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83%
  • 리뷰 총점6 17%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8.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 양심의 탄생 -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함'의 씨앗이 있다
"일본 양심의 탄생 -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함'의 씨앗이 있다" 내용보기
“나치는 10%에 불과했는데 왜 90%의 독일 시민들은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았죠?”1967년 캘리포니아의 큐버리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 한 학생의 질문으로 실험이 진행된다. 교사 론 존스는 30명의 학생들에게 회원증을 나눠주고 몇 명의 아이들에게는 질서유지 임무를 부여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파도당’ 모집이 시작되고 실험 3일 만에 회원은 200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가입을
"일본 양심의 탄생 -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함'의 씨앗이 있다" 내용보기

“나치는 10%에 불과했는데 왜 90%의 독일 시민들은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았죠?”


1967년 캘리포니아의 큐버리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 한 학생의 질문으로 실험이 진행된다. 교사 론 존스는 30명의 학생들에게 회원증을 나눠주고 몇 명의 아이들에게는 질서유지 임무를 부여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파도당’ 모집이 시작되고 실험 3일 만에 회원은 200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가입을 거부하는 학생에게 회유와 협박,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실험 5일째, 론 존스는 파도당을 강당에 모아놓고 ‘현재 국가는 비상사태다, 파도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해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학생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지만 파도운동의 창립자이자 지도자가 화면에 나타나자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론 존스가 화면에 띄운 인물이 ‘아돌프 히틀러’였기 때문. 학생들뿐 아니라 론 존스 역시 실험을 진행하며 독재자 역할에 본능적으로 빠져들었다고 고백한다. 론 존스와 파도당에 가입한 학생들의 마음 밭이 다른 사람들보다 거칠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일제 치하를 온 몸으로, 전 생으로 겪은 우리는 교육으로 아는 것보다 더 본능적으로 인간의 '악함'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악함'은 불특정 다수, 나치라는 무리, 일본이라는 한 국가가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속에 씨처럼 심겨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도 양심에 따라 자국의 행태를 비판하고 식민지 사람들의 상황을 대변하고자 하는 인물이 있었다. 오구마 겐지는 조선인 전(前)일본군 전우 오웅근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적극적인 반전 활동을 한 인물은 아니지만 저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아버지의 일생을 통해 전쟁과 인간, 평화에 대해서 독자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누구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씨앗과 '파도당'이 될 수 있는 씨앗이 함께 심겨 있다. 양심의 씨앗이 잘 자라려면 물을 주기적으로 주고 빛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서도 자라는 잡초가 있듯이 '악함'을 유발하는 씨앗의 생산물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나치가, 일본 제국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주저 없이 나라, 종족, 언어, 학력, 계급과 관계없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고 가르친다. 여기서 교육의 미신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인간 평등’은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가 분명하지만 교육만으로 그런 세상이 오지는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을 보고 영웅으로 만드는 행위도, 나쁜 측면만 보고 악인으로 몰아가는 행위도 올바른 인간 이해가 아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누구나 ‘파도당’의 열심회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자. 인간 존재의 모순을 겸손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 평등’이 가능해질 테니…….


s********8 2016.07.08.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에도 그들의 만행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도 그들의 만행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용보기
양심이란 고운 마음이다. 이 고운 마음은 자신들을 내려놓을 때 만들어 진다. 자신을 앞세우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는 이것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소자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고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이 많이 있는 곳은 화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
"일본에도 그들의 만행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용보기

양심이란 고운 마음이다. 이 고운 마음은 자신들을 내려놓을 때 만들어 진다. 자신을 앞세우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는 이것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소자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고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이 많이 있는 곳은 화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형성된다. 고운 마음, 자신만의 의로운 마음이 아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의로운 마음일 살아 있을 때 주변이 평화로워 지고 복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양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범국으로서 세계인의 지탄이 되고 있는 일본, 지금 아베 정권은 그 과거까지 도외시하고 감추려고 하고 있는데, 이들은 조상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며 그 바탕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일본 위정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국제적인 마찰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그 참혹한 일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가치를 판단하는데 있어 흔히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이렇다.”라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사람들의 본질에 다가가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개별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일본에서 대동아 전쟁 당시에도 전쟁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주위 국가들과의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베의 자위대 문제를 다루는 법안 통과와 그것을 반대하는 뉴스에 등장하는 데모하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들인가? 이 책은 그 문제를 양심이란 각도로 짚어 보고 있다.

 

세상은 혼자만 살아갈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때 그 집단은 의식의 혼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상대에게도 유익하다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강압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가령 식민국가에 기간산업을 건설하고,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내용들을 보급하는 것 등을 식민지 국민들도 좋아할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개별성이 있기에 소수는 동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그 국가의 정체성이 상실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것은 큰일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책은 겐지라는 인물의 삶이 일대기 비슷하게 적혀진다. 어떠한 가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 지 그려진다. 또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인 상황에서 군인으로 발탁되어 만주로 가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삶의 과정을 통해 나라의 상황과 세계의 정세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 속에서 겐지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떠한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되어 간다는 것이 그려진다. 결국 일본이 항복하면서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만주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고생을 한다. 그리고 시베리아 억류의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라 간의 포로 상환 문제를 통해 귀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그 억류 체험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공간의 삶 속에서 그는 일본 군인들의 전쟁 와중에 행한 참혹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것들이 전쟁에 대한 혐오와 민권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한 듯하다.

 

또한 일본에서의 삶도 얘기해 나간다. 아마 일상 속에서 평화도 누리고 어려움도 가지게 되면서 전쟁에 대한 실상과 정치에 대한 인식도 가지게 되었으리라. 직접 겪었고 느꼈기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고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며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를 생각했으리라. 또한 그런 결정을 해나가는 정치인들에 대해 혐오감도 일었으리라. 그는 전쟁이 일본에서 잘못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다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또 다시 법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나가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 정권에 대해, 심한 노여움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유를 누리고 그 속에서 인간적 권리를 누려나가는 삶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책을 통해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조선인 전우를 위해 법정에 서는 결과로 까지 나타난다.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일본 당국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투쟁을 통해서라도 바르게 이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이 여론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책 속에 흐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집단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많은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집단의 잣대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다 그런 것이다. 북한은 다 그런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을 개별화시켜 볼 때 우리는 그들 속에서도 많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군국주의 일본의 또 다른 관점이다.

j****3 2018.01.31.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 양심의 탄생]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기를
"[일본 양심의 탄생]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기를" 내용보기
어쩌면 살아가면서 양심을 속이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않는 일일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큰 상처를 주고도 모른척 지나치는 일이 있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수 있는데 자신이 스스로 양심고백을 하는 일도있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선과 옳고 그름과
"[일본 양심의 탄생]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기를" 내용보기

어쩌면 살아가면서 양심을 속이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않는 일일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큰 상처를 주고도 모른척 지나치는 일이 있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수 있는데 자신이 스스로 양심고백을 하는 일도있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선과 옳고 그름과 선과 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모르는 일이라면 당사자만이 양심의 문제로 고민을 하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도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할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잘못임에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과 나라를 우리가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일본 양심의 탄생>에서는 '오구마 겐지'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처음으로 만나는 이야기는 그가 입영을 하는 장면이다. 1944년 만 19세가 되는 나이에 육군 이등병으로 입영을 하는 것이다. '입영까지'라는 소제목을 가진 1장에서부터 '전후보상재판'이라는 9장에 걸쳐 한 인물의 인생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는 그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적 상황을 만날수 있다. 그의 집안이나 전쟁의 이야기를 보면서 한 개인의 삶을 만난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의 삶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색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는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오구마 겐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수 없다. 엎지러진 물도 담을수는 없을 것이다. 잘못한 것을 다시 되돌릴수는 없지만 사과는 할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양심까지 속여가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용서할수 없는 것이다.

 

"쓸데없는 전쟁에 붙잡혀가서 쓸데없는 노역을 당해 많은 동료가 죽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전쟁 때문에 노후를 위한 재산이 없어져 실컷 고생했다. 그런 것을 판사를 향해 말해도 쓸데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다." - 본문 341쪽

 

국가가 원하는 것이 그 나라의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 말할수는 없다. 어떨때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거대한 국가의 힘으로 앞서나가는 경우가 있다. 국민을 위한 일이라지만 국민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 나라가 전쟁을 하면서 그 나라의 국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있다. 국민이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한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것이라 무책임하게 말할수 있을까.

 

국가가 외면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기에 자신의 양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크다. 개인이 짊어가야할 문제라고 말할수 있을까. 누구를 위한 전쟁이였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누군가를 우리들은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아니,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힘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작은 소리를 내고 있지만 언젠가 그 소리들이 힘이 되어 큰 소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n******e 2015.10.07.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 양심의 탄생
"일본 양심의 탄생" 내용보기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정신적으로 함께 소통하지 못하는 나라, 일본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세계는 21세기 미래를 향해 동반자로 나아가는데, 일본은 여전히 1905~1945년에 머물러있다. 그들 위정자는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참배하고 있다. 역사 뒤안길로 아무렇지도않게 걸어가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문제는 나아지지않는 평행선이다. 경제적으
"일본 양심의 탄생" 내용보기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정신적으로 함께 소통하지 못하는 나라, 일본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세계는 21세기 미래를 향해 동반자로 나아가는데, 일본은 여전히 1905~1945년에 머물러있다.

그들 위정자는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참배하고 있다.

역사 뒤안길로 아무렇지도않게 걸어가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문제는 나아지지않는 평행선이다.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거짓투성이다.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 우기지 않나, 전쟁으로 인한 상흔들을 감추려고 하지 않나,

사과와 반성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 그들의 미래는 불투명이다.

매스컴에서 가장 많이 봐왔던 그들의 대처는 한결 같았다.

 

"보상은 하지 않는다. 사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로는 한다. 이것이 국가의 태도다"

구리하라 <시베리아 억류>

 

언밸런스다. 그들은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알지만 부정할 수 있다.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보여준다.

이해관계에 약삭빠르지만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솔직하지 못 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런 점들이 거의 모든 일본인들의 성향은 아니다.

어려울 때 나라마다 애국자들이 있듯, 지금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깨어나고 있다.

일본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한 남자의 이야기 <일본 양심의 탄생>이다.

 

오구마 겐지. 저자의 아버지로 1945년 20살의 나이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그 곳에서 소련의 포로가 되어 조선인 일본군과 함께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1948년 조국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것은 포로 출신에 대한 차별과 가난뿐이었다. 평범한 일본의 서민으로서 그가 한평생

살아낸 일본의 20세기는 파란만장했다. 고도성장과 버블경제, 후쿠시마 원전사고....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것도 천운이었지만, 그가 겪은 20세기 고국 일본에서의 삶은

더 드라마틱했다.

일본 민중들의 전쟁 전과 후의 경제, 사회의 모습과 생활상들을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전쟁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오구마 겐지의 삶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책 <일본 양심의 탄생>은 한 사람의 전쟁의 기억을 다룬 책이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전쟁 피해는 국민이 다같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으로 보상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요구가 거셀 경우 위로, 문안, 의료 지원이라면 한다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징집해놓고 지금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지급하지 않는다란 것은 문제가 있다.

전쟁 전에는 자기들 맘대로 창씨개명을 시키고 일본 국적을 억지로 안겼으면서, 패전 후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하고, 결국 1952년 4월 점령이 끝나자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저자의 아버지, 오구마 겐지는 시베리아 억류 전 관동군 병사 오웅근씨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전쟁 지원금(위로금) 10만엔 중 5만엔을 보내었다.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사죄의 마음을 담아'

 

역사를 왜곡하고 나몰라라 하며, 사죄와 반성하지 않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 기회는 있다.

국가의 비양심에 대항하는 깨어있는 '오구마 겐지'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나라의 지도자를 참 잘 뽑아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혜롭고 온화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 무엇보다 양심적인 지도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지금 일본의 지도자를 보니 계속 고개가 좌우로 흔들어진다.

과거로 회귀하는 지도자 vs 밝은 미래를 꿈 꾸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국민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전쟁에서 돌아 온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군국주의자와 자민당에 투표하지 않았다'

 

사과 한 마디가 그 뭣이 어렵다고... 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보상도 사과도 하지 않는 위로는 정말 아베스럽다.

그리고, 전쟁은 그 어떤 이유든 정당화될 수 없다.

 

 

 

l*****5 2015.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전쟁 반대!
"전쟁 반대!" 내용보기
선물 받은 책이다.   1925년 태어나 소화시대(昭和時代-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를 고스란히 살아낸 한 일본인 사내, 오구마 겐지의 이야기이고 책을 지은이는 그의 아들 오구마 에이지이다.   주인공 겐지는 1944년 징집돼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3년을 지냈고 귀국했으나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다행이 전후 일본의 경
"전쟁 반대!" 내용보기

선물 받은 책이다.

 

1925년 태어나 소화시대(昭和時代-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를 고스란히 살아낸 한 일본인 사내, 오구마 겐지의 이야기이고 책을 지은이는 그의 아들 오구마 에이지이다.

 

주인공 겐지는 1944년 징집돼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3년을 지냈고 귀국했으나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다행이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기에 운좋게 기회를 잡아 성실히 일한 덕분에 먹고 살만 하기는 했으나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전쟁에 대해 늘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예를 들자면, 부하들에게는 적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영광스러운 자결을 택하라고 다그쳤던 당시의 수상 도조 히데키가 스스로는 자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경멸하기도 하고 일본국왕 히로히토가 이 전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등이다. 자연스럽게 그는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단 한번도 집권 자민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한 편으로, 격동기를 지나온 그의 삶은 곧바로 일본의 근현대사와 그 괘적을 같이 하기에 덕분에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도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지켜 볼 수 있는 혜택을 얻기도 한다.

 

주인공의 아들은 이 책을 왜 썼을까?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살아낸 아버지의 신산스런 인생을 그리고 싶었다면 한국의 독자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다. 그와 똑같이 1925년에 태어난 한국인, 아니 당시 조선인의 일생은 그보다 몇 배, 몇 십 배는 더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35년의 식민지 생활과 징병, 징용, 성노예, 공출, 고문 등의 온갖 탄압을 살아낸 한국인들에게 겨우(한국인의 입장에서) 3년 정도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은 고생축에도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아버지의 고생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지루하게, 자세하게 오구마 겐지의 힘들었던 인생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일관되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 바로 '전쟁 반대!'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평범한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짓밟는 악마와도 같은 범죄행위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이고 일생을 통해 온몸으로 경험한 아버지의 삶을 통해 진지하게 이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는 조선인(오웅근)의 전쟁 피해 보상 재판에 기꺼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전쟁을 일으킨 이는 전쟁이 끝나도 대접을 받고 호의호식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니 쉽게 전쟁을 이야기하고 실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단지 지도상의 어느 어느 지역을 점령하고 말고의 문제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구마 겐지와 같이 한 사람의 일생, 나아가 그와 관련된 온 식구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일대 사변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더 힘있게 전쟁 반대!를 외쳐야 한다. 남과 북의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 더더욱 소리 높여 전쟁 반대를 외쳐야 한다!

r****l 2015.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에게는 더 많은 양심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양심들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중 하나였던 일제는 결국 패전을 하고 말았다. 이른바 전범국이 된 건데, 동경재판에서 많은 전범들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일부 핵심 전범들은 법망을 빠져나와 심지어 이후 총리까지 해 먹는다. 얼마 전 암살당한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전범 출신 총리였다.당연히 그 주요 피해당사국 중
"우리에게는 더 많은 양심들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중 하나였던 일제는 결국 패전을 하고 말았다. 이른바 전범국이 된 건데, 동경재판에서 많은 전범들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일부 핵심 전범들은 법망을 빠져나와 심지어 이후 총리까지 해 먹는다. 얼마 전 암살당한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전범 출신 총리였다.


당연히 그 주요 피해당사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민족적 상처이다. 여전히 친일파라는 말은 모욕적 명칭으로 사용되고, 정치인이 이토 히로부미를 인재로 치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우리 국민의 교양수준이 일본의 발톱의 때보다 못하다”는 식의 표현(솔직히 이건 중2병 느낌의 문장이긴 했다)을 쓰거나 하면 욕을 먹고 국회의원 공천까지 취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 혹은 일본 국민 전부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적절할까. 여전히 제대로 된 정부차원에서의 사죄를 할 생각이 없고, 분명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소위 혐한으로 벌어먹고 사는 버러지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런 심의 혐오로 먹고 사는 잉여들은 어느 나라나 다 있다).


하지만 일본사회 역시 그 안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투쟁가는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혐한을 나불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지하거나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는 건 과하다. 우리네 수많은 소시민들처럼, 그들 역시 당장 먹고 사는 게 바쁘지 않을까. 정치 선동과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인사들과 엮이는 것 자체가 좀 무섭지는 않을까. 나아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언제나 제국주의적 침략을 옹호하는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 말기 징집되어 만주 지역으로 갔다가 전투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온 한 일본의 젊은이(물론 지금은 노인이 되었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오구마 겐지가 바로 그 주인공.


사실 오구마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역사가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 시절 수많은 가난한 소농의 아들들 중 하나로, 국가의 징집령에 따라 동원되었다가, 그대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 하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애써왔던 한 소시민이다.


저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바로 그런 오구마 겐지의 아들이다. 현직 대학교수인 아들이 아버지가 경험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버지의 상세한 구술을 받아 적으며 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책에는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따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흔히 역사적 기록이나 사회학 책 같은 경우는 공식적인 기록 같은 것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도 말했든 개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일부 공식자료들을 덧붙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진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보여줄 수 없는 것 같다. 언론이니 공식역사니 하는 것들에는 언제나 시끄럽고 큼직한 사건들만 나오는 법이니.




 

책 제목에 “양심”이라는 두 글자가 짙은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렇다고 오구마 겐지가 무슨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회운동가나 반전운동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에 끌려갔으니 변변한 기술 하나 제대로 배울 새가 없었고,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후에도 밥벌이를 위해 십수 번의 직장을 옮겨가며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다행이 전후 복구 붐에 올라타 나름의 사업체도 만들어 말년에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또한 무슨 대단한 비전을 위해 했다기보다는 그저 먹고살기 위한 한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했다는 기억은 그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던 것 같다. 전후 그는 꾸준히 전쟁의 책임을 승계하고 있는 자민당에는 단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은퇴 후에는 지역사회의 봉사화동, 환경운동에 (본인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자리라도 채워주려고 애썼고,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기회가 되는 대로 알려서 반전의 신념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마찬가지로 포로까지 되었지만, 일본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오웅근씨의 소송에 공동원고로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3연속 패소였지만, 이런 결심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아직 “양심”이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에 관해 조금의 공식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곤 한다. 그런데 책 말미를 보면 일본정부의 이런 태도는 단지 외국인에게만이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동일하게 취해지고 있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전쟁 피해는 국민이 다 같이 참고 견뎌야 한다”는 희대의 막장 논리로 정부의 공식적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결국 피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너무 시끄러우니 입을 좀 다물게 하겠다는 의도로 위로금(그것도 정부 공식 예산보다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 후원금을 바탕으로 한)을 지급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단골 대처방식이다. 이게 일본 국민들에게야 정부 사정을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할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 돈 보다 사과가 우선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범국, 가해국의 국민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국 정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반대하며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수많은 소시민들 중에서 누가, 얼마나 이런 일에 온 힘을 다해 참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국의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부터 조금이라도 애쓰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양심적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작 전쟁의 최종적인 책임이 이들에게 잇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을 “일본 양심의 탄생”이라고 붙은 건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비단 일본에만 이런 양심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당장 우리 안에도 이런 양심들이 필요한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베트남전에 참여해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과 만행에 대해서도,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4.3사건, 보도연맹사건 같은 사상에 근거한 민간인 학살들, 심지어 며칠 전에도 대통령의 비서관의 주둥이를 통해 폄훼된 5.18 같은 데서 더 많은 가해자측에 섰던 이들의 양심이 필요하다.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고, 기억하지 못하면 힘 있는 이들이 멋대로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려 들 테니까.


p*********n 2024.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