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tsbi님의 글에 코멘트를 달려다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적어 봅니다. 무라카미 류가 우익적인 성향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극우는 아닙니다. 보통 극우파라 함은 보수주의자인데 이 사람은 다소 무정부주의자에 가깝고요. 오히려 한국에 자주 들리고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있다고 밝힐만큼 친한파에 가깝습니다. (대부분 스테미너 식이지만 ....) 다소 마초적인 성향도 있고 자본주의적인 모습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마약하는 소설가로 인식받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경제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으론 국내 작가로 따지자면 김진명과 비슷하다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류가 무기력한 일본젊은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부를 인정하지 않는 종래의 극우 쓰레기와는 격이 다릅니다. 책도 않읽고 작가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극우파 운운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아마도 gatsbi님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었다면 저런 글은 안썼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국내 감독에 의해 영화화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앎니다. 일본 극우파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라면 그런 결정이 가능했을까요?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쁘기 때문에 저런 소재가 다루어진다는 것에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책을 읽어보기 전에 소재만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 금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이라 하겠습니다. 저도 밀린 책들이 많아서 아직 안읽었습니다만 조만간 읽고 제대로된 리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책을 읽고 리뷰를 씁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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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11년. 눈부신 경제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의 현재는 암울하기만 하다. 국제 금융과 경제 위기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경제적으로 파산을 선고하고 살인적인 인플레와 국민의 10%가 실업자에 달하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동안 경제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던 일본의 경제력이 파탄나자 미국과 중국 등의 국제 열강들은 일본에 모두 등을 돌리고 만다. 믿고 따르던 미국이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일본을 버리자 국민들은 분노하지만, 그들은 국제 사회의 냉엄한 진리를 몰랐던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력은 그 나라의 힘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편 세계의 골칫덩이인 북한은 남한, 미국, 중국 등과 해빙 무드를 조성해 평화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 후에 북경 대저택으로 망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군부내 대미 강경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이에 북한 고위층은 몰락한 일본을 타깃으로 기발한 작전을 구상한다. 대미 강경파가 지휘하는 군단을 일본 후쿠오카로 파병해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계륵이니 일본에서 희생당해도 좋고, 후쿠오카를 점령해버리면 그것대로 좋다. 군단의 명칭은 ''고려원정대''로 하고 북한 내 반란군으로 발표해 버린다. 이러면 후쿠오카를 점령당한 일본측의 항의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명목상 북한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일본으로 망명하는 셈이니 북한측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이 작전의 이름이 바로 ''반도에서 나가라''이다.
고려원정대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 후쿠오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간다. 처음에는 9명의 특공대가 후쿠오카 돔의 3만 관중을 인질로 잡고 일본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500명의 추가 부대를 급파해 후쿠오카 시 일부를 점령한다. 12만 명의 추가 군단이 도착하는 예정일은 약 열흘 후, 일본 열도는 충격으로 혼미해진다. 그러나 고려원정대가 한 가지 몰랐던 것은 ''이시하라 그룹''이라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 집단의 존재였다. 일본인들도 고려원정대도 인간쓰레기 취급을 하며 무시했던 이들은 사실 파괴의 충동을 가슴 깊히 묻고 사는 위험한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테러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과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누구도 주인공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출연해 고려원정군의 테러에 대해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려원정군의 장교들과 사병들을 비롯해 일본의 정치인들, 불안에 떠는 일반 시민들, 이시하라 그룹의 소년들 등 다채로운 인물의 다채로운 시선으로 미증유의 테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만 50명에 가까울 정도인데 그들의 눈에 비친 테러의 실체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911테러'' 이후 변화한 테러의 양상도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다. 비행기가 대형 빌딩에 자폭하고, 이어 빌딩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영상도 안방에서 생생히 볼 수 있게 된 현대 상황에 맞춰 고려원정군의 테러 장면도 실시간으로 NHK 방송에서 중계하고 있다. 보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테러하면 연상되는 것은 보통 죽음과 파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절묘한 건 그런 테러의 이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오카를 점령한 북한군의 여성장교가 하는 일은 통조림이나 햄같은 식재료를 도매하는 업자와의 가격 합의다. 테러분자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게 아닌가. 12만 군인들의 식품, 의복, 주거지, 분뇨 처리 등의 일상적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장면은 보통 작가라면 상상해내기 힘든 절묘함이다. 작가 무라카미 류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무라카미 류는 작가이기 이전에 일본인이다. 그는 타자(고려원정군)의 눈에 비친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도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파악하는 일본인의 실체가 비판적으로 묘사되는데, 최초의 침투 과정에서 9인의 특공대는 그들을 발견한 부자(父子)를 죽이고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나중에 깨닫게 된 그 위화감의 정체는 부자에게 혼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도망도 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일본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 정세와 부족한 게 없는 경제 호황으로 일본인들이 식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원정군과 대결하는 인물들을 ''이시하라 그룹''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일본도로 사람을 죽이고, 47차례의 방화로 수십명의 인물들을 태워죽이는 등의 소년범들이지만 무기력한 식물이 아니다. 원초적인 파괴 본능을 잃지 않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울부짖는 야수같은 존재인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극악한 이시하라 그룹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받아야 할 비난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다소 동정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있고, 섣불리 그들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잘난 사회에서 약간의 성공이나마 거두기 위해 이빨을 감추고 사는 무기력한 사람들 속에서 거침없는 파괴 본능을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 일정한 통쾌감을 느낀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미워하는 일본인과 그래도 우리의 동포인 북한군이 대결하는 이 작품을 가볍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괜시리 불쾌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픽션이고, 사실 우리가 불쾌해할 만한 요소는 작품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단치 않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이 작품을 놓치는 건 분명히 손해다. 모든 걸 다 떠나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작가 무라카미 류는 어마어마한 양의 취재를 통해 작품을 벽돌성같이 탄탄하게 만들었고, 소설의 대중적 재미 역시 최고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정과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해 일그러진 영혼을 가지게 된 이시하라 그룹이 북한군과 마주하면서 함께 하는 일의 의미와 재미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어떻게든 작업을 완성시키고 싶다고 히노가 말했을 때,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공동작업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었다. 함께 서로를 도와가며 일을 분담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나간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도와준다. 이제까지 아무도 그런 관계를 가져 본 적조차 없다. 모두 고려가 죽도록 무서웠지만, 끝까지 작업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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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최신 장편소설 『반도에서 나가라』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본 후쿠오카를 점령하는 내용을 토대로 한 이번 작품은 작가의 치밀한 취재와 방대한 자료가 뒷받침된 리얼한 묘사가 돋보인다. 2005년도 노마문예상, 마이니치문화예술상 수상작이다.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시간당 50명씩 처형하겠다고 한다 그들은 반도에서 나가라 라는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무엇보다 후쿠오카 돔의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특수전 부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리얼한 묘사가 돋보인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집중하고 읽어야만 한다 북한측만 해도 선발대 고려원정군 그리고 노동당 3호 청사 음모그룹에 이시하라 그룹은 물론이고 도쿄 내각정보조사실에 내각위기관리센터 등등... 반도에서 나가라 이 작전때문에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이번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세밀한 현실추적과 날카로운 사회비판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작품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민감한 주제로 간주되는 북한을 과감하게 다루었다 물론 불편한 차별적 표현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가 차별을 조자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안심이 된다 |
| 무라카미 류의 <반도에서 나가라="">를 막 독파했다. 분량이 많아 사서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얼마 전 모 신문의 국제부장 칼럼에서 이 소설이 언급되기에 기회를 봐서 도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이러니 저러니 많은 말들이 있을 수 있다. 북한 특공대 묘사가 과장의 전형이 아닐까라느니, ''신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정부가 실제로 저렇게 허술할까라느니, 이상한 집단이 정예군을 몰살시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느니 등등. 이런 모든 국부적인 장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효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한 나라(some nations)의 내부 동향에 대한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이라는 점이다. 앞의 ''어떤'' 나라는 일본이 될 수도, 한국이 될 수도, 미국이 될 수도 있다. 한 때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톰 클랜시의 ''테크노 스릴러''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브레인스토밍 성격의 가상소설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톰 클랜시 소설의 경우 당사자가 당연히 미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미국 국방부가 톰 클랜시를 초빙해서는 ''소설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발생가능한 모든 테러 유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무라카미 류의 이 소설은 일본판 ''톰 클랜시 리포트'' 정도로 생각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에서 제기한 브레인스토밍 주제는, "과연 미국이 일본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주제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붙는다 : "일본이 현재와 같이 동북아 경시, 미국 유착 일변도로 간다면." 실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미국이 일본을 지구상에 하고 많은 ''평범한 나라'' 중의 하나로 본다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동맹? 알게 뭐람. 내란? 알아서 하세요.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침략? 사태가 커지지 않아 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잡겠다고 레바논 전체를 쑥대밭으로 헤집고 있는 지금, 미국의 레바논에 대한 태도가 이 소설 속에서는 일본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만 믿던 일본이, 작중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알 게 뭐람'' 태도에 혹독한 굴욕을 맛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에 고소해 할 것이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현실의 일본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램이나 환상을 현실과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일본인 작가가 자신들의 오만을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발표한 것이지, 무슨 우국지사인양 실제로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떠벌리는 내용이 아니다. 배경 설명만 보아도, 미국 달러가 폭락했다는데 일본 다음으로 미국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그 중국에 가장 많은 직접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이 덩달아 초토화 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픽션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만 ''특히나'' 더 망한 것으로 묘사된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미국이 한국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은 돈의 힘으로 버텨왔다지만, 우리가 일본만한 돈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과연 누구 빽으로 버텨왔는지 아니꼽더라도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 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일본에서 미국과 파탄난다는 시나리오를, 미국과 여러 모로 삐걱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실험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 것 같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절대로!반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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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 놓고 상권만 읽었다가, 올해 휴가 나와서 겨우 완독했다. 2011년 4월이면 내가 분대장을 갓 잡았을 때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감정이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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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과 한국문학을 섞어 놓은 듯한 묘한
내가 아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 뿐, 사실 무라카미 류씨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하루키보다 훨씬 이전에 등단 한 작가로서 하루키가 류씨의 이름을 따라 필명을 지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불거 졌었다. 하루키는 본명이라 금방 잠잠해 졌지만 말이다.
솔직한 감상을 한 마디로 쓰자면 이 책은 엄청나다. 일단 방대한 스토리구성과 엄청난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일본 북한군이 반란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후쿠오카에 잠입해 들어와 그곳을 점령해 가는 이야기이다. 북한군이 테마라는 것도 참신했고, 전개도 탄탄했다.
북한군의 잠입 > 후쿠오카 점령 > 일본 정부의 무능한 대응 > 후쿠오카의 일본 독립 > 후쿠오카 주민의 반란 > 반란 성공 > 북한군 지배의 붕괴
스토리에 구멍이 없고, 등장인물의 말들에서 사실감이 묻어나와서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순간 고민하게 만들었다. 예를들면 일본 작품인데도 북한군이 일본인을 대하면서 전쟁때 일본군이 조선인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며 분해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던가, 북한 사람들의 굶주린과 사상을 한국인들의 생각과 유사하게 표현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한군이 후쿠오카를 점령한 직후 탁상공론을 펼치며 초기 대응해 실패하여 문제를 확대시킨 무능한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북한군과의 인터뷰를 해 나가며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일본인 아나운서는 울면서 일본인을 죽이지 말라달라고 말한다.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감정적인 인물의 등장.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폭탄이나 독개구리를 사용하여 북한군을 물리친다는 결말 이러한 요소들은 일본문학에서 나타나는 요소이지 한국문학에서는 좀 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스타일이 적절히 섞여서 독특한 맛을 내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책의 초반에 홍길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홍길동이 반란을 일으켜 백성들을 끌고 나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북한군의 후쿠오카 점령에 끼워맞춘 것이다. 스톡홀룸 증후군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인즐들이 어느샌가 유괴범에게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쿠오카의 사람들도 어느샌가 북한군에게 동조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북학군의 후쿠오카 점령은 실패로 끝나지만, 무능한 정부 대응에 대한 표현과 후쿠오카 주민들의 심경변화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유토피아나 가나안의 땅 같은 꿈의 세상을.
작가의 고생이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런 엄청난 스토리에 100명 가까이 되는 주 등장인물들을 관리하고, 시점 변화까지. 책 뒷편에는 참고자료가 대학논문 만큼 잔뜩 들어있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소수자에 의한 반란의 저지라는 결말이 마음에 울림을 남긴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