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의 쉼터가 되어 주는 것, [책방과 무릎들] 📕김소민 지음 / 한겨레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터전을 옮긴 저자의 정착기이자, 작고 여린 생명들과 함께 단단한 연대를 쌓아가는 기록을 마주했다. 고요한 시골 풍경 속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그를 감싸안는 온기를 묵직하게 포착해 내는 시선이 깊은 울림을 준다.
도시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반려견 몽덕이와 함께 남해 상주면 은모래마을에 둥지를 튼 저자는 작은 책방을 열며 새로운 일상을 일궈나간다. 어릴 적 겁이 많아 무릎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몽덕이가 작가의 온기에 의지해 비로소 세상으로 걸어 나갔듯, 저자 역시 마을 사람들과 성기게 얽히고 부대끼며 삶의 터전을 다시 엮어내는 이야기들이 담담히 펼쳐진다. 문득 지금 내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 끝에 내가 바라던 삶의 온도가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곤 했다. 요즘 나의 큰 고민이기도 해서 그런지. 치열한 삶의 속도 속에서 마음의 허기를 느낄 때마다 내가 딛고 선 자리를 되돌아보게 되는데, 이 책은 완벽하게 정돈된 삶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과의 성김 속에서, 그리고 조금은 서툴고 스치는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나이 듦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로 풀어낸 저자의 태도는 지금 내가 겪는 삶의 불안 또한 당연한 과정이라며 다독이는 느낌마저 든다. 또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무릎이, 혹은 기대어 쉴 수 있는 온기가 절실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 책은 묵직하게 일깨워준다. 때로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완벽히 혼자이고 싶다가도, 어느 문득 외로움이 밀려올 땐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곤한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이 모순되고 솔직한 마음마저도 삶의 당연한 결임을 알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만히 누리다가도, 문득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날엔 누군가의 따뜻한 무릎에 가만히 기대어 쉴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의 무릎 한 편을 흔쾌히 내어줄 수 있기를.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다정한 다짐 하나를 조용히 가져보게 된다. 나만의 속도로 삶을 정돈하며 진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싶은 이들, 그리고 홀로서기와 연대 사이에서 따뜻한 온기를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세상의 찬바람 속에서도 서로의 무릎을 쉼터 삼아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품어보는 밤이다. #책방과무릎들 #김소민 #한겨레 #하니포터 #하니포터13기 #서평 #서평단 |
|
김소민의 『책방과 무릎들』은 이러한 불안에서 출발한다. 오랜 기자 생활을 거친 작가는 늙음과 가난, 아픈 몸을 홀로 감당해야 할 미래를 두려워하다가 마을 공동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2024년 봄, 반려견 몽덕이와 함께 경남 남해로 이주한 그는 작은 책방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낯선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변과 한적한 마을이 곧 평온한 일상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웃들은 불쑥 찾아와 말을 걸고, 함께하는 식사는 예상보다 길어지며, 책방의 일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찾아온 곳에서 오히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잦아지는 것이다. 남해에서의 하루는 기대했던 고요함보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뜻밖의 소동으로 더 자주 채워진다. 저자는 사람 때문에 웃다가도 화가 치밀고, 다정함에 고마워하다가도 참견이 성가셔지는 감정을 특유의 유머와 솔직함으로 기록한다. 그 덕분에 남해는 낭만적인 도피처라는 외피를 벗고, 각자의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의 장소가 된다.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에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들이는 일이다. 혼자라면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관계 속에서는 상대의 형편과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의 호의가 기쁨이 되는 순간과 부담이 되는 순간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김소민이 경험한 남해의 일상은 이러한 친밀함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함께 밥을 먹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관계의 온기를 만들어내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공동체를 향한 열망과 고독에 대한 욕구는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순간을 공유할 필요는 없으며,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타인을 향한 애정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편안한 관계는 상대의 고독까지 존중할 때 가능해진다. 곁에 있어주는 다정함과 한 발 물러서 주는 배려가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남해의 소란스러운 일상이 가르쳐준다. 그러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는 적절한 거리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고, 공간을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서로의 불편을 살펴야 한다. 저자가 몸담은 작은 책방 역시 누군가의 수고 없이는 하루도 굴러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처음에는 임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던 노동이 점차 인정과 보상의 문제로 이어지고, 매출과 북토크를 둘러싼 부담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기쁨마저 잠식한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는 구체적인 노동이 수반되며, 그 노동을 지속하려면 돌보는 사람의 형편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도 누군가의 희생만으로 유지된다면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 애정과 책임이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을 때 오래도록 함께할 힘이 생긴다. 『책방과 무릎들』은 이러한 현실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는 순간들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관계의 어려움은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의 한계에서도 비롯된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에는 예민하지만, 자신이 무심코 건넨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는 뒤늦게 깨닫곤 한다. 김소민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모멸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 상대의 태도에서 무시의 기색을 읽어내고, 서운함을 쌓아두다가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까지 자신의 불편한 내면을 드러낸다. 동시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가볍게 대했던 경험도 돌아본다. 자기 마음의 상처에만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타인의 사정을 충분히 살피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두려움과 서운함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의 고백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했다고 선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의심하고 질투하며 옹졸해지는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대하는 정직함이 있다. 그 솔직함은 웃음을 자아내고, 누구나 비슷한 마음을 품어본 적 있다는 사실에 은근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살아온 환경도, 익숙한 생활 방식도,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남해에서의 갈등과 책방을 떠나는 경험, 새로운 공유공간을 만들어가는 시도는 이러한 차이를 안고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서운함에 등을 돌렸다가도 다시 마주 앉아 밥을 나누는 일이 그곳에서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된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일정할 수 없고, 그때마다 서로에게 허락되는 자리 또한 달라진다. 이때 책의 부제인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가 한층 다정하게 읽힌다. 성기다는 것은 서로의 사이에 빈틈이 있다는 뜻이고, 엉긴다는 것은 그 빈틈을 사이에 두고도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모두 덜어줄 수는 없어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고, 마음의 모양이 달라도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은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다가 서로에게 필요한 순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남해의 이웃들은 그렇게 완벽한 이해 없이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무릎’은 이러한 관계를 가장 구체적인 신체의 언어로 표현한다. 무릎은 누군가가 몸을 기대어 쉬는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몸의 무게를 견디고 움직임을 지탱하는 관절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고, 누군가를 받쳐주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나 타인의 무게를 감당하는 무릎에도 피로가 쌓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몽덕이와 남해의 이웃들이 저자에게 내어준 자리는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없지만, 혼자 감당하기 벅찬 순간에 조금의 무게를 나누어 질 수는 있다. 잠시 기대어 쉬고, 다시 자기 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 오래도록 혼자 버텨온 사람에게는 그 잠깐의 쉼이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무릎에 기대어 한숨 돌리고 나면, 다시 걸어갈 힘도 조금은 생길 테니. 남해의 사람들은 오늘도 서로에게 투덜거리고 웃음을 터뜨리며 제각기 서툰 걸음으로 하루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속 저자는 남해에 와서 낫을 들고 풀을 베다가 "성기지만 엉기게"라는 말에 감동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한참 멈춰 있었다. 사람이 사는 일도 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숨은 쉬되 쓸려가지 않는 것. 거리는 두되 이어져 있는 것. 남해라는 낯선 땅에서 사는 일은 아마 그 어려운 균형을 몸으로 배우는 일일 것이다. 남해살이는 낭만이 아니라 노동에서 시작한다. 글쓴이는 도시를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빈집 한 채 구하지 못해 보름 동안 헤매고, 월세가 귀해 개와 함께 5평 방에 머문다. 도어록 없는 문, 눅눅한 벽, 겨울이면 삭풍을 견디게 하는 전기장판. 시골의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춥지가 않다. 집을 구하려고 인맥을 총동원해 반바지 아저씨를 몰아붙이던 신발달인, 냄비를 들고 간 사람에게 된장찌개를 가득 담아주던 식당 아주머니, 다 열어두고 사는 문들이 있어서다. 집은 벽과 지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기척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준다. 도시에서의 내 집을 생각했다. 현관문에 도어록이 있고, 베란다 샷시가 있고, 이웃의 얼굴은 모르는 집. 안전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는 집. 우리는 그것을 '내 공간'이라 부르며 안심했지만, 그 안심은 사실 서로를 재는 눈금 위에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책 속의 화자도 말한다. 주소와 직업과 학력을 넣으면 삶의 등수가 나오는 모눈종이가 있었다고. 남해에서는 그 눈금이 흐려진다. 누구네 집이 더 비싼지 포털에 나오지 않고, 사람들은 N잡러로 각자의 방식대로 산다. 눈금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몽덕이와 아이들이다. 리드줄을 서로 잡겠다고 협상하는 아이들, 정작 줄을 쥐어봤자 이끄는 쪽은 개라는 사실. 해변 웅덩이에서 이유도 없이 새우를 옮기며 몰입하는 아이들 곁에서 어른은 그저 그 순간에 같이 있는다. 화자가 책방에서 얻은 깨달음도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이, 개의 배를 채우고 곰팡이를 닦는 일 같은 작은 사랑으로 자기 자리를 확인한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대신 사랑하는 쪽에 서 보는 것. 그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는 이야기가 조용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물론 남해가 이상향은 아니다. 아이가 열이 끓던 밤, 응급실을 찾아 순천까지 달려야 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시골의 불편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보여준다. 출생신고서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서랍을 뒤지던 면사무소, 입학생이 없어 합쳐지는 학교들. 이곳의 느슨함은 때로 결핍과 한 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남해를 예찬하지 않아서 좋았다. 화자는 투덜대고, 지치고, 매출에 따라 인성이 달라지는 자신을 웃으며 고백한다. 그 솔직함이 있기에 마지막 장면의 놀이가 더 따뜻하게 읽힌다. 나이 쉰이 넘은 어른들이 "몽덕이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주문에 맞춰 네발로 기고, 한쪽 다리를 드는 장면 말이다. 의미는 알 수 없어도,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따라 하는 것. 그것이 이해를 대신하는 사랑이라고 글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돌 수는 있다. 남해살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관계는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드나들 만큼의 틈을 두고 엮는 일이라는 것이다. 흙 속 미생물이 알아서 균형을 맞추듯, 사람 사이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를 받치는 힘이 있다. 상추가 당귀에 기대어 자라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자란다. 도시로 돌아가든 이곳에 남든, 나는 책을 덮으며 작은 다짐을 한다. 문을 조금 열어두기로. 낯선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로. 그리고 누군가 내미는 손에 어정쩡하더라도 내 손을 얹어보기로. 성기게, 그러나 엉기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내가 사는 어느 곳에서든 작은 두둑 하나를 일구게 할 것 같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랜만에 인덱스를 아낌없이 붙였던 에세이였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을 멀리하고 싶은 때가 오면 다름 아닌 이런 이야기들이 마음을 다잡게 한다. 치사하고 답답하고 왜 저럴까 싶어도 결국 나를 붙드는 건 애증의 ‘무릎들’이라고. 주거지나 직장 등 소속을 새롭게 옮길 때 나는 나를 리셋하고 싶어진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고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고 싶고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동시대에서도 여러 형태의 ‘나’가 이곳저곳 떠도는 이유다. 저자는 덜 외롭기 위해 경남 남해로 떠나와 무작정 책방을 연다. 그 책방에서 오고 가는 인연들에 다양한 방식의 위로를 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종종 외로워지고 싶기도 하다. 도망친 낙원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러쿵저러쿵해도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은 마을 공동체를 오래 겪어본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산책하다보면 만나는 이들이 모두 앞, 뒤, 옆 동네 사람이고, 건너 건너 입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이 빠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꽤나 디테일하다. (며칠 전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키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반면 문고리에 걸리는 색색의 봉투 안에 가득 찬 단감과 붕어빵과 고구마순도 있다. 이웃이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어떤 깊이에 있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에게 무릎들이 이것저것 해먹이는 일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웃들에게 (나중에는 어원도 유추 불가능한) 별명을 붙여 자연스레 이름처럼 부르는 행위도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다는데, 자기 자신조차 다 알지 못하고 죽는 존재라는데 왜 시간이 지나면 서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까?‘ (p. 221) “잘 모르겠어요. 못 믿을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문제일까? 이 사회 조건이 나쁜 사람들을 계속 만드는 거 아닐까? 다른 조건이라면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잘 지낼 수 있는 실험을 그냥 해보는 거예요.” (p. 243) 더이상 궁금한 점이 없어도 음식, 즉 집의 맛을 통해 서로를 살피는 건 그럼에도 잘 지내보고자 하는 실험의 과정인 걸까.
오늘 2년 만에 친구와 안부를 길게 나누며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10년을 알았어도 새로이 알게 되는 친구의 면면과 얼굴을 튼 지 한 달 만에 서로의 집을 오가게 되는 이웃. 어느 때고 불쑥 찾아오고 유유히 떠나는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인연들. 성기지만 엉기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는 건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타인들과 주고받은 많은 것들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서로를 끝끝내 이해할 수 없어도 본인을 내어주는 다른 존재의 무릎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문득 당신의 ‘무릎들’은 어떤 이유로 만나게 되었으며, 어떤 별명으로 불리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
#도서제공 #책방과무릎들 #김소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3기 |
|
#도서제공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보이는 웜톤의 드로잉 표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골 책방이란 공간. 겉모습과 소재만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부대껴 사는 사람들 사이 시골의 정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글은 생각 외로 너무나도 날것이었다. 솔직하다 못해 내면의 열등감이나 분노, 서운함, 쪼잔함마저도 죄다 내어놓는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 속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웃어대다 보면 독자마저도 저자와 함께 은모래해변을 걸으며 시답잖은 수다를 떨고, 고사리를 넣은 빵을 먹고, 제값을 주고 책을 사며 자본주의 사회의 이단아가 되어 본 것 같은 착각이 솟아오른다(그리고 아마 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런 생활도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책방과 무릎들』이 심각하게 메마른 책은 아니다. 이 글은 충분히 따뜻하다. 세월호 사고나 밀양 송전탑 사태 등 우리 사회를 스쳐간 일들과 거기에 따라온 연대를 가감 없이 글에 녹여내고 언급한다. 이 묘한 시골 공동체는 죽어도 같이 죽자고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밥 굶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모안대나 새박사, 콩풀과 경숙 씨 등 작가의 주변에서 ‘성기게 엉긴’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서로를 먹여살린다. 누군가가 먹여 살려 준 그들이 작가를 먹여 살리고, 작가는 함께 사는 반려동물들을 먹여살리고. 그렇게 모두가 또 하루를 살아내고 시간이 흘러간다.
막연하게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도 않고, 자연과 시골이 모든 외로움을 해결해주노라 낭만적으로 외치지도 않는다. 책방에서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시골 마을이 오래오래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번지르르한 빈말도 없다. 저자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외로워하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쪼잔하게 치밀어 오르는 화를 표출한다. 결국은 책방을 떠나고 인간AI, 준과 멀어져버린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게 되기 마련인 게 사람인지라, 개인적으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다’고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저자의 기세가 부럽다. 콩풀과 저자는 아무런 노력 없이 존중받는 사람들을 향해 부럽다, 부럽다, 하고 연신 말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화해하고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연신 부럽다고 중얼거렸다.
『책방과 무릎들』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같이 살자니 힘들고 떨어져 살자니 걱정되는 늙고 병든 부모님도, 어정쩡하게 화해해버려 피해 다닐 수도 없지만 도로 편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사람도, 열 번 돌아서도 열한 번 나를 먹여 주는 어설픈 공동체도 저자의 곁에 남아있다. 어쩌면 함께 살아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종일 치열하게 모든 것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저자의 말대로 ‘급할 때 개를 맡기고 아플 때 먹을 걸 나눠주는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 이웃들이 또 하루 누군가를 먹이고, 누군가를 살린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얄밉고 적당히 사랑스럽게. 방 구하기도 힘들고 외지인에게는 날을 세우고 편의점 하나가 유일한 구원인 시골, 이상하게 그런 시골로 훌쩍 떠나 연고도 없는 책방을 찾아 보고 싶은 책이었다.
* 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방과무릎들 #김소민 #한겨레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3기 #공삼_북리뷰 #서평 #서평단 #에세이 #에세이신간 #시골살이 #책방 #책추천 #책리뷰 #책스타 #책스타그램 #북리뷰 #북스타 #북스타그램 |
|
⠀
사람이 이토록 바글바글하게 순위권의 인구밀도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벽 바로 건너편에 우당탕탕 듣기싫은 인기척이 분명 존재함에도 우리는 외롭다.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지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캄캄한 내 집은 떠올리면 순간 가볍던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온기없는 공간. 이 넓은 세상에 홀로 표류하고있다. 표류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책방과무릎들 (#김소민 지음 #한겨레출판 출판)은 그 괴로움을 떨쳐내고자 저 먼 남해까지 떠나간다. 시골의 작은 마을은 외로울 틈이 없다. 프라이버시도 없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무릎들’이 또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책방을 지키고 서로 품앗이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애정어린 농담을 주고 받는다. ⠀ 무릎. 이 책에서 무릎이란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다. 무릎에 기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저자도 자신의 반려견에게 무릎을 내어주었다. 겁이 많아 현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산책도 나가지 못할 때, 현관에 앉아 있으니 몽덕이가 무릎에 올라온다. 그 상태로 엉덩이로 걸어(?) 세상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비만의 경계선에 있어 어지간히 신나지 않고서는 뛰지 않는 현실의 강아지가 되었지만. ⠀ 저자는 남해에 내려와 임금도 받지못하며 과도한 업무를 해나가는데 지쳐만간다. 이럴려고 내려온 것은 아닌데, 사람이 그리워서 온 것인데 사람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외로움은 해결된 것 같은데 또다른 결의 외로움인 듯 외로움 아닌 듯한 감정이 올라와 속이 시끄럽다. ⠀ 하지만 사는 것이 다 그렇듯이 결국 우리는 또 답을 찾아낼 것이다. 책방을 그만두고 여러사람들과 또 다른 일을 벌이고 함께하며 부딪히던 사람과 거리를 둔다. 인상적인 것은 그럼에도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기 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더라. 말로는 쉽지만 현실로는 어려운 ‘적절하게 느슨한‘거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 과정이 자기만 보는 일기에 적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데 <책방과 무릎들>의 저자는 숨기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담아놓았다. 그것이 읽는 나 조차도 부끄랍게 만들기도, 낄낄거리게도 만든다. 하지만 결국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된다. ⠀ 혼자 표류하는 것보다 그때가 더 나았다 싶은 배부른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성기게 엉기는”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함께 밀어주고 당겨주며 앞을 나아가면서 더 많이 울고, 화낸다. 하지만 그만큼 더 웃는다. 그 모든 감정들과 사람 속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떠나지 않고 함께하는 것. 그렇게 다함께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닐까. ⠀ 훌쩍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지만 결국 떠나지 않아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성긴 인연’을 지금 내 곁에서 만들어보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시도할 것인가 아닌가는 나 자신의 문제이지만. ⠀ 책 속 저자는 열을 내지만 읽는 나는 몹시 유쾌했다. |
|
김소민 저자는 오랫동안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다 현재는 자유기고가이면서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라는 책을 썼다. 이번 책 <책방과 무릎들>은 ‘모두의 집’이 가능할까 싶은 질문을 가지고 남해에서 책방지기로서 머무르며 관찰한 다정한 시선이 담긴 책이다. 나 역시 이 마을이 궁금했다. 현재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기 싫은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과연 ‘대안 마을’, 그러니까 ‘모두의 집’ 대안이 가능할까? “소비 대신 생태, 경쟁 대신 연대, 개인 대신 느슨한 공동체의 꿈”(p.6)이 과연 현실가능할까? 남해 상주면. 서울에서 참 멀기도 하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상주중학교가 2016년 대안학교로 바뀌면서 그 부모들은 하나둘 모여 동고동락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어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는 ‘상상놀이터’를 꾸렸다. 저자가 이곳에서 의지하며 모안대, 그러니까 ‘모든 돈 안되는 것들의 대표’라 부르는 대표 별명의 뜻처럼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동네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곳에서 처음부터 모안대, 인간 AI처럼 이 마을에 착, 감긴 사람은 아니다. 집안일같이 해도해도 티가 안나는 책방을 만들고 운영하며,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이 남쪽 끝 책방이 망하지 않고 버텼으면 좋겠다.(...) 그래, 책을 왕창 팔아 떼부자가 되는 거야. 그래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상주면 시금치밭 옆 도로를 쫙 달리는 거야, 길고양이랑 개들 때문에 빨리 달리진 못하겠지만 오픈카로 바람을 맞는 거야. 단체로 꽃무늬 조끼를 입고 만날 동네 벤치에 쪼르륵 앉아있는 할머니들 앞을 샤넬 백을 들고 걸어가는 거야.”(p.124)와 같은 욕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명 자본주의에 쩌든 도시에 반항해 남해로 내려왔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샘솟는 저자의 자본주의 마음이 보여주는 욕망이 사랑스럽다.(흰머리 희끗하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밀양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할머니 시위대를 책방에 초대해 책을 함께 읽으며 저자 역시 ”그 11월 동그란 여자들과 함께 글을 읽고, 12월 타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큰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어쩌면 그 꿈에서 나는 집에 도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폐가에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들이고, 개집도 만들고, 화목난로도 세워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말이다.“(p.155)란 글을 쓴다. 밀양 할머니들의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동그라미를 본인의 삶에도 투영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한강 작가의 <흰>을 책방에서 함께 읽는 장면이었다. “<흰>에는 죽음과 삶이 시루떡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쌓여 있다. 그 경계엔 피떡 색깔의 실금이 남았다. 예측할 수 없는 무늬를 그리는 실금은 아릅답기도 했다.”(p.157) 실금이지만 경계를 느끼는 부분이다. 이 ‘금’은 나중에 이 마을에 찾아온 ‘준’과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준이 내게 호의를 가졌다고 느꼈던 것도, 준이 이사하는 날 관계에 금이 갔다고 여기는 것도 다 내 생각이다.(...) 사실 나는 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준을 궁금해하지 않았다.”(p.223)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인가, 싶었다. 저자는 금이 보이지 않는 관계를 원하면서도, 열 번 중에 아홉 번의 만남을 거부하는 콩떡이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성기게 엉기면 귀찮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임을, 그것이 칠순의 요양보호사가 쓰러지자 요양원에 입소할 수 밖에 없었던 외할머니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역시, 혼자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굳이 남해까지 간 저자가 이 공동체에 대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보며 대리체험을 한 듯 몰입해서 웃으며, 울며 읽었다. 상주는, 최근 읽은 책에서 도시 생존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인구 10만명의 벽마저 무너져 내린 곳이라고 써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영원히 쇠락할 것만 같은 도시의 운명, 끝자락에서 모두의 집을 꿈꾸는 사람들과 개와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다. ‘모두의 집’은 이미 우리나라의 무릎 언저리 지역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있다. 책방이, 그리고 그 책방을 찾는 무릎들이 그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책방과무릎들#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3기#김소민 |
|
_이사 온 다음날, 온종일 비가 왔다. 배가 고팠다. 여기가 어딘지,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밥할 기운이 없었다. 집 옆 식당에 냄비를 들고 가 생선구이와 된장찌개 세트를 시켰다. “돈 때문에 파는 거 아닌 거 알지?” 식당 아주머니는 냄비 가득 된장찌개를 담고 생선 두 마리를 구워줬다. 이튿날 아침에 신발달인이 김치볶음밥과 들깨로 끓인 미역국을 줬다._p29
언젠가 낯선 장소에서 경험했었던 기억이 나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사 온 다음날의 페이지, 반려견 몽덕이와 남해로 이사해 책방에서 일하게 된 기자 출신 저자, #김소민 의 #책방과무릎들 에 있는 장면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쓴 이의 결이 살아있다.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현실감각과 사회상, 역사 속 문제의식, 그리고 사람냄새까지 느껴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혼자가 싫어서 내려온 곳이지만, 잘 운영되지 않는 책방고민,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전하고... 갈등이 오락가락하는 내면을 솔직하게 만날 수 있었다. 혼자와 어울림, 그 사이의 조율이란 것은 어디서나 힘든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여유가 느껴지는 유머러스함은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누구에게나 기댈 무릎이 필요하다. 어디까지 그 경계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화자처럼 애증의 시간을 기꺼이 지내는 것이 삶일 것이다.
<책속 문장>
_나와 몽덕이는 남해에서 얻어먹고 산다. 밥때가 되면 개를 끌고 책방 앞 마을빵집이나 옆집 동고동록협동조합 사무실로 가 밥을 먹는다. 다이어트 사료 먹으면 뭐하나. 뚱뚱했던 몽덕이는 살이 더 올라 물개를 닮아가고 있다._p108
_푸름이의 고통은 푸름이의 것, 푸름이의 질문은 푸름이의 것, 푸름이는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몸을 부딪쳐 찾았다. “다들 공부, 공부 하잖아. 걱정 안 돼?” 푸름이가 파전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음, 별로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 줄 모르면 다 소용없잖아요.”_p145
_친구는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을 등지고 노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냈다. 노을이가 마지막으로 본 새벽이었다. “암이 퍼졌다는데 아픈 줄 몰랐어. 숨 한 번 크게 쉬고 대견하게 혼자 힘으로 갔어.” 친구는 한강 변에서 버려진 한 살 아기 노을이를 발견해 함께 9년을 살았다. 그는 열 살에 떠난 노을이가 자신의 ‘진짜 사랑’이었다는 걸, 그 새벽 깨달았다._p184
|
|
최근에 남해를 다녀왔어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남해라는 공간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여행지로 바라보았던 남해와 누군가의 일상이 되어 살아가는 남해는 또 다르겠지요. 잠시 머물다 오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될 곳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관계와 생활이 있을 테니까요.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했던 건 역시 사람 사이의 거리였어요. 가까워지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내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은 것.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 때문에 지치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참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무언가를 만들고, 서로의 일손을 보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관계는 조금씩 쌓여갑니다. 그렇다고 늘 다정하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서운함도 생기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사람이 가장 밉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관계라는 게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어렵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만큼이나 누군가의 무릎이 되어주는 일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혼자 견디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하나가 참 고마울 때가 있으니까요. 남해에서의 시간이 작가에게 그랬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무릎이 필요한 순간이 있겠지요. 책을 덮고 나니 좋은 관계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정답을 찾기보다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더라도 조금 더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마음. 그 모순된 마음까지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군가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해를 다녀온 뒤라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 『 책방과 무릎들 』 저자. 김소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