 그 꼿꼿한 스타카토 걸음걸이 바로 그 5․16 군사쿠테타의 군인시대의 노래 -「가수 한명숙」의 일부 4․19를 ‘대구 2․28 학생 의거 → 3․15 부정선거와 마산 의거 → 4․18 고대생 피습 사건 → 4․19혁명 → 4․25 대학 교수단의 시국선언과 전국민의 호응 → 이승만 독재정권의 붕괴, 자유당 정권 종말’으로 요약하듯이, 4․19혁명에 불을 붙인 주인공들은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일인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는데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 학생은 등교를 강요당했습니다. 그것은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학생들이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대구고교와 경북고교 학생들은 마침내 거리로 나섰습니다. 마산에서의 의거도 고등학생 김주열의 주검이 떠올라 불이 붙었으므로 어느 모로 보더라도 4․19혁명은 단연 고등학생의 혁명이었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미숙한 정의로움이 어울렸던 혁명, 그러나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4․19혁명에 바쳐진 마지막 권인 23권에는 혁명을 낚아챈 박정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시집에는 박정희가 태어난 과정(「백남의」)과 이화여대생과 살림을 차린 일(「이현란」) 등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일도 밝혔는데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야비함입니다. 이를테면 육군 남로당 당책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을 때 ‘그는 육군 속 남로당원 3천여명 명단을 / 방첩대장 김창룡에게 불었다 / 군내 남로당 조직망도 다 불었다 / 자신의 죽음 하나와 / 통째로 3천명의 죽음을 바’(「그 3천여명」)꾸거나 ‘박정희 형 박상희의 친구인 황태성 / 박정희가 장래를 의논하던 황태성 / 해방 후 박정희 남로당 입당에 / 신원보증인 황태성’(「황태성」)을 ‘간첩누명으로 구속 / 전격 처형’합니다. 동지 3천명의 죽음이나 가까운 사람의 처형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4․19혁명이 이런 자에 의해 낚아 채였으니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땅 ‘어디에나 평범하게 아니 평범하지 않게 생과 사’(「이흥수」)는 이어지고, 목숨의 대열은 장관을 이루며 도도히 흐릅니다. 길자 눈 초롱초롱하다 여덟살 길자 정길자 사흘 만에 한번씩 학교에 갔다 결코 슬프지 않다 바람 부는 날 콧노래도 바람에 날려보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날려보냈다 이틀 동안 깡통 들고 거리를 돌며 밥을 얻었다 결코 거지 노릇 슬프지 않다 밥 얻어 늙은 아빠 병든 엄마 밥 먹였다 어디 길자만인가 산동네 50여 집 아이들 너도나도 시내로 밥 얻으러 나가야 했다 아 아침과 저녁 깡통대열 장관 그 길자가 별 보며 돌아왔다 「동백아가씨」 노래하며 언덕길 올라왔다 오늘 밤은 제법 깡통이 묵직했다 밥과 반찬쓰레기 꿀꿀이 많이 얻었다 아빠 여기 고기도 있어 아빠 여기 돼지비계도 한 조각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