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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작품 분석
[1]『서푼짜리 오페라』는 작가가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하기 전에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세워준 성공작으로 이미 서사극의 형식 요소들을 다양하게 갖추었다. 브레히트는 동서양의 문화 유산을 광범위하게 수용하여 전통의 변증법적 지향을 실현한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럴 만큼 그는 시사성 있는 당대의 사건 보다는 전래의 문학적·역사적 유산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서푼짜리 오페라』역시 18세기 영국 극작가 존 게이(John Gay)의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1728)를 번안한 것이다. 게이의 작품은 서막이 있는 3막극이다. 서막에서는 (거지 행색의) 작가가 배우 하나와 등장하여 해당 작품의 새로운 특징을 설명한다. [1막] 장물아비 피첨은 사업상 거래가 있는 강도 두목 매키스 대위가 딸 폴리에게 구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폴리는 이 남자를 멀리하라는 아버지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그와 몰래 결혼했노라고 선언한다. 이에 피첨은 딸에게 부자가 될 방도를 일러준다. 남편을 경찰에 넘겨 교수형을 당하게 한 뒤 그의 재산을 차지하라는 것이다. 폴리는 이 술책을 단호히 거절하고 남편 매키스에게 부모의 음모를 알려 준다. 매키스는 위험을 피해 런던을 떠나겠다고 약속한다. [제2막]매키스의 부하 일당이 '사업' 계획을 상의하려고 호텔로 두목을 찾아온다. 매키스는 당분간 여행을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일당의 생존 근거인 피첨과의 협력 관계를 끊지는 말라고 지시한다. 부하들이 떠나자, 매키스는 창녀들을 호텔로 부른다. 그들 중에 제니는 두목의 거처를 이미 장물아비에게 폭로했다. 곧 피첨의 안내를 받아 출동한 경관들이 매키스를 체포한다. 뉴게이트 형무소에 갇힌 강도 두목을 로키트 소장이 몸소 감시하는데, 그의 딸 루시는 매키스가 폴리와 결혼한 데 대한 질투 때문에 소동을 벌이고, 이에 두목은 결혼 얘기가 헛소문이라며 오히려 이 여자에게 결혼을 약속한다. 서로 죽이 맞는 피첨과 로키트는 매키스를 제거하여 이익을 나누기로 합의한다. 루시와 폴리 사이의 질투와 말다툼 장면이 길게 이어진 뒤, 루시가 매키스를 도와 탈출시키는 것으로 제2막이 끝난다. [제3막]로키트가 딸 루시를 추궁하자, 루시는 자기가 아니라 폴 리가 매키스를 도왔다고 떠 넘긴다. 이에 로키트는 동업자 피첨이 음모를 꾸며 자기를 배반한 줄로 오해한다. 그가 피첨을 업소로 찾아가 따지려는 순간, 매키스가 다시 창녀에게 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매키스는 두 번째로 체포된다. 루시는 폴리와 화해하는 척 하며 그녀를 독살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제 사형수 감방에 갇힌 매키스는 피첨과 로키트에게 복수할 작정으로, 이들을 고발하여 교수대에 보내라고 부하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지시한다. 폴리와 루시가 다시 한 번 남편 또는 애인 매키스를 찾아온다. - 이어 서막에 나왔던 작가와 배우가 다시 등장하여 사건을 중단시키고 종결 장면을 어떻게 처리 할지 상의 한다. 오페라는 항상 행복하게 끝나는 법이라고 배우가 주장하자, 작가도 결국 그러한 해결책에 동의한다. - 춤추며 열광하는 군중에게 둘러싸여 매키스가 아내 폴리에게 사랑을 재차 확인한다. 교수형 집행 직전의 강도단 두목이 사면과 기사 작위에 종신연금까지 받는다는 동화적 헤피엔드로 작가 당대의 정치계를 겨냥한 풍자가 절정에 이른다.
원작의 이러한 줄거리를 브레히트 번안본과 비교해 보면, 구조와 내용에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원작의 3막 구조가 그대로 유지 되었다. 발라드 오페라의 기본 속성도 계승되어, 유행가 형식의 노래 및 담시(발라드) 삽입부가 매번 사건 진행을 중단시킨다. 차이점은 귀족층 비판이 아무리 신랄해도, 원작의 그것은 사적인 차원에 머물었고 사회적 폐해의 원인이 개인의 부도덕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에 반해 브레히트는 폐해의 근원은 자본주의 시민 사회의 속성에서 찾으려 했다. 원작 중심을 이루던 매키스 - 폴리 - 루시 사이의 삼각관계가 현저하게 축소된 반면, 강도단 이야기와 피첨의 무자비한 사업 부분이 확대 심화되었다. 풍자와 희화화에 초점을 맞춰 설정되었던 게이의 인물들도 브레히트의 해석에서는 사회계층에 따른 전형으로 바뀌었다. 좀도둑에 불과한 장물 아비 피첨이 사업가 수준의 무자비한 거지 대장으로 바뀌고, 교도소장 로키트가 경시청장 브라운으로 상승했다. 원작에서는 장물아비와 교도소장이 서로 짜고 노상강도와 대립하는 반면, 『서푼짜리 오페라』에서는 강도와 경시청장이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 사이가 되었다. 소호의 마구간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장면은 브레히트가 완전히 새로 추가한 것이다.
[2] 『동의자와 거부자』 2부작 『동의자와 거부자』(1931)는 전반부 『동의자』의 초판본(1930)을 쿠르트 바일의 음악과 함께 공연한 뒤, 학생 청준과 평론계의 견해를 참조하여 확대 개작한 '학교 가극'이다. 음악을 강조하면 '학교 가극'이요, 주제와 플롯을 강조하면 (동의에 관한) '교육극'이 『동의자』및『동의자와 거부자』의 적절한 장르 개념이 될 것이다. 브레히트의 창작활동을 3단계로 나누자면, '교육극'은 중기 후반에 해당하는 1929년 이후 1930년대 초에 주로 실험 및 시도되었다. 교육극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연기자들의 정치적 정체성 확인을 위한 시도였다. 이 실험극에서 브레히튼 관개보다 연기자들이 중시되는 연극, '소비자를 위한 예술 보다는 생산자를 위한 예술'로서의 연극을 지향했다. 교육극의 목표는 생산자인 연기자들이 새로운 사회적 · 집단적 행동방식을 연습해 구체적인 사회 상황에 적용할 자세와 행동의 소인을 몸에 익히게 하는 데 있었다. 원작 『다니코』를 쓴 것으로 알려진 곤파루 젠치쿠(1405~1468)는 노극의 고전시대에 활동한 대표적 배우 겸 작가 중 하나다. '다니코'를 풀이해 보면, (성지 순례여행에서 발병하여 부정해진 동행자를) 골짜기에 던져 희생시키는 관습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공동체의 실체와 실상, 관습과 법규의 합리성 여부에 따라 소속원이 '예, 아니요"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제는 현대인에게 상식이지만, 사회 상황에 따라서는 고무적이고 혁명적일 수도 있다.
[3] 『예외와 관습』 『예외와 관습』은 중기에 나온 실험적 '교육극' 작품으로, 일본과 중국의 전통 연극작품을 각각 소재로 활용한 점에서도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여러 작업 단계를 거쳐 완성된 『예외와 관습』은 중국 원작의 일부 요소만 반영했을 뿐, 전체적으로 브레히트 특유의 "반대 구상"을 보여준다. 특히 원작의 현실 긍정적 세계관이 반전되었다. 1)배은망덕과 사악함이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천성에서 나온 것이며, 2)계급 사회에서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두 가지 전제가 그것이었다. "계급 투쟁이 일반적으로 인간 관계를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친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전 · 후반부의 공통 주제였다. 편파적인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이러하다.- 상인은 가난한 쿨라가 위기 상황에서 베푸는 '예외적인' 호의를 '관습에 따라' 갑작스러운 공격 의도로 오해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방어에 나섰으니 그의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예외와 관습』은 인물구도 · 대사 행위를 지배하는 극단의 대결구도와 극적 긴장이 중국 원작의 첨예한 흑백 기법과 닮았음을 느낄 수 있다. 플롯과 인물 설정이 크게 달라졌으나, 등장인물의 자기소개 같은 형식 요소 말고도 선과 악의 극단적인 대비 사회정의의 훼손에 대한 주인공들의 강한 저항과 그 회복 수단으로 선호되는 최종 재판은 원잡극 특유의 구성적 요소들로서, 이후 브레히트의 작품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계급 투쟁이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기대 할 수 없다." 는 작품 주제는 극중 장소의 극단적 상황 때문에 한층 고조된다. 늦어도 사막에서 길을 잃은 순간부터 상인은 사업보다도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할, 그래서 짐꾼과도 일체가 되어야 할 처지에 있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유물변증법을 철저하게 따른다. 상인과 짐꾼의 행동은 인격이나 성격에 좌우되지 않고 항상 각자의 계급에 따라 규정된다. 부정적 인물을 통해 관객의 계몽을 추구하는 것이 생소화극의 일관된 목표인데, 『예외와 관습』은 생소화가 개념으로 정립된 1935년 이전부터 이미 그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상인과 짐꾼의 주종관계를 통해 브레히트는 톨스토이적 해법을 거부함과 동시에 헤겔을 수용했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주인이 하인의 노동에 의존함으로써 야기되는 결과를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 스스로 일하지 않고 하인에게 의존하는 주인은 하인이 노동과 종사를 거부할 때 존재를 위협 받는다. 약탈에 의존했던 로마제국의 경제가 정복지를 잃으면서 급속도로 몰락한 사실도 무위도식하는 주인과 일하는 하인 사이의 관계로 설명된다. 브레히트의 상인도 그러한 변증법적 급변을 피부로 느낀다. 자신의 경제적 존재가 길잡이와 짐꾼에게 좌우되고 있음을 아는 그는 그들에 대한 지배관계가 흔들릴 것이 두려워 길잡이를 해고하지만, 남은 하인에의 의존도는 그로 인해 더욱 커진다. 사업의 성패를 넘어 생존마저 짐꾼에게 내맡기게 된 상인은 극도의 공포와 의혹에 빠져 인격과 객관적 판단력을 완전히 잃고 만다. 짐꾼의 수통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혼자 자기 수통에서 몰래 물을 마시던 그는 짐꾼이 다가오자 정신병의 일종인 강박신경증마저 보인다.
상인은 그가 갑자기 앞에 다가와 서 있는 것을 보자, 자기가 물 마시는 장면을 그가 보았는지 아닌지 자신이 없다. 짐꾼은 상인이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말없이 상인에게 수통을 내밀고 서 있다. 그러나 상인은 그것이 벌판에 널린 돌 조각이라고, 그러니까 짐꾼이 격분하여 자기를 쳐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고는 고함을 지른다. 상인: 그 돌멩이 치워!
상인은 천성이 악하거나 잔인한 성격을 지녓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몰린다. 그의 생존 근거인 주종관계가 사막 속의 조난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해 더 이상 유지 되기 어려운 만큼, 그래서 그의 생존이 위태로워진 만큼, 그의 공포감과 무분별한 형태도 극도에 달한다. 계급사회의 주종관계는 주인과 하인,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의 이성과 인간성을 파괴하며, 상황이 악화 할수록 인간성의 피폐도 깊어진다. 이 교육극에서 주체화한 주종관계를 브레히트는 후기 민중희극『푼틸라 나리와 그의 하인 마티』(1940)에서 본격적으로 형상화하여 불후의 명작으로 남겼다. 『예외와 관습』이 작품에서 재판은 관객에게 시민사회 법체제의 이념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드러내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사이의 모순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다. 초판본 『동의자』와 그 병행 작품 『조치』가 일본 사무라이 의식을 연상시키는 『다니코』사건과 그 중세적 대법의 영향 아래 집단의 관습 내지 모스크바 공산당 지침의 정통성을 확인 관철시키는 반면, 『예외와 관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관습이 악습 임을 제의 형식이 아닌 사실적 구조의 연극으로 예증해 보여준다. 새 질서를 위한 개인의 희생 대신 기존 질서의 부정과 거부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비록 첨예한 흑백논리가 아직 30대 초반 젊은 작가의 조급을 드러내지만, 그것으 나치 파시즘의 횡포에 쫓기기 시작한 망명객의 급박한 상황 탓이기도 했다.
*브레히트를 처음 접하거나 공부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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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희곡선집1 (서울대학교출판부) [서푼짜리 오페라]를 읽고 보통 연극이라고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드라마를 떠올리가 마련이다.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갈등의 해결과 함께 감정적 정화(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는 연극 말이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연극은 아니었다. 서푼짜리 오페라를 읽으면서 나는 브레히트가 계속해서 나에게 메세지를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노상강도, 악덕사업주, 부패한 경찰, 그리고 어둡고 성적인 농담이 가득한 극의 내용은 계속해서 나를 연극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고 극의 전개는 비약적이어서 내가 연극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일부러 지워버린다. 캐릭터들과의 이질감, 극의 전개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 등을 느끼면서 나는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극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브레히트는 계속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은연중에 퍼져있는 사회적 부조리와 부도덕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과장되게 이야기함으로써 당시 영국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극에 몰입하며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브레히트의 연극들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던지는 사회적 이념들을 마주하며 이를 대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동의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러가지 다양한 논란의 지점들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을 단순한 유희로 느끼지 않고 생각과 생각이 맞부딪히는 토론의 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브레히트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