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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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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평단 모집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두 아들을 자살로 떠나보낸 작가’라는 문장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번번이 그냥 지나쳤다.감히 그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그러다 어느 날, 무심결에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라는 제목 하나에 마음이 머물렀다.그 제목에 이끌려 신청했던 서평단에 당첨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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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평단 모집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
‘두 아들을 자살로 떠나보낸 작가’라는 문장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번번이 그냥 지나쳤다.
감히 그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무심결에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라는 
제목 하나에 마음이 머물렀다.
그 제목에 이끌려 신청했던 서평단에 당첨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펼치기 전, 
오만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이 책의 이야기를 미리 예상하려 했었다.

덤덤하게 써 내려가는 
작가의 ‘엄마로서의 모습’을 읽는 내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만 책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 슬픔을 책과 함께 끝내고 싶었다.

이윤 리 작가는 한결같이 
아이들의 각각의 모든 모습을 존중해 주는 엄마였다.
‘훌륭한’이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은, 
그들의 삶을 끝내기로 한 선택까지도 이해하고 존중했다.

‘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그 부모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선택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거나, 자식을 따라가거나, 
그 부모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자식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Things in Nature Merely Grow)』를 읽으며
엄마로써의 한 사람이 감당해야 했던 
사랑과 슬픔 앞에 오래 먹먹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작가가 첫 아들을 잃은 뒤 쓴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Where Reasons End』을 읽어야 비로소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Things in Nature Merely Grow)』 가 끝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서제공 #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k*****8 2026.10.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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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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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이윤리#다산북스#2026퓰리처상수상작※ 본 도서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본 서평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도서명 :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Things in nature merely grow)2. 저자 : 이윤 리(Yiyun Li)-1972년 베이징 출생. 베이징대학교 졸업 후 1996년 아이오와 대학으로 면역학 공부하러 유학을 왔다. 아이오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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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이윤리#다산북스#2026퓰리처상수상작



※ 본 도서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본 서평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도서명 :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Things in nature merely grow)

2. 저자 : 이윤 리(Yiyun Li)


-1972년 베이징 출생. 베이징대학교 졸업 후 1996년 아이오와 대학으로 면역학 공부하러 유학을 왔다. 아이오와 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 면역학 석사 학위, 2005년 동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 학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 작가 양성 및 교육하고 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정혜윤 옮김 


3. 출판사  : 다산북스


4.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멈추게 했던 생각들

- 전반적인 느낌은 무거웠다. 저자의 첫째 아이 빈센트, 둘째아이 제임스는 모두 자살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저자의 아이들은 또래보다 월등히 문학적, 철학적, 예술적 기질이 풍부한 것 같았다. 그런 섬세함이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의 짧은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았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어도 엄마로서의 저자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기억을 한 번쯤 떠올리며, 후회가 아닌 그저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로서 받아들이며 살아야했다. 아이들이 떠났다고 자신에게 처한 삶을 버리고 따라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역설이었다.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개구장애의  엘도라도


노래의 한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첫째아이의 자살도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었을 텐데 그로부터 6년 4개월 19일 후(p.25) 둘째도 같은 방법을 택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특히 제임스(둘째)는 죽기 몇 주전에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다. (p.82)

"진정으로 중요한 철학적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자살이다.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자살에 대하여 형을 떠나 보낸 것과 자신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구절이었다. 형의 삶과 자기의 삶이 어떤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는지, 어떤 것인지, 이 책에서는 두 아들의 자살원인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엄마로서 이 말할 수 없는 큰 슬픔과 심연에 처한 자신의 비통함을 어떻게 바라보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술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현상이나 풀, 꽃, 동물, 식물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큰 생태계 차원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며 묵묵히 돌아간다. 멈추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한발짝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또 다른 곳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런 경우가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예전 것을 잊혀지고 하나씩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저자의 마음의 상태나 침울한 정도, 그리고 삶의 의욕면에서 이 모든 것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보면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의 서술내용과 기법을 볼 때 <<스토너>>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스토너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스토너가 결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상당히 불행하며 어쩔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현실을 강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1년만에 알게 된 현실을 번복할 수도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한 이슈 없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진행하는 스토너를 보며, 왜 극적 반전조차 작가가 허락하지 않았나 처음에는 실망도 했다. 하지만, 스토너를 다 읽고 책을 덮자, '아!'하며 깨달았다.그것은 우리들의 인생도 스토너처럼 삶의 소소한 일상이 모이고 얽혀서 된 것이니, 영화 속에서와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일상이 우리 삶이구나, 그것을 스토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도 비슷했다. 


p.45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는다.-카뮈


의 명문장처럼, 일반론에서 시작한 인간의 삶은 늘 긍정적이며 밝으며, 행복하리라 꿈꾼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행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 앞에 그리고 행복하지 않더라는 부수적 진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으로 가릴 수도 없는 것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여백을 찾아가는 삶도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 이윤 리가 처한 상황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큰 아이의 자살이 둘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짓기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었다. 그런 사실 앞에 내가 저자의 입장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2000년대 초반에 상당히 유쾌한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가 떠오르며, 그분의 갑작스러운 자살보도가 함께 겹쳤다. 행복하게 보냈지만, 육체의 고통이 더는 삶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판단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보도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더욱더 충격이었던 것은 이 분의 남편도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고,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결심하자 본인도 함께 그 여정에 동참했다는 보도였다. 


이윤 리의 태도와는 정 반대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자살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왔다. 그래도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이윤 리의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반면에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결심했고, 그 사랑하는 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본인도 함께 여정에 동참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었고, 누구의 고통이 더 클지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면, (p.242) 


내가 내 삶이라 부르는 이 심연에서 사실은 그 논리와 의미와 무게와 더불어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이 썩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그래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o Sisu 민의 결론 ->현재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 우리가 책을 읽고, 문학을 배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선인 것이다.


5. 나만의 평점 :   ☆☆☆☆☆


-슬프지만, 삶의 밑둥이 다 도려내지는 상처에도 나는 살아가야한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s******1 2026.09.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극한의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처절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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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리뷰📕 도서 협찬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슬픔일까. 감히 상상할 수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일 것이다. 이윤 리는 첫째 아들을 잃은 뒤 소설을 썼고, 2024년 둘째 아들마저 같은 방식으로 떠나보낸 뒤 다시 글을 썼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그렇게 두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쓴 기록이다.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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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리뷰

📕 도서 협찬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슬픔일까. 감히 상상할 수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일 것이다. 이윤 리는 첫째 아들을 잃은 뒤 소설을 썼고, 2024년 둘째 아들마저 같은 방식으로 떠나보낸 뒤 다시 글을 썼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그렇게 두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쓴 기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사람은 대체 얼마나 큰 슬픔까지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옅어진다고 쉽게 말한다. 충분히 애도하고 나면 상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극복할 수 없는 슬픔도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실이 있다. 자식을 잃는 일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이윤 리는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 떠난 아이들의 마음을 추측하거나 죽음의 이유를 찾아 하나의 답으로 완성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남겨둔다. 그리고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품은 채 살아간다.


자식을 잃고 울다 바위가 된 니오베처럼. 바위가 되었다고 삶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바위가 된 몸으로 계속 살아 있고,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살아낸다’는 말이 유난히 무겁게 다가온다.🥲


살아낸다는 것은 반드시 슬픔을 이겨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짊어진 채 오늘 하루를 건너는 것. 아침이 오면 다시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문장을 쓰는 것.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았는데도 삶을 계속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단하고도 위대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삶을 사랑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너무 사랑했던 존재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이 책은 슬픔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극복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낸다는 말의 무게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이윤리

#다산책방 #에세이추천 #가제본서평단

w******3 2026.10.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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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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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료제공 #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다산책방애도의 초점이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 맞춰져 있다면 추모의 초점은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에 맞춰져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는 글은 종종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따라간다. 특히 저자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에세이라면 그 감정에 깊이 잠기는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눅눅한 애도에 머무르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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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료제공 #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다산책방


애도의 초점이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 맞춰져 있다면 추모의 초점은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에 맞춰져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는 글은 종종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따라간다. 특히 저자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에세이라면 그 감정에 깊이 잠기는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눅눅한 애도에 머무르기보다 차가운 문장으로 기억을 비추는 에세이집이다.


작가의 말처럼 삶은 소설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무수한 허구의 이야기보다 허구 같은 일들이 쉼 없이 벌어진다. 어쩌면 작가가 겪은 일은 그 어떤 허구보다 안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두 아들을 모두 10대에 자살로 잃은 작가는 '급진적 수용'에 무게를 두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다소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덤덤함은 얼핏 감정마저 메마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문장들에는 조용한 슬픔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슬픔이라는 터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거부하지 않으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차갑게 직시하는 모습. 여전한 사랑 위에 한 꺼풀 내려앉은 슬픔은 사랑의 자리를 지우지도, 대신 차지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머무른다.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만 해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를 둔 부모도, 자살 유가족도 아닌 내가 공감은 하더라도 이해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분명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경험에만 닿는 글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𓂃 아이의 죽음 또한 갓 태어났다. 아이의 죽음은 자라거나 변하지 않는 갓난아기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 그 아이들은 더는 자기 부모를 돕지 못한다.


저마다 다른 상실을 겪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를 건네는 만큼, 읽고 나니 추모라는 말만으로는 그 의미를 다 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보다는 분명히 높은 층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고귀하게 저민 사랑. 아이들이 떠났다고 해서 사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사랑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모든 순간이 아프게 다가왔다.


✎𓂃 어떤 상실은 쉽게 이름 붙여지지만, 어떤 상실은 끝내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남는다.


이름을 붙일 수 있든 없든, 떠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아이들의 어머니였고, 지금도 그들의 어머니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어머니일 테니까. 그 사실은 어느 한 순간에만 속하지 않고, 오직 지금에 머무르는 현재형의 사랑이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눈물로 슬픔을 호소하지 않는다. 차갑도록 분명한 말로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그 곁에 남은 사랑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어느 한 단어로도 다 담을 수 없었던 마음은 떠난 뒤에도 계속되는 사랑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끝내 지켜 낸 현재형의 마음이므로.

YES마니아 : 로얄 t*********2 2026.09.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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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그저 자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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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다산책방 #이윤리 #서평 #서평단* 본 서평은 다산책방 출판사 인스타 지원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가제본 치고 표지 예쁘다!' 하고 신나서 펼치려고 하다가 본 첫 장의 문구,.... '두 아들을 자살로 떠나보낸 거장의 존재론적 에세이...?'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그리고 다 읽고 나니 더 무거워졌다.베이징 대학교를 졸업한, 원래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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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다산책방 #이윤리 #서평 #서평단

* 본 서평은 다산책방 출판사 인스타 지원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가제본 치고 표지 예쁘다!' 하고 신나서 펼치려고 하다가 본 첫 장의 문구,

.... '두 아들을 자살로 떠나보낸 거장의 존재론적 에세이...?'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더 무거워졌다.

베이징 대학교를 졸업한, 원래 엘리트였을 중국인 작가가 미국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 이력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앞서 표지에서 본 이야기가 눈에 밟혀서 처음에는 책에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하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저자의 두 아들 이름이다.

첫째는 빈센트, 둘째는 제임스.

열 쪽 내외의 챕터가 23개나 이어졌다. 챕터마다 내용이 이어지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했다.


Ch1. 이것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p.14

'물건은 죽지 않는다. 이 물리적 세계에서 물건의 여정은 어느 시점까지는 그것을 소유한 인간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그러다 언젠가 분리가 일어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 죽음 이후를 떠올리면 남아있을 내 모든 물건을 떠올리곤 한다. 맥시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나로서는 죽음 이후에 내 남은 짐의 대부분이 버려지겠지


소유한 인간과 궤적을 같이 하다가 분리가 일어나고 정지한 채로 지속되는 물건은 어떤 일을 겪을까.


사실 챕터1의 제목은 아들의 자살 이후 경찰이 저자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이것을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 


좋은 일을 좋게 말하는 건 쉽지만 나쁜 일을 좋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죽음이 얽힌다면 어떻게 말을 전해야 했을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Ch3. 돌연 심연에 놓이다

p.43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책에서 언급되길, 저자의 둘째 아들은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재능이 많고 정말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임스는 이 문장에 대해 어떤 해석을 말해줄지 궁금했다.


Ch4.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p.46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죽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죽는 것일까?


인간 대신 신을 주어로 써가면서도 다양한 변주가 주어진 문장이었는데 생각할 일이 많아지면서도 슬펐다.


Ch5. 직관은 서사다

p.65

빈센트의 심리상담사의 말이... 폭력적이지 않은데 너무 폭력적이었다.


"빈센트는 알약 몇 알을 삼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하기로 했다고 알리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각오 하셔야 합니다. 빈센트가 정말로 마음 먹는다면 아무도 예상하지도, 막지도 못할 만큼 한순간에 일이 벌어질 거에요."


실제로 이 때일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직감은 언제나 있었다. 저자는 어린 아이가 언젠가 훌쩍 떠나버릴까봐 자는 아이의 방문을 열어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도 했다. 어쩌면 그 직감이 익숙해져서 덤덤해졌을 수도 있겠고, 이제 아닐 거라고 믿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은 벌어졌다.


p.78 - 79

직감은 다소 예언 같기도 했다. 

저자의 상담사는 "혹시 제임스가 자살 충동을 느낄까봐 걱정되세요?" 하고 물었고, 저자는 "결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딱히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아요." 하고 답했다.


애초에 제임스의 자살 충동에 대한 화제가 어쩌다 나오게 되었을까? 상담사는 '혹시 어쩌면' 하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만약에'가 언급되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알았다고 해서 부모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말린다고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을까? 시기의 문제지 또 나타날 상황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Ch10. 또 다른 신생아


p.102

'시간이 시시포스의 바위가 되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쓰게 되는걸까?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서양 정체성의 한 요소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쓸 생각은 안해봤다.


경사진 언덕길에서 꼭대기로 끌어올려도 무한히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바위. 이 바위를 무한히 끌어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처럼 저자에게 시간은 무한히 흐른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차라리 한계점이 지어진다면 달랐을까? 무한히 주어지는 시간이 마치 형벌처럼 느껴진다는 맥락으로 읽혀서 마음이 무거웠다.


Ch12.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p.117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자살하거나 분노하는 장미는 없고, 우울하거나 반항하는 백합도 없다. 식물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 있다. 바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고자 식물은 자랄 수 있을 때 자라고 그럴 수 없을 때 휴면에 들어간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그러다 자연이 정한 때에 죽거나 자연의 다른 요소 때문에 쓰러진다.'


책의 제목과 같아서 발췌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텐데 왜 우리는 그저 살아가거나 그저 자라지 않고 자살하거나, 분노하거나, 우울하거나, 반항하는 것일까.


다채롭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지구에서 받은 선물이라곤 하지만 사실 단순하게 살아갈 때에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인간도 그저 자라고만 싶다.


p.123

'빈센트는 느끼며 살았고, 제임스는 생각하며 살았다. 빈센트가 죽었을 때 나는 느낌으로 책을 쓰며 그를 불러낼 수 있었지만, 제임스가 죽었을 때는 그 아이를 그런 식으로 불러낼 수 없으리라는것을 바로 알았다. 제임스는 느낌으로 쓴 책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관련 도서를 두 권이나 출간한 저자가 정말 대단했다. 이걸 그저 대단하다고 표현해도 될까? 대체 몇 번이나 상황을 곱씹고 글로 옮겼을까. 


편집자의 레터에서 설명된 저자 이윤 리는, 영어로만 글을 쓰는 작가이지만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중국어이고, 미국으로 건너오고 나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익혔다고 했다. 더불어 '저자의 문장은 자신감 있는 유려함으로 흘러가는 대신 한 단어씩 짚고, 한 문장씩 생각하며 자리를 더듬어나간다'고 적혀 있었다.


대체 몇 번이나 곱씹고 문장을 완성한걸까. 위로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무한한 존경... 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모국어로 글을 쓰는데도 지금 이 생각을 담아낼 알맞은 표현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Ch16.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

p.162

'공포증이란 말은 대안을 전제한다.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거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할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빈센트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거나 함께하고 싶지 않은 공간을 살았다. 어쩌면 빈센트가 죽고 나서 더는 자기가 고독공포증에 시달린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그 여섯 해하고도 넉 달이란 기간이 지금과 그 때, 나중, 훨씬 나중이 아니라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으로 살아낸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극한. 심연. 내가 아무리 그 아이를 사랑해도 바꿀 수 없었던 상황이다.'


책에 따르면 첫째 빈센트가 열여섯 살에 자살하고 6년 4개월 뒤에 둘째 제임스가 열아홉 살에 자살했다. 제임스는 형이 죽었던 나이를 넘어서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도 남동생이랑 사이 좋은데. 뭐 단짝친구까지의 사이는 아니지만 괜찮은 사이이다. 언제나 나를 따라올 것만 같았던 아이는 어느 새 독자적인 삶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건 동생도 서른에 가까워졌으니 할 수 있는 얘기고. 


형은 그저 형이 아니라 단짝친구이자 동반자 같은 존재였을 텐데. 열여섯 살 형이 죽을 때에 열세 살 동생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6년여의 기간은 제임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읽으면서 정말로 눈물이 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자는 책에서 오열을 담아내거나 슬픔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식의 담담한 서술을 이어가는데 그 점이 나를 더 눈물 짓게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세상은 멸망하지 않아? 하고 차라리 분노를 표출하는 쪽이 덜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번역된 글인데도 그 심정에 공감되며 책이 잘 읽히곤 했으니까 원문이 좋았다고 볼 수 있겠지.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정말로,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h*****e 2026.09.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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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리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아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부모의 삶
"이윤 리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아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부모의 삶" 내용보기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자식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부모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어떤 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떠난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도 아이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아이의 죽음 또한 갓 태어났
"이윤 리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아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부모의 삶" 내용보기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부모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어떤 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떠난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도 아이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아이의 죽음 또한 갓 태어났다. 아이의 죽음은 자라거나 변하지 않는 갓난아기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 그 아이들은 더는 자기 부모를 돕지 못한다.

106,107p

아이들이 영원 속으로 들어갔음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모의 삶은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펼쳐졌을 무수한 가능성이 한순간에 모두 지워진 삶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은 내가 삶의 끝에 도달할 때야 비로소 끝날 것이다.

112p


아이가 태어나면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을 세듯 아이가 죽은 뒤에도 부모는 날을 센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계속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곁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애도에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그 슬픔이 언제 끝날 수 있을까. 


결국 부모가 삶을 다할 때까지 아이를 생각하는 일은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참 아프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자살하거나 분노하는 장미는 없고, 우울하거나 반항하는 백합도 없다. 식물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 있다. 바로 살아가는 것이다.

117p

인간도 그저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자살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우울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식물처럼 오직 살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할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인간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한 사람이 반드시 죽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의 물리적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말고는 그 고통을 끝장낼 길이 없다고 느껴서 그랬다고 할 수 있다.

197, 198p

누군가는 자살한 사람을 이기적이다, 나약하다, 관심을 얻으려 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실제 자살 시도를 했던 저자는 그것이 단순히 죽고 싶어서 내린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라고.




어차피 심연 속에서 시시포스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의미 있는 바윗돌과 하찮은 돌멩이를 구분하는 편이 현명하다. 돌멩이를 바윗돌이라 여기는 시시포스는 희극이 되고 말 뿐이니.

135p

책에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린다. 산꼭대기에 도착하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는 또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자신을 짓누르는 돌이 생긴다. 그것이 정말 거대한 바윗돌인지, 어쩌면 한낱 작은 돌멩이인지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은 잘 보면서도 자신의 것은 돌멩이조차 바윗돌처럼 느끼곤 한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바윗돌처럼 느끼며 했던 행동을 가볍게 치부할 수도 없다. 고통의 크기는 결국 그것을 짊어진 사람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니까.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은 외롭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어느 순간 느껴지는 외로움을 비롯해 어떤 감정을 적당히 지나쳐 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 감정은 나를 멈춰 세워서도 안 되고, 멈춰 세울 수도 없는 한낱  돌멩이일 뿐이라 말하며 스쳐 지나가는 법을.

171p

결국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것일까.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정말 바윗돌인지, 아니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 돌멩이인지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




이 책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에서 시작해 우울과 자살, 삶과 고통, 그리고 철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읽는 동안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삶이란 고통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짊어진 돌의 크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때로는 잠시 내려놓기도 하면서 다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https://blog.naver.com/dailylife_e_e/224424995684



r*********2 2026.09.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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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완료형이 되어버린 무수한 가정법의 세계를 살아가기
"과거완료형이 되어버린 무수한 가정법의 세계를 살아가기" 내용보기
난간 위에 서 있는 사람.  생의 이편과 저편 사이 난간 위. 그 위에서 바라보는 생사의 풍경들. 이편의 삶은 안개로 자욱하고, 죽음 저편은 암흑이고, 고요하고, 평안해 보인다. 어느 편으로도 내려서지 못하고 발붙이지 못한다. 이편과 저편의 경계가 사라진다. 세상은 적막하다. 태어남, 살아감, 죽음, 남겨진 채로 살아감,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안에 고갱이로 들어찬 고통. 고통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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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위에 서 있는 사람.  생의 이편과 저편 사이 난간 위. 그 위에서 바라보는 생사의 풍경들. 이편의 삶은 안개로 자욱하고, 죽음 저편은 암흑이고, 고요하고, 평안해 보인다. 어느 편으로도 내려서지 못하고 발붙이지 못한다. 이편과 저편의 경계가 사라진다. 세상은 적막하다. 



태어남, 살아감, 죽음, 남겨진 채로 살아감,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안에 고갱이로 들어찬 고통. 고통을 살아가기. 그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와 살아지는 것의 기이함. 낙관도 비관도 아닌, 그저 그러한 것. 너무도 엄연하여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너무도 자명하여 나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 빗속에 서 있는 저 나무처럼. 



작가는 “비극 안에서, 비극 밖에서, 그리고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쓴 이유를 스스로를 “그 기이한 영역에서 분리해내고 동시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라고 쓴다. 말하기는 의미 없는 삶에서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쓴다. 그러니 이 책은 아들 제임스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미 작가는  이 책이 절반의 실패로 끝날 것임을 안다. 아무리 옳은 질문을 찾아 헤매도 ‘만약에’와 ‘왜’라는 질문은 언제나 되돌아 올 것이며, 언어는 결국 무력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이 죽음에 관한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라고 썼다. 죽은 이들을 향한 애끓는 애도 혹은 삶을 구원할 재생의 서사가 이 책의 지향이 아님을 작가는 밝힌다. “나는 애도하는 어머니가 아니다. 여생 동안 매일매일 빈센트와 제임스를 잃은 고통과 그 아이들을 키우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게 될 엄마다”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자식의 죽음. 대안 없음을 우회하지 않고, 감내하고 사는 법을 알아가기 위해 작가의 펜은 나아간다. 



의문과 가정, 추측, 그리고 기억으로 가득한 심연. 작가는 불가해한 그 어둠에서 사실과 생각과 감정을 구분하려 애쓴다. 부정할 수 없고, 바뀔 수 없는 사실이 현실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고 작가는 믿는다. 작가에게 사유는 감정이 범람할 때 자신을 알아차리는 의지처이며, 감정은 생각이나 사실로 둔갑해 현실을 휩쓸어 버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심연 속의 시시포스는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의미 있는 바윗돌인지, 하찮은 돌멩이인지 구분하려 오래도록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식들의 죽음이 남긴 저마다의 의미와 무게를 지닌 사실들. 작가가 직시해야할 사실들이 쌓여간다. 아들들이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 부모는 자식이 느끼는 세상의 광대함과 낯섦을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아이를 위해 내린 결정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 부모는 자식의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 사별 후의 시간은 시시포스의 바위가 되고 만다는 사실,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 이 냉혹하고 견디기 힘든 사실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낯설어진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작가는 쓴다.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에 대해 그렇게 잘 쓰면서 왜 우리를 낳았어?” 작가가 끝내 좋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쓴 첫 아들 빈센트의 질문이다. 작가는 둘째 아들 제임스가 죽고 나서야 “고통을 잘 겪어내는 방법을 배울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쓴다. 고통을 겪어낼 가치가 있는 것이 존재하고, 고통과 맺은 관계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쓴다. 만약 빈센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나는 다르게 대답했을 것이라고 쓴다. 과거완료형이 되어버린 무수한 가정문의 세계. 한없이 무력한 세계. 



고통에서 더 이상 의미나 목적, 가치, 시비를 찾지 않게 되는 순간. 견디고 견디다, 견디는 것에 더는 힘을 들이지 않게 되는 순간. 버티고 버티다 붙잡고 있던 것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름 붙일 수조차 없게 해진 감정들이 풍화되어 사라지는 순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철학적 사변과 언어의 요란함을 넘어, 고통이 자연으로 용해되는 순간은 온다. 



그때  “고통은 존재 전체에 스며들고, 더는 저항하지 않게 된다.” 고통 속에 순연해 진다. 아주 잠시라 하더라도. 








a*******e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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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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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프린스턴대학교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이윤 리의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를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2025 카네기메달 수상작, 2025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등 많은 타이틀을 보유한 책이다. 거기에 더해 2026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에 더 이상의 소개는 보지도 않고 선택했다. 두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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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프린스턴대학교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이윤 리의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를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2025 카네기메달 수상작, 2025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등 많은 타이틀을 보유한 책이다. 거기에 더해 2026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에 더 이상의 소개는 보지도 않고 선택했다. 두 아이를 잃은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인 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선택은 훌륭한 작품과의 만남을 선물했다. 올해 만나본 글들 중에서 최고의 문장, 최상의 작품이다. 글이 가진 매력을, 문장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의 내용을 필사筆寫하고 싶은 책이다.


p.25. 그러나 삶은 소설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소설이 삶보다 덜 제멋대로인지도 모른다.


p.36. 그럼에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비극의 안에서, 비극의 밖에서, 그리고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그 기이한 영역에서 분리해 내는 방법인 동시에 그 영역에 영구히 안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16살(첫째, 2017), 19살(둘째, 2024). 정말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아이의 엄마의 후회나 슬픔, 아픔은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이들의 과거를 그리기보다는 남은 엄마가 살아야 하는 오늘을, 살아갈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아이를 글로, 책으로 애도하고 있다. 그런데 애도하는 글에서 슬픔이나 아픔은 묻어나지 않는다. 왜일까? 7년 사이에 십 대 아이 둘을 잃은, 극한에 닿은 엄마는 오랜 시간을 둔 '회복'이 아니라 '급속적인 수용'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을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놓는다. 


p.42. 이 책은 삶의 극한에 관한 책이다. 세상 어느 부모도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깊은 심연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의 가제본은 240여 페이지 분량으로 두껍지 않다. 감성 에세이라기보다는 철학 에세이다. 깊이 있는 생각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마지막 챕터 23장의 제목은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단번에 알려주는듯하다.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기만 해도 온 집안의 공기가 얼어붙는데 두 아이의 죽음이 누르고 있는 죽음의 무게를 삶의 의지로 지탱할 수 있을까? 경험해 보지 않은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의지를 만나볼 수 있는 정말 깊이 있는 에세이다. 


p.171.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은 외롭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어느 순간 느껴지는 외로움을 비롯해 어떤 감정을 적당히 지나쳐 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m******3 2026.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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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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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대체로 별생각 없이 수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살아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p. 237물속에서는 지금, 지금, 지금, 영원히 지금이다.  내 삶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더 기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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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대체로 별생각 없이 수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살아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p. 237

물속에서는 지금, 지금, 지금, 영원히 지금이다.  내 삶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더 기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낯선 삶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붙들고, 그 생각을 다시 들여다본다.  집요하게 생각하고 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면서 죽음 말고 삶에서 최종적인 것은 없음을, 결국 모든 것이 잠정적임을 받아들인다.  p 238

삶은 고집스럽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이 심연이 여생동안 매일매일 내 서식지가 되리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직 내 방식대로 이 심연을 살아갈 것이다. 아마 내 삶은 본 많은 사람이 소리 내어, 혹은 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p. 178

이토록 정신이 맑은 친구들과 맺은 우정은 특별하다. 그들은 내 돌멩이 같은 질문이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에 집착하는 내게 맞장구쳐 주지도 않는다. 돌멩이는 어디까지나 돌엥이일 뿐 그 이상의 취급은 불가하다.  내가 직관과 논리에 따라 살아가고자 한다면 이런 친구들이야말고 소중한 존재다. 내게 직관이 필요한 순간에는 나보다 더 직관적이고, 내게 논리가 부족한 순간에는 나보다 더 논리적인 친구들이기에. p. 137

"우리 삶은 두 번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 거야. 그대로 우리는 괜찮게 지내고 있어." 어쩌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믿고 존중한다고 했던 말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존재의 영역에서, 그래, 우리는 아이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한 것을 대체로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존재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데서 그치지 않을뿐더러 세상은 아이들의 존재보다 행동을 더 중시하는 듯하다. p. 52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밖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이가 자라면서 아무리 다양한 존재방식과 행동 범위를 경험해 본들 어떤 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은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p. 55

아이들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부모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감지한 탓에 행복하지 않던 것인지. p. 56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두 아들을 떠나보낸 작가 이윤 리의 작품을 읽었다.  자신들의 의지로 삶을 중단한 결심을 한 아들들.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면서 담담하게 아이들과 함께한 날들과 함께하지 못한 날들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자연의 것들은 스스로 잘 자라다가도 언젠가는 환경에 따라 소멸하기도한다.  내가 아보카도의 씨앗을 심어서 키워낸것처럼.  거실 한복판에 두었을때는 시들시들하다가 발코니로 자리를 옮겨주었더니, 꼭 맞는 환경을 만났길래 마디마디 마다 새싹이 올라왔다.  반면에 올리브나무와 율마는 딱 한 번 물이 부족했던지 순식간에 말라서 이별을 고했다.   작가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도우려고하고, 관심도 많고, 소통의 노력도 기울인것 같다.  하지만, 그 아들들은 삶을 지속하지 않는 결정을 하기로
했다.   

저자는 '급진적인 수용' 즉, 상황을 받아들였던것 같다.  너무 많은 반추와 후회가 아니라 그냥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처럼 '살민 살아진다.'

나는 대체적으로 무딘사람이다.  그래서 그나마 살기가 수월했던것 같다.  예민하고, 두려움이 크고, 불안이 큰 사람들은 많이 힘들것 같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었다.  공감능력을 키우고 싶다고.  남편이 왜 공감능력을 갖고싶냐고. 그거 되게 힘든거라고.  그냥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책을 다양하게 읽어보고 싶다면 좋지만, 굳이 공감능력을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상황이 나아진다고 결코 장담할 순 없지만, 네 감정이 변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네 생각도 달라질 수 있어. 아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응해주었다.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줄게요." p. 210

난 고통을 알고, 고통에 대해 글도 잘 썼지만, 고통과 맺은 관계는 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고, 빈센트에게 삶이 더 쉬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을 더 잘 겪어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믿는다.  고통 속에서는 더 또렷이 보게 된다. 고통을 겪어낼 가치가 있는 것이 있고, 그 나머지 사소한 고통이나 본질적이지 않은 아픔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것은 그저 돌멩이일뿐이므로 무시하거나 옆으로 차내면 그만이다.  또는 우리는 좀 더 유연해진다. 고통은 존재 전체에 스며들고, 더는 저항하지 않게 된다.  p. 211

부모가 자식을 이해하는 것.  저자는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걸로 보인다. 그래도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세심한 부모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천성과 삶을 지속하는 데에 어려움들이 있었던것 같아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모진 말들로 상처를 받고 자랐었고, 그때문인지 자식들에게는 무척 다정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고통 또는 불안 또는 어떤 어려움을 느꼈던것 같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들인데, 다정하고 이해심이 많은 엄마를 만나서 따뜻한 소통을 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차치하고더라도 사람은 언젠가는 살면서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함께할 때 후회없이 대하고, 이야기 나누고, 따뜻하게 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 누구라도 때가되면 이별하는 순간이 올테니 말이다.   그 시기가 빨리 오던 늦게 오던 그 시기를 알 수는 없고,  나 자신도 이 세상에서 떠나는 날을 알 수 없으니.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어떻게 후회없이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나는 고요한 수영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물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천천히 개구리 헤엄치는 걸 좋아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또, 나의 감각에 집중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이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매일 매일을 보내보자.  삶의 정수를.....  


#자연의것들은그저자란다 #다산책방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a****3 2026.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 내용보기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 자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경찰의 첫마디처럼, 이 일은 좋게 말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저자는 두 자녀를 잃었다. 그것도 자살로. 첫 아이가 먼저 죽고 그 이후로 몇년 뒤 둘째도 자살했다. 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저자는 그 거대한 일에도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간다. 마치 아이들이 살아있던 때처럼. 그러나 책에 나온 한 구절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 내용보기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 자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경찰의 첫마디처럼, 이 일은 좋게 말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저자는 두 자녀를 잃었다. 그것도 자살로. 첫 아이가 먼저 죽고 그 이후로 몇년 뒤 둘째도 자살했다. 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저자는 그 거대한 일에도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간다. 마치 아이들이 살아있던 때처럼. 그러나 책에 나온 한 구절처럼(살다 보면 세상이 멈춘 듯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때 전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자녀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려 애쓴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더 잘 돌보았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원을 가꾸는 저자는 가을에 심은 알뿌리들이 겨우내 쌓여 있던 묵은 눈 사이로 옅은 초록의 얼굴을 내밀다 3월 말이 되자 거침없이 꽃망울을 터트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라다가 때가 오면 죽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들도 그저 자라다가 때가 오면 죽는다. 죽음은 필연이다. 저자의 아이들도 아이들은 본인의 선택에 의해 그 필연을 조금 더 일찍 맞이한 것 뿐이다. 저자도 그러한 생각으로 자녀들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나는 느꼈다.  


p***d 2026.09.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