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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이 지나갔던 철길 위로 공원이 생겼다. 아직 그 공원의 길이는 짧지만 앞으로 더 공사를 진행해 공원의 길이가 길어진다고 한다. 결혼하고 처음 이 동네로 왔을 때 그곳은 춘천으로 향하는 무궁화호가 지나갔다. 무궁화호가 지나갈 때면 차단기가 내려가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는데... 이젠 그것도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철길을 모두 걷어낼 수 없었는지 공원 일부에 철길을 그대로 놔두었는데 그것만이 이곳이 과거 경춘선의 흔적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예전엔 시끄럽고 위험한 곳이라 치부되었던 그곳에 공원이 생기고, 이곳은 나름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 되었다. 더운 여름밤이면 이곳에 사람들이 나와 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었다. 얇은 책에 두 편의 소설이 담긴. 첫 번째 이야기 ‘파크 라이프’는 주인공 내가 지하철에서 유연히 만난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두 사람은 이렇다 할 진전은 없다. 서로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보이는 것에 대한 대화만 나눌 뿐이다. 공원에서 만난 그들은 적당한 거리의 친숙함을 보이고, 그렇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이별의 순간도 전혀 슬프지 않다. 두 번째 이야기 ‘플러워스’는 주인공 이시다의 회사 선배에 대한 이야기다. 선배 간단은 친한 동료의 부인과 부절적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죄책감이 없다. 또한 그를 험담하고, 어려운 일은 요리 조리 피해가는 조금은 얄미운 캐릭터다. 이시다는 간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간단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 이후 둘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파크 라이프도 그렇고 플라워스도 그렇고 결국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많지만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없는 현대인들. 하지만 그걸 누구 탓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생각해야 하는 것. 바로 결혼. 하지만 결혼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구속되어야 하니까. 때문에 마음에 맞고 대화가 되더라도 더 이상 감정을 진전시키지 않는다. “좋아. 나 결정했어.” 이 말 한마디에 희망찬(?) 이별을 고하는 걸 보면.. 두 편의 이야기에서 더 마음이 와 닿았던 것은 플라워스다. 간단와 이시다의 심리가 결국 현대인들의 마음과 거의 같지 않을까 하는 씁쓸함 때문에.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거라고. 죄책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간단의 모습은 눈살을 찌뿌리기에 충분하다. 기회주의자이면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이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뉘우치거나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간단과 이시다가 한차례 충돌을 일으키고 간단이 떠나지만 어디에선가 또 그렇게 잘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연하장이 도착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잘한 감정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그라져버린다. 그게 상처로 남겨질 수 있지만 그걸 표출하지 않는 이상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도 하니까. “익숙해져 버린 거야.” (187) 익숙하다는 건 편하기도 하지만 익숙하기에 누군가는 상처가 되는 현실이.. 바로 지금의 현대 사회 아닐까? 뭔가 특별하고 반전이 있는 책이길 기대했다면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뭐 이런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야기가 되는지 싶어서. 하지만 두 편 모두 인간 심리를 잔잔하게 따라가고 있다. 내가 그 감정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에 책을 덮고 나서 마음 한 쪽이 아려왔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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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이중인격이라고 하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겉과 속이 다른 걸 의미하잖아.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묶인 이중인격이란 게 있을까? 겉도 속도 다 좋은 사람 " 정말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로 악하고 악한 사람이 있을까..? 겉과 속이 다 악한 사람.. 나쁜 사람,, 책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것이 그의 본성이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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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파크라이프에서나 이 프라워스에서나 관통하는 것을 들여다 보자니..극명한 반대쪽의 명암을 비추기는 하지만 하나, 간섭이란 것. 하나로 귀결되는 것.그런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껴. 상관없잖아 .좋은게 좋은거라고 모르는 척 편하게 해주려고 피하는 부부.. 상경해서 맘껏 누리며 정성껏 일과에대한 편지는 쓰는 이상한 관계가 이어지는 부부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애틋함이든 뭐든 이어진다고 믿는 이상한 습성. 뭔가 거세당한 사람들 같아서. 그 전시된 인형이 불량인 것처럼 우리 몸이 그런거라고 말하는것 같아. 플라워스는 반대로 너무 거대한 욕망을 여기저기 알게모르게 뒤에서 가지고 장난을 해 상징 적인 은유를 들어서. 자신은 여봐란듯 만인 앞에서 망신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리며 복수하듯 여성의 상징성이란 꽃을 꽃꽂이에 비교해가며 웃겼어. 어리숙한 페미니스트는 아니고 싶은데. 비열한 이런 사람은 더 싫어. 그러면서..배수구와 하수관의 이어짐에 묘하게 신경이 쓰여. 나도 그래봐야 어쩔수없는 여자사람이란 말 같아서...그걸 읽어낸 것이 그래도...속일수는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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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시선으로 보기 랄까....뭐 그런 걸 말하는 거지.. 예전에 어떤 언덕 사진을 놓고 그 사진아래 쓰여있던 문장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 에 대한 사람들 이야기 였다. 간섭하고 싶음에도 참을 줄 아는 것 오지라퍼 정신을 다른데 쏟을 것. 이를테면 작가는 생생한 증언대신 교묘한 표현으로 동시대성을 말함이나.말할 수 없는 것을 가르키는 이정표 노릇을 한다거나... 뭐...그런... 참아야 함...성질변화 인지도 모르겠네. 원래의 고유한것을 들어내고 다른것을 들어 앉힘 이질 적임 자체도 거부감도 그저 묵묵함으로 받아드림은 무저항의 정신 과 같고..바보스럽다. 피함 이고..지는 삶...같은데...왜살지.. ㅎㅎㅎ 아..난 소시민이고..현시대 인으로 사니..그렇구나. 암튼 ..비겁해. 서로 엇 갈린 빈자리들 왜 직접적인 간섭을 두려워하지. 쿨함에 목메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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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5권의 책이 은행나무에서 보내져 와서 너무 잘 ...고맙게 잘 읽고 있는 중이라.. 이 책도 그 중 한권이다. 너무 동화 삽화같은 서정이 있는 풍경에 대체 뭔 책일까 싶었는데 막 이사전에 도착해서 이제야 하나 하나 꺼내 보는 중.. 짐은 ...언제 정리할래...ㅡㅎㅎㅎ ㅡ뭐..오늘 싱크대위에 가장 상단에 올려놓은 잔 을 하나 꺼내다 죽을뻔 했다..심장이 뛰어서... 그런데 뭘 하란거냐..왜사냐 하던데 ..딱 그러게 싶더라 ㅡ 암튼 ㅡ책이 끝날때까진 사는 걸로... 나 ㅡ는 책 속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ㅡ넥타인에 청소부같다는 말에 가벼운 충격... 도심의 한 공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치있게 그렸단 생각. 계속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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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로 ‘일상’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한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학교나 일터에 가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의 연장이란 얘기다. 좀 우울하게 말하면 흔한 표현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러지 않을 수도 없다. 단군 이래 최대, 최고의 스펙을 보유한 세대에 끼어야 그나마 취업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내가 벌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니까 그나마 쳇바퀴라도 있음에 감사해야한다. 그리고 자신이 돌리는 쳇바퀴를 남들보다 더 빨리, 오래 돌려야한다. 마치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길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얻는 전기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건 다음 문제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거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쳇바퀴를 돌려주지 않을 것이니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 도움이 되더라도 내가 돌리는 쳇바퀴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적당한 거리. 도움이 되건 안 되건 그렇게라도 굴러가는 내 쳇바퀴와 타인의 쳇바퀴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편하다. 익숙한 내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게 두렵다. 더 빨리 돌릴 수도 있겠으나 더 느려질 수도 있으니까. ‘파크 라이프’, ‘플라워스’라는 제목의 두 중편을 엮은 이 작품은 나와 타인의 ‘적당한 거리’가 무너졌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일상에 부딪친 변화의 충돌속도를 달리해 그 여파를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익숙하고도 낯선 우리 삶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먼저 ‘파크 라이프’를 보자. 직장인인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낯선 여자를 공원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나 그녀가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찾는 곳일 뿐이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데, 그렇게 알아가는 것들이 사소하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다못해 몇 번의 만남에서조차 서로 이름도 물어보지 않는다. 이름은 그 사람을 최초로 규정하게 만들기에, 좀 더 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어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인연도 신경 쓰이게 한다. 그렇게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모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런 작은 변화가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작은 변화조차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나에 대해 얘기하고 타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조차 부담인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오직 목적에만 충실한 일회성 모임들이 등장하는 것 아니겠나. ‘파크 라이프’가 가랑비처럼 다가온다면, ‘플라워스’는 맑은 날 뜬금없이 맞게 되는 소나기처럼 덮쳐온다. 시골에서 살던 ‘나’는 결혼 후 도쿄로 이사하고 배달직을 구해 ‘간단’이란 직장선배와 함께 일을 하게 되는데, 이 간단이란 사람의 성격이 거침없다. 보통사람이라면 껄끄러워할 자신의 과거를 재밌게 말하더니 급기야 직장동료의 아내와 저지르는 불륜현장을 ‘나’에게 보여주고 행위에 동참하게까지 만든다. 양심의 가책은커녕 그 직장동료를 멸시하고 그런 행위의 동참자가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골 석재상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내가 결혼과 동시에 변화를 위해 상경한 도쿄에서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고급호텔에서 숙박하는 등 ‘나’의 삶이 갑작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삶 속에서도 ‘나’는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마치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간다. 변화라는 게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파크 라이프’의 나에게 찾아오는 변화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적당한 거리두기를 끊임없이 염두하며 서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면, ‘플라워스’의 나에게 변화와 시선은 갑작스럽고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금세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두 모습의 대비는 변화란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규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게 한다. 그러니까 ‘파크 라이프’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그녀에게 내일도 공원으로 와달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다. 적당한 거리두기에서 조금 좁혀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거다. 그에 반해 ‘플라워스’의 나는 간단과 싸운 며칠 만에 다시 예전처럼 함께 일을 한다. 제법 큰 사건이었음에도 말이다. 두 달 만에 그만 둔 간단에게 설 연하장도 오지만 그 뿐이다. 아무 말도 쓰여 있지 않은 연하장처럼 큰 의미는 없다. ‘나’에게 간단과의 일이 준 변화는 급작스럽지만 상황이 끝나고 나니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거다. 충돌이 주는 변화의 무게감은 상황적 충격력과는 상관이 없으며 받아들이는 자의 내면에 얼마나 파문을 일으키는가, 그것이 각자 돌리는 쳇바퀴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변화를 맞게 된다. 타인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누군가에겐 큰 작용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작용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 ‘파크 라이프’에서 기구를 띄우는 노인은 안정적인 자세를 잡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플라워스’에서 꽃꽂이를 하는 할머니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르는 미묘한 한끝의 차이를 통해 작용의 여파를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쳇바퀴를 돌리는 속도는, 자세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거다. 조금 느리게 돌리는 페달에서 숨을 고르며 나와 타인의 자세와 거리를 잠시 돌아보거나, 조금 빨라지는 속력에 타인의 운동모습을 가까이 보며 나를 비춰보는 일.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가는 삶 속에 타인이 주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우리의 쳇바퀴는 반복된 일상이지만 달라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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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크 라이프』 -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 著 책을 구성하는 두 단편 중 첫 파트인 『파크 라이프』를 읽고 술술 읽히는 가벼운 책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파트인 『플라워즈』를 읽고 나서는 머리가 살짝 복잡해지는 책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캐쥬얼한 느낌에는 변함이 없다. 두 단편 모두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서술이 휙 휙 널뛰기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스타벅스 컵’이라는 흔한 물체를 매개로 뉴욕 여행 시절부터 히카루와의 첫키스까지 한달음에 서술하는 『파크 라이프』나 꽃잎과 묘석과 샤워실 장면이 교차해서 서술되는 『플라워즈』의 결말 부분을 읽노라면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서술은 원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근감을 무너뜨리며 반전되면서 순식간에 시야로 돌진해 온다”(p. 13). 생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도 별다른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 『파크 라이프』에 비해 『플라워즈』에서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서술 또한 인물의 내면을 조금 더 파고드는 편이다. 그렇지만 딱히 스토리적인 요소에 대해 왈가왈부할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빙의하듯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르는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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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하지는 않다. 공원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을나누고 그런 이야기들이다.사실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미즈호와 가즈히로 커플...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아해서 별거한다나...그것이 맞는 이야기인줄은 잘 모르겠지만 소설이니까 특별한 설정이 필요했을거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