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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제일 먼저하는게 이름부르기다. 처음엔 어색하다 입에 붙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름. 누구를 만나도 제일 먼저 소개하는 게 자신의 이름이다. 나는 누굽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왜 이름을 훔쳤을까?
앞날개 - 일제 강점기 시절의 청소년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을 쓰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다'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나라를 잃고 삶에 대한 애착도 없이 하루하루 살기에만 급급한 '용이'의 모습.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청소년의 모습과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이름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사람들의 모습은 나도 궁금했다. 특히 청소년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 사람 사는 모습일 텐데 왠지 내겐 그 시절이 낯설다. 모든 것을 빼앗긴 시대라고 배워서일까?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는데 자꾸 백지만 생각난다.
17살 최용은 부모도 모른 채 청계천 거지 움막에 버려졌다. 겨울에는 추위로 여름에는 전염병으로 죽음이 늘 함께 하는 곳. 대장은 그런 용이를 보며 어디서 거지발싸개가 왔냐며 발싸개라고 부른다. 하지만 용이는 늘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저는 최용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일 맞고 산다. 그러다 기영이 형의 도움으로 덕성여관에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면서 밥 걱정을 던다. 용이는 어릴 적 기억이 없이 버려졌던 순간부터 기억이 시작되는데, 매일 비슷한 꿈을 꾼다. 울고 있는 아이, 서둘러 멀어지고 있는 한 남자. 그 남자는 아이에게 이름을 되새기며 잊지 말라고 말한다.
기영이 형은 아버지가 죽자 연해주로 이주한 가족들을 위해 인력거꾼으로 열심히 산다. 더워도 추워도. 워낙 부지런해서 인기도 많다. 용이가 일하는 덕성여관의 주인 박씨는 딸 미향과 사는데 잔소리꾼에다 구두쇠로 용이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느날 용이는 경성역에서 가방이나 훔치려고 두리번 거리다가 가방을 훔쳤는데 재수없게도 가방 주인이 빠르게 쫓아와서 결국 잡히고 만다. 호기롭게 네 가방이 맞는지 어떻게 아냐며 가방을 연 용이는 가방 속 물건에 놀라고, 가방 주인도 왜 그게 거기 들어있냐며 놀란다. 뭐야, 가방이 바뀐 거야? 그런데 가방 속에는 종이 뭉치가 들어있고, 무겁고 시커먼 어떤 물건이 있다. 창씨개명은 또 뭐야? 돈이나 몇 푼 훔칠 생각이었지 골치아픈 일에 얽힐 생각은 추호도 없던 용이.
창씨개명은 조선인 이름을 내지식 (일본식)으로 바꾸고 경성부청에 신고서를 제출만 하면된다는 박씨의 말에 기영이 형은 비록 나라 잃은 백성이라 하나, 이름을 빼앗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요, 전부를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지않고 살면 되지 이름이 뭐 대수인가 생각하는 용이는 그저 조용히 밥 먹으며 살길 원한다.
가방주인 송주학은 용이네 여관의 손님으로 들어가고 어쩔수 없이 거지패 누렁이와 딱지와 함께 가방을 찾으러 다닌다. 하지만 누렁이를 찾아온 낯선 두 남자로 누렁이는 겁을 먹고, 여관에 머무는 기영이 형 만주 선생님은 용이에게 조국에 대해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옷을 입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성 모던 보이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수업을 못 받는 아이들의 대조적인 모습이 눈에 밟힌다.
형이 그런다고 눈곱만큼이라도 뭐가 달라질 것 같아? 그래도 나는 해. 용아, 그게 내가 결정한 삶이니까 영화 '암살'을 보면서 가장 많이 되새겼던 말이다. 그래도 나는 해..
삶이고 지랄이고 나는 그런 거 몰라요. 모르니 생각을 해야지. 막막하니 눈을 떠야지. 어쨌거나 네 삶이 아니더냐. 내 삶이란게 대체 뭔데요?
누구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짧든 길든 한 생을 살았으니 누군가는 기억해 주길 바라고 그렇게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기억한다. 이름은 저마다의 생이자, 그 시간의 전부를 표현하는 일이니까. 기영이 형을 보고 자신도 이름을 찾아 삶을 결정해보려는 용이. 그리고 그동안의 꿈을 기억한다. 열차 안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게 말한 그 남자의 한마디.. 네 이름을 절대 잊지 말라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기영이 형, 잔소리 꾼이지만 겉과 달리 기영이를 응원하는 박씨,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아버지의 물건을 훔친 주학,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지껏 살아온 누렁이도 기영이 형과 용이의 생각에 서서히 동조하게 된다.
작가의 말. 나는 까칠하고 불만 많고 구시렁대기를 좋아하는 한 사춘기 소년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바로 나라는 걸 깨닫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나는 그 과정을 '이름을 되찾는 것'으로 표현했다.
어린왕자에서는 여우가 길들인다는 말을 쓴다. 길들임은 관계를 맺는 것 그래서 따듯하고 긴밀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길들여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라고, 가만히 있도록 길들여져서 폭력에 길들여져 삶을 잃는 것에 길들여진다고 말한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생각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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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친 소년/이꽃님/주니어김영사/창씨개명을 금하라! 일제강점기의 삶을 어른들을 통해서 가끔 듣지만 겪어보지 못한 시절이기에 그 시절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제징용, 위안부 등 일제가 행한 잔혹한 정책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을 살아냈던 어른들이 대단해 보인다. 독립을 위해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 이들도 존경스럽지만 일제에 아첨하지 않고 그 시절을 묵묵히 견뎌냈던 이들도 존경스럽다. 그 시절을 살았던 소년과 소녀들의 삶을 차마 상상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핍박과 굶주림, 무시로 가득한 삶이었으리라. 오늘, 조국을 일본에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겼지만 정신만은 뺏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일제 강점기 청춘들의 자화상을 접하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야기는 서울역 앞에서 소매치기를 일삼던 최용에 의해 송주학은 자신의 가방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시작한다. 용은 자신이 훔친 중절모 신사의 가방이 주학의 가방과 바꿔치기가 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손에 들어 온 가방에서 창씨개명 반대를 담은 전단과 총이 들어 있음을 알고 놀란다. 그리고 가방을 몰래 숨겨 놓으면서 용은 밤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에 시달리거나 엄마에 의해 버려졌던 기억, 천대받던 거지생활 등 나쁜 기억에 시달린다. 최용은 자신이 거지 생활을 할 때 알던 누렁이와 딴지를 통해 주학의 가방 행방을 알게 되지만 그 가방으로 인해 창씨개명을 반대하던 기영이 형이 일본 헌병에 붙잡히게 된다. 용은 미남형 인력거꾼인 기영이 형의 행동하는 양심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용은 자신이 일하던 여관 주인아저씨의 인색하면서도 기영이 형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놀라게 되고, 비겁하게라도 살아야 했던 아저씨가 사정을 듣게 되고...... 야학을 통해 한글을 몰래 깨치는 어린 인력거꾼 기영이의 가족과의 이별은 소련의 연해주 조선인에 대한 강제 이주 정책으로 더욱 기약 없는 만남이 된다. 가족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창씨개명을 거부해야했던 기영이 형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용은 주학과 이름을 훔치는 일에 동참하게 되고...... 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족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끼며 아버지의 조선인 징병 서류 가방을 훔쳐야 했던 송주학, 덕성여관의 잔심부름을 하며 소매치기를 일삼다가 뒤늦게 자신의 정체감을 생각하는 최용, 미남형 인력거꾼인 기영이 형의 행동하는 양심, 기영이 형의 기약 없는 가족과의 이별에 대한 절망감, 창씨개명의 혼잡을 틈타 자신의 이름을 훔쳐오는 소년들의 활약 등이 흥미진진하게 하지만 슬픈 우리의 역사이기에 가슴 먹먹해진다.
글을 깨치면서 정신까지 깨어나는 그 시절 청춘들, 무고한 조선인을 향한 일본 순사들의 무수한 발길질과 총질,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일제에 대한 저항들이 활극 같이 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들에게조차 멸시받고 천대받던 거지들의 이름에 자존심은 개인보다 나라 우선이었기에 존재감이 남다르다. 일본 헌병들의 막무가내 식 탄압을 견뎌야 했던 일제강점기 청춘들의 자화상을 보며 안타까움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꿈을 꾸며 희망찬 내일을 설계할 나이에 자신의 이름조차 모국어로 말하지 못하는 설움을 지니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잃지 않았던 청춘들이기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덕성여관, 거지촌, 인력거꾼, 야학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잃어버린 수상한 가방을 찾는 과정, 창씨개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마치 첩보물 같기도 하고 어느 독립운동가의 경험담 같아서 스릴도 있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의 무서움,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기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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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박힌 뿌리를 뽑아버렸다. 통째로 뽑아버렸다. 조선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먹어버리겠다는 심상과 탐욕에 눈을 번뜩이며 조선에 찾아온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일제다. 그들은 우리 고유의 한글과 한옥을 탐욕의 늪으로 잠식되게 하였으니, 우리 문화의 뿌리를 뽑아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선 사람들을 철저히 일본의 신민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게 하였다. 이미 욕심과 잔인함으로 눈이 흐릿해진 일본은 우리나라를 몰락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들은 1905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아래에서 한 조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말만 조약이지, 사실은 강요와 협박으로 인해 맺어진 늑약이었다. 이 늑약이 바로 을사늑약. 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박탈 당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1910년, 우리나라는 더 큰 위기를 맞이했다. 일제의 이른바 무단 통치가 시작되고 만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총과 칼로 무장한 군인 수준이었고, 아이들의 교육 환경은 지식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겁박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미개한 조선 사람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왔다는 핑계까지 여기에 더해지면서 조선 사람들은 점점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히기 시작했다. 점점 힘을 잃고 일본의 손 안으로 빠져 들어오는 조선. 그런 조선을 본 일본은 새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은 탐욕스럽고 끈적한 눈길을 한옥으로 돌렸다. 일본 사람들은 부동산을 투기하며 조선 땅에 허락도 없이 자신들의 거처를 세웠다. 그 거처가 생긴 자리에 건설된 건 일본의 다다미집이었다. 우리나라에 널려 있던 한옥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 정신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하지만 이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여전히 우리 고유의 한옥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세권이다. 정세권은 한옥 단지를 조성하고, 조선어 학회를 후원함으로써 이른바 '독립을 꿈꾸는 집'들을 건설해 나갔다. 그렇게 정세권은 한옥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독립 운동을 펼쳤던 사람은 정세권 뿐만이 아니었다. 한글을 연구해 알린 주시경, 예술가로써 활동한 이중섭 등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름, 정확히는 창씨개명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일제 시대, 우리나라는 이름을 지키려는 자와 버리려는 자로 나뉘었다. 이 시대가 주인공 최용이 살던 시대였다. 스스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최용은 독립이라는 단어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름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에 맞서 싸우는 두 명의 애국자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애국자들 중 한 명이 바로 송주학이었다. 매국노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어린 송주학. 그는 부친이 나라를 팔아먹으며 친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애국에 대한 의지는 곧게 자란 나무와도 같았다. 그러다가 부친의 친일을 보다 못한 송주학은 마을의 이름 명단을 훔치고 말았다. 그 명단에 마을 사람들의 강제 징용과 재산 박탈 등이 달려 있었으니, 매우 중대한 문서를 훔친 셈이었다. 하지만 경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명단이 들어 있던 가방이 뒤바뀌어 창씨개명 반대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송주학 뿐만이 아니었다. 최용과 친하게 지냈던 기영이 형도 애국자로써 활동했다. 인력거꾼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던 기영이 형. 인력거꾼이라는 직업조차 위태롭던 상황에서 그는 창씨개명만큼은 강력히 거부했다. 일제의 어떤 타협과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은 기영이 형은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지 못했다. 주인공 최용은 어느 날, 기영이 형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왜 형이냐고.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형이 애국 활동을 해야 하냐고 말이다. 그때 기영이 형은 그 삶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삶임을 강조했다. 비로소 그 말의 진짜 뜻을 이해한 최용이 떠올린 기억은 옛날 거지 움막 생활이었다. 어렸을 때 거지촌에서 생활했던 최용.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최용이 버리지 않았던 유일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최용은 그 사실을 망각했고, 이를 현실 탓으로 돌렸다. 그런 최용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건 기영이 형의 잉크 묻은 손이었다. 사실 기영이 형은 인력거꾼 작업이 끝난 이후, 몰래 한글 교본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손에 묻은 잉크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최용은 일제와 손을 잡지 않겠다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깨달았다. 누군가는 버리려고 하나,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몸부린친다. 경성부청에서 소란을 피워 창씨개명 명단 종이를 뜯어냄으로써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친 최용과 그의 동료들. 그들의 품에 안겨 있던 건 소중하고 따스한, 이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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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으로 만난 이 소설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이 된다. 삼일절을 보내면서도 사회는 시끄러웠다. 역사관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발언이었다.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되는 소설이다. 감흥이 깊었던 책이다. 역사를 바로 배워야 하는 이유를 짚어주는 작품이다. 깊어지는 독서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생각이 깊어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이다. 삶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보는 책이 된다.
1940년 6월. 경성의 거리. '창씨개명을 금하라'는 전단이 사방으로 뿌려졌다는 이 글귀가 한 페이지를 가득히 채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시작부터 긴박함으로 빠르게 사건이 전개된다. 지루할 틈이 없이 이야기는 흐른다. 등장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그 인물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그들의 인생철학까지도 짐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시대적인 아픔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아픔이 가슴 깊이 저며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 전해지고 있는 이 작품은 깊은 한숨과 애타는 마음으로 읽어가게 한다. 인물들을 통해서 던지는 질문들이 많아지게 하는 소설이다.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읽는 거라는 사실을 주인공 친구는 뒤늦게 알게 된다. 진정 지키고자 했던 것이 삶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창씨개명을 그렇게 밀어붙였던 이유도 직시하게 해준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각있는 인물들이 목숨까지 바치면서 지키고자 한 것들의 무엇인지 이야기의 인물들이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자기 나라의 말과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임을 이 작품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역사적인 소설이 된다. 모던보이가 좋아 보였던 그 시대. 그들이 흉내 내고 따라 했던 그 문화가 얼마나 크게 우리 삶을 흔들게 되는지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름의 의미를 되찾고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찾아가는 소설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살피게 한다. 권력에 길들여지고, 폭력에 길들여지는 사회. 두려움에 길들여지는 것을 작품의 인물들을 토해서 하나씩 짚어보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들도 다르지 않게 투영되는 시간이 된다. 무엇에 길들여지고 있는지 하나씩 열거해 보는 것도 의미 깊은 시간이 된다. 한글 파괴, 영어와 한자로 물들여지면서 한글이 흐려지는 사회, 한글이름보다는 한자이름과 영어 이름을 자주 부르는 부모들의 모습도 떠올려보게 된다. 우리의 것을 잘 지켜가고 있는지 질문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전당국, 책보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도 등장한다. 그 의미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어떠한 심정으로 인물들이 전당국을 이용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가방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었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절대로 답하지 않으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해지기 시작한다. 그 추측들은 서서히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제나 아버지는 옮다고 믿었던 아이이다. 그 아이가 아버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버지로 인해 아파하게 된다. 아버지의 선택과 행동이 얼마나 크나큰 후회가 될지 않았던 아이는 그 사실들을 무서워하게 된다. 부끄러운 어른의 선택과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소설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창씨개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징용되지 않고자 관리받고 감시받지 않으려고 선택하는 것이 창씨개명이었다. 창씨개명이 무엇인지 의미를 찾아주면서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14살, 15살 야학 소녀들이 끌려가는 모습에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그 시대의 아름다운 이들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을 제대로 직시하는 시간이 되어준 소설이다.
부당한 창씨개명을 알렸던 기자가 순사들에게 끌려가고 신문은 폐간된다. 창씨개명을 찬양하는 기사를 올리지 않았던 신문사는 압박당하기 시작한다.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임을 잊지 않게 한다. 고뇌하고 번민하는 언론인의 모습을 더욱 조명하게 하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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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맞이해 이 책도 함께 빌려왔다. 역사소설에 대해 찾아보던 중 이 책의 추천글을 발견해 빌려오게 되었다. 2015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색이 바래는 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고, 잘 읽었다. 창씨 개명을 요구하던 시대가 배경인데 우리의 조국이 잘 살아있는 이유는 이분들 덕이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가진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잘 살고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단순한 진심>이 생각났다. 이름에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름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잘 느끼고 있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나를 제일 먼저 볼 때 나를 나타내어주는 것도 나의 이름이고, 내가 죽어서도 유일하게 남는 것도 나의 이름이다. 기영처럼 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조국을 잃어도 제 이름은 지키겠다는 그 의지를 본받고 싶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 창씨 개명을 했을 것이다. 나는 부당함에 맞설 용기가 없기에. 이 시대에 나 같은 사람만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리 자유롭게 살 수 없겠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건 곧 미래의 후손들의 권리까지 지켜주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용기는 여러 측면에서 대단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독서일지를 쓰자니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광복절에 이 글을 올리게 되어 기쁘다. 누구나 한 번쯤 꼭 읽어 봤으면 하는 책.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용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나도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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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출신 용이는 여관에서 일을 하지만, 경성역 앞에서 어수룩한 자들의 가방을 노리곤 한다. 그런 용이의 레이더망에 든 한 청년이 있었으니, 비싼 옷을 입고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있는 그 모습에 타깃을 삼고 결국 가방을 훔치게 되지만, 상대가 그토록 달리기를 잘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용이의 결정적 실수. 이에 가방 주인 주학에게 붙들린 용은 그곳에서 가방을 건네는데, 가방은 주학의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아 아닌가. 게다가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권총 한 자루와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전단지 묶음이었으니.
이에 일본 순사들의 눈이 두려운 용은 가방을 숨기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주학은 용이 일하는 여관에 머물며, 뒤바뀐 가방의 행방을 찾게 되는데, 과연 가방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뒤바뀐 가방 안에 든 이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소설, 『이름을 훔친 소년』은 일제시절 창씨개명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국을 잃은 조선 백성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름조차 지키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이름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름을 지켜낸다는 것이 무엇을 지켜내는 것인지, 용이와 기영, 그리고 주찬의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있어 이름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용은 거지로서 살아갈 때, 다른 거지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자신의 이름만은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쳤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거지들에겐 버젓한 이름이 없지만, 용에게는 최용이란 이름이 있으며, 이것이 자신이 가진 전부이기에. 하지만, 거지로서 살아가며, 어느 순간 이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생존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일제의 이름을 바꾸라는 정책 앞에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없다. 그에게는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기에.
그만 좀 해. 형 이름이 뭐 그리 잘난 이름이라고 악착같이 버티겠다는 거야? 막말로 이름 좀 바꾼다고, 형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 조국이 우리한테 뭘 해 줬는데? 아니, 우리한테 조국이 있기나 해?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게 우리 같은 애들이 조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야.(100-1쪽)
어쩌면 이런 용의 입장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용과 같이 생존 자체가 일생일대의 과제인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지켜내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고, 이름을 지켜내는 것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시키는 대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용을 돌봐주던 형 기영은 말한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용아, 조국을 빼앗겼다고 이름까지 빼앗길 순 없어. 그럴 순 없는 거야. ...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야.(100-1쪽)
왜냐하면, 우린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 작가는 말한다. 즉 이름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 그 사람이 행한 업적, 그 사람과 만들어갔던 수많은 추억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기영은 그렇기에 이름이 전부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낸다. 이런 기영의 모습에 많은 조선 백성들이 자극을 받게 되고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기영과 같은 입장에서 기영의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은 너 자신이오. 그 자체다. 그러니 그걸 잃을 순 없지 않겠니. 무서운 건 길들여지는 게지. 가만히 있도록 길들여지고, 폭력에 길들여지고, 삶을 잃는 것에 길들여지는 거지.(156쪽)
용 역시, 처음엔 자신이 가진 단 하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지만,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에 점차 길들여지고, 이제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용과 주학, 그리고 거지들인 누렁이와 딱지는 이제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기영의 모습을 통해, 자각하게 되고, 기영의 이름을 지켜주며, 이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넷은 이제 친구가 되어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 소설, 『이름을 훔친 소년』은 일제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울분과 설움뿐 아니라, 비록 나라를 잃은 백성이지만, 이름을 지켜내려는 작은 몸부림을 통해, 진정한 자존심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열리게 되는지도 보여주며, 오늘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오늘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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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지요. 불러주는 그것, 이름의 존재에 대해서라면 김춘추의 시 '꽃' 이 먼저 떠올라요.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 꽃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는 말이 참 기분 좋더라고요. ㅋㅋ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 하면 또 한 보따린데 말이죠. <이름을 훔친 소년>이란 제목을 보고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고자 책을 펼쳤어요.
"1940년 6월, 경성의 거리에 창씨개명을 금하라는 전단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막바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모로부터도 버림받고 거지촌에서 굴어들어간 '용'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내고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기영'이 형의 도움을 받아 여관 심부름꾼으로 지내게 되요. 한창 정체성을 찾으며 스스로에게 민감해야 할 사춘기이지만 그저 하루 하루 끼니라도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도 모자라 나라 꼴도 점점 엉망으로 망가져가는 걸 지켜보며 죽음의 위협까지도 느껴야 하는 상황이지요. 먹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에 죄책감도 버린 채 가방 소매치기를 하려는 '용'이. 그런데 다른 사람의 가방과 바뀌는 바람에 '주학'과 엮이면서 티격태격 야단을 하고 말아요. 설상가상으로 훔친 가방 속에 든 것은 창씨개명 반대 전단과 총! 다시 '주학'의 가방을 찾는 과정이 긴장스러우면서도 약간은 엿가락 늘린 것 같음을 동반하지만 정작 주학의 가방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다름 아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아버지의 치부였던 것과 기영이 형이 목숨과도 맞바꾸며 창씨개명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점점 맞춰지는 반전을 겪으면서 용이의 마음 속에도 자신의 삶의 이유를 질문하게 됩니다.
역사책에서 지나가는 말로 창씨개명이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였다는 정도로 배웠고 그래서 창씨개명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시대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글자는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확인한 소설이었기에 이름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 보아요. 책 앞날개에 작가의 말에도 공감하면서요. "나라를 잃고 삶에 대한 애착도 없이 하루하루 살기에만 급급한 '용'이의 모습.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청소년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이름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물론 제가 읽은 느낌과는 별개로 요즘 아이들이 과연 이 내용에 얼마나 공감할까 싶기도 합니다. 영어수업 들으며 일부러 영어 이름 만들어 부르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스로 개명도 하는 세대니까요. 시대가 달라진 지금은 그저 세계화, 지구촌 속에서도 '나'의 정체성,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국 이름의 자존감을 가지는 것으로도 만족이겠지요. 하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 그 사람 참 괜찮았다고 기억해 주는 이름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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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ㅡㅡㅡㅡ이 단어도 긍정으로 쓸 수 있구나. 이름을 훔치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마른 17살 소년이다. 그러나 14살이 되기도 하고 17살이 되기도 한다. 경성역 앞에서 나는 가방을 훔치고자 한다. 그 때 인력거를 끄는 기형이 형을 보게 된다. 형은 이마에 땀이 주르륵. 이마에 땀을 닦는다. ㅡㅡㅡㅡ 나는 가방을 훔친다.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가방에는 놀랍게도 총과 종이뭉치가 들어 있었다. 창씨개명을 금하라!!! 비록 나라 잃은 백성이라 하나 이름을 뺏기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오, 전부를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 밖으로 나와 다시 기미년 만세를 외치자! 다시 만세를 외쳤을 때, 조선의 이름을 되찾으리라. 이 가방의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송주학와 주학이의 가방을 찾기위해 나-최용-은 용이가 일하는 여관에 머물게 된다. 나는 누렁이(경성역을 모르는 게 없는 거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들은 가방을 찾기위해 함께 한다. 여러가지 사건을 거치고... 놀랍게도 진짜 검은 가방 주인은 기형이 형이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기형이 형. 불이익을 받지만 창시개명을 하지 않은 기형이 형. 1940년 6월. 경성 거리에 창시개명을 금하라는 전단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경성역에서 형을 만났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기형이 형은 소련 정부가 연해주에 사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다른 곳에 이주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관 주인 아저씨는 기형이 이름을 더럽혔다. 아저씨는 한이 된다고 했다.창씨한 이름. 나는 형을 위해 형의 이름을 되찾기로 했다. 이름은 사람의 전부니까. 주학이 누렁이 나 함께...각설이들도. 나는 서류철에 꽂힌 종이를 뜯어서 품에 넣었다. 시뻘건 불길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거웠다. 또해 내지 잃으면 내 속을 모두 태원 버릴 시뻘건 불덩어리를. 이름은 훔쳤다. 기형이 형을 위해. 고맙고 장하다. 최용과 그 친구들. 일제 강점기에 살지 않았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이다. 가슴 속에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훔치다 이 의미가 긍정적으로 쓰인 것을 알게 되었다. 훔치다 ㅡㅡㅡㅡ이 단어도 긍정으로 쓸 수 있구나. 이름을 훔치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마른 17살 소년이다. 그러나 14살이 되기도 하고 17살이 되기도 한다. 경성역 앞에서 나는 가방을 훔치고자 한다. 그 때 인력거를 끄는 기형이 형을 보게 된다. 형은 이마에 땀이 주르륵. 이마에 땀을 닦는다. ㅡㅡㅡㅡ 나는 가방을 훔친다.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가방에는 놀랍게도 총과 종이뭉치가 들어 있었다. 창씨개명을 금하라!!! 비록 나라 잃은 백성이라 하나 이름을 뺏기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오, 전부를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 밖으로 나와 다시 기미년 만세를 외치자! 다시 만세를 외쳤을 때, 조선의 이름을 되찾으리라. 이 가방의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송주학와 주학이의 가방을 찾기위해 나-최용-은 용이가 일하는 여관에 머물게 된다. 나는 누렁이(경성역을 모르는 게 없는 거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들은 가방을 찾기위해 함께 한다. 여러가지 사건을 거치고... 놀랍게도 진짜 검은 가방 주인은 기형이 형이었다. 창시개명을 하지 않은 기형이 형. 불이익을 받지만 창시개명을 하지 않은 기형이 형. 1940년 6월. 경성 거리에 창시개명을 금하라는 전단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경성역에서 형을 만났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기형이 형은 소련 정부가 연해주에 사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다른 곳에 이주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관 주인 아저씨는 기형이 이름을 더럽혔다. 아저씨는 한이 된다고 했다.창씨한 이름. 나는 형을 위해 형의 이름을 되찾기로 했다. 이름은 사람의 전부니까. 주학이 누렁이 나 함께...각설이들도. 나는 서류철에 꽂힌 종이를 뜯어서 품에 넣었다. 시뻘건 불길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거웠다. 또해 내지 잃으면 내 속을 모두 태원 버릴 시뻘건 불덩어리를. 이름은 훔쳤다. 기형이 형을 위해. 고맙고 장하다. 최용과 그 친구들. 일제 강점기에 살지 않았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이다. 가슴 속에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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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적이 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와 자식을 빼앗긴 적도 있다. 그리고. 이름을 빼앗긴 적도 있다.
일제 강점기. 그렇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기에 식민지 국민으로써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중 일본이 우리 국민들에게 취한 만행으로는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설립해 농민들 토지 강탈하고, 한글말살정책, 창씨개명, 제암리나 관동대학살 사건, 정신대 위안부, 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 생체실험, 신사참배, 강제 징용 등 일일이 열거하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1940년, 이 책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여관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삼시세끼 겨우 챙겨먹는 17살 소년이 창씨개명 사건으로 겪은 일들을 유쾌하고, 울컥하고, 애국심에 사로잡혀 읽게 만드는, 청소년기 우리의 이야기이다.
소년 최용, 아니 청년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여관에서 방을 치워준다거나, 가끔 밥을 하기도 하고, 잡심부름하는 소년이다. 17살답지않은 작은 키와 마른 몸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12살 혹은 13살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보이는 키다보니 나이를 속이기도 하고, 눈치 하나로 살아가는 당찬 소년이다. 무엇보다 욕도 질펀하게 할 수 있고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또 이 친구는 잡심부름에 또 하나 특기가 있었으니 바로 조금은 어벙해 보이지만 돈은 좀 있어보이는 사람의 가방을 소매치기하거나 훔치는 것이다. 이번에도 경성역에서 가방을 낚아채는 데, 문제는 가방이 뒤바뀐 데에 있었다. 돈 많은 부잣집 아들쯤으로 보여서 훔쳤으나, 그 가방에는 창씨개명에 관련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새까만 물건도 더불어.
나는 역사 소설을 좋아한다. 그리고 시대물도 좋아한다. 청소년 문학임을 알면서도 애초에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장 크게 적용된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이고, 소재가 ‘창씨개명’이라서.
이 글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주인공 최용은 자존심이 강하고 어찌 보면, 사회를 시니컬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용의 마음을 써 내려간 부분을 읽으면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용이 그 시대를, 그 시대의 인물들을, 관념들을 비웃으며 바라보는 시각은 재미있으나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한차례 거지촌에 버려진 경험에서 ‘발싸개’에서 ‘최용’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을 계기로 살아남기 위해 독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였고,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용은 나라의 앞날과 자신의 앞날을 바라볼 수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에 대비되는 인물로 나오는 기영은 인력거를 끌며 같은 동포가 맞으면 구하러 가고, 야학에서 소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리고 용이 맞아 죽을 뻔 했을 때 구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인력거일에서 잘려도 창씨개명 반대를 알리기 위해 전단을 만든다. 그런 기용을 용이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까 인력거 일도 그만두게 되었지 않느냐고. 악착같이 버티는 것이 중요하지, 이름이 바뀐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화를 내면서 말이다.
과연 이 시기에, 땅은 일본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한 끼 밥 찾아먹는 것이 사치이며, 잘못 얻어걸리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때인데 ‘나라가 중요한가?’ 라는 물음은 한번쯤 던져봄직 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내가 살아야 나라가 사는 것이지, 내가 죽으면 말짱 헛것이지 않느냐는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라라는 것이, 민족이라는 것이 개개인이 모여 단위를 이루는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한 명이 원 안에서 튕그러져 나오고 다시 한명이 튕그러져 나오고 계속 튕그러져 나옴으로 팽팽하던 고무줄은 느슨해지고, 느슨해진 고무줄은 어디가 내 영역이고, 언제 내 영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지 알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서 있는지, ‘나’가 바로 서기 위해 디딜 곳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나'위에 나라를 세울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용은 자신이 어디를 밟고 서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 자라왔기에,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먹고 살기’위해, 하루하루 한끼 한끼 버티기 위해 이상적인 무엇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나’ 자신이 목숨을 부지하고 버티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 삶에 던져진 화두, 부모로부터 받은 ‘내 이름’.
내 이름을 잃는 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고, 나를 잃는 것이고, 내 부모를 부인하는 것이고, 결국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빼앗기고, 이름조차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 두려운게 아니라, 이미 길여진 세상이 두려운 것이라고. 더 이상 의문조차 품지 못하고 반박조차 할 생각도 못한 길들여진 세상이었다고. 세상에 길들여졌기에, 사람들에게 ‘왜’라는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고.
그러나 아픈걸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온 몸으로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몇몇 사람들은 나섰고 그 몇몇 사람이 있기에 용도 나섰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글과, 내 이름를 지키며 독립된 국가에서 살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청소년기의 삶, 즉 관심가는 것이 귀찮고 그렇다고 혼자두면 외로워 우울했다는 지난 날을 반추하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닮았다고 한다. 비단 청소년기 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조금쯤 포기하는 것이지.
다시한번 말하지만 재미있고 울컥하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과 애국심이 철철 흐르게 만드는 작품으로 청소년에게도 성인들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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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경성역 주변에서 가방을 훔치다가 어느 날 최용의 눈에 값비싼 가죽가방과 양장을 입은 모던보이의 가방이 눈에 띄고 그 가방을 훔친 것이 최용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용이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식민지를 겪었기 때문에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에 관심이 크게 없었다. 단지 살 수 만 있다면 뭐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영이 형이 매일 이야기하는 이름을 뺏기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훔친 가방에 있던 창씨개명 반대전단과 야학의 많은 학생들이 끌려가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점점 기영이 형의 말을 깨닫게 된다. 용이는 어릴 때부터 가끔씩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꿈을 계속해서 꾸었다고 한다. 그 꿈은 자신의 아버지가 항상 최용, 그 이름을 잊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창씨개명을 처음 학교에서 배웠을 때에는 단지 점수를 깎지 않기 위해 암기만 할 뿐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름을 훔친 소년을 읽으면서 이름을 잃으면 인생이 송두리채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기영이 형이 매일마다 힘들게 인력거일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말이다. 기영이는 매일마다 열심히 인력거 일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기영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기영이의 어머니와 동생은 먼 곳에서 기영이가 벌어다 준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또한 기영이가 이름을 절대 잃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가족을 만나야 할 때에도 이름을 잃게 된다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에 대해 정말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면서 동시에 내 자아정체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이름은 나를 불러주는 수단이면서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내 이름이 내 삶이기 때문에 정말 소중하다는 것까지 정말 마음 속 깊이 생각해볼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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