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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숲 속으로의 여행
"언어의 숲 속으로의 여행" 내용보기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온다 리쿠. 이 작가에게 붙인 언론의 별명이다. 노스탤지어는 향수란 뜻인데 그렇다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우리의 무의식, 아니면 어릴 때의 꿈, 혹자에겐 고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샤갈의 그림에 나온 꿈같은 동화의 세계,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독서의 시작은 대개 동화책이다. 선과 악이 있는, 공포와 희망이 살아 숨쉬는, 영웅과 비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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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온다 리쿠. 이 작가에게 붙인 언론의 별명이다. 노스탤지어는 향수란 뜻인데 그렇다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우리의 무의식, 아니면 어릴 때의 꿈, 혹자에겐 고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샤갈의 그림에 나온 꿈같은 동화의 세계,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독서의 시작은 대개 동화책이다. 선과 악이 있는, 공포와 희망이 살아 숨쉬는, 영웅과 비겁자,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공존하는 그 세계에서 우리는 집단 무의식을 습득한다. 온다 리쿠는 그러한 인간 본래의 무의식을 부드럽게 끌어낸다. 현실보다 더 감미롭고 더 사실 같은 이야기의 세계, 그 입구부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기지에 찬 모습이 요정처럼 나타난다. 동화의 세계를 잊지 않는 한, 삶은 단조롭지 않으며 우울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다. 매일 마다, 대하는 사람들 마다 각자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이 세상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단지 우리는 스스로의 관념의 감옥에 갇혀 있을 뿐이다. 그러한 해석이 ''우리의 단조롭기 쉬운 의식이 모든 것''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명징한 리얼리티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옴니버스식의 소설 중에 삼인칭 여주인공을 통해 고백한 내용도 그러하다. “그녀에게 중요한, 지극히 개인적인 테마는 바로 ‘노스탤지어’다. 온갖 의미에서의 그리움, 그것도 기분 좋게 애달픈 감정이면서, 또한 그만큼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라는 것에 막연한 향수를 품고 있었다. 향수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세계라는 것이 빙글빙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순환한다는 감촉이라고 해도 좋다. 기시감과는 또 조금 다른데, 그런 감각이 유년기의 그녀를 많은 부분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그런 감각이 작아지기는 했어도, 가끔 그런 감각이 왈칵 밀려들면 갈팡질팡한다. 그 감각을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그녀는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 악전고투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나만은 아니다. 나의 의식은 타인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어 그러한 의식의 교류에 향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의식의 교류는 소설을 통하여 간접 체험의 기회를 얻는다. 작가는 자기의 의식을 독자에게 빌려준다. 그러한 의식의 미묘한 맛을 느낌으로 우린 타인의 세계에 침투한다. 그 타인의 세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결핍되어 있는, 점점 잊혀져 가는 감성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온다 리쿠는 ‘스스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고 밝혔다. 엄청난 다독가로 밝혀진 그녀는 소설 중에서도 자기 소설을 음미하는 기색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어떠한 틀에 얽매여 정형화된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이며 전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므로 그녀의 소설쓰기는 창조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수정 없는 탈고’ 그녀는 자기에게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인간은 편한 것을 좋아하므로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패턴을 밟는 것을 발견할 테니, 진정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꿈꾸는 작가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된 책도 바로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자 미상의 미완성이나 무척 흡입력 강한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소설의 삽화이다. 누군가 쓴 다음 모두 회수한 책, 그러한 책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사람들,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로 갈수록 그 책이 단순한 미스테리의 소재가 아니라 인류의 이야기라는 것에 대한 메타포임을 눈치 채게 된다. 어떤 한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나무에서 열리는 인류 본래의 이야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녀의 지구력, 책에 대한 그지없는 사랑, 언뜻 비추는 그녀의 낙관적이며 소녀 같은 감수성, 읽는 동안 다른 소설들에 비하여 더 깊이 빠졌다. 동화를 읽을 때 느꼈던,(지금 말고 어릴 때 정신없이 몰두하면서) 그러한 행복한 몰입을 느끼게 하여준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환경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산다.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세계를 가정할 때 그 세계는 픽션임이 분명하다. 그 픽션은 우리의 의식이 설정하며 그 대 측에 거울 상인 바로 ‘나’, 또 하나의 픽션에 위치하게 된다. 그녀는 그 세계라는 픽션을 즐겁게 제시하여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랜만에 참다운 이야기꾼을 만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직도 글 쓰는 사람임을 숨기려 사진을 한번도 제시하지 않았고(술 잘 마시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을 지인들에게 작가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왠지 쑥스럽단다.) 무단으로 사진을 게시한 잡지에 몰래 항의전화 걸러 나기기가 귀찮아 그만 뒀다는 수줍은 아줌마, 그러나 나중에 그 잡지가 폐간되자 고소해했다는 솔직하고 귀여운 그녀, 그 책을 보면서 왠지 마음 맞는 동년배 이성 친구하고 연애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아마 그럴지도, 좌우지간에 그녀, 또는 그녀의 책과 나는 시쳇말로 코드가 맞는 모양이다. 다음 책을 몹시 기다리며 아래에 발췌한 그녀의 작가론으로 졸필로 쓴 독후감을 마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잘된 이야기에 끌린다. 영화를 볼 때도 배우나 감독의 이름에 별 흥미가 없었다. 깔끔하게 복선이 깔려 있고 최후에 확실하게 대단원을 맞이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그런 것이 좋았다. <엘마의 모험="">에 끌렸던 이유도, 엘마가 오렌지 섬에 갖고 가는 물건들이 언뜻 보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가는 곳마다 사자와 악어를 물리치는 데 공헌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복선이다. 어째서 인간은 ‘잘 된 이야기’에 감명을 받을까? 이야기의 내용에 감동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 삶과 죽음의 갈등, 아낌없이 주는 사랑, 주인공이 되어 감정이입을 한다. 그것은 알겠다. 하지만 ‘잘 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은 이것과는 다른 것 같다. 그 감동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맞았다는 쾌감이다. 어째서 쾌감일까? 그리고 ‘잘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야기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인간에게는 몇 종류의 이야기가 입력되어 있는 것이리라. 입력된 이야기와 일치하면 빙고(!) 상태가 된다. 어째서? 픽션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제4 욕망인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아마도 상상력이라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 때문이리라. 픽션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마지막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없지만, 그날부터 우리는 고독하고 복잡하며 불안정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는 중층적이다.
u****s 2006.04.07.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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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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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본 여류 작가들의 소위 ''추리물''로 소개되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어색한 번역과 공감이 안 되는 문화적 소재들로 구성된 서양 작가들의 추리소설에 비해 비교적 중성적인 분위기와 남자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감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렇게 선택한 소설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서양 소설들에 익숙해서일지 나름대로 정립된 추리소설의 잣대를 들이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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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본 여류 작가들의 소위 ''추리물''로 소개되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어색한 번역과 공감이 안 되는 문화적 소재들로 구성된 서양 작가들의 추리소설에 비해 비교적 중성적인 분위기와 남자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감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렇게 선택한 소설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서양 소설들에 익숙해서일지 나름대로 정립된 추리소설의 잣대를 들이대면 뭔가 조금씩 비껴나가곤 한다. 이 책도 그렇다. 4개의 단편이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라면에 수프를 넣지 않고 끓인 것처럼 밍밍하다. 분위기는 ''노스탤지어적''인 것 같은데, 완성된 유화가 아니라 스케치북에 4B연필로 슥슥 그려놓은 스케치 같다. 서양 추리 소설이 사건 중심이자 이성적이라 딱딱한 번역도 부담없는 반면 이 소설에는 환끈하고 계산된 추리보다는 감성적인 스케치들이 들어차 있어 매끄러운 번역이라도 신이 안 난다.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전기톱을 들고 설칠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 좋다는 서평들 더미 속에서 약간은 딴지거는 요런것도 발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지.
YES마니아 : 로얄 s******t 2006.12.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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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여사의 환타지 삼부작 1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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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온다 리쿠 여사의 작품은 뭐랄까 일본 특유의 '기(奇)'가 서린 것 같아 읽고나서도 참 서늘한 느낌을 주었는데 ([여섯번째 사요코], [유지니아], [굽이치는 강가에서], [불안한 동화]), 지난번 읽은 [코끼리와 귀울음]으로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삼부작임을 알고도 잡은 이 책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긴 흐름 속에 잠깐 집어들었는데, 그 뭐랄까 어느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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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온다 리쿠 여사의 작품은 뭐랄까 일본 특유의 '기(奇)'가 서린 것 같아 읽고나서도 참 서늘한 느낌을 주었는데 ([여섯번째 사요코], [유지니아], [굽이치는 강가에서], [불안한 동화]), 지난번 읽은 [코끼리와 귀울음]으로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삼부작임을 알고도 잡은 이 책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긴 흐름 속에 잠깐 집어들었는데, 그 뭐랄까 어느쪽으로 가닥을 잡아도 참 이야기가 되는 그 신비로움에 또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카네가 회근 가장 혐오하는 것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소설을 씁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였다....'이야기를 고작 한 개인의 표현수단으로 사용될 정도로 하잖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 자기한테 예속되어 있는 물건처럼 다룬다는 건 이야기를 얕보고 있다는 증거다.'

 

먼저 이야기가 있었다...우선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존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픽션.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작가를 위해 존재한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p.120

 

 

과연 작가가 작품중 두번째 이야기에 나온 출판사 편집자인 아카네와 어떤 부분을 공유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사라진 작품의 저자를 찾는 과정에서 아카네의 역할을 생각해 볼 때 온다여사의 일부가 겹치다고 보면, 여기서 온다 여사 작품 속을 흐르는, 소름끼치는 정체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독자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라... 게다가 그녀의 작품과 긴밀히 연결된 것은, 로알드 달 (난 그의 작품이 아동용이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심지어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마녀의 이야기에서도, 쥐로 변한 아이는 마녀의 협박에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다)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난 이야기도 정말 소름이 끼쳤다. 나무위에서 웃고있는 고양이와 '죽여라'를 외치는 여왕 까지 정말..)라는 것을 생각하면..

 

 

수년전 익명의 작가가 쓰고 인쇄한 책 200부를 받은 이들과, 이들이'단 한번만 하루 동안만' 빌려주었기에 읽어보았던 이들은 회수된 그 책의 존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4부작으로 된 그 작품을 기억하여 갖은 방법의 탐색과 추적이 이뤄진다.

 

미지의 그 책처럼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액자적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첫번째는 거부이자 책에 있어 경지에 이른 사장 (그에게는 온세상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그럼 난?) 에게 초대된 말단직원 고이치는 그외 3명의 멤버 (긴자거리의 유명한 요리사 가모시다, 대학교수인 잇시키, 노부인인 미즈코시)와 함께, 활자중독인 야쿠모 히로오가 지은 집에 감춰진 책의 행방을 추리한다.

 

4계절의 이름이 붙여진 4개의 집 중 비록 하나의 집에서만 이뤄지지만, 뭔가 연상되지않은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진, 방위만 다른 집. 바로 엘러리 퀸의 작품에 있었다.

 

덤벼드는 개, 밖에서 바라본 저택과 안에서의 구조 등 기가막힌 추리를 해내지만 실패라는 말을 듣고, 고이치는 2박 3일의 흥미로운 여행 (비록 집안에만 있었지만)을 끝낸다.

 

이건 4편의 이야기 중 가장 본격추리물에 가까웠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서 본격추리물이 아닌 심령물에서 저자의 감당못할 히스테리가 느껴지듯, 나머지 3편의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맨 위에 인용된 문장과 달리, 이야기 자체로서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보단 작가의 입김에 어지럽다.

 

 

...회식을 거절하면서 오늘밤 책을 읽으려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으로, 오늘밤 새로운 게임을 해보려는 데요보다 위협적이라는 부분..

 

(글쎄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모르는 근사하고 멋진 것을 먼저 점찍는가 하는 데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지, 절대로 대상에 몰입하는게 아닙니다....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그부분만 파먹습니다.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잖아?

 

.어머, 현대에는 오히려 선택의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정보지가 나올 무렵부터 순식간에 문화의 획일화가 진전되었어요. 온갖 정보가 제공되지 시작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하지만요. 예전엔 자기가 정마로 좋아하는 것을 애써 찾아다녀서 정보를 얻었죠. 하지만 지금은 언더그라운드 문화라는 게 없어졌어요. 다들 호기심만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뭐든지 대중소비의 수준으로 끌여좋고...금세 등을 돌려버리죠. 일본인의 민주줒의 중에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예요..우리는 평등해. 그렇게 좋은게 있으면 나도 보겠어. 나도 먹겠어. 나도 사겠어. 이런식이잖아요. 이해할 수 이는 눈도, 혀도, 배경도 없는 주제에 말이예요...p.33

 

(후와, 독하다 독해)

 

..훌륭한 작품이라는 건 여기있는 우리들과 몇몇사람들에게 국한된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독서란 본래 개인적인 행위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책을 좀 읽는다고 자만하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터무니없는 환상이예요. 인간이 한평생 읽을 수 잆는 책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거든요..서점에 갈때마다...천문학적인 수효의 책들 중에 내가 모르는 재미가 넘치는 책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심란할 수 없어요...p.58

 

(절망하고 심난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어차피 과거에 만들어진 얘기를 또 새롭게 만들 뿐이니까)

 

..한번쯤 다잉메세지를 남기고 싶었어...라니 다잉메세지라면 한번 뿐인게 당연하잖아..p.69

 

(나도 한번쯤 남겨보고 싶었는데..)

 

 

 

두번째 이야기는, 저자로 짐작되는 인물을 찾아 두명의 여성 편집자가 기차를 타고 찾아가는 부분이다.

 

...폐쇄적이고 몹시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 시니컬하고 냉철한 겉모습 속에 불안정한 낭만을 걸쭉하게 안고있는 사람, 자기 안에 존재하는 커다란 모습을 꺠닫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p.63

 

 

아카네의 분노(?)와 달리, 작품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이 작품은 이야기로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 부분을 발췌하여 전달된 개인적 메세지로서 존재므로 사라지게된 필연적 의미를 담고있다는 것..

 

 

..아가사 크리스티가...다카코는 그녀가 고딕 호러소설을 썼다면 대단했으이라....지금까지 진짜로 공포를 느꼈던 소설은...[끝없는 밤]과 [잠자는 살인]..남성작가라면 갖은 기교를 구사하고 치밀히 계산해서...크리스티의 공포는 그런 것이 아니다....p.162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바로 [끝없는 밤(Endless Nights)]이고, 온다 여사의 말처럼 누구나 죽기전엔 책 하나는 쓴다는 말처럼 써보고 싶은 것도 그런류의 추리물이다)

 

 

...워드 프로세서가 편리한 기계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으로 쓰면 글씨가 지저분해지고 한자를 못쓰게 되었다. 워드 프로세서의 키보드를 두들기는 속도로 글자가 나오는데에 익숙해지면, 손으로 써도 기계와 같은 속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노라면 한글자를 쓰는데 드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안달이 난다.

 

워드 프로세서는 이상한 기계다. 워드 프로세서를 앞에 두고 앉아있으면 생각지도 않던 것을 쓰게 된다. ...p.308

 

 

컴퓨터로 쓰다가 갑자기 손으로 글을 쓰게되면 그만큼의 조급함 (지난주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난 다음날, 손목이 아팠다. 그만큼 일상에서 손으로 쓰는 게 적다는 의미여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등은 편집자로서의 섬세한 꺠달음에서 나오고, 이런 작은 부분에서의 공감이 작품에 몰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언제나 등장하는 '해'와 '달'처럼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미소녀 두명, 미사오와 쇼코의 괴이한 운명과 가족사. 그리고 네번째, 일본에서나 가능한 학교, 사립학교의 학원제국. 그리고 비밀모임과 여왕 등, 폐쇄적인 학교에서의 괴담으로서 존재하는 한국문화와 달리 조직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일본 문화 부분에선, 역시나 온다 여사의 기괴한 환타지가 더욱 크다.

 

 

지하방에 책을 모아서 그 무게로 인해 저택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일본 공포문학에서 가끔 보이는 도서관기담처럼 탐닉, 중독 (네번째 이야기에선 비밀화원 등에서 길러지는 마약류의 식물들), 실종을 다루는 이야기는 본격추리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나 오히려 순수한 공포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중간에 걸쳐진 (크로스오버가 아닌), 손대기 어중간한 것일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k 2008.12.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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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없는 책에 대한 환상과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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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지만(쇄를 거듭할수록 내용의 오류가 조금이라도 더 바로잡히지 않겠는가) 절판본에 대한 집착에는 헤어나지 못하겠다. 더 이상 서점에서 새 책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책방이 있다지만 책값을 온전히 지불할 의사가 있어도 그 책이 없기 쉽다. 이젠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절로 나서 더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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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지만(쇄를 거듭할수록 내용의 오류가 조금이라도 더 바로잡히지 않겠는가) 절판본에 대한 집착에는 헤어나지 못하겠다. 더 이상 서점에서 새 책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책방이 있다지만 책값을 온전히 지불할 의사가 있어도 그 책이 없기 쉽다. 이젠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절로 나서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마치 그 책을 읽기 위해 지금껏 살아왔는데 눈앞에서 부주의하게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 분하다. 그 책은 아마도 당장 읽을 수 없는 책에 대한 탐욕스러운 환상을 둘러쓰고 실제보다 더 굉장한 이야기로 애서가들 사이에 무성한 입소문을 뭉게뭉게 피워 올릴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어떤 책도 진실로 읽을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만의 하나 읽으면 미친다고 말했지만, 어쨌거나 시쳇말로 그 책을 ‘득템’하여 내 책장에 들이기 전까지는 입소문에 불안하게 휘둘리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는 그런 전설의 절판본이 등장한다. 성별도, 나이도, 유명인․무명인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작가가 딱 200부만 자비로 지인들에게 나눠줬다가 곧바로 절반가량 도로 거둬들였다는 소설책. 게다가 붉은 표지에 작가 이름도 없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묘한 제목만 검게 박힌 이 소설에는 이상한 조건이 붙어 있다. 작가를 밝히지 않을 것! 사본을 만들지 않을 것! 이 소설을 빌려주고 싶으면 (책 주인의) 단 한 사람의 친구에게만 단 하룻밤만 빌려줄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지인들의 우정과 신뢰로 완벽하게 지켜진다고 가정하면, 세 번째 조건, 즉 일종의 대여 규칙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200여 명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읽지 못하지만 나만은 읽었다는 자부심, 나는 읽었지만 두 번은 읽을 수 없다는 아쉬움, 누군가는 읽었는데 나는 읽을 수 없다는 부러움은 그 책의 실체와 상관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힌다. 어쩌면 그 소설은 이제 더는 아무도 읽을 수 없다는 신비주의 전략에 따라, 독자들의 끝없이 부풀려지는 환상과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 속에 고여 있을 때만 그 존재 가치가 눈부실지 모른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똑같은 제목의 전설적인 소설책이 등장하는 이야기 4편이 옴니버스 구성을 이룬다. 미리 말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는 공유하지만, 각각의 독립적인 에피소드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변주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네 가지 이야기라고 짐작되는 내용을, 「이즈모 야상곡」은 그 소설을 썼다고 짐작되는 작가를,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그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짐작되는 비화를, 「회전목마」는 그 소설을 지금 쓰고 있는, 온다 리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가의 머릿속을,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 잘 버무려놓았다.

아무튼 개인적인 취향으로 4편의 연작 중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즈모 야상곡」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에는 활자중독증 건축가가 읽어치운 대로 던져놓은 책 더미가 방방마다 가득한 대저택이 있다. 그 저택에서는 오로지 “책을 읽는 인간과 읽지 않는 인간”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회장의 초대로 해마다 3월이면 책의 무덤 같은 엄청난 책 더미들 사이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게임이 벌어진다. 그곳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전부, 혹은 일부 읽었다는 회장의 지인 세 사람, 그리고 이력서의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은 직원들 중 무작위로 한 사람. 이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회장과 그의 세 지인이 각자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의 신기하고도 기이한 인연을 들려주면서 그 줄거리를 ‘취미가 독서’인 직원에게 소개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역시 4부작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1부는 ‘바람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흑과 다의 환상>, 2부는 ‘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겨울 호수>, 3부는 ‘피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4부는 ‘시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새피리>이다. 온다 리쿠의 4부작과, 그녀의 소설 속 익명의 작가가 쓴 이 4부작은 교묘하게 교차되고, 나중에 <흑과 다의 환상>은 또 다른 장편소설 『흑과 다의 환상』으로, 「회전목마」의 ‘미즈노 리세’ 이야기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와 『황혼녘 백합의 뼈』로 확장된다.

「이즈모 야상곡」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 편집자가 등장한다. 아빠한테 하룻밤 빌려 읽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잊지 못한 편집자 도가키 다카코는 그 작가가 분명하다고 짐작되는 사람을 찾아 이즈모까지 기차 여행을 한다. 이 여행길에 성격도, 외모도, 출판사의 출간 경향도 다르지만 독서 취향은 비슷한 또 다른 편집자 에토 아카네가 동행한다. 야간 기차 침대칸에서 밤 깊도록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그 작가가 차지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의 직업이 편집자인 만큼 책과 편집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섞여들어 있다. 편집(자)에 대한 책은 얼마든지 있다. 그 책들을 가득 채운 편집자로서의 의식과 철학과 확신이 부럽고도 신기하다. 그 근사한 말들이 다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온전히 독자일 때만 얼마든지 수다를 늘어놓을 수 있는 나는 오늘도 그 괴리감을 어쩌지 못하겠다.

그런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다 읽는다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감춘 비밀이 속 시원하게 드러날까?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이 짐작일 뿐이다. 게다가 앞의 에피소드에서 확신했던 것이 뒤의 에피소드에서는 변형되기도 한다. 어쩌면 진실은 온다 리쿠의 손아귀마저 벗어나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여전히 제목의 의미조차 종잡지 못하겠다. 온다 리쿠는 애매하고 모호한 장치들을 모아서 신비로운 환상으로 거듭나게 하는 영리한 마술사이다.

z***e 2012.09.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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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소설/미스터리-1] 삼월은 붉은 구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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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액자 식 구성이다. 언뜻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4부작의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하나의 맥을 찾아가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소 복잡할 스토리이긴 하나 찬찬히 뜯어놓고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제 1장에서는 독서가 취미인 회사원 가메시마 고이치가 2박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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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액자 식 구성이다. 언뜻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4부작의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하나의 맥을 찾아가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소 복잡할 스토리이긴 하나 찬찬히 뜯어놓고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제 1장에서는 독서가 취미인 회사원 가메시마 고이치가 2박 3일간 회장의 저택에 초대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회장를 비롯한 다섯 명의 노인으로 구성된 삼월의 다과회란 이상한 이 친목회에서 그들은 고이치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한다. 저택에 숨겨진,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란 수수께끼의 책 한 권을 찾아내라는. 익명의 작가는 전 4부작으로 된 그 책을 사본으로 200부를 제작해 배포하고서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반을 다시 회수했으며, 단 한 사람에게만 단 하룻밤만을 빌려줘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고이치는 그 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추리를 해내고 다과회 노인들은 그의 날카롭고 예리한 능변에 감복히기에 이른다.

 

제 2장. 출판사 편집자인 다카코와 아카네는 [삼월]의 작가를 추적하기 위해 이즈모를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열차 안에서 열띤 대화를 펼치던 둘은 곧 택시를 타고 작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하며 기사에게 괴기한 얘기를 듣게 된다. 텅 빈 폐가에 도착한 아카네는 다카코에게 문득 떠오른 두 자매의 이야기, [삼월]이 어떻게 쓰여 지고 잊혀 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설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들을 들려준다.

 

제 3장. 오래 전부터 부식된 공원 난간이 부서지면서 추락사한 이복 자매에 대한 밀담 추적사. 미사오의 과외 선생이었던 나오코와 후배 에이코, 그리고 미사오의 전 남자친구였던 게이스케는 의문에 쌓인 자매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데... 죽은 미사오는 자신의 이복 동생인 쇼코를 찾아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존심이 셌던 쇼코는 자신이 사귀던 남자친구를 언니 미사오에게 빼앗긴 데다, 끔찍한 살인범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며 미사오를 증오하게 된다.

 

4장까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독자들을 환각에 빠트린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런 속내를 드러내 마치 독자가 자신의 은밀한 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듯한 묘한 편함도 있다.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의 일기를 읽으며 그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나 스토리들을 변형해 소설을 써도 무방할 거란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비슷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우연치곤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이 작품을 토대로 한 연작 시리즈를 다 읽어볼 계획이다. 일단 대단히 흥미롭다. 더 탐색해볼 가치도 충분. 오늘 또 대어 한 마리를 낚은 기분이다.


 

a*********9 2011.12.0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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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런걸 ''이야기''라고 말한다." 내용보기
*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엔, 그 자리에 누운 채로 책이 남기고 간 잔해들를 모아 나름대로의 정리를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감정들을 기준으로 책들을 양분하여 기억창고에 저장한다. 그 저장고 중 하나는, 내 마음의 체온이 자주 눈길을 주는 곳이라 심심할 때마다 찾아들어가 휴식을 취하곤 하지만 다른 한 창고는 지나치게 온도가 높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낮아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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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엔, 그 자리에 누운 채로 책이 남기고 간 잔해들를 모아 나름대로의 정리를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감정들을 기준으로 책들을 양분하여 기억창고에 저장한다. 그 저장고 중 하나는, 내 마음의 체온이 자주 눈길을 주는 곳이라 심심할 때마다 찾아들어가 휴식을 취하곤 하지만 다른 한 창고는 지나치게 온도가 높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낮아서 무심코 들어갔다가는 화상을 입거나 냉방병만 얻고서 뛰쳐나오게 된다. 그래서 한 번 그 창고로 들어가버린 것들은 왠만해선 다시 내 마음과 조우할 일이 없다. 이런 기억 창고 시스템 속에서 아마도 내 손 끝의 체온을 가장 빈번하게 느껴본 사람 중 한 명이 ''온다 리쿠'' 라는 작가일 것이다.'' 밤의 피크닉''으로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은 ''굽이치는 강가에서'' 라는 두번째 역을 거쳐 방금 막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역 까지 달려왔다. 어느 역 하나 심심한 법이 없다. 난 그녀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풍경들에 사로잡혀 언제까지고 종착역없는 기차안에서 몸을 맡기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새벽 3시''같은 소설이다. 밤보다 깊은 어둠. 뭔가가 일어날 듯 말 듯한 기운. 이 소설을 새벽에 읽어서 더욱 그런 기분이 든 것인지도 모르지만 새벽의 이미지와 이 책은 어딘가 흡사한 분위기가 있었다. ''책 속의 책'' 이라는 설정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책 속에서 또 하나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에서는 총 8개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현실에서 독자가 읽고 있는 책[삼월은 붉은 구렁을]속의 4가지 이야기와 책속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속에 등장하는 4가지 이야기. 이렇게 8개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 혼란조차 이 책의 묘미 이자 재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읽고 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그 속에 등장하는 소재로서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나름대로 정리해가며 따라가지 않으면 이 책의 미로속에서 방향성을 읽고 헤매이게 된다. 나 역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미로속에 갇혀 못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대로 미로속에 주저앉아있는건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한번 처음부터 천천히 출구를 찾아 헤매었다. 비록 제대로 된 출구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금 보이는 출구에 나 스스로는 꽤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 바깥쪽 책[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총 4부작 구성이다. [제 1장 기다리는 사람들] [제 2장 이즈모 야상곡] [제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제4장 회전목마] 그리고 이 각 장은 전혀 다른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며, 전혀다른 사람이 쓴 것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중요 장치인 책속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제 1장 기다리는 사람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존재하지 않음을, [ 제 2장 이즈모 야상곡]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세상에 존재함을, [제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앞으로 씌여질 것을, [제4장 회전목마]는 지금 씌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의 책을 두고서 각기 다른 각도로 이야기를 펼쳐지는 것이다. 난 이런 이야기 방식을 생각해 낸 작가의 독창성에 빠져들었고, 자신이 펼쳐놓은 이 방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제대로 짊어지고간 작가의 역량에 반했다. 가끔은 이야기가 작가를 끌고가는 경우가 생길 법도 한데, 그런 기미가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은 [제 1장 기다리는 사람들]과 [제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이다. [1장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인공 ''고이치''가 4명이 노인이 만들어 낸{삼월은 붉은 구렁을}관련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것이 재미있다. 어딘가 어리숙한 느낌이 들었던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멋지게 해결해놓고서는 정작 자신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게 정답이 아니었나''하고 떠나는 장면이 너무나 귀엽다. 그리고 4명의 노인의 입을 빌어 작가 자신의 책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부분 또한 이 장의 재미에 한 몫했다. 책을 직접 쓰는 사람이 말하는 책에 대한 생각들. 마치 작가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서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을 이 책을 빌어 세상에 외치고 있는 듯하게 보여서 그 부분을 읽을 때만큼은 작가와 내가 마주보며 대면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 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장이다. 두 미소녀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장은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때문에 4개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다. 검붉은 피의 이미지로 말이다. **** 소설 내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작가에 대해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이 책은 전혀 다른 4명의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듯하다.1장 과 2장을 여행기 같은 느낌으로 3장4장을 미스터리 추리물 느낌으로 묶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각각의 장이 내뿜은 향은 조금씩 달라서 그 향을 맡고 있는 것이 전혀 질리지 않는다. 소설에대해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 같은 신참이 작가에 대해 감탄하는 일은 솔직히 거의 드물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거의 처음에 가까울 만큼 충격을 준 책이다. 작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라고 선언하는 당당한 이야기꾼의 목소리에 나 역시 머리를 숙이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에 대한 독자의 패배만큼 기분좋은 패배가 또 있을까. [삼월은 붉은 구렁을]속에 등장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출간이 기다려진다. 누군가에게 주저함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란걸 느끼게 해분 [삼월은 붉은 구렁을]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

[인상깊은구절]
명작이나 걸작은 임팩트도 있고 읽고 나서 감동도 하지만, 의외로 쉽게 빠져나가 버리니까요. 잘 쓴 소설이 원래 그렇죠.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 속 어딘가에 걸리는 소설은 그런게 아니에요. 어딘가 미숙하고 완성도는 낮아도 개성이 강한, 독창성이 있는 작품이 오히려 인상에 남죠. 전에 오카야마에 출장 갔을 때 제 딴엔 거금을 주고 커다란 접시를 샀거든요. 표면에 잔뜩 가느다란 실금이 가고 거칠거칠한 접시였어요. 그런데 처음에 물에 담가두지 않고 바로 썼더니, 그 가는 금 사이에 무슨 음식인지는 잊어버렸지만 그만 음식 물이 들어서 지줘지지 않지 뭐예요. 아무리 씻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전 그 접시를 볼때마다 그 책이 생각난답니다. 그런 느낌으로 제 의식의 모세혈관에 그 이야기가 남아있어요. " -제 2장 이즈모 야상곡 中
s***9 2006.1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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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 베일에 쌓인 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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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온다 리쿠   이 책은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1부는 사라진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기묘한 모임에 초대받은 회사원의 이야기. 2부는 역시 '삼월을 붉은 구렁을'의 작가를 찾아 길을 떠난 두 편집장의 이야기. 3부는 좀 생뚱맞지만 두 소녀의 사고사를 둘러싼 비밀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작가인 온다 리쿠가 직접 나서서, 4부작 시리즈를 어떻게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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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온다 리쿠



 

이 책은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1부는 사라진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기묘한 모임에 초대받은 회사원의 이야기.

2부는 역시 '삼월을 붉은 구렁을'의 작가를 찾아 길을 떠난 두 편집장의 이야기.

3부는 좀 생뚱맞지만 두 소녀의 사고사를 둘러싼 비밀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작가인 온다 리쿠가 직접 나서서, 4부작 시리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는지 리세의 이야기와 번갈아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작가 미상의, 200부 정도만 자비 출판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비밀의 책. 책의 소유자는 딱 한 명에게, 그것도 단 하룻밤만 빌려줄 수 있으며 그것도 나중에 작가의 대리인이 모든 책을 회수해갔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소설.

 

총 4부작으로 각 편마다 문체가 조금씩 달라서 여러 사람이 썼다는 설과 한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써내려갔다는 설이 분분한, 그래서 더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뒷이야기만 남긴 책.


이것이 바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음, 그러니까 책의 제목이 바로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책이고, 1,2부는 그 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거기에 4부에서 리세가 찾아낸 책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기도 하고.

 

아, 뭔가 복잡하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이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나온 것과는 좀 거리가 멀다. 그 책이 그 책이 아닌가? 하긴 이 책의 4부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도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다. 뭐,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면 달라지기도 하겠지. 애거서 크리스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딱 이렇다하고 규정을 지을 수 없는 소설이다. 역시 어휘는 낯설면서 감각적이고 이해가 빨리 와 닿았다. 이건 순전히 번역본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전에도 언급했듯이 번역가가 원작자의 어휘를 얼마나 충실히 되살렸는지가 관건이지만.

 

글의 서술은 평범하고 조용하지만, 실 또는 고무줄이 느슨하지만 조금만 당기면 팽팽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잡아당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읽어갔다.

 

하지만, 어느새 작가의 의도에 휘말려 꽉꽉 잡아당기면서 미지의 상대에게 ‘놓지 마!’ 라고 외치고 있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상대방이 놓아버리면, 내가 맞으니까. 그러면 아플 테니까.

 

전반적으로 각각의 내용은 책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생뚱맞게 남겨진 책. 그래서 더더욱 내용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책. 하지만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여정이 때로는 자신의 숨겨왔던 치부를 드러내는 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캐내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다 비밀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개성과 진심이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본심을 알게 된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2부와 3부는 자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난 여자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동성의 혈육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과 성염색체가 같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또 다른 존재.

 

조금씩 개성은 다르겠지만, 어쩌면 거울을 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비슷한 모습을 비춰주거나, 다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어쩌면 또 다른 나일수도 있었던, 그런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 존재. 어쩌면 내가 동성의 형제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성의 형제보다는 좀 더 가깝지는 않을까?

 

거울과 책.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과 자신의 고백일 수도 있는 책.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고백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두 가지 사물.

 

그러고 보니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 리세가 제일 좋아했던 책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였다.

 

음, 뭔가 말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머리와 입에서만 왔다 갔다 할 뿐. 그냥 ‘작가님 너무너무 좋아해요!’라고 마무리를 지을까.



 



v********0 2012.07.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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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현실의 모호하고 엄징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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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사람들은 책이 인생을 바꿔주길 원했을까? 네버엔딩스토리도 그렇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도 그렇고, 사람의 삶을 바꿔주는 신비로운 책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책들의 소재가 되었다. 이 책 역시 한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빨간 표지를 가진 치명적 매력을 가진 책, 그 책을 둘러싼 네가지 에피소드들을 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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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사람들은 책이 인생을 바꿔주길 원했을까? 네버엔딩스토리도 그렇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도 그렇고, 사람의 삶을 바꿔주는 신비로운 책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책들의 소재가 되었다.

이 책 역시 한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빨간 표지를 가진 치명적 매력을 가진 책, 그 책을 둘러싼 네가지 에피소드들을 묶어놓은 중편 모음집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책장을 넘기며 허구에 빠져들었을까? 다른 나라를 둘째 치더라도 우리나라는 구한말, 세책가(지금의 대여점)가 성행하면서 부터였다. [음란서생]이라고 하는 영화에도 나왔듯이 그 당시 사람들은 만들어진 멋들어진 허구에 탐닉하면서 때로 자기 전재산을 팔기도 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허구를 빨아들이기 위해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만화를 본다. 대체 왜?

 다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고 하는 책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 소설을 읽다보면 책장을 넘기며 그 안에 존재하는 한권의 책에 대해 끊임없이 추적해 들어가야 한다. 책 안에서 책을 넘기는 건 이미 환상적인 구조다.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책을 읽으며 책이 직조되는 과정을 본다. 

 온다리쿠가 쓴 삼월 연작 중에서도 이 책은 가장 저자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장 바깥의 인간과 책장 안의 인간. 비슷하면서도 분명히 차이가 있는 두 존재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고....

 수록된 네편의 이야기를 모두다 보통 이상으로 재미있다. 그런데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라는 특이한 제목의 이야기이다. 제 3장에 나오는 그 이야기를 읽는동안 심장이 꿰뚫린 듯한 충격을 맛보았다. 등장인물로 나오는 두 여학생, 쇼코와 미사오에 관해 음미하면서부터 어쩐지 조짐이 좋지 않더라니, 게이스케가 쇼코에 대해 지적한 말을 듣고 얼마나 소름끼쳤는지 모른다.

 단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 녀석,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터벅터벅 지븡로 돌아가면서 게이스케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어디서 주워들어온 것 같은 저속한 말도 그녀 안에 있는 '견본'에서 갖고 왔을 것이다. 그 얼마나 싸구려 '견본'밖에 갖지 못한 여자인가. 게이스케는 썰렁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우아해 보이는 여자가 이 정도라면, 다른 여자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즉, 미사오는 책장 바깥의 인간, 실제적인 체험속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인간을 상징하고, 쇼코는 책장 안의 인간, 실제보다는 관념, 만들어진 허구와 미신적 공포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렇다) 

 20세기는 허구의 세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람들은 허구를 엔터테인먼트로 가지고 놀게 되었다. 현실을 바꾸기보단 태만히 앉아서 감각적인 허구를 빨아들인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 치우고, 만화를 먹어 치운다.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실제 경험보다 간접 경험이 훨씬 더 많이 저장되어 있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간접경험자들이 쉽게 빠지곤 하는 오류가 쇼코가 빠진 오류와도 같다. 그들은 경험하지 않고도 지껄이며, 보지 않고도 본 것처럼 넘어가 진실을 경험할 소중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간접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머리속에 세뇌된 관념들이 너무 많아서, 현실의 경험들에 오히려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요즘 결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은근히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즘 영악한 여자들은 수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다른 똑똑한 여자들의 경험을 너무 많이 귀에 들은 덕분에 남자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랑에 관한 허황된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다.

 남자들이 미디어에 노출된 아름다운 여성들과 현실적인 여자들의 간극에 고민하는 동안 여자들도 머리에 박힌 가짜 남자들과 현실의 남자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꿈에만 빠져 살아가는 것만 같다.

 게이스케는 미사오라고 하는 여성을 사랑했다. 아름다움으로 친다면야 쇼코가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었겠지만 쇼코에게는 진짜 숨쉬고 움직이는 심장, 펄떡대는 사랑이 없었다. 

 소설은 개연성이 있는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개연성이 현실성과 동의관계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실성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체적인 이야기,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보다더 우연적이고 소설같이 허무맹랑할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내 남자가, 내 인생이 일반적일 수 없는 것처럼. 일반론적인 이야기하면 똑똑하고 쿨해 보일지는 몰라도, 계속 외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도끼자루 섞는 줄 모르고 인생을 보내는 거,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웃기게도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j*****6 2009.06.12. 신고 공감 1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야금야금 씹어보는 이야기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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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야기'라는 것을 나도 참 좋아하긴 한가 보다. 책을 고를 때에도 소설을 먼저 집어들게 되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색다른 이야기를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쩌면 모두 허상일 테고, 순간의 재미이기에 결국 영양가 없는 것들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확실히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은 하나의 쏠쏠한 재미이다.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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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야기'라는 것을 나도 참 좋아하긴 한가 보다. 책을 고를 때에도 소설을 먼저 집어들게 되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색다른 이야기를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쩌면 모두 허상일 테고, 순간의 재미이기에 결국 영양가 없는 것들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확실히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은 하나의 쏠쏠한 재미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사람 정말 이야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인데?'라고 생각할 만한 작가가 바로 온다 리쿠이다. 온다 리쿠의 <황혼녘 백합의 뼈>를 처음으로 이 책은 두 번째로 읽게 되었는데, <황혼녘 백합의 뼈>가 이 책의 이야기를 이어 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뒤늦게나마 읽게 되었다. 총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각각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연작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에서 이 책의 등장만이 공통점일 뿐 무척이나 다른 성격의 장르를 불문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마지막 단편 '회전목마'에서는 온다 리쿠가 직접 마치 의식의 흐름을 쫓거나 에세이를 가감없이 풀어쓰는 것 처럼 뒤죽박죽의 이야기로 짜여져 있어서 다소 당혹스럽다.

 

이야기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이 이야기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또 행복을 전하고픈 작가 온다 리쿠의 그 욕심이 헉겁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수많은 책을 쏟아져 나오고 있고, 또 그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기발하고 톡톡 튀는 것이기에 이 작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그리고 이런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쓰고 구성하던지 모든 것을 그저 '재주부리는 곰'보듯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 SF, 연애 등등 이런 갖가지의 장르를 뭉뚱그려 놓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바로 온다 리쿠의 이야기들에 금세 이끌릴 것이다. 나는 책 속의 이야기 그 자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첫 단편에서의 활자 중독증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나 역시 어설픈 아마추어 활자중독자이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그리울 때는 온다 리쿠의 이야기를 야금 야금 씹어보는 재미를 느껴보아야겠다. 아직 씹을 이야기가 충분하니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p******i 2009.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녀의 출발점_삼월은 붉은 구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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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여행하는 내내 짬짬이 읽어서 다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도 수월하게 읽어낸데는 그동안 읽어왔던 온다 리쿠식 글쓰기에 조금 익숙해진 덕도 있을것 같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4부작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액자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구에 의해 씌어진지 알수없는 "3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환상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이
"그녀의 출발점_삼월은 붉은 구렁을" 내용보기

오사카 여행하는 내내 짬짬이 읽어서 다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도 수월하게 읽어낸데는 그동안 읽어왔던 온다 리쿠식 글쓰기에 조금 익숙해진 덕도 있을것 같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4부작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액자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구에 의해 씌어진지 알수없는 "3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환상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하나 하나가 인상깊지만 가장 충격적인건 3부인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라는 장이 아닐까 싶다. 이복자매에 얽힌 아름다우면서도 무섭고 끔찍하면서도 슬픈.. 그런 이야기였다.

 

등장인물들에게 회자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의 4부작 구성과 이야기가 이 책의 4부작 구성, 그리고 이야기와 서로 호응하는 형태로 짜여져 있어서 다 읽고 나면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소설에 대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을 읽은 셈이 된다. 뭔가 머리가 복잡해 지지만 그게 또 소설을 읽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속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안쪽책이라고 하고 이 책을 바깥 책이라고 하면

 

안쪽책은 1. 흑과다의 환상, 2. 겨울 호수, 3.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4.새피리 라는 4부작이 되고 이 책은 1.기다리는 사람들 2.이즈모 야상곡 3.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4.회전목마로 이뤄져서 각각이 다른것 같지만 비슷한 얼개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등장인물을 바꿔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편을 먼저 쓰고 장편으로 발전시키는 창작 방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방식이기도 하지만 온다 리쿠도 비슷한 방법을 쓰는것 같다. 4장에 가면 스스로의 작업방식에 대해서 글을 쓰는 소설가가 등장하는데 아마 작가 자신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이후 온다 리쿠의 작품들의 단초가 되는 내용이 줄줄이 등장을 해서 그녀의 출발점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것 같다. 1장에 언급되는 흑과 다의 환상은 장편으로 씌여졌고 4장에 등장하는 미즈노 리세의 이야기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라는 장편이 되었다. 그외에도 자잘 자잘한 이야기들에서 그녀 작품의 맹아가 싹트고 있는걸 보게된건 아마도 이미 전작들을 읽고난 후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책장을 덮으면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고 조용히 되뇌어 본다. 그 책은 누가 쓴것이고 어떤 목적으로 씌여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물론 2장에서는 수수께끼가 풀리는것 같기도 하지만 보리의 바다에..를 보면 그책은 대대로 3월의 나라의 주인이 서술해나가는 소설이기도 하니까.. 결국 오리무중, 나갈길없는 미로일수도 있는 것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계속 읽으면서 어떤 미열을 느낀다. 좀 더 어린 나이에 접했다면 한참을 열병처럼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스토리텔러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작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d***n 2010.02.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