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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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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의 다른 소설 <그 바다의 마지막 새>와<숨의 조각>을 함께 읽고 비교해본 서평입니다 📚1741년, 북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베링 탐사대는 '스텔러바다소'라는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을 만난다. 그러나 이 생명체가 인간의 기록 속에 등장한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발견으로부터 27년 뒤, 그것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숨의 조각>은 그 짧고도 잔혹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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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의 다른 소설 <그 바다의 마지막 새>와

<숨의 조각>을 함께 읽고 비교해본 서평입니다 📚


1741년, 북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베링 탐사대는 '스텔러바다소'라는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을 만난다. 그러나 이 생명체가 인간의 기록 속에 등장한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발견으로부터 27년 뒤, 그것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숨의 조각>은 그 짧고도 잔혹한 시간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은 스텔러바다소의 성정에 관한 것이다. 온순했던 이 동물은 동족이 위험에 빠지면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서로를 지키려는 본능이 인간에게는 사냥의 효율을 높여주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다정함이 곧 취약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숱하게 벌어져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동물의 비극은 그저 이 종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숨의 조각>을 읽다 보면 시빌 그랭베르의 <그 바다의 마지막 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도 <숨의 조각>과 마찬가지로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소설이다. 1835년, 큰바다쇠오리라는 또 다른 멸종 동물의 마지막 시간을 그리는 작품인데 <숨의 조각>과 비교하여 읽어보면 좋을 만한 책이다. 이 소설에서는 박물학자인 오귀스트가 상처 입은 큰바다쇠오리의 마지막 개체를 구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도 귀중한 일인지 소설은 보여준다.


두 소설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은 왜 이미 숱하게 존재하는 것 앞에서는 그 가치를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그것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가. <숨의 조각> 속 탐사대원들에게 스텔러바다소는 굶주림을 면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지만, 그 고마움은 절제의 미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소식이 퍼지자 섬을 찾은 사냥꾼들은 이윤의 논리로 남은 개체들을 모조리 전멸시켜 버렸다. <그 바다의 마지막 새>에서도 큰바다쇠오리의 깃털이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그 새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생명이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존재의 무게는 시장의 차가운 저울 위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소설이 멸종을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바다의 마지막 새>가 한 사람과 동물 하나의 관계에 집중하며 개인적이고 내밀한 애도의 서사를 직조해낸다면, <숨의 조각>은 시야를 훨씬 넓게 펼쳐 나간다. 한 종의 발견으로부터 멸종까지, 그리고 멸종 이후 수백 년에 걸쳐 흩어진 흔적을 수집하고 복원하는 인간들의 여정까지도 그려낸다. 멸종은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숨의 조각>은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 바다의 마지막 새>가 큰바다쇠오리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닫혀버리는 문 앞에서 거대한 상실감을 안겨주며 독자를 멈춰 세운다면, <숨의 조각>은 그 닫힌 문 너머로 수백 년 길이의 복도가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진 숨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숨이 남긴 조각들을 모으는 손길은 시대를 건너서도 계속된다. 그 손길이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든,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것은 사라진 존재를 향한 가장 현실적인 형태의 애도일 것이다.


이미 죽어 사라진 존재를 아름다운 골격으로 남겨놓기보다,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자는 것. 결국 <숨의 조각>이 300여 년의 여정 끝에 건네는 말은 이토록 단순하고도 어려운 것이다.


* 서평단 이벤트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r*******4 2026.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숨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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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openbooks21📌 ‘멸종’에 대한 새로운 정의소설은 3세기를 넘나들며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쫓아간다.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한 스텔러의 환희를 맛본다. 아무도 발견한 적 없는 미지의 생명체(다분히 인간적인 관점이지만)를 발견하는 것은 경이롭다. 스텔러와 함께 바다소를 이루고 있는 단단한 뼈와 따뜻한 피를 살펴본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도, 바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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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openbooks21
📌 ‘멸종’에 대한 새로운 정의

소설은 3세기를 넘나들며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쫓아간다.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한 스텔러의 환희를 맛본다. 아무도 발견한 적 없는 미지의 생명체(다분히 인간적인 관점이지만)를 발견하는 것은 경이롭다. 스텔러와 함께 바다소를 이루고 있는 단단한 뼈와 따뜻한 피를 살펴본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도, 바다소가 켈프를 뜯어먹는 것도 살펴본다.

시간이 흘러 알래스카의 총독 함푸스가 사라진 줄 알았던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온전하다고 할 수 있는 뼛조각들-을 발견하는 것을 본다. 총독은 바다소를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전리품쯤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모자란 여동생 콘스탄스는 생명체를 존중한다. 이 때 독자는 그녀의 눈을 통해 살아있는 것들이 남긴 흔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은 더더욱 흘러, 스텔러바다소의 척추뼈 등을 그림으로 묘사했던 힐다 올손과 현대에 이르러 바다소를 다시 짜맞춘 존 그뢴발을 손을 거쳐간 바다소를 다시 만난다. 긴 세월 속에서도 바다소는 여전히 아름답다.

숨 쉬는 모든 것들의 부존재는 그것들이 단순하게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의 털과 피가 돌던 근육과 장기, 여러 조각의 뼈가 흙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넘어선다.
멸종은 생명이 존재했다는 증거만 남는다. 불확실한 증거를 쫓아 실물을 추측을 해보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 인간은 영원히 그것을 자신들의 수정체에 담지 못한다.

유유히 삶을 살던 생명을 세상에서 지워버렸음을 깨달았을 때, 나를 비롯한 인류는 아름다운 공포심을 느낀다. 숨 쉬는 생명을 그들의 의지와 반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살아있던 것을 없애고 상상 속의 생명체로 넘겨버리며 인간은 그들에게 향수를 느끼는데 그건,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 책은 생명의 멸종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그것과 함께 식민지화를 통해 스스로의 다양성을 멸종시켜 버린 인간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익과 편의를 위해 인간은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멸종시킨다.

커다랗고 다정하던 스텔러바다소는 인간의 눈에 띈 이래로 2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때문에 계속해서 숨 쉬는 것들이 쉬지 않고 사라진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정복할 권위는 과연 존재하는가.

+

덧붙여, 소설의 표지가 매우 아름답다. 스텔러바다소가 살았던 베링섬의 풍경과 함께 영원히 알지 못할 그 아름다운 생명체의 텅 비어 있는 가장자리를 쓰다듬으니 영영 해결되지 않을 그리움이 몰려온다.

📖

🦭 1부
80p_그 울퉁불퉁한 가죽은 참나무 껍질을 연상시키며, 그의 손에 닿는 가죽은 따뜻하다. 차가운 물에서 헤엄치는 동물은 서늘한 느낌일 거라 상상했으나, 그는 손 아래로 바다소의 온기를 느끼며 그것을 쓰다듬고, (...) 그는 오직 껍질을 가르는 방법을 통해서만 바다소의 정채를 알 수 있다.

🦭 2부
127p_비록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파괴의 검을 사용하겠지만, 우리가 초래한 상실 앞에 슬퍼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세계의 지배권을 얻고, 우리가 정복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르게 행동할 여지가 없음은 이해할 만하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가장 하찮은 종들조차도 이 지구 위에 퍼져 나가며 수천개의 다른 개체들을 학살했다. 마치 아프리카의 열대 지역에 처음 도착한 사자처럼.

194p_멸종이란 공룡이나 메머드 같은, 과거의 거대하고 끔찍한 괴수들에게나 일어났던 일이지, 베링해에 재난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바다소는 홍수나 지진을 겪지 않았고, 섬 주변의 세상은 예전과 같다. 그건 바다소가 여전히 저기 어딘가, 춥고 조용한 곳, 사람이 찾지 못한 곳에 있다는 뜻이며, 그 어딘가에서 어린 바다소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을 것이다.

🦭 3부
325p_그가 한 유일한 설명은 자신이 알의 아름다움에 저항할 수 없었고, 그 아름다움이 생각을 지배해서, 자기 행동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크루거의 수집품은 그렇게 경이로운 것, 그렇게 위험한 것이니, 새알 박물관은 평범한 필멸의 존재에게는 볼일이 없는 성전이 된다.


k*****1 2026.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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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생명을 되살리는 일, 우리가 끝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사라진 생명을 되살리는 일, 우리가 끝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_어떤 존재는 사라지는 데 한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존재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이다 투르페이넨의 《숨의 조각》은 역사상 가장 빨리 멸종한 해양 포유동물 가운데 하나인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1741년 인간에게 발견된 스텔러바다소는 불과 27년 만
"사라진 생명을 되살리는 일, 우리가 끝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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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는 사라지는 데 한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존재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다 투르페이넨의 《숨의 조각》은 역사상 가장 빨리 멸종한 해양 포유동물 가운데 하나인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1741년 인간에게 발견된 스텔러바다소는 불과 27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거대한 몸집과 온순한 성격, 인간에게 쉽게 사냥당할 수 있었던 특성은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멸종을 앞당기는 비극의 이유가 되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간에게 바다소는 생명을 구해 준 존재였지만, 그 생명을 구한 동물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사라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시작된 사냥은 점차 이익과 소유의 논리로 이어지고, 마침내 한 종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해야 했던 최초의 순간과, 그 희생이 돌이킬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인간에게 자연이 얼마나 쉽게 자원의 이름으로 바뀌는가 하는 문제였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도 인간에게 쓸모가 있는 동안에는 귀하게 여겨지지만, 그 가치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는 순간 생명 자체의 의미는 희미해진다. 


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만나는 일이지만, 

그 발견이 반드시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숨의 조각》에서 인상적인 것은 멸종이라는 결과만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생명이 사라진 뒤에도 그 흔적을 좇는 사람들의 시간이 계속된다.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한 박물학자, 사라진 종의 뼈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흩어진 골격을 맞추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이들까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스텔러바다소와 연결된다.


한 동물의 역사가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삶을 통과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호기심이 있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사라진 생물을 찾으려는 집념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뼈는 연구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게는 수집할 가치가 있는 희귀한 물건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모습을 세상에 전하는 예술의 재료가 된다. 같은 뼈를 바라보더라도 사람마다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의미는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시선의 중심에는 이미 사라진 생명이 있다.


🔖“멸종에 관한 생각은 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하고”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인간이 멸종을 바라보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모습을 궁금해하고, 거대한 골격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과거의 세계를 상상한다. 공룡과 매머드처럼 멸종한 생물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 신비로움의 이면에는 실제로 살아 있었던 생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멸종한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은 조금은 모순적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존재를 충분히 살피지 못하면서, 사라진 뒤에는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다.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기에 더욱 궁금해하고,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더 오래 바라본다. 그렇다면 인간이 멸종한 생물에 매혹되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일까.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뒤늦게 이해하려는 인간의 마음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그는 동물과 식물, 돌을 선택했고”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지나쳐 가는 풍경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록해야 할 생명이 있고, 관찰해야 할 흔적이 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자연을 향한 탐구는 눈앞의 대상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름을 붙이고 특징을 기록하며, 다른 존재와 구별하고 그 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록과 분류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존재를 기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인간의 지식과 체계 안에 가두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바뀌는 순간, 탐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텔러바다소의 역사가 마음 아리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동물을 발견하고 이름을 남겼지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동안 정작 살아 있는 개체는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지식 속에서 한 종의 존재는 선명해졌지만, 자연 속에서 그 생명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기억하는 일과 지켜 내는 일은 같지 않다.

제목인 《숨의 조각》에서 '숨'은 살아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징표다. 그러나 사라진 동물에게 남은 것은 숨소리도 체온도 움직임도 아닌, 흩어진 뼈와 기록뿐이다. 인간은 그 조각들을 모아 다시 몸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각각의 뼈를 제자리에 놓고, 서로 떨어져 있던 부분을 연결하며, 한때 바다를 유영했을 거대한 동물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렇게 완성된 골격은 과거의 생명을 눈앞에 불러오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이 남긴 흔적을 통해 재구성한 모습이다. 뼈가 아무리 완벽하게 맞춰져도 그 안에 살아 있던 숨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복원된 골격은 인간의 지식과 기술, 인내와 정성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끝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라진 존재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록할 수 있지만, 그 존재가 살아가던 세계와 시간을 온전히 되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복원은 재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며, 잃어버린 생명을 기억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다시는 같은 상실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이 작품이 과학과 예술, 역사와 픽션을 넘나든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과학은 생물의 형태와 특성을 설명하고, 역사는 그 생명이 인간과 만났던 시간을 기록한다. 예술은 남겨진 흔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며, 문학은 기록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을 들여다보게 한다.


서로 다른 분야가 한 생명의 역사를 중심으로 만날 때, 멸종은 더 이상 생물학 교과서에 적힌 하나의 용어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발견이었고, 누군가의 생존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탐구와 집념이었다. 동시에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멸종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기후와 환경이 변화하며, 수많은 생물이 생존의 위협에 놓여 있다. 모든 멸종의 원인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선택이 다른 생명에게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죽은 뒤에 아름다운 골격을 남기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생명이 자기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환경을 지켜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숨의 조각》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실 이후의 태도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에야 그것의 가치를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후회가 반드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일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있다.


스텔러바다소의 골격 앞에 선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과거에 존재했던 거대한 동물의 놀라운 형태일까. 사라진 생명을 찾아낸 과학의 성취일까. 아니면 인간이 자연에 남긴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일까. 아마 그 모든 것이 겹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골격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한 종류의 새가 사라진다고 해도 큰 주의를 끌지는 못한다.” 


이 문장은 멸종이 언제나 극적인 사건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생물은 거대한 몸집과 독특한 외형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어떤 생물은 이름조차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진다. 

사라짐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그 생명의 가치가 작았던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알지 못하는 생명은 쉽게 잊힌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의 상실은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기록되더라도 충분히 애도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연을 지킨다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선택적인지 생각하게 된다. 

멸종의 가장 무서운 모습은 사라지는 순간보다, 그 사라짐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숨의 조각》이 들려주는 여정은 사라진 생명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생명의 자리를 줄여 가면서도, 우리는 과연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탄하고, 희귀한 동물을 사진에 담고, 박물관에서 거대한 골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지키고,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며, 당장의 이익보다 오래 이어질 생명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한 생명이 사라진 뒤 그 뼈를 모으는 데는 수많은 사람의 손길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보다 훨씬 이른 순간에 시작할 수 있다. 아직 잃지 않은 것들을 돌아보고, 사라짐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부터 말이다.



스텔러바다소의 거대한 골격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완성된 몸의 형태는 한때 존재했던 생명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그 생명을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 슬픔으로 바뀌고, 슬픔이 다시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그 기억은 과거의 기록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숨의 조각》은 사라진 동물의 부고이자, 인간의 탐욕과 호기심, 후회와 집념이 교차하는 역사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한때 바다를 가득 채웠을 거대한 생명은 이제 뼈의 조각으로만 남았다.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모습을 이루었듯, 우리가 기억하는 작은 생명의 흔적들도 모여 자연을 이해하는 더 큰 시야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라진 숨을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그 숨이 사라진 이유를 기억하고 같은 상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멸종한 생명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늦었지만 가장 필요한 애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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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 2026.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숨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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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자연의 거대한 생명체가 인간의 손으로 발견되고 또 한순간에 소멸하기까지, 그 시간은 얼마나 덧없고 잔인한가요. 핀란드 작가 이다 투르페이넨의 첫 장편소설 <숨의 조각>은 역사상 가장 빨리 멸종한 해양 동물인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쫓으며, 우리가 지워온 생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책장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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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연의 거대한 생명체가 인간의 손으로 발견되고 또 한순간에 소멸하기까지, 그 시간은 얼마나 덧없고 잔인한가요. 핀란드 작가 이다 투르페이넨의 첫 장편소설 <숨의 조각>은 역사상 가장 빨리 멸종한 해양 동물인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쫓으며, 우리가 지워온 생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북극의 차가운 바다와 박물관 골격 사이에 놓인 기나긴 세월의 간극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호기심과 정복욕이 어떻게 하나의 온전한 생명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렸는지,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류가 치러온 지난한 추적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깊이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인간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또 무엇을 지워왔던 것일까요.




이 책을 쓴 이다 투르페이넨은 해양 생태계와 연구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란 배경을 바탕으로, 과학과 역사, 문학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작가입니다. 헬싱키 자연사 박물관에서 마주한 스텔러바다소의 웅장한 뼈대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7년이라는 오랜 연구 끝에 이 소설로 완성되었습니다. 18세기 탐험대의 기록부터 19세기의 채집과 복원 과정에 이르는 서사의 결이 더욱 또렷하게 살아납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과학적 사실에 문학적 숨결을 불어넣는 두 사람의 호흡은 이 책을 단순히 지나쳐 갈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기록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소설의 전반부는 1741년 베링 탐사대와 함께 미지의 땅에 발을 디딘 박물학자 스텔러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지도에도 없는 척박한 무인도에서 마주한 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포유동물, 즉 훗날 스텔러바다소라 불릴 존재와의 만남은 생명을 마주한 경외감과 생존을 위해 그것을 소비해야 하는 인간의 야심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특히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불타버린 기록들 속에서도 뼛조각 하나에 의지해 존재의 진실을 증명하려던 이들의 모습은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기꺼이 기억하고 복원해내려는 인간의 눈물겨운 의지가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일상에서 당연하게 존재하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빈자리를 마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풍경이나 관계가 소실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남긴 무게를 실감하게 되듯, 이 책이 그려내는 멸종의 역사 또한 그러합니다. 스텔러바다소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단 27년 만에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풍요와 발전 속에 얼마나 쉽게 거대한 상실을 은폐하며 살아가는지 날카롭게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흔히 과학과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이 소설은 그 기록의 이면이 결국 인간의 욕망과 오만으로 채워져 있음을 직시하게 합니다. 흩어진 뼈를 모으고 박물관에 온전한 형상으로 되살리려는 유구한 노력은 잃어버린 것을 향한 진정한 헌사이자, 동시에 자연을 소유하고 전시하려던 인간 중심적 시선의 또 다른 발현이기도 합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대표되는 현대의 복원 욕망 역시 이러한 역사적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숨의 조각>은 단순한 자연과학의 역사나 흥미 위주의 멸종 보고서가 아니라,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오만과 그 속에서 피어난 경외심을 동시에 읽어내고자 하는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궤적을 문학의 언어로 복원해 내는 과정에 깊이 매료되고 싶거나, 인간과 생태계가 앞으로 맺어야 할 올바른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골몰해 온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커다란 지적 자극과 정서적 여운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h*******5 2026.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