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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라-멘-툼 / Consolamentum 완전주의자들의 최후의 서약이자 만찬인 이 단어가 유명한 화가의 대작에 숨겨져 있었다. 사람이 숫자도 되고 문자도 되는 암호, 그림. 그 그림의 비밀은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비밀의 서약이었으며 카타르파의 만찬인 것이었다. 처음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암호와 숨어 있는 자(아고레로)의 존재였으나 점점 재미는 만찬의 비밀과 다 빈치의 여유로움으로 위치 이동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믿음과 사랑을 설파하는 교회내부에 무슨 정보기관이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들이 종교단체이지만 그것 또한 사람이 모여 만든 단체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해심이 생겨났다. 하비에르 시에라는 댄 브라운 적인 면모를 감해서 오히려 플러스 효과를 얻게 된 작가였다. 브라운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자신이 해결사가 되어 사건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하비에르의 주인공 레이레는 다른 인물들과의 조화로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해냈다. -신의 섭리는 오묘하다. 우리를 항상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 모든 문제는 신이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라고 믿어버리는 레이레 신부는 종교재판관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올곧다.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는 신중함과 종교를 위해 엉뚱한 인물을 지목하지 않는 올바른 판단력. 그는 기타 중세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던 나쁜 종교재판관들의 판례를 물리쳐도 좋을만큼 긍정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80%는 실화이고 20%만이 허구이며, 역사적 고증을 거친 작품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정말 저 그림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림을 그림 그대로만 보던 어제와는 다른 오늘. 앞으로 저 명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이며 그의 음악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고서 많은 고민거리가 생겼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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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과 '다빈치 코드'의 중간 어드메쯤 위치하는 역사추리소설.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종교 재판관인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암호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치 게임을 하듯 흥미롭고, 당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묘사와 정보도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미 '다빈치 코드'가 크게 유행한 뒤라 참신한 맛은 떨어진다. 덕분에 '아류'라는 시금털털한 그늘을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전작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그저 수많은 명화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이 컸다. 역시 세상의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