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장면부터 ''알리스''라는 존재가 아니라, 알리스의 신체, 허벅지, 발 등 신체의 일부를 상세히 묘사한다. 한 인격체로서 알리스가 아니라, 해체된 알리스가 있을 뿐이다. 알리스의 삶에 갑자기 끼어든 바람둥이 아버지는 ''예쁘지 않으니까 남자에게 친절하라''고 충고한다. 알리스의 방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공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먹기 시작한다. 알리스는 식욕과 식욕의 경계가 모호하다. 다시말해 욕망의 경계가 모호하다. 콘아이스크림먹기는 오럴섹스의 상징처럼 쓰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음식에 대한 식욕으로 대체된다. 사랑받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처절하리만큼 끔찍한 욕구, 식욕과 성욕이 버무려져 안그래도 정체감이 없는 알리스의 삶을 처절하게 파괴시키고 만다. 아무리 먹어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알리스가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두 쌍동이에 의해 먹힘을 당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존재가 흔들리고, 어머니에게 남자를 빼앗긴 채 알리스라는 자신을 잃고 마침내 소시지가 되고, 결국에는 존재도 없이 먹히고 만다. 짧은 동화. 우울한 동화, 밋밋한 구성이었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단순한 플롯은 욕망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단순한 것이라는 상징으로도 읽혔으니까 그다지 큰 실패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은 언제 어떤 계기로 표출 될 지는 아무도 계산할 수 없다. 곱게 포장된 외모 속에 숨겨진 본성, 욕망. 그 적나라한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안을 꼭꼭 채워 만든 소시지나, 욕망으로 꼭꼭 채워진 인간이나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알리스가 소시지가 된 것은 적절한(!) 변신이지 싶다. 동생이 그려준 초상화조차 욕망 덩어리 알리스의 소시지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내면의 감춰진 욕망의 실체를 직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에게도 있겠지. 한번쯤은 내 안에 잠겨있는 욕망의 실체를 꺼내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욕망을 꺼내 보는 일이 두렵다. |
| 바람둥이 아버지와 바람둥이 어머니 사이에서 어느쪽과도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알리스. 알리스는 늘씬한 각선미와 고운 피부에 한껏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꾸미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며 도도하게 살아나가는 순진한 아가씨다. 그러나 어느날 불쑥 찾아온 아버지의 한 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알리스, 넌 예쁘지 않아. 그러니까 남자들에게 친절해져야해." 어느 아빠가 딸에게 ''예쁘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을가... 게다가 친절해지라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 그녀의 모든 가치관은 와르르 무너지게 되고, 그 무너진 틈을 채우기 위해 알리스는 끝없이 먹어대게 되고,급기야 남자들이 넘보기 "쉬운" 몸매의 아가씨가 되고 만다. 식욕과 성욕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구멍난 독처럼 계속 알리스를 잠식해나가고, 또다시 불쑥 찾아온 엄마에 의해 다정한 애인까지 빼았기고 만 알리스는 언제나 위안이 되어준 동생을 찾아가는데.. 동생이 그려준 한 장의 그림에는, 예전의 날씬한 몸매의 알리스가 아니라.... 소시지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정말로 소시지가 되기로 결심한 알리스의 이야기.... 책 속에는 갖가지 맛있는 이탈리아음식과 디저트들이 성행위와 어우러져 질펀하게 묘사된다. 남자를 상대하기 전에 먹고, 상대하면서 먹고, 상대하고 나서도 먹고... 남자들은... 색다른 경험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음식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영화 ''301,302''가 떠올랐다. 많은 영화와 책들에서 식욕과 성욕을 함께 묘사하기도 하고, 섹스어필한 광고에서도 음식을 소재로 영상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식욕과 성욕은 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인듯하다. ''친절한 알리스씨''가 되려고 했던 알리스, 게걸스럽게 음식과 남자를 먹어치우다가, 결국은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먹히고 마는 ''친절했던 알리스씨''... 아멜리 노통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이 책의 결말에 찬사를 보낼 듯.... |
|
마리다리외세크의 <암퇘지>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암퇘지는 "향수"가 연상되었지고 <향수-암퇘지-알리스와소시지>로가면서부터 가장 더 함축적이고,더 간단하고 더 알기쉽게 이해가 되는듯하다(책두께도 알리스쪽으로 갈수록 얇아짐ㅎㅎ)이 작품들의 공통점이라면 초중반부의 긴장도 그렇고 다분히 선정적인 묘사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변신'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암퇘지>라는 소설도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알리스와소시지보다는 암퇘지가 대중적으로 훨씬 더 많이 알려져있기도 하거니와.... 충격적인 묘사덕분에 잔인한 영화를 아무생각 없이 보고싶을때처럼 그렇게 봐줄 수 있는 책이다 천박함을 작품성으로 승화시킬려는 수고가 안습이긴하지만 암퇘지는 명성에 비해 그저 나에게는 아직 미완성같다 라는 느낌 하나만 남았을뿐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공감할수없고,그저 독서의끝,결말이 보고싶었다 알리스와소시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간결하고 착착 빠르게 전개되는 방식으로 인해 하나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 난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타자와, 여자이기에,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본성에 초점을 맞춘책이다 그러기에 책을 읽는 우리라는 타자의 시선을 알리스는 부정하며 자기얘기를 최대한 아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알리스의 경우에는 그 자체로 완벽한,하나의 "먹는존재"에서 먹히는 존재로의 변신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존재에서 그 욕망을 무화시키고 순전히 타인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존재로의 변신을 한것이다 빛나는 청춘과 아름다운 외모를 한 여자의 완벽한 삶에,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의 존재는 그녀의 삶에 균열을 만드는 존재들이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리고 심지어는 그녀의 변신을 부추기기 까지 한다필요한 타자의 부재에도 완벽하던 삶이 그들의 개입이 시작되는 순 간 악몽이 시작되는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암퇘지>의 단순한 요약본이라고도 할수있으면서도 주제의식은 약간 다르다 <암퇘지>가 사회에 의해 변해가는 약한존재를 그려낸것이라면, 알리스와 소시지는 자아와타자,인간적인것과 비인간적인것,끊임없이 요구하는 허한 마음의 "위장"에 대한 여자로써의 비참함,무너짐을 말하는것같다 집착과 공허함의 경계선에 있다면, 공중에 유약하게 줄이 쳐져있는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
| 으아아앗, 뭐라고 딱 집어 말해야 할까? 책을 진듯하게 읽을 여가가 없어진 요즘은 책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같은 페이지를 몇번이고 읽거나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페이지를 뒤적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선택했다. 백오십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일단은 나를 안심시켰고 다른 분야보다 쉬운 현대 문학이라는 장점이 거기에 더해졌다. 큼직한 글씨와 짧은 호흡도 한 몫했다. 그러나, 항상 방심은 근물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헉하는 나의 외침과 함께 풋고추인줄 알고 먹은 매운 맛에 느끼는 배신감은 두 눈 찡~감아도 삐져 나오는 눈물에 버금간다. 알리스와 소시지가 그렇게 매운 맛이 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완벽한 몸매에 꼿꼿한 자존심을 가진 알리스. 힐끔 거리며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만족하며 사는 그녀. 그 시선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루에 몇시간이고 외모에 투자를 하는데,, 그런데 애인과 싸우고 나타난 아버지는 알리스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다정한 여자가 돼야 해. 어쨌든 남자들에게 아주 잘해줘라." 자신의 외모를 최상으로 예기던 알리스에게는 충격적인 말인 동시에 어쩌면 다정한 여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낳는다. 그리고 그 말은 나에게는 대체 어떤 아버지가 딸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낳는다. 어쨌든 알리스 방에서 나가지도 않은 채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다정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들과 함께하는 만큼 먹음, 식욕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많은 남자들을 않을수록 더 많이 먹게 되고 점점 알리스는 풍만하디 풍만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알리스의 섹스는 음식을 먹는 행위와 직결된다. 그리고 오럴의 행위는 "콘싸이즈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에 비유된다. "콘싸이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음식물을 함께 먹는 행위. 그 행위가 알리스를 자극한다. 그래서 알리스의 섹스는 다양한 음식 맛을 지닌다. 점점 알리스는 나가는 일도 없어지고 씻지도 않고 컴컴한 방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런 알리스가 유일하게 몸을 움직일때는 그녀의 변하지 않는 60대의 애인이 오는 수요일 네시 반. 최상의 음식을 사오는 그녀에게 같이 살자고 권하는 지적인 신사를 위해서 온 몸을 다듬는다. 그런데 그런 남자는 알리스의 엄마와 눈이 맞아 버린다. 알리스의 세계는 점점 혼돈으로 치닫는 것이다. "대체 어쩌면 다정한 여자가 되지?" 알리스가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쌍둥이 형제와 함께하는 것. 알리스는 그때 자신이 가진 모든 음식을 내어준다.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알리스의 행복의 근원인데, 그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어째뜬 그 형제와 난잡한 섹스와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는 알리스를 살아가게 해주는 근원이다. 그런데 더 이상 아무도 알리스를 찾지 않는다. 쌍둥이 형제가 알리스가 소시지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알리스는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생을 찾아간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동생이 그려준 알리스의 초상화에는 먹음직스러운 큰 소시지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알리스는 결심한다. 자신이 소시지가 되기로,,, 그러면 쌍둥이 형제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매일 먹고 먹고 바닦에 온 몸을 뒹군다. 소시지처럼 되기 위해서 팔과 손목의 경계, 머리와 목의 경계등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길쭉하고 통통한 소시지처럼 뒹군다. 그리고 알리스의 눈이 파묻혀 더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살이 쪘을때, 쌍둥이 형제는 알리스를 찾아온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소시지를 발견한다. ps. 알리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인물인 듯 싶다. 정체성을 찾지 못한 이유를 들자면,, 꼬리에 있듯이 어지러운 가정환경 탓이 아닐까? 뭐 그런 알리스에게 완벽한 몸매의 추구는 자신이 생각한 완벽한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몸매로 뭇 남자들의 시선을 받으면 당당하게 걷는 것. 그런 알리스의 세계가 무너졌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부정을 받은 것이다. 자신은 완벽하게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그것도 아버지이지만 남자가. 그렇게 알리스의 방황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알리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도 우수운 일이지만, 그런 일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나의 모습이라면,, 더더군다나, "넌, 이러이러하구나,,,"라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험담이라면 그냥 듣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라니,, 충격은 대단한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벗어나서 살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알리스가 소시지가 되기로 한것은 그런 뜻인듯 하다. 남들의 평가에 자신을 마추기로한,,, 자신의 선택. 그럼 우리는 알리스처럼 선택을 해야할까? 아니면 반대의 선택을 해야할까? 남의 이목이냐, 나 스스로의 생각이냐.. 평생을 생각해도 우왕자왕할 문제인듯 한 느낌이 드는건 왜 일까? |
|
알리스는 모든것을 가지고 있던 아가씨였다
모든 남성이 그녀의 발 아래에 있었고, 그녀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녀만의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어느날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면서
그녀는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친구도, 어머니도 그녀의 의문에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고, 그저 그 말 한마디로 그녀의 인생은 바뀌어 버린다.
순진한 도서관 사서에서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창녀로 변해가는 과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그리 슬프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이 당연하게 느껴져 버렸으나,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락에서 빠져나올줄 알았다
마지막 반전은 생각도 못했던 깜찍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을때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으나
책을 덮고 나서는 내 마음을 다잡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바보같은 순진함, 멍청함, 어리석음을 탓하는 내가
어쩌면 내 마음 한곳에는 나도 ''친절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눈꼽만큼은 있었음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쉽게 들고 다니며 쉽게 읽을수 있으나
결코 쉽게 생각해버리고 잊어버릴수는 없는
따끔거리는 소설이다 [인상깊은구절] 쌍둥이의 욕망에는 그녀에 대한 절대적 인정, 무한한 신뢰가 서려 있었다 드디어 쌍둥이들에게 그녀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보여줄 완벽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p.139) |
| 알리스와 소시지의 관계, 제목만 보고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알리스란 여자와 소시지는 어떤 관계인지 호기심이 발동했고 읽는 동안 호기심은 여러가지 불편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답답함, 짜증, 혐오감, 경악 그리고 많은 알리스와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 얇은 책이기에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은 순식간이란 단어를 쓸만큼 나를 책에 빠져들게 했다. 빠져들었던 시간이 끝난 후 이번에는 생각의 늪에 빠져드는 나를 봤다. 바느질을할 때면 실이 얽힐때가 있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고 풀려고 애쓸수록 더 단단히 매듭지어져 결국 자르지 않고는 바느질을 계속할 수도 매듭을 지을수도 없게된다. 이때 세가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얽힌 매듭을 푸는 사람, 간단히 가위로 그 부분을 자르고 새로 바느질을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끝까지 얽힌 부분을 힘을 계속 주면서 더욱 단단하게 매듭을 만들면서도 언젠가는 풀릴거라는 헛된 기대로 결국은 실은 물론이고 바늘까지 부러뜨려 더이상 바느질을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알리스는 바로 세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로마에서 그녀가 지나가면 누구나 뒤돌아 본다. 그녀의 섬세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미니스커트를 입었으며 군살없이 매끄럽고 탄탄하며 견고한 복부, 갈비뼈와 풍만하며서도 모양이 잘 잡힌 가슴도 모잘라 연약한 팔목과 매끈한 피부를 가진 그녀를 누가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이름이 알리스다. 그녀는 요즘말로 하면 얼짱에 몸짱이였다. 문제는 그녀, 성격짱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비단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이다.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던 그녀, 단 한마디의 말에 그것을 중단하고 우울에 빠져 폭식과 섹스에만 매달린다. 단 한마디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망나니 같은,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도대체 아버지를 왜 사랑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한껏 치장하고 나간 자리에서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는 그녀를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자신의 사랑타령만 하다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한마디를 한다.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그 말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흔들리게 한다. 뿌리채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서 어느 평론가가 던진 실없는 깊이가 없다는 말에 촉망받는 젊은 여자화가는 깊이에 대한 고뇌로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때 내내 한가지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책 속에 들어가서 당신이 들었던 말은 틀린 말이라고. 그것을 모르겠냐고.''라고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 어떻게 인간은 저렇게 그저 흘러가는 말에 자신의 삶을 내던지면서까지 흔들릴 수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섭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파멸로 몰고 갔을까. 그녀는 예뻤다. 그녀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다. 얼굴을 가꾸고 몸을 가꾸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는 타인의 시선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며 가치를 높여주었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던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그녀가 유일하게 가진 삶의 무기이자 버팀목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를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혹으 사랑받고 싶은 유일한 남자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릴때부터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였으니 아버지란 존재는 그녀에게 태어나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첫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인 아버지의 말이었으니 그녀는 끊임없이 그말을 의심하면서도 그말을 믿게 되고 그동안 믿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허탈감이 몰려와 그것을 식욕으로 대체하게 되다. 식욕으로 마음의 허탈감을 채우기 시작한 그녀의 내장은 블랙홀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전함과 상실감은 여전했으며 그럴수록 그녀는 더 많이 먹었다. 식욕은 상실감에 빠진 그녀를 위로하는 방법이었다면 성욕은 그녀의 아버지 말대로 남자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여자가 되기 위한 남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의 도구였다. 섹스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는 그녀에게 성욕과 식욕은 같은 것이었다. 그녀를 위한 식욕과 남자들을 위한 친절의 도구인 성욕은 딱 똑같은 욕구로 그녀를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먹어댈수록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녀 속의 블랙홀은 채워지지 않았으며 아름답던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가는 그녀가 택한 인간 소시지. 그것으로 그녀는 정말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돌이키고 싶어도 그럴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깨달았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라는 의문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했던 그녀, 아름다움으로 자신이 존재할 가치를 느꼈던 그녀, 그 가치를 잊자 친절로 존재할 가치를 대신하고 싶어했던 그녀,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친절히 대했것만 그녀를 떠나가던 사람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 소시지가 된 그녀.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알리스와 소시지란 두개의 관계를 읽어내려가며 혹은 생각하며, 그녀가 답답해서 죽을뻔했으며 그녀가 불쌍해서 가슴이 아팠으며 그녀를 바로 일으켜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녀를 일으켜 줄 수 있겠는가. 나에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하고 다른 것으로 욕구를 채우려는 알리스의 모습은 나와도 겹쳐지는 것이 사실인 것을. 어쩌면 그건 현대인들 대부분의 모습과도 겹쳐질 것이다. 나를 제대로 찾는 것, 나에 대한 정체성 정립은 나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깊이에의> |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적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로마에서 가장 잘빠진 몸을 가진 쭉빵녀다. 시내를 거닐면 남자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고, 그녀 자신도 스스로 얼마나 멋진지 알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레몬으로 제모를 하고 거울에 자기의 몸을 비추어본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고르고 예쁜 발을 치장할 신발을 고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린다. "여자, 여자, 여자들이란...... 내 딸아, 넌 마릴린 먼로가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기억해두렴. 친절한 여자가 돼야 해. 남자들에게 정말 잘해줘야 한다. 넌 여자니까, 예쁘든지 다정하든지 둘 중 하나는 돼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알겠니?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남자들에게 아주 잘해줘라." P24 아버지는 천하의 호색한에 바람둥이다. 새 애인과 연애를 즐기다가 가끔 로마에 들러 딸을 만나고 가지만 한번도 보고싶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아버지이기 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을 즐기는 것 뿐이다.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딸에게 못생겼다며 친절해야 한다고 하다니! "일단 남자들 얘기를 잘 들어줘야 해. 자기들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게 해줘야 해. 그리고 가끔 ''콘 아이스크림''도 먹어줘야 하고." P49 폴리 폴리는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를 가꾸고 몸매를 만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연애를 즐긴다. 오히려 쭉빵녀 알리스보다 박식한 연애학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남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내가 원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내 간절한 소망들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접고 그저 남의 욕망에 부응하며 살아야 하나?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뭐지에만 신경쓰면서? P53 자신이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득의양양했던 그녀는 아버지와의 만남 이후로 절망에 빠진다. 정말 내가 예쁘지 않아? 그녀는 친절해지기로 했다. 그녀의 집으로 남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녀는 단 한번의 거절 없이 그들을 맞이한다. 거절이란 곧 불친절이므로. 누구든 똑같은 것을 해 주었다. 남자들이 불쾌해 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곧 그녀의 잘못이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남자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남자들 중 파비오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공손하게 대했는데 청혼까지 했더랬다. 알리스는 어머니가 파비오에게 애교 떠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 애가 나왔네요. 세상에, 너 완전히 돼지 됐구나! 전에는 그렇게 날씬하더니. 모름지기 여자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말아야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 어머니는 파비오의 손을 자기 뺨에 가져다댔다.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는 딸의 남자를 꼬드기고 있었다. 그것도 딸에게 가장 너그러운 남자를. 파비오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며 알리스에게 인사했다. 삼 주 후, 어머니가 전화했다. 어머니와 파비오는 파우실리페의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산다고 했따. 카프리 섬에서 결혼했고, 다시 알리스에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P110 파비오는 그렇게 어머니의 (아마도) 31번째 애인이자 두번째 남편이 되었다. 동생이 그린 그림은 다름아닌 소시지였다... 토니노 눈에 내가 소시지로 비쳤단 말인가? 토니노는 지극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알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진실을 그렸다. P116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가지게 된 알리스는 살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소시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그 살을 빵빵하게 채워야했다. 그렇게 그녀는 소시지가 되었다. "여자란 자고로 꾸며야 여자지, 아무리 예쁜 여자도 꾸미지 않으면 곧 퇴물이 되어버려." 한번 쯤 들어보거나 해보았던 우스갯소리들. 이미 얼짱만큼 몸짱, 그리고 이왕이면 얼짱+몸짱에 환호하는 세상이다. 개개인의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아마도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판단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매력 덕분에 질리지 않는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는걸까? 요즘은 여자들에 대해 쭉빵이라는 둥 외모중시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이외에도 예쁜 남자도 선호하는 시대이다. 트렌드이기 이전에 순간의 감동, 일회적인 유희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이미 만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하면 고맙겠지만, 이러다가 결국 모두 소시지가 되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
|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꼬마아이는 자신이 귀엽지도 않고 웃는것도 예쁘지 않다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너무 귀엽고 예쁜 아이인데 특히 웃을땐 더더욱..
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그런데 그 답은 그 아이의 아빠였다..
아이가 끔찍히 무서워했던 아빠의 한마디가 아이를 그렇게 만든것이다..
처음엔 도무지 알리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아가씨가 왜 그럴까..왜 그랬을까..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어찌 그녀를 이렇게 망가지게 할 수 있었을까..
한동안 머리속에 맴돌았다.. 이해가 안되니 눈에 들어올리 없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제 조금은 이해한다.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의 말 한마디는 어디서건 괴력을 발휘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수년간 길러오던 머리칼을 자르기도 하지 않던가..
그 후부터 이 책은 아주 흥미롭게 다가온다. 자신을 소시지로 만드는 여성에 대해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그리고 그녀의 특별한 친절함을 그 누가 생각했을까 싶다..
이 책은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알리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는 그녀.. 시간이 좀 지나면 이해할수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지금 책이 없는 관계로... |
|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하고 자신을 아꼈던 아름다운 아가씨 알리스.모든 여성이 그러하듯이 알리스 또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아니, 알리스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름다운 외모 손질하기에 바쳤을 정도로 좀 과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정도로 남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거리를 한번 나가면 남자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젖혔을 정도니까 말이다. 알리스에겐 자신의 아름다움이 곧 자신의 인격이며 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 아름다움을 유지시키는 일이 그녀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아버지의 한마디 말 앞에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되고 자신이 이룩했던 세계는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 만약 아름답지 않으면 친절해야만 한다 라는 아버지의 말은 알리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게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추호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알리스 였는데 아버지가 넌 예쁘지 않으니 남자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잘해줘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모든 남성들이 우러러 보는 외모를 가졌다고 자부해왔는데 자신이 전혀 예쁘지 않다니. 오직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온 알리스에겐 그건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아버지의 충격적인 말때문에 그녀는 삶의 신념을 잃게 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알리스는 주변의 모든 음식을 계속해서 먹게된다. 아버지가 남긴 상처와 아픔을 잊기위해서 말이다. 계속 계속 그녀는 먹고 또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충족되지 않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 먹지만 그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어머니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해보지만 오히려 더 큰 슬픔만 얻었을 뿐이었다. 알리스의 아버지는 딸에게 몹쓸 말을 하고, 어머니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다. 이젠 알리스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은 그녀 주변엔 존재하지 않고 그녀는 점점 자신을 제어할 힘도,자신이 나아가야할 길도 모른채로 잘못된 길로 계속 가고있을 뿐이다. 난 이제 예쁘지 않으니 남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알리스에게 이젠 외모 가꾸기는 더이상 필요없어졌다.지금까지 외모 가꾸기에 온 시간을 투자했던 만큼, 이제 알리스는 모든 시간을 남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 된다. 알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콘 아이스크림을 남자들에게 해주었는데 그들이 너무나 좋아하면서 순식간에 알리스는 친절한 여자가 되어갔다. 아버지가 말한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들과의 행위를 통해 얻게되는 다양한 음식이 언제나 굶주려 있는 알리스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이 상황을 만족해 한다. 게다가 남자들에겐 쾌락을 주니 아버지의 말대로 그녀는 친절한 여자가 된 것이다. 알리스는 이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없어진, 계속 먹어치우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엔 자신이 사랑하는 쌍둥이를 다시 찾기위해서 그녀는 스스로 소시지가 되고 그들에 의해 먹히는 장면에선 묘한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섬뜩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알리스는 자신의 몸이 먹히면서도 너무나 행복해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쌍둥이들, 즉 남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의 희열을 느끼게 된 알리스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남자들의 기분에 따라 자신의 희비가 엇갈리는 알리스는 과연 그녀 혼자 뿐일까 싶었다. 아닐 것이다. 남자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자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아버지가 알리스를 이렇게 만들었듯이, 남성들이 여성을 이런식으로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해야 너희 여자들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자신의 인격과 자존심과 존재의 이유를 모른채로 소시지가 되어버린 알리스의 이야기는 현실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었다. 이 땅에도 스스로 소시지가 되어가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조차 모른채로 말이다. 책을 읽고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을 정도로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알리스에 대한 연민과 슬픔으로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든 이 책은 내게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
| 예쁜 책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갈수록 풍자적이고, 다소 동화적인 내용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책을 놓지 못하고 다 읽어버렸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여러가지 생각들을 던져주더군요. 자아정체성의 확립이란 개인의 노력에 달렸음은 물론이고, 그 부모의 힘이 상당히 요구된다는것입니다. 알리스는 방랑하는 부모로 부터 ''자아 정체성''의 밑거름을 얻지못하고, 정체성의 표준을 외모에 두면서 살아가게됩니다. ''나''라는 기본적인 의미이자 ''자아''가 단순히 몸,신체 또는 껍질에만 국한되고 불행한 삶을 살기 시작한것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자아의 표준은 아버지의 한 마디에 의해서 산산히 부서지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그녀는 이제 더이상 '' 자아''라는 것을 지탱할수 없었고, 소시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책의 중반부에 묘사된 매춘부로서의 삶은 그녀가 생각하는 자아의 근본인 ''몸''을 통해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할수있습니다. 하지만 애초 그릇된 시초로 말미암아 그녀는 어떠한 궁극적인 본질에도 도달할수 없고, 그 절망감으로 스스로를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현실 삶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확립하고, 또한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 과정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부모의 역할이 중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시지가 될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던 한 여자를 통해서 나의 정체성과 더불어 그 본질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 이 책...''알리스와 소시지''를 추천하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