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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위, 그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화려한 수식어들이 순식간에 따라 붙는다. 이제 시나위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록씬에서 전설이 되어간다. 하지만 “현재"의 가치가 최우선이어야 할 대중음악에서 전설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식으로든 “과거”에 속하는 일이다. 가장 최근 작품인 (최근이라고 해도 벌써 7년 전 일이지만) 이 9집 앨범을 들어보면, 시나위는 전설 속에서 빠져 나와서 현실세계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반인반신 데미갓이다.
시나위 혹은 신대철이 원한 것은 현재진행형 뮤지션이지 전설 속의 영웅은 아닐 것이다. 대중들이 시나위에 거는 기대는 언제나 크다. 그런 유명세가 음악활동에 분명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굴레가 되어서 신대철의 음악 여정에 큰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나위는 “그냥 헤비메탈 밴드”가 아니라 “음악적인 변신을 거듭한 헤비메탈 밴드”다. 좋게 말하면 음악적인 변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직도 자기 음악을 찾지 못하는 방황이다. 대중음악가에게 음악적인 변신이란 변화무쌍한 유행을 따르면서 대중들의 취향에 더 가까이 가는 행위이기에, 그게 자발적이지 않다면 결국 방황이 된다. 물론 그 음악적인 변신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만.
근성의 세계인 록에서는 음악적 변신이란 "변절"로 통할때도 많다. 록을 하다가 대중적인 팝으로 돌아선 경우는 명명백백한 전향이라서 변신을 논할 필요도 없겠고, 자기가 하던 록음악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목하는 것을 두고 “창조적인 시도”인가 아니면 “유행을 따르는 변절”인가 하는 것은 록씬에서는 끊이지 않는 담론이었다. 그러고 보면 록, 너 참 대책 없이 심각한 음악이다.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록밴드는 언제나 팬들의 청문회 자리에 불려간다. 서구에서도 헤비메탈의 마지막 보루 메탈리카가 90년대에 그런지를 도입한 Load 와 Re-Load 앨범을 내놓자 "음악적인 변신" 과 "시대에 영합한 변절" 사이를 오가는 논란이 일었다. 상대적으로 변신을 하지 않은 경쟁자 메가데쓰는 쓰레쉬 메탈의 자존심을 지킨 밴드로 거듭났다. 잉베이 맘스틴처럼 앨범을 열 몇 장을 내도 그 음악이 그 음악처럼 들리는, 능력이 모자라서 변신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C/DC는 그 중에서도 또 다른 예외다. AC/DC는 앨범 열 몇 장이 하나같이 똑 같은 음악이라도 신기하게도 늘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져서 변신이 필요 없는 대가다. "끊임없는 창조의 행위"를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에게 변신이란 필수적이다. 다만 어떻게 변신하느냐 혹은 왜 변신하느냐가 중요하다. (뭐든간에 벌레로만 변신하지는 말자 by 카프카)
8집의 무지막지한 심각함을 떠올려 본다면 그에 비해 9집은 한층 가볍다. 가사든 연주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날 잊지 말아줘”를 첫 곡으로 올리고, 우아한 재즈록 발라드 “작은 날개”를 그 다음 곡으로 올려두었다. 시작부터 명명백백하게 ‘이보시오들 이번 시나위 음악은 이런 요상한 것이오~ 푸하하!(혹은 메롱)’하는 것이다. 좀 더 세게 나간 곡 "가면"이나 "모기지론"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훵키록이 되었다. 마지막 곡인 “뛰는 개가 행복하다”는
제프 벡을 떠올릴 정도로 기가막힌 재즈록 연주곡이다. 앞으로 더 이상 변신이 없다면 시나위는 이 “뛰는 개가 행복하다”처럼 재즈록 밴드로 계속 가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뛰는 연주가 참 행복하다. 달리는 남자는 행복하다.
잘 내지르듯 싶다가도 신대철 안 볼 때 살짝살짝 간드러지게 부르는 보컬도 별로다. |
| 1986년에 1집을 내고 꼭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앨범을 9개 냈으니 2년에 한 장도 못 낸 꼴이고, 8집이 2001년에 나왔으니 무려 5년이 지나 신보를 낸 셈이다. 오래 기다렸다. 정말. 좋은 앨범 내느라 애 많이들 쓰셨겠다. 덕분에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종종 생각하는 건데 시나위와 블랙홀은 정말 비교가 된다. 결성시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만 빼면 두 밴드는 너무 대조적이다. 시나위는 정통 메틀로 출발했지만 이후 꾸준히 변화를 추구해 왔고, 신대철을 제외한 멤버들은 수시로 바뀌었다. 반면 블랙홀은 지금껏 헤비메틀이라는 한 길만 오로지 파 오고 있다. 멤버도 지금까지 딱 한 명 바꿨다. 두 팀을 보고 있으면 딥 퍼플(시나위)과 레드 제플린(블랙홀)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앨범을 내면서 신대철을 뺀 나머지 3명은 죄다 뉴페이스다. 보컬 강한은 상명대 경제학과 재학중으로 오디션을 봐서 뽑혔다고 한다. 드럼 이동엽은 과거 ''블랙신드롬''의 멤버였고, 베이스 이경한은 프로젝트 밴드 ''D.O.A.''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쯤 되면 ''시나위=신대철''이라고 봐도 별로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신보에서는 다소 낯선 변화들이 눈에 띤다. 1번 트랙 ''날 잊지 말아줘''는 정말 시나위 같지 않은 곡이다. 6번 ''Merry go round'' 역시 시나위의 곡이라고 하기엔 너무 발랄하다. 음악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시나위인 만큼 이젠 정통 록에만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8집에서도 시타를 사용하고 포크적인 느낌의 곡도 삽입하는 등 적잖은 변화의 조짐이 보였는데, 9집도 그 같은 노선을 잘 따르고 있다. 신대철은 이제 좋은 소리를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 정도 사운드라면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서도 신대철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대가라 할 만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도 바로 그의 기타소리다. 최고다. 한데 보컬은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영 ''에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뭐 시나위에서 항상 임재범이나 김바다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음악적 변화에 부합하는 보컬을 기용한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보컬 강한의 발성과 발음에 귀를 기울이다가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하는 건 나뿐일까?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다. 내지를 때의 힘은 괜찮은데, ''가면'' ''슬픔은 잊어'' 등의 앞부분에서 허스키 없이 조용히 부를 땐, 웁스. 왜 이리 부자연스럽게 들리는거냐. 마치 모범생이 어울리지 않게 양아치 말투를 흉내는 듯한 느낌이랄까. ''Pride of Korea''를 자처하는 시나위인데, 어째 좀 고독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시나위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 정도로나마 국내 가요계에 록이 자리잡을 수 있었겠지만, 정작 거기에 기여한 시나위는 응당 받아야 할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안돼 보인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20년씩 끌고 왔겠지만,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Down with illegal MPs!!! ㅡㅡ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