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과 같은 대작(大作)을 읽을 때에는 무엇보다 겸손함이 필요하다. 읽어내기 위해 정복하기 위해 달려들면 저자의 말대로 미개사회가 가진 ‘미메시스(mimesis)' 즉, 이런 방대한 책을 읽어내기에 급급해 하는 또는 정독에 대한 부담과 이해박약으로 속독을 해야만 하는 행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발전된 문명사회의 인간(독자)이 되기 위해선 조금 더 창조적인 독자(인간)가 되어야 한다.
"문명과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미개사회 사회의 본질적인 차이는 미메시스(mimesis;다른 사람의 말이나 몸짓을 똑같이 모방하여 그 성질 등을 나타내려는 수사법)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 두 종류에 있어서 미메시스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미개사회에서 미메시스는 연장자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연장자의 배후에 서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살아 있는 연장자의 위엄을 더해주는 죽은 조상들에게로 향한다. 이와 같이 미메시스가 과거를 향해 뒤돌아서 있는 사회에서는 습관이 사회를 지배해, 사회는 정적(靜的) 상태에 머무른다. 이것과는 반대로 문명의 과정에 있는 사회에서 미메시스는 개척자이므로 자연히 추종자들이 모여드는 창조적 인물에게로 향한다." (Ⅰ권 p.63)
이 책의 제목은 ‘역사의 연구’라기 보다 ‘문명의 연구’라고 해야 책의 내용에 좀 더 가까울 듯하다. 책이 출간된 20세기 중엽 무렵에는 역사를 문명의 등장과 성장 소멸에 따른 관점에서 해석한 경우는 없었다. 저자인 토인비는 20세기 중엽 유럽의 역사학계에 풍미하던 ‘문명단일론’을 전면 부정하고 직접 소개하는 19개 문명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해석관을 내놓는다.
"‘문명단일론’은 근대의 서구 역사가들이 그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된 잘못된 생각이다... 서구문명이 온 세계를 그 경제 조직의 그물 속으로 완전히 집어넣었기 때문이고, 또한 이 서구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적 통일에 이어 역시 서구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통일이 거의 같은 범위에 걸쳐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Ⅰ권 p.49)
정치·경제적 힘의 우위가 역사를 기술하는 펜의 힘과 비례하는 현실과 학계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지적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문명들 간의 충돌과 소멸 재탄생과 재충돌의 양상을 반복하는 형태로 이어진 역사를 해석하는데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소개한다.
"문명의 성장을 고찰했을 때 문명의 성장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드라마 연출의 연속의 형태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바 있는데, 이 드라마가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유가 각 응전마다 단지 그 한 응전을 일으키게 한 특정한 도전에 대해서만 성공적으로 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며, 또 그 응전이 새로운 사태를 만들 때마다 거기서 새로운 도전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이 하여 문명의 성장의 본질은 일종의 비약(엘랑)인데, 이 비약이 도전을 받는 인간으로 하여금 성공적 응전의 평형을 거쳐서 또 새로운 불균형을 낳게 하고, 이 불균형이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게 한다." (Ⅰ권 p.392)
4대 문명에서 출발한 역사가 중세를 거치고 서구그리스도교 세계의 형태로 다양한 도전과 응전을 거치며 이루게 되는 서구 근대국가들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해석이 새롭고 신선했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것은 저자의 극동사회 문명 특히, 중국 문명에 대한 예찬이 책의 곳곳에 소개되었다는 것이었다. 한(漢)제국을 수립한 ‘유방’의 치세와 업적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중국의 정신문화에 대한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서구 유럽의 지성사를 강타한 물질문명에 대한 회의에 대한 결과 인 듯 했다. 1,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trauma)로 갑작스럽게 동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동경과 탐닉이 서구 유럽의 문화로 유입된 현상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책을 어렵게 읽었다.
한 동안 어려운 책에는 손도 뻗지 않아야겠다.
“사물을 보는 각도는 수없이 많고, 역사가의 시각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Ⅱ권 p.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