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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카프카,김훈:천개의 고원 그리고 한국문학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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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카프카, 김훈 : 천개의 고원 그리고 한국문학의 지평 / 장석주 / 작가정신 /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나의 짧은 사유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명제들이었다. 몇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대체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글자만 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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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 카프카, 김훈 : 천개의 고원 그리고 한국문학의 지평
/ 장석주 / 작가정신 /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나의 짧은 사유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명제들이었다.

몇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대체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글자만 훑어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런 나의 좌절감 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또 한 가지는 오기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끝까지 한번 읽어나 보자,

나의 무지와 비참함이 어디까지인지 확인이라도 해 보자는 심보 같은 것,

그래서 기어이 이를 악물고 다 읽어 내었다.


   이 책의 끝부분에 덧붙여 놓은 “책 끝에”라는 장에 가서야 내가 이분의 깊은 사유를 따라 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확인하고 겨우 안도하면서

이해하지도, 뜻도 모르면서도 다 읽어 낸 것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고.

나의 무지와 존재의 얇음, 또한 그간의 독서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확인해 준 것이 이 책으로 얻은 큰 소득이었다.


  내 서가를 가득 채운 2만여 권의 책들 중에서 거의 반 정도가 이곳에 내려온 뒤 늘어난 것이다....그 책들에 파묻혀 살며,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손에서 책을 뗀 적이 거의 없다.

....지난 6년간 2천여 권의 단행본을 읽고 그 중에서 3백여 권의 책들의 리뷰를 썼다.

책 읽기의 달인을 넘어 신의 경지에 접어든 저자의 엄청난 내공 앞에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나의 이런 좌절을 비웃듯이 깊은 구렁텅이로 한번 더 밀어 넣고야 만다.

“서고 속의 수도승”이라는 과분한 명칭을 붙여주기도...

“중용”에 이르길 다른 사람이 한번 해서 능하게 되면 자신은 이것을 백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 해서 능하게 되면 자신은 이것을 천 번 해야 한다. 과연 이와 같이 하면 비록 어리석어도 필연코 명민해지고 비록 유약해도 필연코 강건하리라고..

배움이 얕고 궁리가 짧으니, 반복해서 읽어 깨우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속에 잠재된 무지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책을 접하며 무지를 한탄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책 읽는 방법들을 어두운 독서의 길에 등불 삼아 몇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가갈 수 있는 계기로 삼음이 타당할 것이다.

책을 읽되 읽은 것을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잊으려 애쓴다. 오로지 읽는 순간을 향유하고, 그것이 겹눈의 사유를 위한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읽은 것들에 기대어 천천히 사유하며 인적 드문 시골길을 걷는 산책자며, 산 아래 외딴집 골방의 명상가다. 내가 책과 산책과 명상에서 구한 것은 존재의 기쁨이며, 내부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으로 이루는 자기 갱신이다.

노자의 “도덕경”과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은 여러 번에 걸쳐 되풀이해서 읽은 책이다....도덕경은 판본을 바꿔가며 수십 번에 이를 만큼 완독하고, 천개의 고원은 다섯 번 가량 완독했다.

그가 즐겨 하며 수십 번을 완독하고 나서야 그 뜻을 헤아릴 정도의 책이라면 나 같은 무지랭이는 수백번을 읽어야 겨우 이해의 끄트머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설과 시의 해설과 분석에 대한 감회는 나의 능력 밖의 일인지라 감히 언급하는 것조차도 꺼려진다.

다만 저자의 넓고도 깊은 사유와 책의 깊이 읽기에 경외감을 더할 뿐이고

내 존재의 가벼움과 사유의 얇음을 반성하고 게으름에 대한 채찍을 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1.07.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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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유목민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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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유목민이 되길 바라며   서평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평론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읽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요즘은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다시 읽기를 권하는 평론서보다는 서평집과 북에세이가 많이 출판되고 있다. 나 역시 다양한 책들을 알고 싶어서 서평집을 읽곤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책 뒤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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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유목민이 되길 바라며

 

서평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평론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읽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요즘은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다시 읽기를 권하는 평론서보다는 서평집과 북에세이가 많이 출판되고 있다. 나 역시 다양한 책들을 알고 싶어서 서평집을 읽곤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책 뒤편에 있는 해설서를 보면 기존에 나와 있는 이론과 도서를 접목해서 책의 의미를 설명해주는데 그들은 어떻게 책을 읽고 해석하는 걸까.

 

평론서 중에서 장석주의 들뢰즈, 카프카, 김훈을 선택한 것은 며칠 전 읽었던 카프카의 이름이 있어서였다. 아직은 수수께끼 같은 카프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장석주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펴낸 천 개의 고원(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을 읽고 영감을 받아 탈주선과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문학을 짚어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리좀이다. “리좀은 탈중심화와 비위계질서를 본질로 하는 다양체다. 리좀은 나무나 뿌리와 같은 것으로 표상되는 사유의 재현 모델을 따르는 기존의 담론과 제도들에 구현된 규범적 질서를 해체하고 생성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한다는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읽어간다. 리좀, 김훈, 나와 타자, 가족, 존재에서 생성으로 등의 기준으로 들뢰즈의 이론과 국내외의 소설, 시를 교차하며 이야기한다.

 

타자가 인증하는 의 주체란 무엇인가? 들뢰즈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의 아비투스, 하나의 습관, 내재성의 장 속에서의 하나의 습관, 나라고 이야기하는 습관이다. ‘는 타자의 욕망함이다. 타자가 없다면 도 없다. 왜냐하면 는 곧 타자의 타자니까. 이것을 뒤집으면 아닌 것의 총체다. ‘아닌 것들과의 차이를 통해서 나타나는 본질이다. 그렇다면 는 일자가 아니다. ‘는 수많은 타자다. ‘는 수많은 타자를 통해서 드러나는 수많은 . (4_ 타자의 발견, 147)

 

타자에 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는 타자에 의해 존재하고 타자는 나에 의해 존재한다. 우리는 타자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타자의 조합이다. 주체성을 지닌 존재가 되려고 한다면 타인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문학으로 남기고 읽어내야 하는 것은 기존의 내용이 아니다. 현재의 지층화를 깨고 새롭게 나아가는 문학을 리좀의 개념으로 향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작품의 가치를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그 눈을 키워내기 위해 이 평론서를 추천한다.

e*****i 2019.08.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