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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꽃 p.94 삶의 길 겹겹 안쪽 지상의 눈길 닿을 수 없는 곳 잃어버린 먼 곳을 본다.
가끔씩 구순의 노인은 여행을 한다. 힘들고 어렸던 스물의 그때를, 미움은 다 걷어낸 그리움의 그때를. 겹겹의 세월 안에 갇혀 가끔 나오지 못하는 그녀를, 막내는 그저 현실로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꺾이고 베어진 자리… 언젠가 그녀가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에 앉아 또다시 목놓아 울 나의 수년 후가 너무 슬프다. 시인의 「옹이꽃」을 읽으며 먼 눈빛으로 아주 멀리 지나온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는 노년의 엄마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시가 많이 좋습니다 위로인지 회한인지, 무엇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 마음마저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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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 수산센터 상인, 버스 승객, 지하철 맞은편 사람, 분식집 옆자리 손님. 시인은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얼굴들에서 자기를 비춰본다. 표제작에서 "나의 눈이 할 일은 지하철과 대합실과 네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낯선 사람 얼굴에 묻은 피곤과 근심을 모아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얼굴에 붙여보는 일이다. 「건너편 1」에서는 맞은편 사람을 보며 "잠시 다른 몸을 살다 온다"고 한다. 시인은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혼자 국수 먹는 사람을 짠하게 보는 대신 그 모습이 옳고 예쁘다고 하고, 횟감을 사며 상인과 주고받은 눈빛을 "서로 크게 어긋나지 않은 거래"라고 부른다. 그저 담담하게 비춰볼 뿐이다. 그게 가능한 건 시인이 스스로를 비어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폐허」에서 자신을 "텅 빈 창고"라고 부르는데, 자기로 꽉 찬 사람은 남을 비출 수 없다. 비어 있으니까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묘하게 위로가 된다. 내가 누군가를 비춰보는 동안 누군가도 나를 비춰보고 있을 테니까. 「그네」에서 아이 등을 밀어주다 어느새 아이가 내 등을 밀고 있는 장면이 그 마음을 잘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