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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 대해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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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남자지만 보통의 남자와 다른 어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부모님은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다. 생각도 진보적이고 말도 통한다고 생각한 아들은 부모님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다.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의 부모의 반응은 어땠을까. 진보적인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지 화를 냈다고 한다. 몇 년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건만 왜 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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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남자지만 보통의 남자와 다른 어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부모님은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다. 생각도 진보적이고 말도 통한다고 생각한 아들은 부모님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다.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의 부모의 반응은 어땠을까. 진보적인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지 화를 냈다고 한다. 몇 년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건만 왜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일까.

 

이 사회에서 아무리 생각이 앞서나가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남을 바라보는 시각과 내 일이었을 때의 시각은 다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게이나 레즈비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설마하는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현이가 정신과에 다니다가 의사로부터 확답을 받았을 때 충격이었다는 말이 오히려 내게 충격이었다. 아, 처음엔 그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는구나. 나는 정말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제서야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만약 내 주변에서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성적인 반응을 보이리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남의 일이었을 때와 내 일이었을 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가져본다. 정말 남자가 남자를, 혹은 여자가 여자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사춘기 시절에는 간혹 동성 친구에게 애틋하거나 아련한 마음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중에 결혼하지 말고 함께 살자고 굳게 약속하지만 조금 더 커서 애인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몰수하기 일쑤다. 그때는 그것이 참 야속했는데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보수적인 시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현이는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커밍아웃을 했는데도 오히려 좋아하는 여진이가 있고 끊임없이 관심가지고 지켜보며 속으로 응원하는 엄마도 있고, 남은 삶을 주고 간 상요도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현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자신도 상처받았지만 그 상처가 덧나지 않고 내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가장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현이 아버지조차 현이가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만약 현이 아버지가 그토록 지독한 마초가 아니었다면 현이 엄마가 이혼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현이의 정체성이 탄로났을 때 상요 아버지처럼 반응했을 테니까.

 

청소년 책에서 동성애를 다룬 책이 있던가. 스치듯 다룬 책은 있어도 이처럼 아예 대놓고 이야기하는 책은 없는 듯하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초로 하기에 작가가 자료조사를 해서인지 몰랐던 사실을 아는 기회가 되었다. 호모라는 말은 비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정식으로 게이라고 써야한다던가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l*****8 2010.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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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평범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자신이 평범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내용보기
헤드윅이라는 영화 OST에는 상당히 주옥같은 곡이 많은데 그 중 유독 한곡은 가사가 많이도 깊게 다가온다. 처음 이 세상에 인간은 두 사람이 하나였다. 몸은 둘, 팔은 넷, 다리도 넷, 그러다 갑자기 제우스 신이 번개를 내리쳐 그 한 몸이었던 그들을 둘로 나누어 놓았고, 결국 그들은 자신의 그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게 바로 origin of love 사랑의 기원. 애
"자신이 평범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내용보기
헤드윅이라는 영화 OST에는 상당히 주옥같은 곡이 많은데 그 중 유독 한곡은 가사가 많이도 깊게 다가온다. 처음 이 세상에 인간은 두 사람이 하나였다. 몸은 둘, 팔은 넷, 다리도 넷, 그러다 갑자기 제우스 신이 번개를 내리쳐 그 한 몸이었던 그들을 둘로 나누어 놓았고, 결국 그들은 자신의 그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게 바로 origin of love 사랑의 기원. 애초에 한 몸이었다고 하는 그들은 과연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가사이지 않은가. 성적소수자를 생각하면 우리는 게이를 떠올리지만 이건 대중의 오해이다. 레즈비언도 있고 트랜스젠더도 있다. 그들은 모두 성적 소술자들이다. 다만, 오늘 이야기는 읽을 이야기가 게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떄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다만,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레즈비언은 게이보다 사회에서 더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학교 여성주의 교지에서 세상에는 4종류의 사람이 층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성애남자>동성애남자>이성애여자>동성애여자. 분명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마초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어머니와 함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그래서 고등학교만이라도 조용히 졸업하기를 바라는 한 동성애자 아이가 여기 있다. 그는 세상에 사람들이 무섭다. 그들은 자신이 커밍아웃을 하는 그 순간 자신을 바로 사회에서 매장시킬 것이다. 일고의 재고도 없이,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단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동성애자라는 것이 무엇이건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것인지를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를 위해서라고 고등학교는 반드시 졸업을 해야하니까 오늘도 조용히 나를 내안에 숨긴다. 그가 전학 온 학교에서 그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강제로 커밍아웃을 당한(자발적인 커밍아웃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이지만 강제적인 커밍아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인에게 동성애자임을 폭로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사회에서 가족에게서 철처하게 외면 당한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 아이를 위로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며,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며 그는 이 아이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를 끝내 위로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커밍아웃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그에게 결국 그 어떤 위안도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고 남은 그는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지 어지러워 한다. 무엇이 자신의 옆에 남아 있는 것이고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지 그는 모르겠다. 가장 한 사람에게 가깝다는 가족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이제는 그의 존재마저 지우려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묵묵히 그와의 이별을 준비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비록 두 명 뿐이지만) 그를 비로소 이제서야 이해한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는 떠났지만 이제서야 솔직하게 남은 자들은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비로소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권이라던지 평등이라는 거창한 말은 필요하지 않다.(이런 주제로 그들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동성애에 대해 한창 알아봤을 떄 이런 글을 읽을 적이 있다. 한 게이가 친구에게 ''나 동성애자야.'' 라고 커밍아웃을 했단다. 인연을 끊길 각오까지 하고 다부지게 한 말이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래? 난 이성애자야.'' 그 순간, 그냥 눈물이 나오더라고 그는 말했다. 난 이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건 우리에 키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답답하고 사람들이 난 너무나 답답하다. 이 책을 자신이 평범하고 정상이라고 다부지게 믿고 있는 이 세상에 이성애자들에게 권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 ''정상''이고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진.심.으.로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참고로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이지만 호모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호모가 아닌(호모는 초기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할 떄 쓰이던 용어이다) 게이로 부르는데, 게이(gay)는 영어로 좋은 친구라는 의미의 ''가이(guy)'' 와 기쁨이라는 뜻의 ''조이(joy)'' 의 합성어이다. 즉, 기쁨의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c*******y 2006.06.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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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를 위한 장례식 - 이경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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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의 <나>는 2003년, 19세의 나이로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자살한 故육우당을 추모하기 위해 쓰인 청소년 소설이라고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다. '못 쓸 것 같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면서,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쓰셨다고 한다. 익히 들어온 호칭이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던 육우당을 기리며 쓴 소설. 작품 속 주인공인 '현'은 그에게 가장 근접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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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화의 <나>는 2003년, 19세의 나이로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자살한 故육우당을 추모하기 위해 쓰인 청소년 소설이라고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다. '못 쓸 것 같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면서,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쓰셨다고 한다. 익히 들어온 호칭이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던 육우당을 기리며 쓴 소설. 작품 속 주인공인 '현'은 그에게 가장 근접한 인물이면서도, 불신과 자기혐오를 쌓았던, 그래서 결국엔 살아남아야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정작 자살을 한 '상요'라는 인물은 단편적이고,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육우당의 전기가 아니라, 그를 기리기 위한 소설이니만큼 현의 내적갈등과 상요의 극단적인 선택이 그 당시 10대 동성애자들의 삶과 육우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한다면 과연 내 인생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 45p

 

 주인공 현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나 살고 있는 이혼가정의 열 아홉살 남고생이다. 녹차를 자주 마시고, 혼자서 써내려간 시 공책이 네 권이 다 되어가는 문학소년이다. 그만큼 나이에 비해 응어리진 것들이 많은 것일까, 친구에게 커밍아웃 한 번 하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현은 자꾸만 자신을 깎아내리는 태도를 보여준다. 불안정한 가정에서의 생활도 그 태도에 한 몫 했지만, 소설의 초반부에서 자신도 인정하지 않은듯 어슴푸레하게 드러나는 성적 지향으로 어딘가 불우하게 그려지는 현의 모습은 위태롭기보단 어두웠다. 현은 전학온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하고, 상요에게도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그 애를 잃었다. - 95p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시달려오던 것들이 고스란히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자 현은 정신과로 향했고, 저를 끌어안는 그 아이를 뿌리친 뒤 못을 박았다. 변태새끼, 그 말을 뒤로 현은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던 것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픔을 품고서.

 

 우리는 성적 소수자. 제우스의 번개로 내 반쪽 찾아다니는 아름다운 방랑자. - 134p

 

 위의 인용구는 소설 속 '상요'가 남긴 쪽지이자, 육우당이 남긴 쪽지의 마지막 내용이다. 뮤지컬/영화 헤드윅에도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차용하여 쓴 글은 담담하면서도 애잔했다. 상요는 비교적 짧게 등장한 인물이었다. 학교에 아웃팅을 당하고, 집에서도 일기장을 들킨 뒤 저를 낳아준 부모에게서 죽으라는 말을 들은 그는 '장자'를 들고다니며 읽던 차분한 인물이었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소설적 과장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성소수자들에게 혐오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에 대한 분노. 상요는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 - 172p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긴 시간과, 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있다고 느낀다. 거기서 절망을 느끼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더 내딛기 위해 노력하거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상요는 진심으로 이해해줄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우리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것을 생각해야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2의 상요, 제3의 상요가 생기지 않도록, 추모하고 또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r**********m 2016.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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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들의 내면과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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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나 이 소년 너무 자신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2003년 4월, 남자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젊은 청년 한 사람이 목을 맨다. 그의 이름은 ‘육우당(六友堂)’ 여섯 가지 친구라는 뜻으로 그가 이름보다 더 불리기 원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밝고 열정이 넘쳤던 청년, 뮤지컬 무대에 서는 꿈을 꾸기도 했고, 시조시인의 미래도 생각해보고 동성애자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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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나 이 소년 너무 자신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2003년 4월, 남자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젊은 청년 한 사람이 목을 맨다. 그의 이름은 ‘육우당(六友堂)’ 여섯 가지 친구라는 뜻으로 그가 이름보다 더 불리기 원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밝고 열정이 넘쳤던 청년, 뮤지컬 무대에 서는 꿈을 꾸기도 했고, 시조시인의 미래도 생각해보고 동성애자 탄압에 반대하는 글을 쓰는가 하면 전쟁반대 시위에서도 열심히 깃발을 흔들던 그. 그랬던 그를 무엇이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재치 있고 싱그럽던 그의 미소를 무엇이 일그러트렸을까.

아직 한국은 동성애의 합법적 허용이 되지 않았다. 벌써 캐나다나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해주고 합법적 결혼까지 할 수 있는 사회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 한 것이다. 게다가 동성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아니 혐오스러워 한다. 동성애를 반대하게 된 이유가 농경에 대한 일손 부족, 즉 일에 대한 일손 부족을 동성애가 만들어낸다 라는 이상한 원리인데, 이제는 일손 부족 문제도 없으면서 아직도 동성애를 싫어한다. 그냥 동성애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다. 방송인 홍석천 씨의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그는 커밍아웃(동성애자인 것을 밝히는 것)을 하자마자 출연하고 있던 모든 방송에서 제지당했다. 그리고 몇 년간은 TV에서 그의 이름조차도 듣기 힘들었다. 단지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였다.

‘현’과 육우당, 상요는 모두 성 소수자였다. 그들은 충분히 사회에서 배척당할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배척해도 눈감아 줄 만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게이였음에도 달랐다. 육우당과 상요는 전자였지만, 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한국-또 극도로 게이들을 배척하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정신적 탄압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육우당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요는 꿋꿋이 버티고, 점점 자신을 표출하려는 노력을 했다. ‘현’은 전자이며 후자였다. ‘현’은 정신병원 의사에게 까지 혐오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자신을 더욱 더러움 덩어리로 생각해 갔다. 자살을 기도하며 수면제를 모으는가 하면 비닐봉지와 노끈을 서랍에 항상 넣어두고 다닌다. 아이고, 우리 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의 소극적인 성격형성에는 가족들도 한 몫 했다. 바로 현의 아버지. 그는 정말 생각이 썩었다. 우리가 늘 양성평등 글짓기를 할 때 가장 나쁜 사람으로 꼽고는 하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여자와 자기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피보다 자신의 돈과 명예를 더 중요시 여긴다. 그러니 자연히 그는 가족원을 무시했고 그에게서 애정을 찾는 일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였다. 그럼에도 현의 어머니는 “사람은 맞으면 맞을수록 오기가 생겨”라고 중얼거리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결국 ‘현’과 그의 어머니는 작은 반항―그들로서는 큰 반항을 계기로 모자의 자유를 얻게 된다. 모자는 작은 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나]는 성장소설이라는 틀 안에 동성애, 가정 폭력, 여성 인권, 청소년 인권의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 쉽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닌 것이다. 이 문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특히 동성애(이 소설의 주제로 보임)에 관한 사회적 관점은 심각하다.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면서.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현의 엄마가 현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다. 현의 엄마는 자신이 근무하는 남고 학생 두 명이 퇴학당했다고 한다. 퇴학의 구실은 그 두 학생이 학교에서 동성애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거짓발언을 요구했다. 가톨릭 신자 교사의 성경책 베끼기 벌을 내리면서 까지 거짓말을 시켰다. 하지만, 두 학생은 끝까지 상대방은 이성애자고 자신 혼자만이 동성애자라고, 서로 자신이 꼬드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퇴학 시키지 않으면 다른 애들까지 물들일 거라는 게 중론이었어. 그게 사회야. 사회의 통념이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견고한 성을 쌓거든. 그 성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기 때문에 실체도 없이 사람들의 생각을 가두어 버려 - 77.p

 
   


 

‘현’은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왜 무엇 때문에 사회는 동성애를 이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왜 그럴까? 사회의 이치? 여자와 남자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인 건가? 그렇다면 나와 같은 성 소수자는 왜 생긴 것일까? 불변의 진리를 깨뜨리라고? 진리를 거슬러서 뭐하게? 우리 같은 성 소수자가 있다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무조건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시를 쓴다.

그러던 중, 상요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 조금이나마 육우당을 담고자 했던 그의 죽음. 학생들이 모두 꺼려하고 배척하는 상대였지만 갈수록 그들을 포용하면서 다가오던 상요. 그의 죽음은 한국의 동성애자들의 비관을 대표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이경화의 문체가 가볍고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려는 것은 강하다. 절대 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을 재미 위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성장소설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문제가 담긴, 따지자면 교훈적인 소설인 것이다. 동성애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 기댈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어깨를 당당히 펴고 활보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k******e 2012.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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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로부터의 커밍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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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주는 동성애에 대한 탄압은 실로 끔찍할 정도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남사당패를 가리켜 비역질을 일삼는 더러운 인간들이라며 손가락질을 했고, 근대화와 더불어 개혁의 중심에선 선진국에서조차 동성애는 인간의 천륜을 저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로 당사자들은 매장 당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성적 소수자들은 동성애가 합법화된 네덜란드나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로 도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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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주는 동성애에 대한 탄압은 실로 끔찍할 정도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남사당패를 가리켜 비역질을 일삼는 더러운 인간들이라며 손가락질을 했고, 근대화와 더불어 개혁의 중심에선 선진국에서조차 동성애는 인간의 천륜을 저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로 당사자들은 매장 당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성적 소수자들은 동성애가 합법화된 네덜란드나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로 도피를 떠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의 노미네이트를 휩쓸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 에니스는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를 이렇게 붙잡고 있는 한 너랑 나는 함께 잘 지낼 수 없어. 자칫 엉뚱한 곳에서 했다간 우리는 죽을 거야. 이런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구. 난 그게 너무 무서워.’사람들의 시선에 따른 부담감이 공포심으로 번져 무섭다는 극단적 표현으로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다르다는 건 단지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조차 거부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그들을 죄인보다 못한 더러운 벌레처럼 대하며 경시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시선을 견뎌야 하는 고등학생 신분의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썼기에 매우 사실적이고, 한국인이라는 설정에 따라 우리의 현실과 상황에 빗대어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현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지만,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절대 누설 할 수 없는 금기이다. 몇 해 전 처음으로 느끼게 된 동급생과의 미묘한 두근거림이 급기야 사랑이라는 결단에 이르게 되지만, 자신 스스로 그것을 용납할 수 없어 동성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까지 상처를 준 후 헤어지게 되지만 그로인해 겪는 심적 고통은 더욱 크게 작용하게 된다. 현이는 폭력적인 성향의 마초의 아버지로 인해 어렸을 적부터 남성에 대한 권위적인 권력의 어긋남과 불평등을 견딜 수 없어함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은 파경을 맞게 되는 부모님의 모습에선 애틋한 남녀간의 사랑 따윈 결코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자신 속에 내제되어 있던 性의 이변이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며 현이를 도발하고 자극하는데, 그 속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스스로를 자신이길 거부하면서 고통만 쌓여 가게 된다.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로부터 완전한 벽을 쌓고 무료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벗과의 조우를 합당하게 여기는 반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19살의 나이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너무나도 약소하고, 성인들은 그 권위의 질서에 청소년들이 시계태엽 같은 기계적인 모습으로 남아있길 바라며 기대한다. 단지 성적 취향이 일반인들과 틀리다는 이유로 성적 소수자들을 절벽 끝으로 밀어 넣는 사회야말로 더욱 병든 모순투성이일 뿐, 자신의 가치까지 망각한 채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아직은 어린 그들의 모습에선 사랑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괴로움 보다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더 가슴 아플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현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마침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기에 한 가닥 희망이 느껴지는 마무리를 지어서 무척이나 다행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자연스럽게 동성애에 대해 관대해지기 시작한 듯한데, 진심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배려한다고 하기 보다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춘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듯 하다. 광고나 영화 등에 퀴어 코드를 접목하여 사랑을 상품화 하는 것이 보기 좋진 않으나, 변화에 흐름에 맞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은 달갑게 받아들어야 할 듯 하다. 한 설문조사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과반 수 정도가 그들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이해할 수 없다, 관심 없다, 정도가 나왔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그런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표현하는 말도 격양되어 가지는 않은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을 자신만의 고통으로 묻어둔 채 결국 세상을 등지고 자살을 한 상요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 틀릴 것이다.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열린 가슴으로 받아주느냐, 아니면 등을 돌린 채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할 것이냐, 하는 질문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틀릴 테지만, 과연 누군가가 선택한 한 인간의 사랑을 제 3자가 관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사회적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동성애에 대한 문화적 관점은 시기를 두고 지켜봐야겠지만, 지금부터는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지리라 믿는다. 제 각각의 삶이 있듯이 제 각각의 사랑도 있는 것이고,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공통된 이성을 다르게 선택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두 번 다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m*****5 2006.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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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구색만 맞춘 이야기 말고 진짜 이야기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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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6일. 한 청소년이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신문 기사가 실렸다. 죽은 이는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六友堂). 이 기사를 모티프로 저자는 몇 년 뒤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주인공 현은 동성애자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들킬까 봐 두려워 한다. 같은 반 친구 상요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친구의 폭로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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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26일. 한 청소년이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신문 기사가 실렸다. 죽은 이는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六友堂). 이 기사를 모티프로 저자는 몇 년 뒤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주인공 현은 동성애자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들킬까 봐 두려워 한다. 같은 반 친구 상요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친구의 폭로 때문에 커밍아웃 당하게 된다. 상요는 자살을 택하고 현은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점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읽는 내내 주인공과 함께 감정의 선을 잇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감정선은 자꾸 끊기고 감정과 내러티브는 싱크로하지 못하고 핀트가 엇나간다. 전체 문장의 3분의 1이 명사로 끝나기 때문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작위적이고 무심한 플롯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 현의 캐릭터가 두루뭉수리한 것도 이입을 방해한다. 고 육우당이 그랬듯이 현은 녹차를 즐겨 마시고 영화 <시카고> OST를 즐겨 듣는다. 하지만 실존 인물의 취향을 반영한 것만으로는 소설 속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릴 수가 없다. 소설은 현의 1인칭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에 관한 묘사가 깊지 않다.

  물론 소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적어도 글을 읽는 동안은 그것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환상을 독자에게 심어줘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인물에게 최소한 심정적 동감 혹은 반감이라도 가지게 해야 한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작위적인 이야기 말고 손에 잡힐 듯한 생동하는 글을 읽고 싶다.

  늦었지만 고 육우당의 명복을 빈다.



c**********y 2010.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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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시대의 트렌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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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트랜스젠더니 커밍아웃, 동성애란 말이 지금처럼 공공연히 오르내리지는 못했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도 동성애코드가 유행이지만 여전히 소수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양성을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으뜸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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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트랜스젠더니 커밍아웃, 동성애란 말이 지금처럼 공공연히 오르내리지는 못했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도 동성애코드가 유행이지만 여전히 소수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양성을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으뜸이 ‘나와 다름’일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은 사실 어른인 나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아이들의 톡톡 튀는 개성을 인정해 주지 못하고 잔소리하며 보통의 평범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성격이 용납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이 일어난다. 이뿐인가. 우리 모두 예비 장애자라고 할 수 있음에도, 몸이 불편한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어찌어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성적소수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자. 너무 복잡해질테니. 나에게 당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막연히 불안해지는, 아이들의 고민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며칠 전 5살짜리 늦둥이 아들놈이 아침에 어린이집으로 데려다 주는 차안에서 “난 여자가 좋아, 여자가 되고 싶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에이~ 넌 남자로 태어났잖아. 남자가 어떻게 여자가 되니?“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기는 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조금 수그러든 요즘에는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이 대세를 이룬다. 점점 와일드해지는 여자아이들과는 반대로 남자아이들은 본성적으로 타고나는 과격함이 줄어들어 여성화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은 양성평등이라는 주제로 남자애들도 똑같이 여자애들처럼 바느질에 요리에, 인형놀이도 자유롭게 시킨다. 아들래미는 우리 나이로 5살, 만으로는 3세 유아반에 속한다. 이때는 서서히 성별 구분 없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남아들은 블록, 공룡, 자동차가 주 관심사이고, 여아들은 인형놀이, 소꿉놀이가 주 관심사이다 보니 자연스레 성별끼리 나뉘어 지게 되는 것 같다. 아들 반에는 유독 이쁜 여자애들이 많은데, 남자아이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위안을 삼는다. 곱상하게 생겨 ‘꽃미남’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아들놈의 입에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 무심히 넘길 수가 있을까? 미리부터 지나친 기우(?)를 하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보수적 성향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고3 남학생인 정현의 성적정체성을 찾아가는 다소 특이한 성장소설이다. 고1 학기 초에 내성적인 현이와 달리 활발하고 재주많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오고, 둘은 죽이 맞아 친하게 지낸다. 이건 우정이다. 빼빼로데이에 그 친구가 정성스럽게 포장을 한 종이가방을 가져 왔고, 친구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 주려고 가져왔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동안 숨겨두었던 여자친구가 누구냐고 궁금해하고, 그 얘기를 듣던 현이는 가슴이 뻥 뚫리는 허전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이건 사랑의 시작이다. 하교길에 현이의 집까지 바래다 준 그 친구는 종이가방을 내민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현이에게’라고 적혀있는 카드와 함께. 현이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하얀 눈이 운동장을 가득 덮은 어느 날 스탠드에 현이와 친구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 애와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새하얀 눈이 더 눈부셔 보이고, 자율학습 종이 울렸는데도 일어나자고 할까봐 조바심을 친다. 그때 차가운 현이의 손 위로 따뜻하게 포개지던 그 애의 부드러운 손, 온몸에 전율이 일고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춤을 추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성은 완벽하게 작동을 해서 순간적으로 “변태새끼, 저리 꺼져!”라는 말을 내뱉고 만다. 그 일을 계기로 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다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의사의 눈에서 번쩍 불꽃이 일면서, 설마하던 눈빛이 확신으로 바뀌며 망설임의 빛이 보이던 날, 경멸과 혐오스러움이 언뜻 스쳐 지나가던 날, 현이는 정신과 상담을 그만두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을 한 어머니는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고 고뇌 끝에 동생을 낳기로 결정을 한다. 예쁜 여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어머니는 현이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다. 현이가 어릴 때 이미 성적 지향성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현이의 친구 상요가 자살을 하고 고1때처럼 다시 아파하며 몸무림치는 현이를 보며, 엄마는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며 현이를 끌어안는다. 일단, 현이는 엄마에게 성공적인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얼마나 힘이 들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게 되고,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나>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s*****g 2006.06.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