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이런 소설이 있단 사실에 놀랐다. 일제시대, 포로 관리를 하기 위해 미얀마 전선으로 간 조선인이 마술사가 되어 돌아온다는 황당한 이야기. 가족을 대신해 전쟁터로 나가게 된 주인공의 사연은 일제의 식민지 하에 있던 수많은 우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라 너무나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술사는 한편의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독립 운동을 하다 잡힌 인도인을 감시하게 된 주인공이 그와 함께 탈출하는 이야기는 한편의 스릴러 액션 극을 보는 것 같이 박진감 넘쳤다. 그리고 잠적인 주인공이 수련을 통해 마술사가 되고 인도인의 젊은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에 가서는 마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한국판으로 보는 듯했다. 조선이 해방되었단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정욕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서 다시는 마술을 할 수 없게 되는 부분은 고대 경전에 수록된 인생의 우화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술사의 긴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신할 수 없는 화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창작이란 과연 무엇인 지에 관해 생각하면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한반도의 역사 속에 담아낸 이병주는 천재다. |
|
마술사 - 이병주 / 한길사 이병주(1921~1992) 님의 글은 권위주의 정부에서 금기시된 소재인 이데올로기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의 고뇌를 다루어, '이병주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나누자'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이병주 님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민족 비극에 대한 체험을 지식인으로서 깊히 고뇌하였고 이를 문학으로 승화시켜 냈다. 이 책 <마술사>에는 마술사. 변명. 예낭풍물지. 제4막. 망명의 늪. 이렇게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마술사> 주인공은 긴 장마로 발이 묶여버린 여인숙에서 몰매를 맞고 있는 사람을 구했는데 그 사람의 직업은 마술사였고 왜 몰매를 맞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술사의 이름은 송인규이다. 송인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징집되어 갔다가 사형에 처한 인도 마술사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인도 마술사에게 마술을 배우게 되었다.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고귀한 인간성, 목숨 같은 사랑, 치명적인 금기, 무한한 인내와 몰두,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겪은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판타스틱하면서 읽는 동안 정신을 쏙 빼놓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송인규의 딱한 사정을 들으며 송인규에게 고난의 역경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며 큰돈을 노잣돈으로 주었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말한다. 마술사는 화술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제인 것처럼 만들어 내보이며 그것을 보는 이가 실제로 믿게 하는 것인데 송인규는 주인공의 돈을 빼앗기 위해 환각을 화술로 전달하는데 성공한 진짜 마술사라고!! <변명> 학도 탈출자 탁인수의 죽음. 그를 밀고한 장병중의 탄탄대로의 삶. 그를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인공의 무력함. 독립군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립운동가 탁인수의 죽음과 프랑스가 침략당하자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다 독일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한 마르크 블로크의 죽음. 그리고 이와 유사한 죽음을 수백만 명씩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억울한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을 것을 생각하면 역사를 위한 변명은 고사하고 인생을 위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이 모든 것 앞에서도 역사가 우리를 기만한다고 욕하는 대신 변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마르크 블로크에게 주인공은 제안한다. '역사를 변명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써야 한다. 역사가 생명을 얻자면 섭리의 힘을 빌릴 것이 아니라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라고.. <예낭풍물지> 해방 직후 한국 전쟁이 나자마자 좌익 세력에 의해 죽은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수습하겠다는 마음으로 조직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조직이 커지면서 정치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되면서 주인공은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결핵에 걸린 주인공은 오래 살지 못할 거라 판단하여 5년 만에 출소를 하여 자신의 고향인 예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들어간 후 어린 딸은 병으로 죽고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로 떠나고 없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아들의 병이 낫기만을 바라며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한다.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주인공은 지나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본후 젊은 과부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을 찾았다. 지나갈때마다 본 술집 주인은 아내의 닮은 모습이다. 주인공의 고달픈 삶을 들어준 술집 주인 윤씨는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지만 주인공은 거절한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눕게 된 후 방황하다 우연히 윤씨를 만나 주인공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다. 어머니는 윤씨를 돌아온 며느리라고 여기며 임종을 맞았다. 절망적이기만 했던 주인공의 삶이 윤씨로 인해 희망을 찾게 된다. <제4막> 뉴욕에 있는 '제4막'이라는 술집에서 한국인 소설가와 에스토니아인 화가가 우연히 합석하여 생긴 이야기이다. 에스토니아 화가는 에스토니아어로 말을 했고 에스토니아어를 못알아 듣는 한국인 소설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한국말로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다음날 약속 장소까지 정하게 되었는데, 말도 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약속장소를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반신반의한 약속 장소로 가보니 에스토니아 화가가 부인과 함께 나와 있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에스토니아 화가는 그림으로 에스토니아가 광명을 찾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에스토니아의 풍경을 단 한 조각이라도 더 많이 미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그는 에스토니아만을 그리고 에스토니아 말만을 하는 순수한 에스토니아 사람으로 살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우리의 역사와 닮은 에스토니아 화가의 삶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아픔을 소설로 알려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망명의 늪>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짓밟지 않는 한, 돈을 벌지 못하는 걸 알았어요. 자기의 천국을 만들기위해 무수한 지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렇게해서 돈을 벌어 뭣하겠습니까! 나는 히피처럼 살아가렵니다.'-본분 중에서. 사업 실패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아 작부에게 얹혀사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사업을 시작할때 큰 돈을 빌려준 하인립이라는 사람이 사십만 원을 사기쳤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하인립을 구명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해보지만 하인립의 도움을 받았던 인간들은 모두 외면을 한다. 그러나 의로운 이의 주선으로 하인립이 석방이 되자 하인립이 구속되었을때는 냉랭하게 외면했던 자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하인립에게 모여들어 아부를 서슴치 않는다. 주인공은 야비한 인간의 속성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생명이 붙어 있는 지옥같은 현실을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
|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세상을 읽는 것과 다름 없다. 일사불란하게 벌어지는 사건속으로 모두의 눈과 마음을 쏠리게 한다. 행복,기쁨,억울함, 불안한 미래를 다소 이병주 소설을 통해 위안을 얻을거라 확신한다. 매번 똑같은 역사는 되풀이되지만,그의 창작 소설속 곳곳이 역사의 발자취와 흔적을 남긴다. 오래토록 믿어온 자신의 신념이 아닐때 커다란 실망감은 누구나 다 느낄 것 이다. 나는 여러 문학 소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중 3번째로 뽑는다면 단연 이병주를 뽑는다. 박경리 ,조정래, 이병주, 그다음 송기숙 이런 순서의 책을 한번 씩 접하면 나쁘지않고 오히려 정신적 고양이된다. 뉴스를 보면 별거 아닌 사소한 일과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난 시대 ,공감의 형성을 찾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다들 욕심과 자기 안위가 중요한 시점에 그릇이 넓어지려면 앞서 간 그시대 소설을 통해 보답 받길 바란다. 인생은 쉼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유연하게 살려면 시대적 공감을 형성해야만 가능하다 이병주 시리즈 모든 소설은 하나같이 작은 디딤돌 같은 약이다. 이 한권책이 아닌 통털어 여러 시리즈를 탐독하길 적극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