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 그대는 행복한가. 그렇다 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 - 김용석, 두 글자의 철학 中 - 최병수는 진정 영혼이 자유로운 자이다. 그는 어느 곳에 정착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지도 않으며, 돈이나 기타의 물질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한 몸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발벗고 나선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나는 내가 누군인가를 찾기 위해 철학에 발을 들여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최병수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최병수는 안다. 그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그는 목수이다. 그는 화가이다. 그는 철학자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는 목수의 인생으로 시작해 화가의 인생을 맞이한 최병수라는 사람에 대한 탐색이다. 화가의 인생으로 시작해 목수의 인생을 맞이한 김진송은 묻는다. 그와 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살 어린 최병수라는 사람에게. 김진송은 풍요로운 가정에서 우리나라 최고 학벌이라는 서울대를 나왔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그것을 버리고 그저 한명의 목수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 김진송이 처음부터 가난했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며, 생계를 위해 안해본 직업이 없을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그러나 언젠가부터 환경운동가, 행동주의 화가로 변신한 최병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대담집 형식으로 기획되었던 이 책은,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김진송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바뀌었다. 최병수는 매우 할 말이 많은 남자다. 그는 한때 여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 그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 결혼하지도 않았고, 부인도 없으며, 아이도 없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형제가 있긴 했지만,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홀로 공부하고 홀로 돈을 벌며 삶을 배웠다. 어린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전선에 나선 것은 그로하여금 더 많은 삶의 공부를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공부란 모름지기 책상 앞에 앉아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임으로써 하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어느 날 번쩍 목수에서 화가로 탈바꿈한, 그것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화가로 탈바꿈한 그는 어느날 자신을 돌아보니 환경운동가가 되어있었다. "목수보다는 화가라고 말하는게 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거 아니냐고? 그런건 없었어. 나도 세상 물 먹은 사람인데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건 알지. 그래서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대.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나가고 나도 못 나간다는 거지. 그렇게 서로 버티다가 우스운 생각이 들었어. 저쪽에서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별 것 아니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 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서야. 난 정부가 인증한 공식화가라고." 최병수는 어쩌면 그 형사에게 고마워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목수에서 화가로 강제로 직업이 바뀌어버린 그는 사다리 짜주고 못질만 하다가 "그거 개나리요? 아니 왜 진달래는 없소?" 라는 딴지 하나로 진달래 한 송이 그림으로써 화가로 데뷔하여 <한열이를 살려내라><노동해방도><장산곶매><펭귄이 녹고 있다><떠도는 대륙><야만의 둥지> 등의 그림을 그리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의 출세를 염두에 둔 계획된 행동이 아닌 그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돌다 얻게 된 결과일 뿐이다. 미술대학은커녕 중학교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는 어엿한 화가가 되었고, 제 5회 교보 생명 환경문화상 환경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200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 개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런 감투들이 그에게 무슨 쓸모가 있으랴. 욕심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자기가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 것을. 1960년생인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일곱. 아직 젊디 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치열하게 삶을 산 덕 분에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일들을 해냈다. 평균 수명의 반도 살지 않은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지 세계 어느 곳에서 활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그 자신도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으리라. 그는 언제나 계획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정처없이 떠돌았다. 유목민은 나에겐 꿈이지만, 그에겐 현실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정착하고 싶다 한다. 주민등록도, 의료보험도 없는 그가 이제 주소지를 정해놓고 정착하고 싶다 한다. 순박하고 깨끗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 한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19개의 직업을 전전한 그는 이제 화가에서 교육자로 옮겨가고 있다. 또 모른다. 교육자에서 언제 무엇으로 옮겨갈지는. 그의 삶에 박수를, 그의 자유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그가 내뱉은 말들 중에서 거두어들이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거나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에게 누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짐짓 모른 척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다듬고 내 글을 덧붙이면서 하나의 원칙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건 솔직함이다. 때로 사실과 감정과 논리가 거칠게 드러나고 논리적 모순과 감정의 충돌이 그대로 표출 될 수 있다. 또한 솔직함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을 앞세워 논리의 균형을 맞추고 시각의 틈을 조정하며 주변의 정황이 고려되는 타협은 이 글의 원칙을 벗어난다." 김진송의 말마따나 최병수의 솔직함은 그의 삶의 바탕이 되었고, 행동의 실천으로 옮겨졌으며,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근본이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 틀렸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가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은 논리를 벗어나 삶에 천착하고 있고, 그것은 그 어떤 논리보다 현실적이고, 옳음을 지향한다. 마음을 비우고 그를 접하자. 이 책을 읽기전 난 최병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소개글을 보고 아 화가구나 싶었다. 그러나 난 지금 인간 최병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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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운동 속에서 그리고 이후 국제환경회의, 새만금, 사패산, 평택대추리에서 그림으로 설치물로 국내외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온 예술가 최병수. 나는 지난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반전평화활동을 벌이며 ''너의 몸이 꽃이 되어''라는 작품을 보여준 그를 먼저 떠올린다.
현장예술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보다 뜨거운 현장 한 가운데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더 쉽게 기억한다. 그렇다면 피카소와 램브란트를 추앙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현장이 아닌 그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이 책은 긴 시간동안 최병수가 들려준 이야기를 김진송이 묻고 맞장구 쳐가며 적은 인터뷰형식의 책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사적경험을 통해 사회모순에 눈을 뜨고 우연한 기회에 화가가 되고 운동가가 되었다. 병든 사람이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처럼 병든 이 사회도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회문제 한 장면마다 최병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실천을 했는지 이야기 들려주듯 현장감 있게 전해준다. 두께가 두툼한데도 사이사이 작품을 실어넣어 전혀 지루함이 없고, 그의 움직임이나 사안에 가려 어쩌면 덜 알려진 소중한 그림들, 설치물들을 두루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은 현장에서 함께 하며 바라볼 때 가장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겠지만...또한 이 책을 차분히 읽다보면 거창한 이슈에 관한 생각이 아니더라도 그는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 편에 항상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이 관념적인 글로 읽히지않는 이유는 그의 고민과 행동이 고단했던 과거의 이력을 회상하는 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 겉치레없이 속까지 다 드러내며 살아온 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말하는 이의 솔직함과 글쓴이의 겸손함으로 인해 읽는 이에게 가감없이 전해진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최병수는 지금 백야도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세상과 싸우고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글쓴이의 말대로 그곳에서 오래 머물며 우리가 그동안 사랑해온 그 작업들을 더욱 풍부하고 건강하게 쏟아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상깊은구절] 요즈음 이곳에 아침마다 박새가 날아오는데, 걔들만 보면 옛날 생각이 나서 미안해지지. 어릴 때 새총으로 새를 잡았어. 그놈들은 진짜 착했어. 약아빠진 참새들이야 금방 도망가 버리는데 박새들은 멀리 안 날아가. 그러니까 잘 잡혔지. 그놈들을 많이 잡았거든. 많이 구워 먹었고. 그게 미안해. |
| 최병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부안 새만금에 우뚝선 솟대와 장승을 본 사람들은 ''누가 이런 작품을 설치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차를 세워 안타까움과 갯벌과 함께 아름답게 빛나는 그의 작품을 음미한다. 최병수는 이 책에서 독자들과 편하게 대화한다. 어두웠던 어린 시절도 노동판을 전전하며 야생마처럼 시대를 살았던 지난 시절을 마치 친구처럼 얘기하듯 편하게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책속에 빠져들다 보면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분노하며 범상치 않았던 그의 삶을 엿볼수 있다. 또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과 작품에 얽힌 후일담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기존의 자서전과는 확연히 다른 한 예술가의 초상은 최병수 특유의 입담을 거쳐 빛을 발한다. 거친 황야에서 자라난 야생화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
| 이 글은 화가 최병수의 인생 이야기이다. ‘최병수 말하고 김진송 글을 짓다’라는 말 그대로 화가 최병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 김진송의 글에는 화가 최병수에 대한 진한 애정과 존경 혹은 우정이 듬뿍 묻어 있다. 그러기에 이 글을 읽는 우리도 어느 순간 최병수란 화가에 대해서, 한 사람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병수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솔함과 자신의 일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인류애가 없다면 이렇게 특이한 화가에 대해서- 화가라고 할 수도, 화가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경계심을 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화가 난다. 그의 삶의 원동력이 분노에 기인한 탓이다. 그의 삶은 가난과 학업중퇴, 수없이 전전한 여러 직업 등 소위 하층 인생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오는 억울함과 울분으로 대변된다. 심지어 화가가 된 계기까지도 사회 부조리에서 자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삶의 모든 책임을 사회에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식했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분노가 오늘날 그를 있게 한 힘이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사회악에 대한 화나 불평의 차원을 넘어선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라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분노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자각의 시작이며, 투쟁을 통해서 끊임없이 분노를 발산하고, 더 나은 사회로의 대안을 찾아낸다. 그의 분노는 분노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그다운 표현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과 그에 대해서 화를 내게 되는 동시에 사랑하게도 되는 것이다. 화가가 된 이후의 그의 삶은 그의 작업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를 화가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항상 현장 속에 있으며, 현장 자체와 어우러지지 않고서는 그의 작품이 될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예술품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 살아 숨쉬는 대화의 통로이다. 최병수는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의 말과 작품과 그리고 인생은 진리를 향해 질주한다. 포장과 은유를 배제한 최병수식 말하기는 단순함과 정공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의혹과 당혹감을 준다. 끝없이 대화하기를 원하는 최병수와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런 사회적 장벽으로 가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외롭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정확히 말해 그의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조차 그를 기만하고 이용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임금투쟁으로, 환경운동이 이권사업으로, 농민운동이 땅값 올리자는 것이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도 그가 끊임없이 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은 까닭이다. 변혁의 끝을 보기에는 작은 행동에 불과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인생과 투쟁과 그것들을 통해 더욱 넓어진 인식의 폭으로 그의 작품은 더욱 성숙해지고, 분노도 인류애라는 큰 틀 안에 녹아 든다. 더 이상 그는 부당함에 집중하지 않는다. 단지 자유, 평화, 진실, 휴머니즘이 인쇄문자로만 존재하는 문명의 끊임없는 모순에 대해서 고발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한다. 그에게 예술은, 작업은, 작품은 대화 그 자체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가난한 최병수가 아닌,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던 보일러공 최병수가 아닌,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당당히 물음표를 던지는 화가, 운동가, 예술가 최병수이다. 보일러공이던 목수던 화가던 직업 자체로서의 의미가 그에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화가로서의 삶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의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에서 그가 사랑하는 세상과 사람들과의 대화의 통로를 찾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외된 세상의 단면과 환경을 비롯하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그동안 관심이 없던 것이 아닌데도, 현장감이나 문제의식이 무뎌진 채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소시민 혹은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알게 됨으로써 동시에 그들 삶의 기쁨과 우리가 잃어버린 작은 행복들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진리를 향한 삶을 사는 아름다운 한 사람- 비록 그의 삶의 모습이 때때로 거칠고 투박하고 때때로 상스러울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을 알게 된 것에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 화가의 특이한 이력과 삶의 모습에 대해 나 역시 가졌을 세상 사람들의 선입견의 무게를 가늠해보면서, 그것이 그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에 대해서도 상상이 되었다. 무기라고까지 표현한 그의 일이 그래서 더욱 성숙해지고 빛을 발하게 되었을 것임에도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삶 자체에 대해 애처로움이 들었다. 그는 이제 정착하려 한다. 또 지쳤다고도 하고, 그의 몸도 그것을 안다. 투쟁으로 정체성을 찾고 대화의 길을 모색한 화가 최병수의 삶은 이제 더 큰 진리를 향한 전환점에 서 있다. 구도자 혹은 순교자를 닮은 그의 아름다운 영혼이 참된 진리 안에서 온전한 평안을 얻게 되길 바라면서, 그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순이 돋고 자라나 또 다른 열매들을 가득 맺게 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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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지구환경보고서''와 함께 구입하여, 손에 잡고서 재밌게 읽었다. ]
이한열 열사 추모 판화, 녹아내리는 펭귄, 지구 반지, 새만금 갯벌의 솟대 등등 그의 대표작들을 책 속에서 사진으로 접하고, 그 작품에 대한 최병수 목수(화가 ^^?)의 작품에 대한 의미와 함께 접할 수 있었다.
통일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 환경운동(부안 핵폐기물처분장, 새만금간척, 사패산터널, 기후변화회의 등), 반전운동,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운동 현안들에서 그의 설치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어떠한 구호나 글쓰기보다도 전달력이 강하고 시각적인 효과가 띄어나다. 또한 그의 작품 자체가 갖는 형상 미술로써의 아름다움도 지닌다.
작년이었던가 그의 암 투병중 소식을 환경단체에 계신 분으로부터 접했다. 꿋꿋이 지병을 극복하길 바라고, 그의 다음 작품, 특히 ''컨베이어 벨트'' 표현될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기대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처음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루었던 때부터 모아놓았던 자료를 다시 풀어놓고 보다가 남극 빙하에 조그만 펭귄 한 마리가 혼자 서있는 자료를 발견했지. 그때 얼음 펭귄 아이디어가 나온 거야.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수면이 올라가면 펭귄도 사라진다는 두가지 생각을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시켰던 거지. 냉동실에 있는 조그만 각 얼음을 꺼내다가 칼로 뾰족하게 깍아보았어. 그런데 그게 날개 끝이 되어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거야. (중략) 펭귄이 녹아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되고 그게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지. |
| 2000년인가 광화문에서 ''지구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최병수를 처음 보았나 봅니다. 빡빡 깎은 머리와 불끈 솟은 핏줄,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얼음을 깎고 있었습니다. 위이이잉 돌아가는 엔진톱 소리와 척척 만들어지는 얼음 펭귄을 보며 꽤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작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최병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 행동주의 미술가의 전형을 보는 듯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곳이라면 펄펄 살아 있는 시대 정신으로 지체없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입니다. 해창 갯벌에 배 솟대를 설치하는가 하면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를 위해 망루를 세워 그곳에서 싸우고, 이라크에 전쟁이 나자 인간 방패로 나서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가 하면 평택 대추리에서 생명과 희망을 설치했습니다. 그이는 늘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는 두고두고 따라 다니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는 최병수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상상력의 본질을 거의 갖추어놓고 있다. 신화적인 상상력과 가장 잘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는 말처럼 그 그림은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는 동물들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오만한 지식으로 축적된 문명으로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역시 아랫배에 작살을 맞은 커다란 고래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림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은 고래 한 마리가 새끼를 데리고 유영하고 있다. 조금 가까이에서 보면 고래의 등과 꼬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동물들이 올라타고 있다. 여기서 고래는 자연과 생태를 파괴하는 인간을 벗어나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다. 왜 그들이 우리를 떠나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 반짝인다. 오른쪽에는 미지의 행성이 떠 있다. 그들은 절망의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248 - 249쪽)우리는>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