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능을 중요시하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이성관에 대해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남성은 종족 보존의 욕구로 인해 될 수 있으면 많은 여성들을 만나, 많은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한편, 여성은 아이를 임신하여 낳고 키울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에 따라, 그 오랜기간 동안 경제적 지원 등의 보살핌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기에 한 남성을 원한다는 것.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결과를 놓고 역으로 본능을 유추하는 '결과론적 분석'이다. |
|
한마디로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일부일처제에 대해 도발적 질문을 제기하는 소설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폴리아모리)를 근간으로 축구 이야기를 절묘하게 접목했다. 결혼한 아내가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남자와 또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동시에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판타지를 통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인 인아와 덕훈은 축구를 통해 만났다. FC 바르셀로나 팬이었던 인아와 레알 마드리드 팬인 덕훈은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축구을 매개로 그들의 연애는 무르익어 간다. 문제는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인아, 그녀는 사랑은 마음 가는대로라는 폴리아모리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독점하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 덕훈이지만, 상대방은 그럴 마음이 아예 없었다. 그들의 결혼은 덕훈의 기준에서 보면 출발부터 반쪽의 결혼이었다. 덕훈은 상대의 연애나 사생활에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전개상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결혼후 1년이란 달콤한 신혼시기가 지난후 인아에게 또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인아와 함께 근무하는 프로그래머인 재경과 사랑에 빠지고, 외도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재경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물론 덕훈과의 사랑도 식지 않았기 때문이 현재의 결혼도 유효한 채로 말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일처다부제 경기,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에 비한다면 두개의 공으로 하는 축구, 골대에 두명의 골키퍼가 있는 말도 되지 않은 축구가 시작된 것이다.
등장인물 3명과 축구이야기 만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 조금 낯설고 조금 슬픈 우리의 현실을 빗댄 반칙으로 가득한 축구경기이지만 덕훈은 인아의 리드에 따라 아주 조금씩 일처다부의 조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사랑하는 여자를 독점하기 위한 결혼이었지만 어느 한 순간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니 한 여자를 다른 남자가 나누고 있는 그런 남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법륜 스님은 <스님의 주례사>에서 결혼이 상대방을 속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고 허용하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부부간의 사생활외에도 각자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결혼의 울타리안에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소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쟁적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듯 흥미진진하게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
|
아내가 느닷없이 결혼을 하겠단다. 이게 뭔소리? 나를 두고? 그럼 이혼하자고? 그것도 아니다. 남자 하나를 더 거느리겠다는 거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싫으면 이혼하자고 하지만 난 아내를 사랑하는데.. 참으로 특이한 상상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읽기에 재미나고 빨리 읽힌다. 한 여름에 시원스레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
|
만약 당신의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면? 여기에 대해 쿨하게 수긍하며 명쾌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이끌어가는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를 통해 먼저 만나본 터라 대략적인 이야기 흐름은 알고 있었다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인아의 행동과 그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 소설은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를 근간으로 해서 이에 축구 이야기를 결합했다. 황당무계하게도 잘읽혔다. 눈을 싹싹 비벼가며 말이다.
2개의 공으로 축구를 하다 인아와 덕훈은 축구를 통해 연을 맺었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던 찰나 하룻밤 잠자리를 하게 됐고, 인아는 덕훈을 낭만적 편집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FC 바르셀로나 팬이었던 인아와 레알 마드리드 팬인 덕훈이었지만, 축구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음에 그들의 연애는 무르익어 간다. 모든 게 예쁘게만 보였던 인아는 극구 결혼을 원치 않는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덕훈은 쉴새없이 그녀를 몰아붙여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다만 상대의 연애나 사생활에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결혼과 함께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던 덕훈. 하루하루가 축제처럼 행복하다. 반면 인아는 잦은 술자리와 외박이 눈에 거슬렸지만 덕훈과의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던 중,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인 인아가 경주로 출장을 떠나게 된다. 그것도 1년이란 시간동안. 예감했겠지만, 그런 인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프로그래머인 재경. 쿨하게 살기로 한 덕훈이었지만, 그래서 인아의 연애나 불륜 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고 말한 그였지만 인아의 결혼 이야기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축구는 결국 독일이 이기게 되어있는 게임이다 결국 정답은 이혼이었다. 하지만 인아를 포기할 수 없었던 덕훈은 그녀의 결혼을 승낙한다. 그녀 앞에 굴복한 것이다. 연애 때는 그녀의 환상적인 섹스 테크닉에 빠졌지만, 결혼 후엔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두 집 살림을 하는 인아의 이중생활. 소설이지만 이건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주중엔 경주에서, 주말엔 서울에서 두 남편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냐고, 열에 아홉은 결혼을 통해 사랑에 실패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정과 신뢰라는 알량한 울타리 속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 인아는 그걸 못견뎌했고,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두 남편을 두게 되었다. 거기다 지원을 임신한다. 누구의 딸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덕훈의 처지란. 세상 누구도 인정하기 쉽지 않은 세 명의 부부. 결국 인아는 두집 살림에 넌더리를 내며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자고 말한다. 그것도 재경과 함께 셋이서, 더더욱이 한집에서 말이다. 소설은 미지근한 결말이다. 절대 있을 수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덕훈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끝을 맺는다. 사랑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지근한 결말, 불보듯 뻔하다 등장 인물을 셋만 놓고도 이런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더욱이 교묘하게 축구란 오브제를 소설 전면에 내세우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는 대단함을 넘어선다.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축구이야기와 인아의 이중생활. 하지만 결말의 미지근함에 다소 맥이 풀렸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엔 그 후의 삶이 너무나 자명해보인다. 만약 시간을 5년 후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풀었다면 어땠을까? 인아에 대한 덕훈의 사랑이 식어버린다면, 또는 항상 비합법적인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경이 변심을 하게 된다면. 자명하다. 인아의 자유 연애는 종말을 고하고, 일처다부제와 같은 환상은 그야말로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 걸 여실히 드러내고 말테니.
분서갱유를 꿈꾸다 소설을 보는 재미 중에 철학을 전공한 덕훈과 사학을 전공한 인아의 대화가 이채롭다. 더욱이 인아와 재경의 방 가득 놓여있는 책장을 바라보며 덕훈이 내지르는 말은 엉뚱함을 넘어 얼마나 그가 절박했는 지를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책장 한 칸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책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중에 내가 아는 책은 없었다. 이놈은 결혼이나 사랑마저도 책으로 읽는 놈이란 말이지.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위험하다.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주어진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따지고 보면 책이야말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시뮬라시옹의 세계다. 2천여 년 전에 진시황이 괜히 할 일 없고 심심해서 세상의 책들을 모아 불사른 것이 아니다. 진시황만이 아니다. 로마 교황들도 금서 목록을 만들었다.... 가만, 분서갱유라. 생각난 김에 이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확. 화악."
2명의 골키퍼가 서면 몰수패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인아를 통해 작금의 결혼 제도를 직시할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결혼은 무덤이라고, 어쩔 수없이 살비비며 살아가야 할 바에야 결혼은 필요없는 거라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폴리아모리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책장을 덮으며, 결혼 후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달콤한 불륜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라면, 정말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못배길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가정을 위해 불륜에 대한 상상은 이미 거세한 지 오래지만, 선뜻 못본 체하며 지나칠 수 있을까? 만약 아내가 나보다 훨씬 멋진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 순순히 떠나보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지만, 한번 쯤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처럼 말이다. 가족의 붕괴, 인아의 그릇된 연애관에 대한 현실의 벽, 인아의 후회 등이 불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뉴질랜드로 향했다. 지원을 앞세우고 떠나는 인아의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서글프다. 2명의 골키퍼가 지키는 골문으로 패널티킥을 하는 키커의 모습처럼 말이다. |
|
박현욱.문이당.2006.
이 책은 일단은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제목의 의미가 나의 아내가 누구와 결혼했는지에 관한 의문을 들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당연히 나의 아내가 주인공인 나와 결혼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책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의 아내가 내가 아닌 누구와 결혼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전을 거듭하여 나의 아내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이다. 일처다부제를 다룬 이야기이다. 처음엔 한 100페이지 정도까지는 '것 봐. 내 생각이 맞잖아.' 라고 생각했으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듯 했는데 부인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생겨 결혼을 하겠다고 선포하였다. 바람을 피느니 차라리 떳떳히 공개하고 사랑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도 결혼을 해서 살겠다는 부인의 주장. 터무니 없지만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혼 대신 부인의 결혼을 허락한다. 처음에 축구와 사랑 이야기를 빗대어 이야기한 부분때문에 오히려 집중을 살짝 방해하는 듯 했다. 축구 이야기랑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로.. 큭. 하지만 부인, 주인공, 부인의 남편. 이 세 등장인물만 계속해서 나오는데도 그의 문체는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글의 재료보다 그의 문체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상을 받게 된 건지도.... 독특한 소재로 기존의 결혼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책. |
|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는 나와 결혼 한 후에 다른 남자와 또 결혼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함으로 이 소설은 더욱 더 흥미진진해 진다.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보편적인 한국 사람인 남편. 일처다부제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특이한 색깔의 아내. 이 소설은 이 두사람의 결혼생활을, 그리고 제2의 남편 재경과 끈임없는 갈등으로, 나는 이 책에빠져 들어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사랑을 축구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축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축구 매니아 같이 이렇게 적절히 잘 비유된것은 작가의 노력이 그만큼 깊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책 속의 아내에게 설득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한국 사람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을 흡입력이 강하고, 재미있다. 세계문학상을 받을만하다.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
| 소설이란 장르가 갖는 읽는 재미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내공이 있는 책.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소설의 트랜드가 무엇인가, 스토리텔링이 2-3년간 어떤 식이 먹혀줄까에 대한 개념이 잡히는 기분이 든다. 하나의 굵은 인간사의 드라마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잘 대비가 되고 섞어 놓으면 보색대비도 훌륭하고, 맛도 있어보이는 샐러드가 만들어질 만한, 전혀 다른 방향의 질감을 가진 재료를 찾아낸다. 그리고 섞는다. 드레싱을 친다. 이쁜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뻔한 내용일 수 있던 샐러드의 재료들이 모여서 훌륭하고 기발한 퓨젼요리로 탄생한다. 아내가 결혼한다는 폴리아모리 와 축구의 결합.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샐러드의 두 주 재료는 바로 이 놈들이다.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에서 중년남성+성장코드+프로야구+루저의 삶 을 버무렸다면 박현욱은 다른 재료로 한 그릇의 맛있는 샐러드를 내놓았다. 글의 챕터와 챕터사이의 배치는 마치 축구선수의 잘 하는 드리볼을 보는 것 같다. 톡톡 건드리면서 리듬을 타고 다음 챕터로 달려나가게 공을 굴리는 재주가 리듬감이 있다. 유럽축구보다는 브라질로 대표되는 남미축구의 드리볼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내가 위에서 샐러드의 예로 이 책을 비유했듯이. 샐러드는 샐러드일뿐 메인디쉬가 되긴 어렵다. 물론 채식주의자나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사람은 샐러드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주는 느낌은 상큼함이지 포만감이나 균형잡힌 단백질의 둔중한 영양가는 아니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약간의 지방이 어우러진 메인 디쉬가 주는 둔중하고 강력한 포스는 이 책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좀 간지럽다고나 할까. 하지만 샐러드로서는 분명히 훌륭하다. 자기 위치를 명확히 잡고 만들어낸 글이다. 인생이란 코스요리안에서 본다면 앞부분의 한 코스를 담당할 , 혹은 배에 부담가지 않는 간단한 점심식사로는 확실한 경쟁력 있는 메뉴다. 그리고 엄선된 재료로 잘 요리된 좋은 제품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나니 다음 스포츠는 무엇이 될까 고민이 든다. 박민규가 야구를, 박현욱이 축구라는 두 가지 국민스포츠를 써먹었다. 이제 남은 것은 권투, 레슬링, 이종격투기? 혹은 요즘 붐이 이는 마라톤? 대략 이십권 정도 타겟이 되는 운동과 관련한 책을 읽고 메모를 한 후 마음에 드는 이야기 아이템을 잘 버무려보면 중간은 가는 얘기책을 하나 만들 수 있을 듯. 뭐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 솔직히 말해서 몇 세대를 거듭하여 읽히고 있는 주옥같은 고전들의 깊이에 비하면 다소 가벼운 건 사실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꼬집고 있는 현실문제의 방향이다. 20세기, 일제치하에서나 분단 상황에서의 억눌린 감정 혹은 분단의 속죄양 같은 게 한국문학의 주 소재였다면, 적지 않은 번영과 안정된 시기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 작가들의 배설욕은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하여 그 절대성을 잃고 있는듯하다. 아마도 이 작품은 대중소설의 범주에 편입시켜도 무방할 것 같다. 그나마 독서를 통하여 절대적인 잣대를 획득한 독자들이 아직도 많다는데 위안을 둔다. 우리가 요즘 ''나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의존명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고민을..’처럼 너도나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종의 유행병과도 흡사하게 말이다. 절대성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속어를 쓰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쓰지 못하는 것 말이다. 작가의 몫이란 가치에 있어서의 절대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표면화시키고, 오류라고 판단되는 것은 관련된 내용을 실험작의 방법으로 출간하여 보편의 인정 여부를 검증하는 재설정과정을 거쳐야한다. 대표적인 모델로 카뮈의 사상을 들 수 있겠다. 끝으로, 이 작품 대신에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 유재용의 ''관계''를 추천한다. |
|
책을 읽는다고 해서..
책 읽고 내것을 만드는 법..... 그리고
책속의 주인공들과 여운들이 오래도록 기억속에 살아 숨쉬게 된다.
2006.12.19 |
|
재작년에 썼던 리뷰. 를 조금 수정해서 1학년 문학개론 시간에 썼던 글. 을 조금 수정한 글.
심란한 죄수… 아니, 재수시절. 수능문제집을 사기위해 들어간 서점에서 내 눈길을 끈 책 한권. '아내가 결혼했다'. 당시 수능을 위한 '정보입력용 텍스트'들에 지쳐있던 나는 문제집 대신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 제목에서 풀풀 풍겨오는 위험(?)한 소재의 향기 때문에? 흠흠. 어쨌든, 축구도 좋아하지 않고 독서에 빠질만한 여유도 없었지만 밤을 새가며 미친듯이 읽어 내려간 한편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는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서류상에도, 현실에서도 버젓히 남편이 존재하는데 아내는 남편과 남편이 아닌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고 심지어 두명의 남편을 가지겠다고 말한다. 협박도 하고 호통도 치고 회유도 하고… 심지어 바람도 피워봤지만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기에 떠날 수가 없다. 아기가 태어났다. 남편은 '누구의 아기'인지가 중요한데 아내는 '우리의 아기'라고 한다. 아내는 며느리로서도 부인으로서도 모든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일상이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다만, 남편이 둘이라는
다소 비도덕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유쾌하게 써내려 갔다.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축구얘기는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단지 조미료가 아니라 주 메뉴로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능글맞고 능청스럽게 삶과 축구를 엮어나간다.
불륜, 양다리. 음, 글쎄? 나를 냉정하다고 혹은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해는 한다. 어떻게 한 평생 한사람만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런 행태를 수긍하는 입장은 아니다. 비판받아야 함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사랑도 의리다. 상대방에게 비열하게 상처를 주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이 책의 여자주인공이며 당당하게 두 남편을 갖겠다고 말하는 '인아'도 남편에게 상처를 준다. (그치만 그녀가 비열한걸까? 이 이야기는 밑에서 설명하도록 하자.) 그녀가 주는 상처는 여느 배신과 다르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아니 다른 남자랑'도' 결혼하겠다며 대신 당신과도 남편부인 하겠다는 한가닥 희망?의 끈을 내놓는다. 이렇게, 이 소설에서의 불륜은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온 불륜이나 양다리와는 다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당연시 여기고 심지어 남편을 설득하기까지 한다. 그동안 봐왔던-남편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아내를 둔 남편의- 불륜 이야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거기다가 배우자의 태도 또한 특이하다. 배신감에 휩싸였지만 모 프로그램처럼 4주간의 조정기간을 준다는 멘트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배우자는 힘들지만 그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책 한권을 다 읽은 뒤, 또다시 날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책의 리뷰들 이었다. 다소 도발적인 주제 때문일까. 독자들의 리뷰는 대게 좋다 나쁘다 식의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물론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지만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났다는 독자도 있었고 심지어 짜증까지 났다는 독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문학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듯한 이 책을, 현대사회에 부유한 고민으로 밖에 보일지도 모르는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한 20살. 나의 친구들에게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통념조차 이렇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입시만을 위해 달려오던 나는 이 책을 접한 저녁, 많은 가치관의 변화를 겪었다.
사실 나는 다소 보수적인 아이였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성에 대해서도 폐쇄적이었다. 물론 이 책이 진보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의 보수적인 면이 나빴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책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게 해주었다. 혹자는 이 책을 정서적으로 안좋다고 우려할 수도 있고, 비약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권의 책과 독자가 윈-윈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책을 읽은 뒤에 불쾌함이냐, 만족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 확립에 도움이 되느냐, 주체성 강한 견해를 갖게 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즉 나는 이 책이 불쾌하든 만족스럽든, 20대에게 담론거리를 안겨줄만큼의 소재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담론거리란 20대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지루하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은 '사랑'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직은 어리지만 '사랑'과 '이해'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과 '이해'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함께 담론을 형성..하는 은 너무 오바?하는 것 같고, 그저 진한 수다한번 떨어보고 싶은.
덧붙여 요런 발칙한 상상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아닐까 싶다. 마치 비행청소년 같고 일탈 같고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펀치 같은. 아직도 몇몇 꼰대?들은 여성의 정조, 순결을 중시하는 '나름' 개방된 사회에서 20대 청춘에게 '뒤 끝'있는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 그리고 나의 담론은 이렇다.
과연 그녀가 비열한걸까?
난 그녀가. 오히려. 의리있다고 생각한다. 인아도, 그의 두 남편도. 두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기적으로 두 남편을 갖겠다고 한 것인데, 어째서 인지 난 그녀가 사랑도, 의리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또 의리를 지키기 위해. 차마 남편과 헤어질 수는 없기에 그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변명한다. 하지만 남편도 그녀를 배반하지 않는다(첫 남편이라고 일단 칭하자).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이해하려고, 그도 그녀를 설득하니까. 오히려 나는 그들의 그런 상황을, 정말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나는 늘 미화시키고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보려는 몹쓸 습관을 가지고 있지.)
이 소설을 3년전에 읽었는데, 3년간 이 소설에 대한 내 담론은 꾸준히 변했다. 그리고 변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 나는 인아같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두 남편을 갖겠다며 자신의 '다른' 사랑을 뻔뻔하게 주장하는 인아가 당당하고 섹시해 보였다. 그런데 음, 어떤 계기로. 사랑의 의리를 져버리는 인아가… 대다수의 남자독자들처럼 나도 그녀를 안좋게, 나쁘게 바라보게 됐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래서는 안되지, 배신자.' 라고. 그러다가 또 어떤 계기로… '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도 있는 거야.' 그리고 '사실 아예 이해가 안가지는 않아. 그럴 수 있어… 오히려 그녀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게 요즘.
사실, 그저 뒤끝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방자하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이 소설은 내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예전에는 "너는 어떠니?", "너는 인아를 이해하니?", "넌 인아가 되고싶니?" 라는 물었다면.. (다시한번 방자하게 말하자면) 요즘 이 소설은 내게 "넌 사랑에 최선을 다했니?", "넌 그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니?" 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아직. 게시판에 가벼운 손놀림으로 타닥타닥 두드리기에는 창피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저, 아직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고. 어쩌면 답을 찾아가는 행로를 걷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