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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북유럽 소설을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은 시종일관 등장 인물들에게서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어 주었다. 다소 얼토당토 않는 상황 설정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거 뭐야? 또?' 라는 생각과 함께 '이것이 핀란드식 유머인가?' 라는 다른 문화권의 웃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황량한 숲 속에서 마주치게 된 세 사람, 황금을 숨기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오게 된 좀도둑 오이바, 늘 술독에 빠져 살고 있는 이제는 일 년의 기간 동안 육군 소령직을 잠시 쉬게 되는 레메스 그리고 오래전부터 사라지고 있는 한 부족 출신으로 최고령의 노인으로 사회 복지사를 피해 숲으로 몸을 숨긴 아흔의 노파 나스카가 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마주친 오이바와 레메스는 서로를 믿지 못해 거짓으로 자신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던가, 이미 서로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털어 놓은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게 된 둘은 모종의 합의로 숲 속 오두막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한다. 오이바는 황금으로 레메스를 유혹해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월급쟁이로 만들어 버린다. 레메스는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돈이 웬수라고 어쩔 수 없이 오이바의 시종이 되기로 결심하며,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늘 오이바를 대신해서 금을 마을로 가져가서 팔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최고급품으로 구입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늘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호텔방을 구하고, 마음대로 술독에 빠지는 일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오이바를 통해 알게 된, 매춘업을 하는 사업가에게 자신이 있는 숲 속으로 두 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부탁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설정인가... 과연 아르토 파실린나의 능청스러운 유머가 돋보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는 나를 더욱 황당함 속으로 빠뜨리기 충분했다. 처음 아르토 파실린나 소설을 접하게 되면 이러한 상황들에 황당하고,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모든 상황들을 너무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게 어쩌면 핀란드 인들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지면서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작가도 그러한 늘 황량한 겨울이 떠오르는 북유럽 인들의 우울한 모습을 그러한 유머로 벗어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이래저래 이제는 그러한 상황과 표현에 적응이 되고, 나 또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오이바와 레메스가 생활하는 곳에 노파 나스카까지 합류하면서, 오이바의 처음 의도였던, 자신과 황금을 함께 훔친 도둑이자 살인자인 시라를 피해 도피하려던 의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히려 조용히 있고 싶었던 오이바에겐 알 수 없는 여러 사람들의 출현으로 더욱 더 시끄러운 숲 속이 되었고, 그로 인해 오이바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결국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 매춘부가 숲 속에서 지냈던 생활들을 자랑삼아 말하던 것이 살인자 시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급기야 오이바는 시라의 방문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 위험하고 불리한 상황과는 다르게 레메스의 재치와 주먹의 힘으로 시라와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늘어나는 여우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설치해 놓은 덫에 살인자 시라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걸려 죽게 된다. '목 매달린 여우의 숲' 이라는 이름도 자신들이 그래서 이름을 짓게 된 것이고, 혹시나 사람들이 그 덫에 걸려 죽는 일이 없도록 "만일 당신이 사람이라면 이 덫을 조심하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 라는 팻말까지 걸어 놓았다. 그러나, 소시지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 소시지를 잡으려는 순간 덫에 걸리게 되고 만다. 물질에 대한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라는 출판사의 설명에 많이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시종일관 도둑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유쾌하고 통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살고자 몸을 피해서 들어간 곳에서 오이바는 뜻하지 않게 두 사람을 깊게 알아가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며, 거기서 지금까지 그가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을 가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흔의 노파 나스카를 묻어 주면서 이제는 세상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된 것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은 남은 황금을 나눠가지며, 각자가 뜻한 바를 품고 세상을 향해 걸어나간다.
'뭐, 이래 싱겁게 끝이날까,' 라는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게 가슴으로 스며드는 따스함이 일었다. 더운 날씨에 읽은 책이지만, 그 따스함이 오히려 더 내 맘을 데워주는 불씨를 안게 되는 아주 괜찮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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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 파실린나라는, 꼭 여자이름 같은 느낌을 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아마 신문에서 누군가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던 것 같다. 핀란드. 요즘은 한국말 잘하는 따루라는 여성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노키아-지금 한창 고전중인 회사이긴 하다-와 삶의 질이 높고 교육수준이 높다는 인상을 함께 갖고있는 나라. <목 매달린 여우의 숲>으로 핀란드가 한층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 인근의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 사이에 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전쟁이 날 때마다 이리저리 눈치를 봐야하지만 동시에 여차하면 다른 나라로 옮겨 갈 수 있는 편리함을 지닌 나라라는 것, 벌금액이 몇일치 일당으로 계산되어 부과되는 나라라는 점, 중립국인 핀란드에도 군대가 있고 군인들의 인근의 나라가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군사훈련을 한다는 점 등등이 이번에 처음 알게된 것들이다. 맨 앞에 있는 저자의 말에 나오듯이 '알코올중독자인 육군 소령과 젊은 범죄자'가 북극이 가까운 라플란드지방에서 만나 산속에서 훔친 황금을 뜯어먹고 살다가 '양로원에 가기 싫어서 황야로 도망친 시골 노파'와 함께 살다가 이런 저런 인물들과 상황들을 마주치는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사라져도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을 인간들이 눈오는 산장에서 핀란드인들이 생략할 수 없는 사우나를 해가며 가끔 오백마르크라는 여우에게 먹이를 주어가며 오손도손 살게되는 판타지가 너무나 실감나게 그려진다. 몸을 파는 여성인 크리스티네가 들려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 살아간 이야기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자 새로운 시각이다. 베를린의 새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에 가난하고 자식이 많은 가정을 먼저 들어가 살게한 풍습은 부자 주인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가난한 가족이 '새로 지은 집들을 수없이 전전하며 몸으로 집을 말렸고, 새 집에서 뿜어대는 독성을 빨아들이며 살았'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일시적인 거주를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았'으며 임대료 '대신 폐병과 백일해, 류머티즘을 벌어들였'던 것은 우리 모두가 어쩌면 제각각의 형태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선이나 도움의 손길 같은 것들이 실은 부유한 사람들의 안락함을 위한 위선이거나 나아가 착취의 또다른 형태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스콜트 사미족 최고령자이자 핀란드의 최북단 마을인 세베르티애비에 살던 나스카 모스니코프 할머니는 또 어떠한가. 자신의 90회 생일날 누추하지만 편안한 자신의 집에서 난데없는 사회복지사와 신문기자 등의 방문을 받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려달라며 연구자료로 쓸 것이라며 녹음하고 사진까지 찍어대고는 아주 옛날 자신의 남편이 난데없인 군인들에게 맞아가며 끌려가던 그날처럼 멀쩡한 집 놔두고 양로원으로 극구 모시겠다며 끌고가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북극지방을 떠돌다 산장사람들의 일원이 된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시혜를 강제로 안기는 복지시스템의 다른 면이 아닌가. 눈 덮인 산에서 여우를 잡기 위한 덫에 걸려 죽어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흔들리는 독일 관광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하는 능청스러움을 포함하여 아르토 파실린나의 입담을 대단하다. 야단스럽지 않게 나직하게 마치 지금이라도 라플란드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이 대단하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기력이 떨어졌는지 오자와 탈자가 3개 보인다. 191쪽, 210쪽, 3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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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처음 접할 때 자연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표지와 제목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작품은 왜? 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읽게 했다. 왜 제목이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일까?
그건 단순하게 숲 속에 자리를 잡게 된 범죄 동업자를 피해 도망 온 금괴 도둑과 모의 전쟁 훈련 도중 우연히 그 도둑을 본 술 주정뱅이 소령이 무급 휴직을 하고 그를 찾아와서 숲속의 오두막에서 동거를 하게 되고 그곳에 다시 양로원으로 데려가려던 사회복지사에게서 도망을 친 사미족 노파가 오면서 그 숲에서 여우가 많으니 덫을 놓아 잡으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들은 숲에 여우를 잡을 덫을 놓고 그 숲을 <목 매달린 여우의 숲>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도둑이 가지고 온 금괴로 생활을 한다.
이 작품의 아이러니한 유머는 도둑이 공범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자 금괴를 나눠주기 싫어 마치 자기는 정당하게 금괴를 가질 만한 사람이고 그들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대목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술주정뱅이 소령이 막무가내 모의 전투를 순식간에 승리로 장식하는 장면 또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사미족 노파에게 아흔살 생일 축하를 빙자해서 온 사람들은 웃음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미족이라 부르지만 라프족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나라 백과사전에도 사미족은 없지만 라프족은 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자신들의 종족 이름조차도 남들이 부여한 데로 불려야 하는 처지가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는 수많은 소수 종족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팠다.
하지만 할머니는 대번에 오두막에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내는 일상을 담담하게 보낸다. 그것이 평범한 일상이라면 말이지만. 심각한 것이 너무 없이 쉽게 풀려서 오히려 심각하게 보여 지는 작품이다. 과연 이 작품을 재미만으로 볼 수 있을지. 내 눈에는 산다는 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게 되면 자연적으로 술술 풀리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져 씁쓸했다.
파실리나식 유머는 그 덫에 하필이면 독일어로 쓴 ‘만일 당신이 사람이라면 이 덫을 조심하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라고 쓴 것과 그 덫에 예견한 것처럼 마지막에 독일들만 걸랴들었다는 것에서 절정을 달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아직도 유럽인들의 독일인들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일본인을 생각할 때 느끼는 것만큼 깊다는 것을 말하는 듯 느껴졌다. 총리가 무릎을 꿇었음에도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서 이 책이 일본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면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낄지가 궁금하다.
또한 오백마르크를 물고 가서 이름이 오백마르크가 된 어린 여우가 어미가 되어 새끼를 열마리 낳았다며 이제 오천마르크가 되었으니 숲을 보존하는데 이보다 더 유익하고 남는 장사가 어디있냐는 말은 그야말로 기발하기까지 하다. 그 어떤 구호보다 좋았는데 그럼 왜 벌목으로 숲을 망치는 것은 안되고 여우를 덫으로 잡는 건 허용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일종의 자연의 매카니즘이다. 사슴이 너무 많으면 일정량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범죄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정하게 감옥에 보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슴에게도 오백마르크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주인공이 아니니 안된 일이다. 뭐, 사는게 그런건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싶다.
우리에게는 핀란드는 아주 먼 나라다. 그래서 그들 식 유머는 낯설다. 하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내보이는 작가의 글 속에서 비범한 단면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뭐, 이런 삶도 있어도 상관없겠지... 세상에 똑같은 삶이 꼭 필요한 건, 똑같은 가치관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계속 주목해보고 싶다. 다음에 출간될 작품이 <독을 끓이는 여자>라는 또 입맛 당기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42p 오이바는 지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원하던 바였다. 자신도 황금의 위치를 모른다면 누가 이곳을 알아내겠는가? 황금은 이제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안전한 장소에 보관되었다. 처음엔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부 어딘가에 묻혀 있었을 황금이 이제 핀란드 북부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오이바 윤투넨은 금괴가 묻힌 돌 위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핑며 행복에 잠겼다. 81p "...... 평화를 보장하는 게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아니겠나." 93p 저녁참에 여우가 다시 나타났다. 아까처럼 먹이를 던져달라는 눈치였다. 오이바는 녀석에게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아가는 건 범죄 행위라고 소리치며 흠친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여우는 천진난만한 눈으로 오이바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돈을 돌려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147p "해마다 말코손바닥사슴 6만 마리가 도살되지 않으면 어린 나무에 대한 피해와 자동차 사고, 그리고 농작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겁니다. 그 정도가 사라져야만 남은 사슴들도 생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가 있죠. 물론 그 덕에 우리도 사슴고기를 맛볼 수가 있고요. 경찰과 판사들이 하는 일도 이것과 비슷합니다.통계적으로 매년 2천 명의 범죄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고 합니다. 물론 방법은 훨신 세련됐죠. 일정치를 넘어선 범죄자들을 말코손바닥사슴처럼 도살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목표는 비슷합니다. 하나는 솥단지에 넣고 하나는 감옥에 쳐넣는 것만 다를 뿐이죠. 이런 식으로 범죄자들의 개체군에서 일부를 솎아내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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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글. 재밌는 이야기. 심오하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지만 우리의 눈과 귀를 톡톡 거드리는 '재미'가 있다. 때론 큰 웃음보다 소리죽여 키득거리며 웃는 재미가 훨씬 크다. 정상적인(또는 모범적인) 사람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기묘한 이야기이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정겹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북유럽의 소설들이 이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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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
파실린나의 작품은 분위기가 코믹하고 귀엽다.
어찌 한 사람이라도 귀엽지않는 사람이 없다.
오이바윤투넨이나 레메스 소령..둘 다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이 오백마르크: 이 이름도 보면서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와 할머니와 함께 숲속에서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흐...........정말 나도 자연속에 파묻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자유롭게 살고픈 욕구가 들끓는다.
오이바가 명령하면 복종하는 레메스 소령을 보면서
또 얼마나 뒤집어졌는지 모른다.
귀여운 주인공들...넘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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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한 그해>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중년 남성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그린 책이다.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과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 매우 즐거웠다. <목 매달린 여우의 숲>역시 핀란드의 라플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플란드는 척박한 자연 환경때문에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지만, 왠지 아르토 파실린나의 책을 읽으면 그 척박한 땅도 자연의 축복이 내려진 땅으로 생각이 될만큼 문장력이 뛰어 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명으로 압축된다. 금괴를 훔친 좀도둑 오이바, 알콜중독자 육군 소령 레메스, 그리고 양로원이 싫어서 도망친 노파 나스카까지.... 아, 오백마르크라는 이름의 여우와 나스카 할머니의 고양이 에르마키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이바와 레메스는 처음엔 서로를 속이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친구가 되어 간다. 그들은 숲속의 산장을 오이바의 황금을 판 돈으로 멋들어지게 꾸미고 유유자적 살아간다. 그러던 중 양로원에 가기 싫어 도망온 나스카 할머니가 산장에 오게 되고, 이젠 세 명이서 살아가게 된다. 척박한 라플란드의 삶은 삶에 지치고, 사람에게 쫓기는 그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낙원이 되어 준것이다. 가끔씩 나타나는 여우 오백마르크도 그들의 친구다. 사람은 어디에서 사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오이바는 시라에게 목숨을 위협을 받지만, 라플란드의 숲속에서는 행복하기만 하다. 레메스는 군인 생활이 지겨웠고, 아내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지만 숲속에서의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은 어느새 그에게 익숙해져 간다. 아흔 살의 나스카 할머니는 양로원에 끌려가는 것보다 이 숲속의 생활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오이바의 황금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은 여유롭고 풍족했고 즐거웠다. 사실 돈 한푼 없이 그런 척박한 땅에서는 살기 힘들다. 아니 살 수 없을 것이다. 좀도둑이 훔친 금괴로 희희낙락 유유자적 사는 모습은 왠지 아이러니 같지만, 더욱더 부정한 수단으로 돈을 긁어모아 사는 사람들도 많은 현실을 살펴보면 오이바의 죄쯤은 눈감아 주고 싶은 생각도 들 정도다. 유쾌하지만 풍자적 요소도 가지고 있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 <목매달린 여우의 숲>은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는 선물같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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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 파실린나의 책을 세권 보았는데...
하나같이 기가막힌 상상력의 결과물이었다.
핀란드 여느 마을이 한국의 여느 곳인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문체또한 걸작이다.
해학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있고, 끝내 생각해야 될 숙제를 남기는 것은 이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것 같다.
지루하지 않고서 읽어나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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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문광고란에서 이책을 봐따
제목이 너무 맘에들었고 책 디자인도 눈에 쏙 들어왔다_
읽어봐야지 하고 맘에 담아놨는데 잊어버렸다 - _-ㅋ
그리고 며칠뒤 인터넷광고_ 생각난김에 사따.
''블랙유머'' 라는데 블랙유머가 뭘까_ 궁금했다_
음하하 책은 기대이상_ 상상에 나라가 펼쳐진다 ㅎㅎ
너무 재밌고 긴장되고~ 궁금해서 출퇴근시간이용 3일만에 봐따_
모든책이 그렇듯이 3분에1정도 지나갈땐 좀 지루했는데
오우~ 베지굳 흥미진진 ㅋㅋ 금괴를 훔친 남자_
그 꾀임에 넘어간 2명의 공범 _
그 공범들과 나눠갖기 싫어 숲속으로 도망가고_ 알콜중독자 육군소령_
양로원이 싫어 도망친 할매_ 창녀_ 수렵관리 경찰관 등
인물들도 너무 웃기기도하고 묘사를 너무 잘해놔서 내앞에있는양
상상하게되고~ 그들의 공존관계가 참 신기하게도 인간미가 넘쳤다 ㅋㅋ
아마 그만큼 표현을 잘해놔서 그렇겠지만...
글쓴이가 표현하려는게 몰까...하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하나하나 말로표현하긴 힘들지만 요즘같이 인정머리없는 세상에대한
딱딱한 일상에 지쳐있는 ,, 이야기가 진행됨에따라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게하는 책이었다_
지하철안에서 책보면서 혼자 키득키득 웃고 인상쓰고...ㅋ
읽어봐서 나쁠거없는 이야기~ 아쭈 쪼아~ [인상깊은구절] “만일 당신이 사람이라면 이 덫을 조심하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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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 파실린나는 '기발한 자살여행'으로 이미 한번 만난적이 있었다. 자살이란 우울한 주제를 굉장히 유쾌한 분위기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작가에게 큰 매력을 느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삶에서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졌을때 그들처럼 버스를 타고 자살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실제로 책을 따라했던 무리들이 있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