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어렸던 날, 옆집 언니의 집에 쌓아져 있던 '댕기'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바람의 나라'라는 만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몇년이 지나서, 중학생이 된 어느 날에야 나는 다시 그 만화를 만날 수 있었다. 한 번 서너권씩 빌려 읽으면 도저히 그 다음을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밤을 괴롭게(?)지새우곤 했다. 그 다음날 다시 다음 이야기를 빌려 읽고, 또 슬퍼하고, 그리고 다시 읽고.... 그렇게 반복해가며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태어나서 이런 만화를 읽는 것은 처음이다! 라는 희열. 슬픔... 이 만화의 전반에 깔려 있는 그러한 애절함이 슬펐다.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슬펐다. 그 어느 누구도 행복에 미소짓는 이가 없었다. 어찌나 잔인한지 아픔은 모두 그들의 가슴 속으로 침투해 그들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차라리, 차라리 먼저 사랑하는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그 연이가 가장 행복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기에다가 그 아름다운 김진님의 나레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감동에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어찌나 그 한구절 한구절마다 그렇게 가슴 속에 박히는지.. 우리 나라의 잊혀진 고대사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사실감이 결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작가의 상상력 발휘가 가능했고, 현무, 주작, 백호, 청룡, 봉황 등의 신비한 동물들이 얽혀 한층 더 무협지적인 스릴감을 더했다. 탄탄하고 절묘한 스토리는 그야말로 이 만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까지 이 만화가 오기까지 정말로 많은 작가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월도 세월이거니와(내가 맨 처음 읽었던 때가 초등학교 1,2학년 즈음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중3...)연재하던 잡지의 폐간으로 인해 한동안 방황하다가 이제는 출판사를 바꿔 연재없이 단행본을 발간하고 계시는데, 특히나 이 17권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냉정하고 차가워진. 닮지 않겠다던 아버지, 유리왕을 닮아가는 무휼과, 언젠가 무휼이 되뇌었듯이 '나는 당신처럼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슬프게 말하는 그의 아들 호동. 엇갈린 부자지간의 관계 속에 슬슬 이야기는 세대교체를 하는 듯한 시점이다. 슬프지만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 작품의 끝을, 가능한 한 볼 수 있는 데까지 지켜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