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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나무 전봇대가 우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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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 그림자를 보며 다시 하루가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침에 머금었던 생생한 물기들이 험한 세상, 메마른 시간 속에서 지쳐 있을 시간.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가 방바닥에 길게 늘어지면, 어김없이 그것을 따라 스며드는 것들이 있다.   골목 구석으로 흩어진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허기진 뱃속으로 파고드는 막 지어낸 밥 냄새, 추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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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 그림자를 보며 다시 하루가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침에 머금었던 생생한 물기들이 험한 세상,

메마른 시간 속에서 지쳐 있을 시간.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가 방바닥에 길게 늘어지면,

어김없이 그것을 따라 스며드는 것들이 있다.

 

골목 구석으로 흩어진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허기진 뱃속으로 파고드는 막 지어낸 밥 냄새,

추위에 얼어붙었던 혀에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내는 얼큰한 된장찌개 냄새.

잠시 걸음을 멈춘, 진흙돌 담벼락 밑에서 그리워지는 고향의 모습들이다.

 

하늘에서 하수구에 이르는 모든 길이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날아갔던 새들도 둥지로 찾아 들고,

떠돌던 개도 생선 가시가 놓여 있는 초라한 거처로 돌아오고,

홀로 어미를 찾던 갓난아기는 포근한 젖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모두 찾아갈 곳을 정해놓고 시간을 재촉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림자가 담벼락에 얼굴을 마주하며 사라질 때까지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목덜미를 마구 휘젓는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어둠을 맞아들이기 위한 골목의 술렁거림이 수그러들면

이제 내게 스며들었던 그리움들이 제각기 머리를 풀어 헤치며

열어둔 창을 통해 멀리 날아간다.

 

어둠 속에 움츠린 그리움만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견딜 만한 겨울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밤새 나를 괴롭힐 때가 많다.

아련히 펼쳐지던 기찻길이 끝나는 곳,

비릿한 바다내음에 묻힌 구성진 사투리가 물결치던 고향을 눈앞에 들이밀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리움에 잡아먹힌다.

 

간밤에 소리 없이 내린 눈이 마루에 허연 실타래를 감았다.

헌 담요를 깔고 마루 밑에 엎드린 누렁이는 게으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이른 아침 누군가 비운 요강이 새하얀 눈을 움푹 패이게 했다.

연갈색으로 되어버린 아랫목과는 달리 방은 외풍 때문에 언제나 추웠다.

그래서 겨울 아침, 이불 밖으로 시린 얼굴을 내밀며 일어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기에 삼남매는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비비고

마려운 소변을 참으면서도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뭉그적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복차림으로 부엌으로 내려갔다.

부엌에는 아궁이에서 데워진 물이 세숫대야 속에서 따뜻한 입김으로 오르고 있었다.

마당 구석에 높이 솟은 감나무엔 까치가 찾아들곤 했다.

아마도 엊그제 마지막으로 따먹은 감을 잊지 못해 찾아온 듯싶었다.

눈이 내린 후에 감이 다시 날 리 없건만 그리움에 다시 찾았을 것이다.

 

시래기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대문을 나서면,

동네 아이들은 이미 경사진 언덕배기를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닦아놓고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비록 종이 상자를 접거나 못쓰는 판자를 이어서 만든 엉성한 썰매였지만

그 시절, 사방이 눈으로 막힌 그곳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그만큼 굉장한 장난감은 없었다.

한참을 눈에서 뒹굴다보면 털실로 짠 장갑과 양말은 흠뻑 젖어버렸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뜨뜻한 아랫목에 얼어붙은 발을 집어넣었다.

 

가벼운 동상에 걸린 발은 가려웠고,

우리는 한참 전에 지난 명절 가래떡을 구워서 설탕에 찍어 먹다가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시골의 겨울은 길고 지루했다.

낮에는 빈 들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밤에는 개 짖는 소리만이 가끔씩 정적을 깰 뿐이었다.

기나긴 겨울밤,

우리는 엉덩이가 녹아날 정도로 데워진 아랫목에서

아직은 머나먼 시간에 대해 소곤거렸고

어머니는 솜이불을 뜯어 고치며

희미하게 흔들리는 백열등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밤새 이불을 짓느라 움푹 패인 어머니의 눈이 젖은 마음으로 스며든다.

고향을 떠나는 날이었을 것이다.

필요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끝내 두꺼운 솜이불을 지어 이른 새벽보다 먼저 보따리를 꾸려놓으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못마땅해 끝내 그 여윈 가슴에 못 하나를 박으며 짐을 버려두고

무심히 걸어가던 자식.

하지만 뒤통수로 와서 박히는 깊은 한숨에 나는 다시 솜이불을 들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도시에는 빈 들이 없으니 바람이 속삭이지도 않았고,

정적이 비집고 들어갈 만큼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거대한 도시는 그저 헤아릴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발자국과

잠시도 멈추지 않는 소리로 넘쳐났다.

사방이 가득 채워진 도시에서라면 내게 맞는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무너져내렸다.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에도

도시는 빛을 갈구하는 깊은 동굴처럼 막막해보였으며

거만하게 솟은 건물들은 철근을 넣지 않은 콘크리트처럼 불안해보였다.

비어 있는 곳을 참지 못하는 도시의 강박증 속에서

나는 명치에 둔탁한 아픔이 찾아오는 걸 느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커지는 도시의 허기를 감당하지 못해

나는 한동안 풍요로워보이는 도시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 따뜻한 추억만을 간직해두는 그곳에는

오랜 시간 비어 있음으로 인해 가득 찬 고향의 풍경들이 있어

얼룩진 가슴을 쓸어내려 주었다.

빈 들을 울리는 바람이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만들어내고,

소리 없이 내린 눈이 포근한 잠자리를 만들어내며

나를 머나먼 꿈으로 이끌던 고향.

 

숨죽인 호수처럼 엎드린 고향의 시간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잔한 물결을 출렁이며 내게 소중한 선물을 마련해주었다.

험한 세상에 나가 날개가 부러지더라도 금세 회복할 수 있는 기운과

메마른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추억을....

시커먼 나무 전봇대가 흐느끼는 겨울이다.

이제 도시의 매서운 겨울은 예전처럼 내 목덜미를 섬뜩하게 휘젓지는 못할 것이다.

내게는 비어 있는 시간이 충만했으니 말이다.

 

 

 

h*****k 2012.01.27.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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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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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젊은 시절 문학적 성공을 뒤로 한 채 '시대'라는 벽에 부딪쳐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을 시도하지만, 그의 대표작은 모두 60년대에 몰려 있다. 유신과 독재라는 한국사의 암울했던 시기만 없었다면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더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1964년 겨울>은 '서울,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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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젊은 시절 문학적 성공을 뒤로 한 채 '시대'라는 벽에 부딪쳐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을 시도하지만, 그의 대표작은 모두 60년대에 몰려 있다. 유신과 독재라는 한국사의 암울했던 시기만 없었다면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더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1964년 겨울>은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김승옥 다시 읽기" 소설집이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우울한 자화상과 함께 도시적 삶에 적응하려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감수성 짙은 지성의 세계를 드러내는 작가의 화법은 1960년대 한국 소설의 트렌드가 된다. 

 

하지만 2008년 여름, 그의 소설 읽기는 낯설다. 독후 감상이 뭐냐,고 하면 일순 난감할 것이다. 혹자는 가난한 시절 한글 공부를 통해 농촌을 계몽하는 심훈의 <상록수>가 21세기 우리 청소년들의 필독서가 되어도 온당한가,에 대해 강하게 반문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현시대 감각에 뒤처지는 어법과 배경 등장인물 들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독서를 하다보면 시대를 아우러는 소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우리네 삶이 유한하듯 소설의 생명도 무한할 수는 없다. 한때는 독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베스트셀러였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읽으면 실망하기 일쑤다.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소설이 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김승옥 소설도 그렇다.   

k****j 2008.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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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감성으로 바라본 도시화의 어두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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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수능을 준비하는 고교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우리나라 단편소설들이 있다. 이상의 [날개], 김동인의 [감자], 현진권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도 그러한 필독 소설중의 하나이다. 나역시 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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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수능을 준비하는 고교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우리나라 단편소설들이 있다.

이상의 [날개],

김동인의 [감자],

현진권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도 그러한

필독 소설중의 하나이다.


나역시 중고생 시절에 이런 필독 소설들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열심히 읽곤 했지만,

어쩐일인지 김승옥님의 [서울, 1964년 겨울]은

읽지 못했었다.

제목이 멋있어 꼭 읽어 봐야지..라고

늘 생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필독 소설들은 굳이 찾아서 읽어보지 않더라도,

수없이 풀어야 하는 각종 언어영역 문제집들과

모의고사 등을 통해 문제를 출제하기 위한 지문으로라도

만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서울, 1964년 겨울]도 어느 언어영역 문제집에선가

지문으로 읽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내 기억으로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

버스에 손잡이를 잡고 서서

좌석에 앉아 있는 여성의 아랫배가 숨쉴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사랑한다고 하는 장면은

어디선가 읽었던 듯한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김승옥의 단편소설 3개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서울, 1964년 겨울] 외에도

[역사(力士)],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가 같이 있다.

모두 처음으로 접하는 김승옥님의 작품들이다.

각기 다른 소설들이긴 하지만,

이들 세편은 모두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도시화에 따른 어두운 측면이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어느 겨울밤

세 남자의 행보를 통해 이런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의 익명성,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 개인적인 고립감,

물신주의, 빈민층의 절망감 등


[역사(力士)]에서는 희곡작가 지망생의 하숙생활을 통해

빈민굴과 양옥집으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공간과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방식을 통해

도시에서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한편.

타인과 이웃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역사(力士)인 서씨의 기행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동대문의 돌을 바꿔놓는 기행이라니..

동대문의 성벽을 쌓는 돌이 바뀌어 있다는 것은,

직접 돌을 바꿔놓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며,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에 대해

짜릿함마저 느낀다.

이는 [서울,1964년 겨울]에서 안과 김이

서대문과 종로2가에서 발견해낸 자신만 아는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좋아했던 장면과 일맥상통하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서도

도시생활의 어두운 측면을 이야기하는 논조는 변함이 없다.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서 고향을 떠나 향했던 도시,

도시에서의 2년이라는 생활동안 누이는 침묵을 배운채 돌아왔다.

그런 누이를, 누이의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도시에 흘러온 김,

그러나 그는 도시에서 개인주의적 고독에 심하게 학대된 나머지

‘조리에 맞지 안흔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정신적 분절을 경험하면서

도시에서 ‘침묵’을 배운 누이가 자신보다 훨씬 낫다고 되뇌인다.


이들 소설에 쓰여진 시기가 1960년대 중반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때 당시의 도시라고 해봤자,

우리나라의 상당부분이 고도로 도시화된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되지만

당시에 느끼는 도시화의 속도와, 그에 따른 생경한 삶의 방식은

당대의 사람들에겐 커다란 충격임과 동시에, 좌절이었던 것 같다.

김승옥님의 소설에서 그런 현실에 대한 강한 비애감과 좌절감이

너무나 어둡고 무겁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신주의, 개인주의, 개인적 고립과 소외,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

흔히 도시화의 어두운 측면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오늘날이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요즘 쓰여진 소설들은 도시생활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비장하고 절망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농촌과 자연에 대한 동경을 가득 담고 있는 경우라도 말이다.

그저 삭막한 도시생활에 대한 불만과 함께

자연을 동경하는 수준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40여년이 지나면서 도시화에 대한 충격이 그만큼 사그라졌다는 뜻일까.

그만큼 사람들도 도시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암튼 김승옥님의 소설은

흔히 고교생 필독 소설로 분류되는 근현대 소설들과는 분명

다른 감성과 느낌을 지닌 글인것 같다.

당대에 이런 감성으로 이런 소설을,

것도 20대의 젊은 시기에 썼다면

상당히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듯.

작가해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독재정권 하에서는 소설을 거의 쓰지 않고,

기성 소설들을 영화화하기 위한 각색작업에만 몰두했던 것도,

그가 너무나 예민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우울한 시대상황만 아니었다면

천재 작가의 창작력과 감성이 마음껏 꽃피울 수 도 있었을텐데,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아프다.

s********a 2008.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