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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리는, 상처입히는, 이름 없는 자들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기.
"피흘리는, 상처입히는, 이름 없는 자들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기." 내용보기
*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 단편집, 개중에서도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엔 언제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소개나 작가 목록에 기대보다는 겁부터 집어먹기 때문이다. 분명 어느 작품인가엔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모였으니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글이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은 몹시도 짧아 허망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만 팔랑이며 부여잡고 있
"피흘리는, 상처입히는, 이름 없는 자들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기." 내용보기

*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


 단편집, 개중에서도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엔 언제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소개나 작가 목록에 기대보다는 겁부터 집어먹기 때문이다. 분명 어느 작품인가엔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모였으니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글이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은 몹시도 짧아 허망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만 팔랑이며 부여잡고 있을 꼴이 뻔하다… 뭐 그런 생각에.


 지난 한 해에 발표된 단편소설들 중 빼어난 작품을 추리고 가려 심사한다는 김유정문학상도 벌써 20회차를 맞았다. 그간의 수상작들을 쭉 톺아보고 난 후에 읽는 올해의 후보작들은 각별하고 걸출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동시에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해왔는지, 그 안에서 문학은 무엇을 찾고, 드러내고, 돌파하고자 애써왔는지 몸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p.4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치워 없애야만 하는 악이 존재하고 그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다. 누가 보아도 선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 에구, 눈부셔라. 에구, 싫어라. 솔지는 이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적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솔지의 약점을 건드렸다.


 p.97 〈박민경, 별개의 문제〉 그 불안 속에서 엉뚱하게도 음식물 처리기가 떠올랐다. 만약 정말 늦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것일 거다. 개를 집어삼키고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지게 할 거대하고 똑똑한 구덩이.



 주제와 서사를 달리하는 여섯 작품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문학이기 위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문학이기에 할 수 있는 일과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수없이 물어온 흔적이 지금, 여기의 취약하고 연약한 것의 형태를 입고 그려졌다는 느낌을 준다.


 언젠가의 문학은 세상을 바꿀 창이었다. 동시에 어딘가의 문학은 사상의 지평이었고, 또 누군가의 문학은 읽는 이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책무를 졌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묻고자 한다. 현실이 상상을 불가하게 한다면, 현실이 발을 떼고 나아가기를, 드러내기를, 균열-하기를 거부한다면, 아니, 부인한다면. 이 이야기들은 무엇을 선언하는가. 금을 내고 추악하고 피흘리는 '것'을 까발리는가.


 p.90 〈박민경, 별개의 문제〉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 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p.166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어떤 때 애인은 나한테, 아니, 나를 통해서 뭔가에 항의하려는 것 같았어요. 가끔 그가 큰 소리로 말하길, '그쪽' 남자들이 '이쪽' 여자들을 때리고, 욕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체 살아가고 있어. 그러면서 내 몸을 마구 주물렀어요. 내가 아파, 아파, 소리치고 내 살이 빨갛거나 파랗게 변할 때까지요. 그런 뒤에 애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감히 평하고자 한다. 이것은 경계의 이야기다. 침범하고 틈입하며 범람하는 변경, 언제나 우리-아님인 동시에 우리-안의 위험을 상기하. 가장 찬란한 진창, 무저갱의 끝이다. 앞이고, 과거이며, 순간마다 도래하는 미래이다. 가장 마지막의 가능성이고, 허리째 잘려나간 이름이다. 자격 없는 이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여전히 미약하고, 더없이 취약하다.


 이 진부한 패배의 또다른 이름은 지금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자리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세계에 상처입고 비틀리는 이들의 면면, 일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뻔뻔하고, 치졸하고, 가만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취약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 교차점들에서 상처를 읽었다. 차마 말이 되지 못한 것, 비로소 그 이름을 부르게 될 때, 문학의 길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두려워하며, 혹은, 조용히 떠는 채.


 p.6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그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농담 중에 한 개씩, 두 개를 골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가까이서, 그 다음에는 멀리서. 그것들은 솔지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이었다. 솔지 말고는 아무도 듣고 웃지 않는, 그러나 때때로 빛을 발하는 솔지만의 불행.


 p.181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빛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눈을 들면 절반쯤 설치된 조명등 빛이 여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움켜쥔 피부처럼 붉거나 푸른 빛에 잠긴 얼굴들, 그녀들은 돌들 틈에서 만들어진 양 보였다. 또는 그저 돌 자체로, 굴속에서 오랜 시간 흘러내리고 솟아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변신이야기

s*****7 2026.10.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을에 읽기 좋은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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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출간될 책들 중에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제일 기다렸었다.감사한 기회로 읽어봤는데, 역시나 좋았다.한 권의 책에서 여러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고, 각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읽게 된다는 점이 내가 수상작품집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작품은 수상작인 박서련의 "변신 이야기" 였다. 다른 작품들도 좋았지만,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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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출간될 책들 중에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제일 기다렸었다.

감사한 기회로 읽어봤는데, 역시나 좋았다.

한 권의 책에서 여러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고, 각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읽게 된다는 점이 내가 수상작품집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작품은 수상작인 박서련의 "변신 이야기" 였다. 

다른 작품들도 좋았지만, 변신 이야기는 왜 수상작인지 알 것 같을 정도로 눈에 띄게 좋았다.


변신이야기는 몸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인물이 천연기념물인 파란목비바리뱀으로 변신해 번식을 돕는 일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반려동물이나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물로 변신하기도 하고, 희귀 동물의 모습으로 연구자와 부자들의 관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이게 소설의 맛이기도 하다.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것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주인공은 다른 존재가 될때마다 그에맞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 번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이어진다는 점도 좋았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고, 소설속 상황과 인물의 선택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상상력과 이야기의 재미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상 수상작을 읽을 때면 왜 이 작품이 선정됐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이책에도 역시 왜 수상작이 당선되었는지, 나머지 단편들의 해석들의 이야기가 있다.

맨 앞장에 위치해있어서 사실 먼저 읽게되기 쉬운데, 한 편을 다 읽고 해석을보고, 전체를 다 읽고 왜 수상작인지, 왜 당선되었는지 읽어보는 것이 더 좋았다.


이번 2026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모든 작가님을 다 알아서 그런지 올해도 책을 좀 읽었나 싶은 생각도 들게했고, 모두 젊은 여성분들이어서 더 눈에 띄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변신이야기 #박서련

h*******6 2026.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꺼운 이물감을 꿀꺽 삼키면서
"기꺼운 이물감을 꿀꺽 삼키면서" 내용보기
미묘한 이물감이 목구멍에 들러붙는 작품들이 있다. 뭐랄까,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삼킨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이물감이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꺼운 감각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변신 이야기」는 그 기꺼운 이물감을 남기는 쪽이다.✎𓂃 누구나 처음에는 흉내내기로 시작해. 울음소리든 몸의 모양이든 사냥 방식이든 경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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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이물감이 목구멍에 들러붙는 작품들이 있다. 뭐랄까,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삼킨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이물감이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꺼운 감각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변신 이야기」는 그 기꺼운 이물감을 남기는 쪽이다.


✎𓂃 누구나 처음에는 흉내내기로 시작해. 울음소리든 몸의 모양이든 사냥 방식이든 경쟁자를 위협하는 제스처든.


첫 문단을 읽고서는 『타잔』과 『늑대 소년』이 떠올랐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자연과 짐승의 품에서 자라나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성장 과정을 거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다른 인간을 흉내 내며 자라왔기 때문일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본능의 힘 또한 만만치 않다. 인간다움이란, 인간의 조건이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한 질문에 오래도록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 속에서 한참을 헤엄치다가, 중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갇혀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사랑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는 낯선 형태의 사랑에 소름이 일었다. 거침없는 상상력이 일으킨 파장은 생각보다 커서, 그 사랑이 다다른 결말 또한 강렬하게 각인됐다. 어딘가 기괴하게 일그러진 결말은 사랑과 상실을 함께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이라니, 사랑이라니, 상실이라니! 익숙한 주제를 버무려 빚어낸 낯선 이물감을 몇 번이고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한편, 가장 많은 문장을 받아 적었던 작품은 「별개의 문제」였다.


✎𓂃 내가 그림을 그리며 배운 게 있다면, 진심은 대체로 사람을 살게 하지만 갉아먹기도 한다는 거였다.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진심이란 없다.


가슴 깊이 새기고 싶은 문장들을 유려하게 풀어내면서도, 단호하고 유쾌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문장들이 정말 맛있었다. 계속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었다. 현대 사회의 음습한 면을 이토록 투명하게 담아내는 모습은 또 어떻고? 처음에는 마냥 밉게만 보이던 병주가 중반에 이르러 그 한결같음을 잃어갈 때는 안타까움도 밀려왔다. 동시에 무해함을 잃어가는 진심이 무서웠다. 때 묻지 않는 진심은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모두가 저마다의 나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불안과 불길함을 머금은 마지막이 유독 씁쓸하게 다가왔던 건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섯 편의 소설이 담긴 『변신 이야기』는 가벼움과는 확실하게 거리가 있다. 제법 많은 생각을 요구하고, 적잖은 무게를 자랑한다는 얘기다.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아, 나 무게 치는 책들 좋아하네. 운동을 싫어해서 책으로 자꾸 무게를 치나 보다. 새하얀 낯을 하고서 새카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작품들을 나는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t*********2 2026.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