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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주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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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도 아쉬움을 남긴채 가려하는 주말의 봄밤이다. 먼 산능선에 홍반처럼 번져 있던 산벚꽃들은 이미 스스로의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꽃이 자기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꽃은 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르키소스(Narkisso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 중 나르키소스는 오르페우스와 더불어 예술과 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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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도 아쉬움을 남긴채 가려하는 주말의 봄밤이다.

먼 산능선에 홍반처럼 번져 있던 산벚꽃들은 이미 스스로의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꽃이 자기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꽃은 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르키소스(Narkisso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 중 나르키소스는 오르페우스와 더불어

예술과 철학의 담론 속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매혹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먼 산의 꽃들이 하늘무덤으로 돌아간 별이 많은 봄밤에,

나는 왜 나르키소스를 떠올리는가.

예언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보게 될 때 죽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님프 리리오페가 갓 낳은 자신의 아이의 운명을 물었을 때,

테베의 예언자 티레시아스는 아이의 운명을 이렇게 예언했다.

예언이 영험했던 것인지 나르키소스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죽음을 맞았다.

그 죽음 위에 여리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남기고서.


물은 거울의 기원이다.

인간이 ‘거울’이라는 사물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조상이

물 속을 들여다 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물의 근원인 지, 수, 화, 풍의 질료 중 사물의 얼굴을 비추어주는 것은 유일하게 물이다.

어느 먼 옛사람이 물가에서 문득 자신의 얼굴을 만났을 때,

그를 흔들었던 최초의 충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인 물의 표면이 사물의 영상을 반사해 준다는 너무도 당연시되는

오래된 습관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던 때,

물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 사람은 그 얼굴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을까.


나르키소스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였다.

처음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

그 얼굴 저 깊은 속으로 은빛 물고기들이 물풀을 헤치며 사랑을 나누는

풍경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 얼굴의 흰 이마와 아름다운 눈썹이 산들바람에 하르르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할 때마다 소년은 안타까워 수척해져 갔을 것이다.

잡을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손 내밀면 흩어져 버리는 아름다운 얼굴을 애닯게 바라보다가,

어느날 나르키소스는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나다!


연못 속의 그가 자신임을 깨달은 순간,

나르키소스의 마음은 비통한 절망으로만 기울었을까.

나르키소스를 기록한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극적 파국과 암담한 절망을 말한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꾸만,

나르키소스에게서 민감한 영혼을 지닌 시인을 읽고 자기 존재의 이면을 보고자했던

철인의 모습을 읽는다.

하나의 풍경에 그토록 오래도록,

그토록 지극하게 매료되지 않고서는 풍경의 저편을 깨달을 수 없다.


나르키소스의 연못은 나르키소스를 삼킴으로써 자신을 완성했다.

그토록 오래 누군가를 사랑하여 마침내 자신을 깨달은 나르키소스는 죽고

예언은 완성되었다.

자기 자신을 깨닫기 위해 죽음을 치러내야했던 거울의 기원은 순결하다.


사람들은 이즘(ism)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즘은 흔히 통속(通俗)하다.

흔히 나르시시즘을 일컬어 자아도취적인 자기애를 말하곤 한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은 경계해야 할 미성숙한 정신의 무엇으로 사람들 속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누군가를 지극히,

열렬하게 사랑하다가 그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은 자의 비극은 ‘나는 너다!’라는  

메마른 아포리즘(aphorism)보다 정직하다.

그가 사랑한 것이 그 자신일 때 더욱 그러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어느 경전의 얘기다.

사랑하는 왕비 말리까에게 왕이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요?”

사랑하는 연인끼리, 부부끼리, 이런 물음은 흔하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이런 답변을 기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왕의 질문에 지혜로운 말리까는 대답한다.

“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심사가 복잡해졌을 왕 역시 오래도록 곰곰 생각해 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 역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는 것 같소.”

그들은 오래도록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온 사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헤아리고 붓다가 읊었다는 게송이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

나보다 기꺼운 것은 없도다 /

그토록 소중한 것 남 또한 그럴지니 /

제 자신을 아끼는 이 /

남 해하지 않으리.”

나르키소스의 연못 ― 거울의 기원은 영원한 비밀을 가졌다.

비밀을 가졌다는 것은 감추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할 무엇을 지닌다는 것이다.


어린 어느 날 밤,

운명의 얼굴을 점치기 위해 내가 들여다 본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는 누구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그 얼굴이 나임을 믿게 되었을까.

문제는 ‘자기애’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거의 언제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며

자신에 대한 질문은 거의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을 포함한다.

 

5월이 간다 한다.

밤조차 푸른5월이 간다고 한다.

열린 창 너머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반가운 5월이 간다고 한다.

쏟아지는 햇살이 반짝이며 흐르는 달빛이 은하같은 5월이 간다고 한다.

밤이 깊었어도 음악처럼 흐르는 마음을 잡을 길 없어

창 열어놓고 밤 지새우는 5월이 간다고 한다.

h*****k 2010.05.29.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