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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만 나면 부지런히 영화를 보던 시절에는 아주 가끔씩 무성영화를 보기도 했었다. 무성영화하면 채플린 작품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이외에도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나 프랑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등등 세계 영화사에선 기념비적인 명작이라고 꼽히는 무성영화도 찾아봤고, 우리나라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검사와 여선생'을 본 기억이 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과장돼 보이는 연기에, 자막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보다보면 담백함이나 집중력있게 전개되는 이야기처럼 무성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는데, 느닷없이 무성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오늘 리뷰할 오즈 야스지로 작품이 무성영화이기 때문이다. '동경여관', 무려 1935년작이니 거의 8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다른 건 몰라도 연기만큼은 자연스러운 것이 , 오즈 야스지로의 자연스러움은 무성영화 시절부터 돋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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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이라면 중일전쟁이나 태평양 전쟁을 앞둔 그야말로 군국주의가 지배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 시절의 일본 영화 자체에 고운 시선으로만 보게 되지는 않았지만, 일본 제국주의라 해도 힘없는 민초들 역시나 희생자이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은 편한 시선으로 '동경여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차림새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키하치 3부자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 이 장면만으로도 이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어떤지를 시사해주고 있었다. 키하치의 아내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키하치는 일을 찾아서 아들 둘을 데리고 무작정 일자리를 구하러 배회한다. 그러다 여관 만성전에서 같이 묵은 여인, 어린 딸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여인에게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게 된다.
돈이 거의 다 떨어져갈 무렵 하늘이 도왔는지 우연이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게 된 키하치는 그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일자리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겨우 밥을 먹고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게 되는데, 술 마시러 갔다 그 곳에서 만성전에서 본 그 여인이 술 따르러 나타나자 기하치는 여인에게 화를 내고 만다. 이런 데서 일하지 않고 바르게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돈벌면 딸이 행복할 것 같냐고..일갈한다. 여인은 딸이 이질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돈이 없다고..해명하고, 그 해명을 듣고는 기하치는 여인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동경여관'에서는 군인 한 명 등장하지 않지만, 1930년대 최강의 군사력으로 타국을 지배하려던 군국주의의 그늘을 잘 잡아내고 있었다. 숙박비를 줄이려고 낯모르는 남녀노소가 한 방에서 묵는 일본 여관의 풍경이나 배고픔에 시달린 나머지 지나가는 개를 쫓아가고, 개는 식량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키하치 아들. 먹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고작 찹쌀떡이라고 말하는 아들. 더 맛있는 걸 말해도 된다고 하자, 그제서야 닭고기 계란덮밥, 비싼 음식을 말하고, 아버지는 술 한잔 마시고 싶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술 따라주고 아버지는 그 술을 마시는 놀이를 하면서 허기와 비참한 현실을 달래는데.. 웃고 있는 그들에게서 가혹한 현실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장면 장면에서 전시체제를 살아가는 민초의 고달픔이 묻어 나왔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 역시나 군부나 지배층의 전쟁이었지, 참전하고, 궁핍에 시달려야 했던 민초들에게는 과연 그 전쟁이 어떤 의미였을까. 최강의 나라가 민초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니건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키하치 아들과 여인의 딸은 티없이 뛰어놀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키하치와 여인이 잠시 동안이나라 환하게 웃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잠시나마 배고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고 모처럼 맛 본 행복이었을 것이다. 민초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무력이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소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다시 이들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로 돌아가 각자 일자리를 구하러 헤메고, 남자는 일자리를 구한 뒤에 모녀의 사정이 궁금해하던 차 술집에서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지만 키하치는 술집에 나온 그녀에게 대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 뒤 키하치, 그는 도둑질을 해 마련한 돈을 아들을 시켜 여인에게 전해주게 하고는 자신은 자수하러 경찰서로 간다. 자신의 일자리를 알아봐준 여인에게 두 아들을 부탁하고는..
뒷 부분의 전개에는 솔직히 썩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다른 여인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자신이 잡혀가면 아들 둘은 졸지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는 걸 감수하면서도, 다른 여인의 딸을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은 무책임해보였다. 여인을 향한 사랑에 자신의 아들을 잊은 채 충동적으로 도둑질 한 것일 수도 있고, 도둑질 한 뒤 이내 후회했을 것 같았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동경여관'의 마지만 자막은 이랬다.
그리고 하나의 영혼이 구원되었습니다.- 윈저트 모네
이 말에 가슴에서 바람이 일었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자를 향한 사랑에 자신의 아들 둘을 잊고 도둑질한 거 같은데, 술집에 나왔다고 이렇게 살지 말라고 훈계질 해놓고 자기는 도둑질해 되는 건가? 내 자식이 먼저지, 남의 자식 살리려고 도둑질하면 내자식 돌보는 걸 못하게 되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가? 지극히 현실적인 잣대를 갖고 기하치를 겨누던 비난은 일단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키하치가 모녀를 위해 감수한 희생의 의미를 차근차근 생각해보게 됐다. 아이를 한번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없어서 아이와 함께 죽을 수가 없었다던 그 여인의 말이 떠올랐고,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키하치는 그 모녀에게 더 살아서 반드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맞이하란 희망을 준 것이었을까. 그가 구원한 것은 자신이었을까. 여인이었을까.
힘으로 타인을, 타국을 정복하고 무릎 꿇리던 시대에, 더 희망이 없는 모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남자. 여인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또 나보다 더 절망에 빠진 사람을 향한 인간애라고 믿고 싶어졌다. 각박한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타인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