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의 시
그 이의 시는 다르다
시란 무언가 이미지 아닌가
그 이의 이미지는 우선 크다
우주니 선이니 초월이니 하는 식의
관념으로서의 큼이 아니라
적재적소의 알맞은 이미지를 쓰는데도
그것이 어느 선을 훌쩍 넘어
저만치 그득하게 서있다
그래서 그 이의 시는 자유롭다
시인의 크기를 이름이리라
그 이의 이미지는 아프다
그 아픔은 천천히 둔중하게 와 닿는다
이는 날 것이나 풋 것에서 느낄 수 없는
이는 얕고 얇은 것에서 구할 수 없는
존재 저 밑바닥의 깊은 아픔이거나
외로움이다.
하지만 그 이는 이 아픔이나 외로움의
이미지를 우려먹는 법 없다
대개 이미지의 뼈대에 살을 붙이고
예쁘게 모양내는 게 시의 일이라면
그 이는 이미지를 뼈인 채로 세워두고
얼른 다른 이미지로 건너간다
이는 자의식이나 이른바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건너뜀이 아니라
늘상 그 이가 말하고저 하는 이야기를
에워싼 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이의 시는 서사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이의 시는 어둡거나 무겁지만
착잡하거나 암울하지 않다
그 이의 시는 몹시 외롭지만
다른 이에게 손 내밀거나
멜랑콜리하지는 않다
그 이는 허무를 얘기하지만
존재와 관계의 덧없음을 얘기하지만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그 이가 산문글에서 밝힌 적 있듯이
그 이에게서 죽음의 냄새나 그림자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이의 시는 건강하다
그 이 스스로 ‘생 자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고 쓰고 있듯이
그 이는 이 生을, 존재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를, 시인을 즐기는.
그러니 그 이의 시는
‘즐거운 사랑노래’임이 틀림없겠다
그 사랑을 읊은 경지가 이쯤되면
그 이의 도회적 화장기와
세컨드적 바람기도
오랜 절집의 풍경소리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