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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닌 살아오는 동안 행복하셨어요?
딸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쇠약해진 엄마, 죽음을 앞에 두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고 묻고 싶었지만 딸은 차마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듯 그렇게 오가고 있었으니까. 삶이 어떻더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특별하게 이름을 남긴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라면.
아주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배우자와 함께 해 온 짧은 시간, 아이들 셋을 낳아 기르며 살았던 시간들. 나이 많은 남편이 죽고난 뒤 원예에 대한 글을 쓰며 나름 새롭게 태어났던 자신만의 즐거움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자식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오래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닐지도. 한 여자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소소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생을 글로 나타내는 일은 나의 삶을 반추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을 쓸것이며, 또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소설로 이끌수도 있다고 본다.
작가 캐럴 실즈는 이렇듯, 한 여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자의 일생을. 소설 속 주인공인 데이지의 생각으로 보자면 나름 파란만장한 삶이었을까.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죽고, 옆집 아주머니에 의해 길러진 데이지. 아주머니가 죽자 아주머니의 아들 바커 플렛과 살 수는 없어서 친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고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하룻밤도 채 함께하지 못하고 남편이 호텔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 오랜동안 혼자 지내던 데이지는 여행을 하기로 했고 여행길에 바커 플렛에게 들렀고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남편 바커와 나이 차는 스물일곱 살 차이가 났고 그는 빨리 죽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온 일들이 우리 어머니 혹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캐럴 실즈의 작품 속에서였다. 캐럴 실즈의 작품 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데이지의 삶은 어쩌면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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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글이었다. 태어나고 자라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죽음 앞에 이르기까지의 생애. 우리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시시해 보이는 삶이지만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을 겪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삶.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바로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하루하루 어둠의 숲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과거의 삶이 되고 미래의 삶을 향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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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으로 이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우선 믿음이 간다. 캐럴 실즈의 대표작인 '스톤 다이어리'가 바로 퓰리처상 수상작품으로 여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출생부터 남다르다. '데이지 굿윌'의 부모님부터 소개하자면 이렇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어머니 머시 스톤... 스톤이란 이름을 통해 그녀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며 남들보다 조금 과하게 풍만한 육체를 지닌 그녀의 몸을 보며 아버지 카일러 굿윌은 편안함을 느낀다. 유달리 키도 작고 마른 몸을 가진 남자가 이상형은 과한 체중의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아버지에게는 대만족, 어머니는 대강 만족하며 사는 정도로 느껴진다. 평소의 식욕이 좋았기에 임신을 전혀 몰랐던 어머니는 그만 자신이 임신 했다는 자체부터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데이지를 낳고 그만 하늘나라로 떠난다. 남겨진 아이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옆집에 살며 머시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클래런틴 부인의 적극적인 표시에 의해 아이를 그녀가 키우게 된다. 이미 그녀에게는 장성한 세 명의 자식이 있지만 머시의 아이 데이지는 그녀에게 또 다른 삶의 의미를 가진 소녀로 클래런틴 부인은 깊은 사랑으로 데이지를 키운다. 다만 사랑이 많은 클래런틴 부인이 남편의 곁을 떠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첫째 아들 바커 플렛 곁에 머물며 지낸다. 데이지를 키우는데 일정 금액의 돈을 친아버지 카일러 굿윌에게 받고 있지만 큰아들 바커의 도움도 받고 그녀 스스로 식물을 가꾸는데서 돈을 마련해 쓸 정도로 절대 사랑 없이는 이런 수고를 하지 못할 정도로 데이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있다. 헌데 세상일이 어디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듯이 정말 어이없게도 자전거를 타는 소년으로 인해 그만 클래런틴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열한 살의 데이지를 보며 당혹함을 가진 바커는 그녀를 친아버지 카일러의 곁에 보내기로 한다. 태어나서 십년 이상을 떨어져 살던 친아버지나 데이지... 두 사람은 새로운 고장, 새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자신에게 성심성의껏 설명하는 아버지와 햇살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는 데이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스토리는 거의 10년 안팎의 텀을 두고 전개된다. 초반부에 예사롭지 않은 출생과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웃 아주머니의 정성어린 사랑을 받고 자란 데이지가 친아버지와 함께 살며 여자 대학을 졸업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 결혼을 결심 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녀의 일생이 어쩌면 평범하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헌데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일이 그녀에게 다시 일어난다. 남편 될 남자는 난폭한 행동과 병적인 우울증을 가진 잘 생긴 남자로 자신의 사랑으로 이 남자의 불안정한 면을 고쳐줄 수 있을 거란 다소 어리석은 확신을 가지지만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사고로 죽고 만다. 우리나라 같으면 엄마에 남편까지 잡아먹었다며 동네에서 말 꽤나 들을 법한 사연을 가진 여자로 찍혔을 것이다. 물론 데이지에게도 이와 비슷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다른 누구보다 죽은 신랑의 어머니가 그러하다. 새로운 환경을 원하는 마음에 클래런틴 부인의 첫째 아들 바커가 있는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고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넘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는데.... 데이지 굿윌의 인생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초반부에 이미 느껴진다. 비극적인 출생과 두 번의 결혼, 출산, 사별, 자기를 발견하는 시간, 죽음을 통해 한 여인의 삶이 다큐멘터리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보여주고 그녀의 인생에 완전히 동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 자신이 한 남자의 아내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몇 개의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빼고는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데이지의 인생이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인생이란 게 남의 눈에 비친 나와 진짜 나의 삶은 많이 다르다. 데이지의 인생이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 나름의 여자, 엄마, 할머니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며 그 나름의 행복과 슬픔, 아픔, 절망 등을 맛보았을 것이다. 데이지의 다큐멘터리 인생도 흥미롭지만 그녀의 두 아버지들의 인생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년간의 짧은 아내 머시와의 결혼 생활은 카일러 굿윌의 인생의 상당부분을 지배한다. 카일러의 여러 감정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는데 반해 클래런틴 부인이 곁을 떠난 시아버지 매그너스는 많이 황당하고 아내를 용서하기 힘들었을 거 같다. 클래런틴 부인이 매그너스의 곁을 떠난 이유를 보며 지금이라면 이런 경우를 가진 남편과 함께 살기 싫은 여자들이 많았겠지만 1910년대의 시대는 우리나라처럼 남성들의 의견이 서구사회도 많이 좌지우지 하는 모습을 가졌기에 데이지가 시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이 차분한 것에 이해가 된다. 데이지 굿윌이란 한 여성의 인생을 쫓아가며 20세기 서구사회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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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이 책을 잡았을때 날 사로잡은 것은, 글자가 아니라 표지였다. 매우 사랑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하얀 벽면과 온화한 미색의 바닥을 햇빛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100여 페이지까지 읽으며 느낀 인상은 이 빈공간의 외로움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난 또 매우 사랑하는 영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ter Mitty)]를 세번째 보았고, 그중 [라이프]지의 마지막호의 커버사진을 맡은 사진작가 션 오코넬의 메세지를 새로운 회사중역 테드가 언급하면서, 그의 메세지가 담긴 봉투가 노인 메신저로부터 왔다며 말하고 그 순간 잠깐 멈춰선 메신저가 화면에 나왔다. 그리고 또 한 장면. 가장 중요하지만 생략된 장면. 션이 선물한 지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나중에 피아노를 팔때 엄마가 이 지갑을 그에게 건내주는 장면. 그의 엄마가 쓰레기통에서 이 지갑을 집어올려 소중하게 먼지를 털는 장면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데도 생략이 되었다. 그런 것처럼 이 작품은, 그렇게 주목받지않은 - 심지어 평범한 그레이의 색깔인 월터마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마당에 - 사람의 주목받지못했을, 인생의 장면까지도 건져올리려 부단히 노력했음을 꺠달았다.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며, 편지글이나 기사문을 통해서도. 이 작품은 원제 [The Stone Diaries]가 Pat Lowther의 'A Stone Diary'에서 영감을 받았고, 또 의외로 데이지 이상으로 나에게 강렬한 인상 (머시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과 결혼후 완벽한 인생을 꺠닫는 부분, 그리고 아내를 위해 돌을 조각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의외로 기대하던 바커가 데이지를 재회하는 장면은 과감히 생략되어서 의아했다 ...나로서는 단 한번도 소멸된 시간을 이해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계절이 부풀어 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것이나, 한해가 끝나고 또 한해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았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인간들이 본질적으로 무력하다는 것과, 우리 인생의 태반이 낭비되고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문장의 일부분조차 입에서 걸리는 것이다..어떻게 그 시간들이 깨끗이 사라질 수 있을까?...p.53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게 마련이다...p.159 ) 을 주었던 그녀의 아버지 카일러가 죽은 아내를 위한 돌조각 장면에서의 찡그린 얼굴과 거칠어진 손의 행위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관심이 없던 것이 다른 관련도 없는 것들을 통과해 관심권의 범위로 들어선다는 것은 꽤 독특한 느낌인데, 마치 의외로 더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거실에서 식은 소파의 겉표면에서 느껴지는 그런 시원함과 비슷했다. 데이지 스톤 굿윌 호드 플렛, 그녀의 이름은 결국은 데이지 굿윌에서 데이지 플렛으로 바뀌었을 뿐이겠지만, 이 성들은 다들 그녀의 인생의 한장면을 구성한다. 1905년 캐나다에서 가난한 석공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를 그날 잃고 신혼여행에서 첫날밤도 지내기전에 남편을 잃었다는 사실 정도는 평범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녀는 인생내내 일꺠워지는 그 어떤 업적이 아니라 가장 최신의 쇼킹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그런 평범한 여자였다. ...이 세상의 수많은 남녀가 매일 아침 각자의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 자신의 삶에서 어떤 실체를 갈망하지만, 결국은 매일매일 자신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p.360 인생을 이해하기도, 남자를 이해하기도, 아니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 평범한. 하지만, 가계도를 지나오며, 아니 결국은 그녀의 탄생의 순간에 있었던 유대인 행상아저씨까지도 기억된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가장 행복하고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한다. ....인생이란 끝없는 증언의 연속이게 마련이다. 그것에 사치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간에, 우리의 상태는 목격될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관심받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의 추억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식들, 탄생과 사랑, 죽음 같은 의식들은 누구에게든 그리고 소용이 있든 없든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p.64 ...우리 인생에서 보다 큰 외로움은 흥분과 동요를 억제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의 기상을 억누르고 유예와 예행연습이 주는 안락함에 몸을 내맡긴다...p.397 p.s: Pat Lowther - Pat Lowther At the beginning I noticed the huge stones on my path I knew instinctively why they were there breathing as naturally as animals I moved them to ritual patterns I abraded my hands and made blood prints
Last week I became aware of details cubes of fool’s gold green and blue copper crystal formations fossils shell casts iron roses candied gems
I thought of the Empress Josephine, the Burning of Troy between her breasts, of Ivan the Terrible lecturing on the virtues of rubies. They were dilettantes.
By the turn of the week I was madly in love with stone. Do you know how beautiful it is to embrace stone to curve all your body against its surfaces?
Yesterday I began seeing you as desirable as a stone I imagined you coming onto the path with me even your mouth a carved stone
Today for the first time I noticed how coarse my skin has grown but the stones shine with their own light, they grow smoother and smoot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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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사촌 동생이 결혼식에 참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척들의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번은 결혼식장이 집 바로 옆이어서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거의 10년 만에 만난 친척도 있었다. 결혼식을 하는 사촌 여동생 역시 10년 만에 만나 신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결혼식 후 모두들 다시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10년간의 공백이 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안다는 것은 이렇게 인생의 한순간의 만남을 통해, 비어져 있던 공간들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공간들이 채워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내 인생도 타인에게는 몇 번의 중요한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해 나머지 공간이 채워지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는 것처럼, 순간의 단면들이 연결된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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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학에서는 '보윈'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어 낸 '가계도'라는 개념을 내담자의 가족관계를 파악할때 쓴다. 도표로 구성되어 있지만 자세한 설명으로 인해서 조금만 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보면 그 사람의 사생활(자식이 몇명인지 이혼을 했는지의 여부 등)을 알 수 있어서 비밀유지를 해야 하는 정보에 속한다. 이 책에서도 제일 처음에 가계도를 제시하고 있다. 상담학에서 쓰는 그런 표가 아니라 이름을 나열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생몰년과 더불어 결혼을 한 연도도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은 데이지 한 명이지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만나지는 가족관계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사람이름이 헷갈린다면 미리 보고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책을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스톤 다이어리. 제목이 의미하는대로 일기형식을 띄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데이지라는 한 여자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죽는 날까지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일종의 그녀의 행적기라고나 할까. 이런 설명에 재미없을 것이라는 선반응은 금물. 그 어떤 책보다도 생생한 묘사와 살아있는 상황들이 재미나기도 하고 웃음이 지어지고 감동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그 생활 자체가 어떠한 때는 큰 사건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머시라는 한 여자가 있다. 남들보다 크고 뚱뚱한. 그래서 인기도 없었을 것 같은 그런 여자다. 부모는 모두 없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타고난 살림솜씨로 그 곳에서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고 그곳의 문이 고장나 부른 석공이 그녀에게 빠져서 그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없는 그. 하지만 둘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퇴근후 행복하게 둘이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오던 카일러는 그 여느때와 다른 집안 분위기를 깨닫게 된다. 다른때에는 없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체 머시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번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머시말고 다른 존재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카일러.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새로운 존재를 자신이 챙기는 대신에 이웃에서 머시와 친하게 지냈던 클래런틴에게 맡긴다. 클래런틴이 그대로 이웃집에 살았다면 또 다른 관계가 생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클래런틴은 자신의 남편을 떠나 자신의 아들집으로 간다. 카일러의 새로운 존재와 함께 말이다. 그곳에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데이지라고 이름 붙여진 새로운 존재는 살아간다. 그녀가 사고를 당해서 죽음을 당하기 전까지. 그 이후 데이지는 어떻게 될까.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좇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책에서도 십대가 되기까지의 일과 대학을 다녔던 시절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 생기는 그 해를 기준으로 해서 단락을 나누고 그 해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적어 내려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지루함을 줄였고 속도감을 높였다. 사건사고가 중심이 되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탁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이리도 흥미로울줄은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다. 자기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화제에 오르는 것은 주로 유명인사들이다. 연예인이라던가 또는 정치인이 될수도 잇겠다. 그리고 또한 자신과 연관되어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할때 보면 사람들은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며 듣는 경향을 보인다. 아마도 자기 자신의 삶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그러한 기분으로 이 이야기를 읽어주면 좋겠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한 여자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려준다면 재미나게 듣듯이 그렇게 말이다. 한 여자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과 결혼해서 어떤 아이들을 낳았으며 그녀의 노년은 어떠했는지 지극히 평범한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특했던 그녀의 인생을 지금부터 따라갈 볼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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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아내는 아내에게 임신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p.93)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이를 얻은 카일러 스톤, 그는 어째서 아내 머시 스톤이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야 본인도 아기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라고 말하면 어처구니 없을까?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사실이다. 데이지의 엄마 머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도 몰랐고 '임신중독증'인 줄은 더욱 몰랐을게다. 깡마른 남편과 달리 그녀는 살이 푸짐했고 식욕 또한 좋아 임신했을때 찾아오는 입덧의 증상 또한 느끼지 못했으니까. 엄마를 잃은 데이지는 이웃집의 클래런틴 부인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스톤 다이어리》는 1905년 매니토바의 시골에서 태어난 '데이지 굿윌 플렛'이라는 여성의 일생을 적어놓고 있다. 1장이 데이지의 출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2장은 바커 T. 플렛 교수와 함께 지내던 시절을 이야기 한다. 클래런틴 부인이 급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11살 소녀 데이지는 어디로 가야할까? 부모가 누구인지 알수없는 고아 출신에 뚱뚱하기까지 한 거구의 몸체를 지닌 머시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기란 우리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일이다. 스톤월 고아원에서 자라나 나이가 차면 다른 곳으로 떠난 아이들과 달리 살림을 잘 한다는 이유로 그것에서 살림을 총괄하게 된 머시는 수리를 하러 온 2살 연하의 카일러 청혼을 받아들여 그와 가정을 꾸린 것이 28살이며 아이를 낳다 죽었을때 그녀의 나이는 30살이었다. 데이지의 삶에 있어 엄마 머시가 차지하는 영역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자신을 낳다 죽은 엄마에 대해 좋은 기억이나 그리움 따위는 없겠지? 카일러는 아내 머시가 남겨준 자식이지만 함께 한 기억이 없는 데이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과연 카일러의 선택은? 책을 읽다 띠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동그란 은색마크에 '퓰리처상 캐나다 총독상 수상'이란 문구가 찍혀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아이에 대한 책임과 부양의무를 함께 진다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 현대의 부부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면서 아이를 맡길 거부하는 일들이 많다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록 아이를 직접 키우지는 않더라도 양육비를 지급하며 믿고 키워줄 사람에게 데이지를 맡긴 것으로 카일러는 일정부문 도리를 다 했다 할만하다. 하지만 이제 직접 11살 사춘기 소녀와 부딕히며 살아야 한다면? 1916년은 바커 플렛 교수의 엄마 클래런틴 플렛부인이 세상을 떠나 해이며 데이지의 아버지 카일러 굿윌이 죽은 부인을 위해 쌓던 탑이 완성된 해이기도 하다. <가계도>는 데이지 스톤이 바커 플렛과 결혼 큰 딸 앨리스를 비롯 다섯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그 아이들이 장성해서 결혼 또 다른 후손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음을 말해주고있다. 1905년에 출생~ 199?년이라는 100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았고 함께 해왔다. 1905년은 요나슨 요나손의《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이 태어난 해이다. 태어나면서 엄마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있는 데이지에게 이번에 새로운 시련이 다가왔다. 신혼 여행 중 남편을 잃게 된 것, 왜 그녀의 남편 해럴드 A. 호드는 하필이면 신혼여행을 가서 자살을 한 것일까? 다음은 클래런티 플렛이 남편 매그너스 플렛과 살면서 몰래 읽은 책의 목록이다. 로라 진 리비의《마음을 얻기 위한 투쟁》알렉산더 부인의《황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플로렌스 워던의《세상 뜻대로》샬럿 브론테의《제인 에어》이중 유일하게 알고있는 책이 '제인에어'다. 이 책은 후에 부인이 집을 떠난 후 매그너스가 읽은 책이기도 하지. 한 사람이 100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세상에 남겨놓을까? 데이지에게도 다섯명의 자식들과 그들이 낳은 손자들로 인해 대가족이 생겨났다. 데이지 그녀가 죽고 난후 남겨진 사람들의 평을 읽으며 그녀의 삶도 살만했구나 하며 살며시 웃음기가 맴돌았다. 그래~ 살만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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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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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인생 혹은 내가 알 법한 여성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소설을 읽고 싶었으나 그런 소설을 찾지 못한 채 1970년대를 보냈고, 끝내 찾지 못한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자 했다. <스톤 다이어리>는 평범하기그지 없는 내용이다. 한 여성의 100여년 인생에서 탄생부터 죽음까지,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한다. 주인공 데이지 굿윌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어 이웃 아주머니에게 키워진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적령기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행하게도 신혼여행중에 벌어진 사고로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다. 과부로 몇년을 더 살다가 자신을 애지중지 길러주었던 아주머니의 큰 아들, 22살차이가 나는 버커씨와 재혼을 하게 된다. 딸 둘, 아들하나를 양육하며 지내다가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이 하던 칼럼 기고 일을 맡게되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끼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도 세상을 떠난다.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책 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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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짧은 평 - 독서모임 전 남긴 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화두가 우리를 지배한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꼭 어떻게 살아야 해! 라고 정의 내리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스톤 다이어리의 데이지의 삶을 바라보면 수많은 풍랑과 두려움의 순간들도 그냥 그렇게 흐르고 살아갔고, 살아왔으며 어느날 문득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 몸과 정신이 내 통제를 벗어나는 시기를 만난다. 그녀가 죽고 그녀의 삶을 남겨진 무언가로 판단하는 후손들의 말에서 우리 사회가 판단하는 삶의 기준이 보이는 것 같았다. 데이지의 삶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그녀 주변인들의 삶을 바라보며 섬세한 묘사와 때론 너무나 무심한 전지적 시점의 표현들이 밀땅하듯 누군가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가도 어느새 멀찌기 거리를 두는 표현들에서 경건함을 느끼기도 한다. 400페이지가 넘는 일대기를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주어진 삶을 그냥 살아가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혹은 지금의 나는 어떤 마음인지" 나의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 고 말하고 싶다.
북클럽 참여자들의 생각들... * 작가의 시선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 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엄마의 감정들과 아빠의 감정들. 그렇게 밀접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거리를 두며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긴다. ++ 출산 장면부터 그 세밀한 묘사와 임신한줄도 모르고 있던 엄마의 고통에 대한 표현들이 동시에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사이에서 우리를 죽음에 측은해 해야 할지, 태어남에 축복해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 평범한 여자의 삶인데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평범하게 느끼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다. * 우리가 살아가는데있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하지 않은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그녀 혹은 그녀의 주변이들의 표현해 내지 못하는 삶이 너무나 맑게 투영되어있다. * 어머니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들, 평탄하게 살아온 주인공 데이지는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못한게 많았다. * 출산이 축복이라고 하지만, 출산의 당사자에게 그 순간은 엄청난 고통의 순간일 수 있다. 그것도 임신인줄 모르고 있다 느끼는 그 출산의 순간 고통들이 주는 공포심. * 말미에는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회고와 기억에 중점을 두며 우리가 살아온 삶은 내것이지만, 평가는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데, 주인공은 엄마 없이 자랐기에 자신의 딸 혹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할지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물건을 통해 추억하기에) 주인공이 자녀들에게 남겨둔 물건들에 대한 자식들의 태도..... * 말로 표현하는 능력 부분. 마음을 표현하고 내보이는 방법 등등 주인공의 감정표현이 많이 없는 부분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가 자신의 것 혹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삶과 9년간의 칼럼과 독자와의 소통이 주는 중요성 등등 캐릭터들의 분석과 작가가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은 부분들을 추론해서 채워넣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인의 삶에 대해, 부동산, 직장, 연금 등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야기 해줘서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2시간 30분을 꽉 채운 소설 읽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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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카일러 굿윌과 머시 스톤 사이에서 태어나 80여 년의 삶을 살다 간 데이지 굿윌 플렛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이어리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일기, 편지, 독백, 3인칭 서술 등 각 챕터마다 내용에 어울리는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산업과 과학, 사회와 문화 등 전 분야에서 격변을 겪던 20세기의 시작 무렵에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출발한 한 여자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지금의 시대를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에피소드들 – 부부, 가족, 친구, 사랑, 애증 등 – 이 등장합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가계도(家系圖)가 암시하듯 이야기는 데이지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평범한 채석꾼에서 최고의 석공 자리에 올랐지만 딸에게는 가깝고도 먼 존재였던 아버지, 데이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줬지만 정작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숨을 거둔 어머니, 오갈 데 없던 데이지를 보살피며 키워준 양어머니,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데이지의 인연이 된 남편,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얻은 좌충우돌 세 자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고, 동시에 데이지의 평생의 절친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맛깔난 조연 역할을 해줍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거나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서 더 공감과 이입의 폭이 넓었던 것 같습니다. 아,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맞이하겠구나, 라는 공감, 또, 딱히 본받거나 존경할만한 미덕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내 어머니, 아내, 딸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이입이 잔잔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꾸준히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바커 플렛이 식물과 정원을 사랑했던 사람이라 당연한 결과겠지만 자연과 식물에 관한 상세하고 꼼꼼한 문장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녀가 태어난 캐나다 작은 마을이나 삶의 터전을 잡은 여러 곳의 자연 풍광, 또 남편을 잃은 뒤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해줬던 꽃과 식물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각별한데 그것들은 단지 소품이 아니라 데이지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돼줍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성실한 자료조사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가의 애정 어린 묘사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깊게 음미하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르물의 빠른 책읽기에 익숙해져서 처음엔 좀 곤혹스러웠지만, 일부러 읽는 속도를 줄이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느린 책읽기가 어려운 독자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롤러코스터 같은 진폭이나 극적인 갈등보다는 제목처럼 다이어리에 충실한 내용인데다, 20세기 초반의 올드함 또는 고전미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식 문장들로 쓰인 탓에 폭풍 같은 서사와 어느 정도 막장스러운 가족사를 기대한 독자들이나 쉽고 간결한 현대의 문장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겐 자칫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듯 차분하게 데이지의 삶을 지켜볼 준비가 돼있다면, 또 작심하고 ‘안전속도’ 이하로 읽어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 가운데 ‘삶에 대한 긍정과 찬미’라는 찬사가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론 이 작품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평이라는 생각입니다. 데이지는 아주 찰나의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결코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삶에 대해 긍정하거나 찬미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자신 앞에 주어진 고난과 고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며 그 결과에 대해 때론 웃기도, 때론 눈물짓기도 하면서 8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낙관주의자도, 희망론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한 것은 작가의 말처럼 ‘슬픔’의 정서였고,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아주 많이 닮아있습니다. 만약 데이지가 고난 속에서도 삶을 예찬하는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미화됐더라면 아마 이 작품의 미덕은 상당 부분 훼손됐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언젠가는 이만한 깊이와 굴곡까지 지니진 못하더라도 내 곁을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이어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기억을 파내려가다 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별의별 해프닝들이 많이 떠오를 것이고 거기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들과 나눴던 희로애락을 평범한 문장으로라도 엮어놓고 두고두고 읽어볼 수만 있다면 그저 미미한 삶일지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잠시나마 빙긋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