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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길렌(Michael Guillen; 1959 - )의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학 중심의 과학 지식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와 신앙, 진리와 지능의 관계를 다룬 최고의 책이다. 원제는 믿어야 보인다는 의미의 [Believing is Seeing]란 제목의 책이다. 코넬대학교에서 물리학, 수학, 천문학 분야의 통합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기독교인“인 자신은 ”과학적 방법과 성경, 이성과 신앙, 우주와 하나님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믿음을 우주 안팎의 모든 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그가 보는 믿음이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믿어야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주장을 신뢰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무언가가 사실일 수도 있다고 믿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조사해 보거나 확인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79, 80 페이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엄격한 오순절 계통의 가정에서 자란 저자는 어려서부터 조금씩 과학적 세계관을 흡수한 결과 UCLA를 졸업한 무렵 과학과 무신론의 세계에 푹 빠져 살며 그 둘(과학과 무신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1)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자유로운 생각들도 모두 증명할 수 없는 몇 가지 가정들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기(21 페이지) 때문이며, 2) 무신론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반대되며 오히려 기독교적 세계관이 본질적으로 과학적 세계관과 어울린다고 주장하기(81 페이지) 때문이다.
저자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과학에서조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즉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에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37, 38 페이지)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보통 물질은 약 4.9%, 암흑에너지는 약 68.3%, 암흑 물질은 약 26.8%를 차지한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반대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은 강한 중력을 행사해 은하가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공간 자체를 밀어내어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원리적으로 밀려나도록 만드는 가속 팽창의 원동력(척력 또는 반중력)으로 작용한다.
저자의 행보에 주요한 계기로 작용한 인물이 현재의 아내인 로렐이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수업의 학부생이었던 로렐의 제의로 저자는 함께 성경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 성경을 읽게 된 것은 책 자체 때문이 아니라 로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56 페이지) 신약성경을 읽어가는 동안 양자(量子)물리학을 생각하게 된 저자는 신약성경이 논리적이지 않은 만큼 양자물리학 역시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양자물리학은 분자, 원자, 전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불연속적 에너지와 입자들의 기묘한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이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해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신약성경에 비논리적인 면이 있다고 본 것은 1) 악질 중의 악질 죄인이라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2) 친구 뿐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 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 4) 참으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 5) 강자가 아니라 온순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며 기존의 논리와 초논리적(超論理的) 사고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사고는 우리를 자명한 진리로 이끈다. 자명한 진리의 반대는 항상 거짓이다. 초논리적 사고는 우리를 심오한 진리로 이끈다. 심오한 진리의 반대 역시 사실이다.’(60 페이지) 물론 저자가 양자물리학과 신약성경을 초논리적 사고의 두 가지 강력한 사례로 보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생각이 그의 무신론에 흠집을 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진리는 증명보다 크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 이론의 진리 여부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래의 어느 날 누군가 그 결론과 모순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로도 뒷받침된다.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많은 물리학자들, 수학자들의 이론을 접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리 스몰린, 마틴 리스, 숀 캐럴, 스티븐 와인버그, 브라이언 그린(이상 물리학자), 사비네 호센펠더, 모리스 클라인, 존 배로, 유진 위그너(수학자)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여섯 개의 수]라는 책의 저자인 마틴 리스의 경우를 보자. 리스가 든 여섯 개의 물리 상수(常數)는 N(뉴턴; 우주의 중력 크기),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 Ω(오메가; 암흑 물질과 우주의 밀도), λ(람다; 우주상수), Q(Quadrupole; 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 D(디멘션; 우주의 공간 차원 수) 등이다. 이는 우리 우주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미세 조정(Fine-tuning)되었으며 값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과 같은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틴 리스는 이런 조율이 그저 맹목적인 우연도, 인자한 신의 섭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류는 오직 올바르게 조합된 우주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인류가 현재 얼마나 귀한 상황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가령 수소가 융합해 헬륨이 될 때 질량의 몇 %가 에너지로 바뀌는지를 나타내는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의 경우 그것이 0.007%가 아닌 0.006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작았다 해도) 수소 외에 다른 원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0.008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컸어도) 빅뱅 직후 모든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어 물(H₂O)이나 별의 연료가 될 수소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떤가.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물질 분포의 미세한 주름(밀도 요동)의 크기를 나타내는 Q(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의 경우 약 10⁻⁵보다 작았다면 물질들이 중력으로 뭉치지 못해 은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이보다 컸다면 우주는 거대한 블랙홀들로 가득 차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거친 환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또 어떤가. 이들만 보더라도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양자물리학의 주요 정의와, 예수님은 필멸자(인간)이자 불멸자(신)라는 설명을 나란히 놓는다. 또한 모든 색상의 빛(레드, 그린, 블루)을 더하면 흰색이 되는 과학의 진리와,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기독교의 정의를 나란히 놓는다. 저자는 시간을 창조한 ‘시간 초월자’인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99 페이지) 저자의 이 정의는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기에 “나는 나다“라고 설명하는 전통 방식과 다른 참신하고 독특한 해석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신의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택한 결과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103 페이지) 저자는 지능지수(IQ; intelligent quotient)와 영적지수(SQ; spiritual quotient)를 함께 갖추는 것을 시너지 효과를 내는 3D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비유한다. 이 3차원 렌즈를 이용할 때 우리는 깊이와 의미를 인식하면서 우주의 물리적인 동시에 영적인 웅장함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단히 도약적이지만 근거가 충분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각은 우리가 죽어 불멸의 영혼으로서 창조주와 다시 만날 때 얻게 될 특권적인 시각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바울의 말을 예시한다.
저자는 많은 과학자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거나 아예 알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과학의 전체 구조 자체가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이라는 두 개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27 페이지) 저자는 모든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 맞서 믿음을 1) I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2) I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 3)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4) S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의 네 가지로 나눈다.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으로 저자는 양자 진공(眞空) 및 성경의 하나님을 든다. 인간은 좌뇌형, 우뇌형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를 모두 온전히 사용한다고(전뇌형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두 반구(半球)는 거의 정반대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더한다. 더 설명하면 좌뇌는 세상을 보고, 의식적으로 알고, 언어로 쉽게 묘사할 수 있고 우뇌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알고 비언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139 페이지) 그렇기에 오직 보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만 믿기로 선택한다면 문자 그대로 반쪽 뇌로 사는 셈이다. 믿어야 보이는 것이다.
깨달은 믿음은 뇌의 두 반구가 서로 잘 지내도록 만든다. 저자는 과학도 종교처럼 믿음에 의해 이끌리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144 페이지) 그리고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깨달은 믿음이 과학과 기술의 토대가 되기에 자연의 네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보다 강력하다고 결론짓는다.(146 페이지) 저자는 우리 뇌의 두 반구에 본래부터 내장된 자연적 선물인 믿음은 종교뿐 아니라 과학, 자신이 사랑하는 수학, 물리학, 천문학까지 작동시키는 힘인 반면 논리는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영리한 발명품으로 특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레시피 같은 것, 믿음을 핵심 재료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믿음이라는 자연적 선물은 논리에 의존하지 않으나 논리라는 발명품은 믿음에 의존하기에 실제로는 믿음이 논리보다 우월하다.(146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세속화된 과학적 방법 역시 증거는 있지만 증명은 없는 공리들을 믿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이 전제로 삼는 세 가지 공리적 믿음을 소개한다. 1) 우주는 설명이 가능하다. 2) 가능한 가장 단순한 설명이 항상 최선이다. 3) 실험이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이다.
저자는 우주의 합리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이 무한히 많은 숨겨진 우주들이 있다는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아원자 입자를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난해한 데이터로부터 추론하는 현실을 보며 그런 문제가 자신이 참여했던 거대한 실험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려는 현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한 지역에서 발굴된 한 개체의 턱뼈 하나만 가지고 그 종 전체에 대해 전 지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천문학자들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외계행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별의 궤도와 밝기의 미세한 변화를 근거로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에 대해 흥분된 주장을 한다.
그 별들은 무려 수천 조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역자주(譯者注)처럼 독자주(讀者注)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암흑에너지 논의도 관측이 아닌 추론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를 눈으로 봐서 믿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중력 법칙이 맞다면, 관측된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고도의 논리적 추론이자, 현재로서는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최선의 모델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자라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선입견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이 발표한 결론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저자가 구원자로 여기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신뢰하는 과학을 구사하고 작동하게 하는 믿음은 IQ와 SQ가 함께 작동하는 깨달은 믿음이다. SQ는 먹고 사는 것과 같은 현안(懸案)인 아닌 문제들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음미하게 한다. SQ가 있었기에 과학이 탄생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4차원 리만 세계, 기하학적 점, 양자 진공, 가상 입자 등과 같이 난해하면서도 초논리적인 수학 공리와 개념을 바탕으로 한 과학 이론들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왔다. 저자는 가상 입자들이 아주 짧은 시간 출몰하는 양자장(量子場)을 충분히 세게 튕기면 들을 수 있는 음을 만들어내는 유령 기타 줄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46 페이지)
”경험과 무관하게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낸 수학이 현실의 사물에 이렇게도 절묘하게 들어맞을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185 페이지) 이는 아인슈타인의 감탄이다. 저자의 감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이라 말하는 저자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때 신을 믿었던 것처럼 양자물리학의 기이한 논리를 믿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원자, 전자 등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양자 중첩 현상은 이상한 나라라는 미시 세계 거주자라면 누구나 지닌 일반적인 특성이다.
우주의 가장 깊숙한 비밀은 불확실성의 커튼 뒤에 숨겨져 있다. 도로시(오즈의 마법사의)와 같은 물리학은 그 커튼을 절대 걷어낼 수 없으며 우리의 강력한 SQ조차도 그 너머를 제한적으로 엿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성경 번역본, 해석 등 여러 항목에 관해 기독교인들의 의견이 상당히 엇갈리는 것처럼 양자물리학을 두고도 물리학자들 역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했고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243 페이지)
저자는 다른 종교들을 다룰 때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하게 파고들 때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신약성경의 핵심과 본질을 판단하려면 그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냉철하게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동정녀 탄생이 많은 사람에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먼저 만약 성경 속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면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생물학에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유전체에는 과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우리 종을 감염시킨 수많은 바이러스로부터 유래한 약 10만 개의 DNA 조각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이 고대 바이러스들은 주로 염색체의 중심부에 위치한 동원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의 염색체가 이렇듯 고대 바이러스의 DNA에 감염되어 있다면 구약성경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우리는 또 다른 고대의 전염성 병원체 역시 함께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아담과 하와의 반역 정신이라는 바이러스다. 이 오래된 병원체를 기독교인들은 원죄라고 부른다.(259, 26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비좁고 논리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참으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낮고 천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희생적 죽음이라는 모순적이면서도 초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친 무신론의 끝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우주와 생명의 가장 깊은 신비 속으로 뛰어드는 지적, 영적 여정의 시작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장엄하고도 불가해한 별들과 은하들, 퀘이사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 사랑에 넘치는 그러나 멀리 계신 하나님이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나와 당신,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 분을 인격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 분과 천상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268 페이지)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예수를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 SQ보다는 IQ에 지나치게 의존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바울의 말로 풀어낸다.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고린도전서 2장 14절)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무엇을 믿든 바울의 주장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불합리하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의 관점으로는 무신론자야말로 가장 속박되어 있으며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힘인 강한 핵력을 이루는 쿼크를 떼어내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입자 가속기로 원자핵을 폭격했지만 실패했음을 언급하며 이는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 사상가가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쿼크는 원자핵 안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쿼크는 강력의 근원과의 거리가 제로일 때 가장 자유로운 것이다.(291 페이지) 강력은 중력, 전자기력과 반대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결합력이 약해진다.
이를 점근자유성(漸近自由性)이라 한다. 쿼크는 원자핵의 중심부(양성자나 중성자의 내부)에서 서로 가장 가까이 뭉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다. 강력의 존재는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하나님의 임재 역시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여기서 결합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나 약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기에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강제적인 힘이 필요 없어지며 비로소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로만 믿음을 제한하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자신처럼 과학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는 성령이 마치 강력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실재하며 우리는 그것과 매우 밀접하다. 성령은 우리 안 깊숙이 우리 존재를 이루는 쿼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숨겨져 있다. 그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다.
저자는 당신의 세계관이 흔히 쓰이는 유행어처럼 증거 기반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초에는 증명할 수도, 볼 수도, 심지어 온전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공리적 신념들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설령 당신의 세계관이 무신론적일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308 페이지)
저자는 꿈과 소명의 차이를 인상적으로 논한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소명을 찾아나서라고 말한다. 저자의 책에 최근의 핫 이슈인 유신진화론이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물리학 지식만으로 하나님을 설명한 내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물리학 책보다 유익하고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어떤 기독교 책보다 영적이면서 설득력이 강한 책이다. 저자는 소명을 찾으려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멈추어 서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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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는 많은 생각 중 하나가 '과연 무엇이 정확한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건강식을 하면서 다양한 찬반 논란에 '어떤 데이터와 수치가 맞는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의 주장을 믿는가?'이다. 이 작은 식단 하나에도 나의 믿음이 결부되어 움직이는데 '과학도 믿음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자라면서 단순하게 배워온 과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1+1=2라는 단순한 이 진리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저자가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전공영역을 파헤치면서 결국엔 믿음의 영역이 토대가 되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걸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밝힐 수 없는 우주의 광활함, 정교하고도 섬세한 나의 몸,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최근에 아이가 관심을 가지던 우주 생명체에 대해서도 확고하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소장해두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꼭꼭 씹어서 같이 읽어나가고 싶다. 더 소원한 것은 아직 믿지 않으시는 아빠에게 가서 읽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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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길렌지음|김홍빈옮김 #야다북스 #하버드물리학자의무신론탈출기 #최고의책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과 고민 속에서 각자의 세계관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삶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만들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의 이면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삶의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풀어가야 할지, 내면 깊은 곳의 세계관을 차분히 정비하며 길을 나설 때 필요한 다각도의 통찰을 안겨주는 책이다. 저자 마이클 길렌은 하버드대 물리학 교수이자 과학 저널리스트로서 평생 과학적 증거를 탐구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의 최전선에 설수록 그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아는 우주의 존재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진실이었다. 맞다 우리가 지구에 대해 아는것또한 극히 일부일뿐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 뒤편에는 거대한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며, 우리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 속에 깊이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많다. 유대인 논문 지도교수와의 인연, 그리고 연인 로렐과 함께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과정은 그에게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 삶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무신론의 입장에서 곧바로 굴복하기보다 끝까지 따져보며 탐구했던 그의 태도는 진정한 앎을 향한 진지한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특히 59페이지의 구절은 이 책의 철학적·과학적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지 않고도 여기에 있던 것이 저기에 있을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중략)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넌센스인 것도 아니다." 이 대목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영역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자는 과학과 신학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공존하는 심오한 진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모든 색상의 빛을 더하면 흰색이 된다"는 과학적 사실과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신학적 고백을 나란히 비교하는 대목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두드리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세상은 초자연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예들을 읽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필사를 하거나 줄을 긋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저자가 타이타닉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러시아 잠수정 '미르 1호'를 타고 대서양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겪은 아찔한 사고 일화다. 프로펠러와 충돌하여 자칫 빠져나오지 못할 위기의 순간이었으나 조종사 빅토르는 침착한 마음으로 헤쳐나와 극적으로 미르 1호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암흑의 대서양 심해에서 그가 체감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생존의 기쁨을 넘어선, 시편 139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임재였다. 가장 어둡고 고립된 공간에서 온몸으로 느낀 영적 체험은 과학자로서의 이성과 신앙적 믿음이 어떻게 하나로 수렴되는지 감동적으로 증명한다. 과학과 기독교, 그리고 '믿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며 믿음에 대해 다각도로 짚어보는 과정은 참으로 새로웠다. 논리적 이성과 초자연적 믿음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보여지는 것도 못믿는시대이지만 정교하고 몰입되는 저자의 글로 바쁘고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의 뿌리와 세계관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을 때, 이 책은 꺼지지 않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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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길렌 | 야다북스 #북서번트서평사역단 #야다북스
과학에도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기에 '하버드 물리학자의 무신론 탈출기'라는 부제부터 흥미로웠다. 무신론자였던 과학자가 과학을 깊이 탐구하다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니! 역시나 였다. 사실 이 책은 나의 믿음의 시작을 떠올리게 했다. 나 역시 수많은 질문을 했지만, 모든 답을 얻어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믿음은 나의 이해를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였다. 이 책에서 좋았던 것은 무조건 믿으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학과 물리학, 천문학을 통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여정이 흥미로웠다. 믿음은 질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질문할 용기를 준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책 후반부에는 재미있는 활동도 있다. 😆 나의 믿음 자가진단 테스트! 진리 점수 85% 타이타닉 점수 40% 나의 결과다. ㅋㅋㅋ 20개 문항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점검하는 활동인데, 내가 무엇을 믿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러분의 점수는 몇 점일까요?😊😊 과학과 신앙은 반드시 충돌해야 할까? 이 질문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충분히 질문하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믿음은 질문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이 알아가는 시작이니까요! 💡 #믿음없는과학은존재하지않는다 #마이클길렌 #과학과신앙 #믿음자가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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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야 믿는 것일까, 믿어야 보이는 것일까?”
🔹 우리는 흔히 과학은 증명하는 것이고, 신앙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이성의 영역이고 믿음은 이성 너머의 영역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믿음 없이 과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차가운 과학의 언어로 뜨거운 신앙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까?
🔸 나의 MBTI는 INFP다. 저자의 MBTI를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ESTJ가 아닐까 싶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의 책을 만난 듯한 기시감 때문이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인 저자가 쓴 368페이지의 책이라니! 읽기도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북극곰이 반겨주는 표지와 자신의 학문적·신앙적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서문을 읽으며 그 걱정은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 저자 마이클 길렌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학과 믿음은 서로의 적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이라는 선물을 통해 믿음의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의 기발한 주장을 들어보라. 과학은 믿음을 토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수학은 증명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하고, 물리학은 새로운 발견 앞에서 기존의 확신을 수정하며, 천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너머의 광대한 미지와 마주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논리가 믿음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학의 섬조차 믿음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셈이다.
🔹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과학의 원리로 기독교의 신비를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빛의 파동과 입자라는 이중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연결하고, 빛과 물질의 전환을 성육신에 비추어 설명한다. 또한 쿼크의 ‘점근 자유성’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 물론 이러한 과학적 비유가 삼위일체나 부활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현상과 신학적 진리는 서로 다른 차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시도는 인상적이다. 과학이 신앙의 신비를 모두 해명할 수는 없어도, 그 신비를 사유할 새로운 창문은 열어 줄 수 있다는 것. 내게는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책장을 덮어도 한동안 내 안에 오래 남았던 키워드는 ‘세계관’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 세계관의 토대는 무엇인가? 얼마나 넓은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가, 혹은 무엇이 있는가? 저자는 세계관을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의 총체라고 말한다. 믿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고, 그 시선은 다시 우리의 선택과 반응을 결정한다. 결국 내가 무엇을 믿느냐가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로 이어지는 것이다. 🔸 저자는 IQ와 SQ, 곧 지성과 영성이 조화를 이루는 ‘깨달은 믿음’을 강조한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증명 가능한 것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성과 영성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함께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세계관은 더욱 깊고 넓어진다.
🔸 책의 마지막에 실린 ‘믿음 자가진단 테스트’도 흥미로웠다. 나의 진리 점수는 85점, 타이타닉 점수는 40점. 물론 이 숫자가 내 믿음의 깊이나 실제 판단 오류의 확률을 객관적으로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만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들에도 충분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게 도와 주었다. 어쩌면 믿음의 성숙은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자신하는 데 있지 않고, 내가 모르는 세계 앞에서 겸손해지는 데 있음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는 여정이었다.
🔹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보여야 믿는 것일까, 믿어야 보이는 것일까?” 믿어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이해할 수 없다고 진리가 아닌 것도 아니다. 과학이 내게 알려 준 것은 세상이 얼마나 정교한가 하는 것이고, 신앙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그 세계 속에서 내가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증명했느냐보다 무엇을 믿고, 그 믿음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느냐에 있다. 🔸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믿음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질문하는 이들, 그리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자신의 세계관을 진지하게 점검해 본 적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특히 청년들과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익숙한 믿음의 언어를 낯선 과학의 언어로 다시 사유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믿어야 보인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하면, 이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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