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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이팅 시인이 그린 "기지촌 풍경 위에 덧칠해진 소외된 자들의 초상"
"인파이팅 시인이 그린 "기지촌 풍경 위에 덧칠해진 소외된 자들의 초상"" 내용보기
“박후기 시에는 세상의 무게가 실려 있다. 요즘 흔치 않은 인파이팅 시인으로서 그의 매력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의 품 안을 파고들 때 잘 드러난다.” - 장경린(시인) " 기지촌 풍경 위에 덧칠해진 소외된 자들의 초상 " 지난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질서에 의해 훼절되어 가는 소외 받은 자들의 현실과 굴절된 역사에 대한 탐구 의식
"인파이팅 시인이 그린 "기지촌 풍경 위에 덧칠해진 소외된 자들의 초상"" 내용보기
“박후기 시에는 세상의 무게가 실려 있다. 요즘 흔치 않은 인파이팅 시인으로서 그의 매력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의 품 안을 파고들 때 잘 드러난다.” - 장경린(시인) " 기지촌 풍경 위에 덧칠해진 소외된 자들의 초상 " 지난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질서에 의해 훼절되어 가는 소외 받은 자들의 현실과 굴절된 역사에 대한 탐구 의식으로 가득한 시들을 발표해 주목을 받아 온 박후기 시인이 첫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를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불러오는 풍선의 표면에 들러붙은 티끌처럼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변두리의 버스 종점이 시(市)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듯 젖은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것들을 이끌고 더욱 깊숙한 어둠 속으로 나는 달려간다 뒤돌아보면, 불 꺼진 내가 살던 집 눈감은 창문이여 안녕 나는 이제 처절한 밤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잠든 네 몸을 흔들어 깨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호롱을 떠난 불빛과 같고 다만, 검은 그을음 같은 구름만이 뒤돌아보는 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린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멀어져 가는 별들의 뒷모습처럼 보일 듯 말 듯 위태롭게 빛날지라도 - <움직이는 별> 중에서.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틀에서 벗어나거나 비껴난 삶은 위의 시가 노래하고 있듯이 어떤 ‘움직이는 별’의 행로를 따르게 되는데, 시적 소재나 제재 혹은 그 내용의 측면에서든 아니면 창작의 원리나 미적 형식의 측면에서든 박후기의 시세계는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에 실린 시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의 삶이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정신의 자기성찰이라는 오랜 ‘시간의 반추’에 의해 직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억과 성찰의 그물망에 의해 포획된 존재와 삶의 풍경 속에는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적인 질서에 의해 뿌리 뽑힌 채 떠도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웃들의 초상이 음울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후기의 시가 펼쳐 보이는 삶의 풍경 속에는 우선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힌 자의 우수나 비애와 더불어 유랑하는 삶의 궤적이 아주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뿌리 뽑힌 자들의 다양한 초상의 목록은 이 시집에서 도시빈민인 일용노동자나 신축빌딩의 인부로부터 미군부대나 그 주변에서 근무하는 잡직 근로자와 기지촌 여성, 철거민, 소농을 거쳐 심지어 팔레스타인 난민에까지 이른다.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에서 유랑의 삶은 무엇보다도 이 같은 원초적 가난에 의해 직접적으로 구속되어 있다. 박후기의 시세계에서 이러한 가난은 주로 ‘허기’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적인 실감을 획득하고 있다. 시집에서 이 같은 유랑의 삶은 ‘미군부대’ 혹은 ‘기지촌’으로 상징되는 공간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 공간적 배경이야말로 바로 저 비극적인 유랑의 삶 자체의 상징이다. <도두리> <애자의 슬픔> <옆집에 사는 앨리스> <목필 연가> 등 많은 작품들에서 미군부대는 유랑하는 삶의 그림자와도 같은 어두운 배경을 형성한다. 그러나 박후기의 시세계에서 이 ‘미군부대’가 상징하는 바는 다소 복합적이다. 그것은 분단체제 아래 있는 이 땅의 비극을 지시하기 위한 상징일 수도 있고, 미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에 의해 포획된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현실을 지시하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으며, 또 강압적인 군사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지난 시대의 역사적 질곡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 장치일 수도 있다. 미군부대로 상징되는 이 비극적 현실은 시인의 시세계를 지배하는 주된 심리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신주 위의 애자가 몸을 떨고 있네 기지촌에 비는 내리고 먼 데서 달려온 뜨거운 전기가 쉴 새 없이 애자의 몸을 핥고 지나갔네 철조망에 매달린 물방울이 보이네 전선을 타고 흐르는 애자의 눈물이 보이네 고통은 길지만 지나가는 것이고, 생(生)은 애자의 몸을 시커멓게 더럽히며 사라진 찰나의 스파크 같은 것이라네 깨진 애자의 젖은 몸이 길 위에 뒹굴고 미제 험비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불에 그을린 애자의 몸을 밟고 지나갔네 ― <애자의 슬픔> 전문 처연한 삶의 실상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부가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저 곤핍했을 여성의 삶과 죽음을 하나의 풍경으로만 제시하고 있는 이 시에서 저 전신주 위의 ‘애자’는 미군부대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어떤 기지촌의 접대부였을 한 젊은 처자의 이름을 지시하는 중의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깨진 애자’와 ‘그을린 애자’는 가난으로 인한 이 젊은 여성의 삶에 난 균열과 상처를, “그을린 애자의 몸을 밟고 지나”가는 미제 군용차량(‘험비’)의 이미지는 이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애자의 슬픔’은 원초적인 가난과 외세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이 땅의 자본주의적 현실이라는 이중의 상처와 고통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후기의 시세계에서 미군부대로 상징되는 현실의 상처와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대변하는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이미지이다. 시집에서 이 아버지는 서울 도심 외곽의 한 도시(시집에 등장하는 ‘도두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평택시쯤일 듯하다. 사실상 최근엔 미군부대 이전과 확장을 두고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에 위치하고 있는 미군부대의 근로자로 일하다가 마침내는 거기에서 죽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어떠한 과장된 수사나 현란한 문체도 사양한 채 오로지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하나의 실존적 삶의 풍경을 제시하고자 하는 박후기의 시세계는 가난과 유랑의 삶을 그 현실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는 또한 뿌리 뽑힌 자들이 지닐 수밖에 없는 어떤 삶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인상깊은구절]
눈발은 해마다 폐교를 찾아오지만 세상의 모든 졸업생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느니 어느덧 나는 어른이 되어 철봉 대신 연봉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철봉은 힘이 세다> 중에서. 고단한 청춘의 매트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에 깔려 뭉개져버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를 보면, 멀쩡한 두 귀를 달고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형감각 없이 흔들리는 내 어리석은 마음이 측은하고 내 것 아닌 절망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잘 생긴 내 두 귀가 서글퍼진다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중에서.
s****7 2006.03.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