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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개념의 재규정이 변혁의 첫걸음이다.
"계급 개념의 재규정이 변혁의 첫걸음이다."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칼리니코스를 존경한다. 그의 글에는 날카로운 논리와 더불어 따듯한 열정과 희망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의 그런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일단 19세기 후반부터 우리에게 사회 변혁의 세력은 산업 프롤레타리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계층도 포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랬지 못하고, 결국 계급은 계속 그 의미를 스스로 축소
"계급 개념의 재규정이 변혁의 첫걸음이다."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칼리니코스를 존경한다. 그의 글에는 날카로운 논리와 더불어 따듯한 열정과 희망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의 그런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일단 19세기 후반부터 우리에게 사회 변혁의 세력은 산업 프롤레타리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계층도 포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랬지 못하고, 결국 계급은 계속 그 의미를 스스로 축소하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변혁의 주체로서 계급 개념을 재차 정리할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 사실 산업 노동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생산은 고용 성장률보다 항상 몇 배로 성장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만큼, 더욱 강력한 산업 노동력(즉, 넓은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은 창출된다. 그렇다면 계급은 어떻게 해야 다시 포괄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일단은 직업의 종류를 넘어서, 생활수준에 따른 계층적 차이를 넘어서, 귀속지위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계급은 맑스의 주장처럼 사회 내의 객관적 관계이다. 그리고 이것은 각 계급들의 적대성과 계급투쟁을 수반한다. 계급 자체가 '사회적 생산관계 내에서 차지하는 공통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시대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급을 논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e****l 2003.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계급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시한다.
"계급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시한다. " 내용보기
계급이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노동자가 귀족으로 취급받는 한국에서는 더욱더 궁금해지는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의 계급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계급을 분리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에 대한 명확한 정의로부터 저자는 계급의 개념을 재규정한다. 우리는 보통 계급을 소득 또는 직업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생산직 노동자가 연봉 4~5천 이상을
"계급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시한다. " 내용보기
계급이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노동자가 귀족으로 취급받는 한국에서는 더욱더 궁금해지는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의 계급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계급을 분리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에 대한 명확한 정의로부터 저자는 계급의 개념을 재규정한다. 우리는 보통 계급을 소득 또는 직업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생산직 노동자가 연봉 4~5천 이상을 받으면, 우리는 그를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많은 봉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소득수준 또는 직업 으로 계급을 규정하는 방식을 반대한다. 맑스적, 과학적 개념에서의 계급을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착취와 피착취로 맺어지는 적대적인 관계이다. 이 관계는 객관적이다. 생산과정에서 자본가는 노동의 잉여가치를 가져가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를 통제한다. 자본가의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생산수단의 완전 지배를 통한 노동자의 통제권 행사이다. 통제권의 행사 여부에 따란 우리는 노동계급(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노동계급) 과 자본가 계급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적 위치의 노동자계급도 규정할수 있다. 저자는 이 중간 계급을 신중간계급이라 정의한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여전히 생산수단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먹고 살수 밖에 없는 사회, 정치적 강제력이 행사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 개념에서 계급의 실체를 파악한다면 실제 전세계적으로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자본주의의 중심 근저에 있는 우리 사회역시 계급은 존재한다. 뒷장에 서술된 크리스하먼의 경기침체이후의 노동자계급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가능성에 관한 서술이다. 이부분은 좀더 깊게 읽지 못했지만, 한가지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할때만이 투쟁에서 승리할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값진 부분은 두가지이다. 계급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통해서 현 시대 노동계급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것인가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상깊은구절]
계급 구조상의 변화가 프롤레타리아트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의 기초를 제거해 버렸다는 믿음은 근거 없는것이다. 화이트 칼라 노동자의 확대는 주로 노동자계급의 구조 변화를 의미할뿐 노동자 계급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중간 계급의 출현이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갖는 의미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노동당 좌익의 경험은 이 계급의 영향이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 정치를 완전히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혁명가들은 계속해서 평조합원들 쪽에 - 그들이 공장이나 사무실에 있든지 상점이나 광산에 있든지 간에 - 관심의 방향을 맞추어야만 한다.
i*****7 2005.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