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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혁명의 언어, 소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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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변방의 신장 우루무치의 한 소년의 특별한 성장담을 담은 왕강의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1966년부터 10년간 극좌적 사회주의 운동이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중심부에서 빗겨난 시골 동네 아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이 소설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의 극렬했던 혼란상과 체제 비판적 목소리보다는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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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변방의 신장 우루무치의 한 소년의 특별한 성장담을 담은 왕강의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1966년부터 10년간 극좌적 사회주의 운동이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중심부에서 빗겨난 시골 동네 아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이 소설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의 극렬했던 혼란상과 체제 비판적 목소리보다는 철저히 한 인간, 소년의 삶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소련의 접경, 텐산을 마주하는 시골 마을. 우루무치는 다양한 언어가 공존한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신장 지구의 소요만 보더라도, 이 곳은 민족 갈등을 포함한 역사의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 러시아어와 위구르어, 북경어가 두루 공존하는 이곳. 우루무치. 어느날 위구르어를 가르치던 미모의 여선생 아지타이가 떠나고, 세련된 용모를 자랑하는 상하이 출신의 영어교사 왕자쥔이 시골 학교에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류아이는 15살의 우루무치 촌놈이자, 북경이나 상하이를 동경하는 풋풋한 소년이기도 하다.

 

15살 류아이에게 우루무치는 촌구석 그 자체였다. 왕자쥔을 흠모하며, 우루무치 유일의 영어사전을 갖기 위한 치열한 분투가 그려진다. 당시 어른들의 기준으로 봤을때, 류아이는 사상교육이 부족한 덜떨어진 녀석이다. 10위안이란 거금을 들여 도수없는 안경을 끼고, 엄마의 향수를 뿌려가며 젠틀맨을 흉내낸다. 아지타이 선생의 나체를 목욕탕에서 몰래 훔쳐보고, 왕자쥔 선생의 숙소에 들어가거나 주위 사람들을 수시로 염탐하기도 하는 짖궂은 녀석이다.

 

왕강의 자전적 소설로 다가오는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에는 주변부의 삶 속에서도 '문화대혁명'의 혼돈이 강력했음을 보여준다. 인텔리면서도 '기술 반동'으로 몰려 비굴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교장에게 성상납을 했던 엄마(나중에는 강요가 아닌 성적 쾌락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류아이의 짝꿍 황쉬성, 국민당 당원인 남편이 자살하자 보란듯이 공산당 남편과 재혼과 황쉬성의 엄마, 짝사랑하던 황쉬성에게 죽임을 당했던 쓰레기 리, 권력의 앞잡이였던 판 주임과 교장 그리고 주인공 류아이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오랜동안 우정을 쌓았던 왕자쥔 선생 등 1960~70년대 문혁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부유하던 인물들이다.

 

가끔 나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일제 치하의 조선어 말살 정책과 비교하곤 한다. 어찌보면 박정희로 대표되는 극우 독재체제와 비슷하지만, 사상 통제보다 더 정신을 좀먹는 것이 바로 언어 말살이다. 이는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개개인의 정신적 원형을 박탈하는 최악의 억압이 아닐까? 류아이는 왜 그리도 영어와 영어사전에 집착했던 걸까? 그것은 어린 나이임에도 마오리즘으로 대표되는 사상 통제와 자유 억압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으리라. 거기에 당시 멘토로 삼았던 왕자쥔을 통해 '영어= 신사들이 사용하는 세련된 언어'라는 인식이 자리했을 것이다.

 

우루무치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왕야쥔의 눈물을 마시며 자랐다. 그렇다. 나는 황허와 창장의 물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별종이다. 나는 왕야쥔의 눈물을 마시며 자란 우루무치 놈이다. -p481
  
이 소설에는 우루무치의 빛나는 풍광과 대별되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엄마의 성상납, 쓰레기 리의 죽음, 새아버지를 독살하는 황쉬성, 공개 처형을 마치 마을의 축제로 여겨 흥분하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류아이의 정신적 친구였던 왕자쥔의 수감은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정치적 억압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추악하고, 반인륜적인 것에 순응하게 만드는 지를.

 

다이 시지에의 소설처럼 행복이나 불행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결말에 이르는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단순히 중국 변방의 어느 시골마을에 일어났던 불행한 시기가 아닌,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억압된 존재들이 몸부림치며 살아냈던 '한 때'를 그리고 있다.

 

문득 나의 청소년 시절을 추억해본다. 나또한 사랑이란 이름 하에 자행된 가정 폭력 속에서 철저히 억압된 영혼이었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결국 나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다름아닌 엄마의 사랑이었다. 한몸 부서져라 희생만 했던 엄마를 생각하며 어서 빨리 취직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오롯하다. 나이가 들어(정확히는 서른이 넘고나서는), 그 또한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어찌 해볼 수 없었던 운명이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삶은 공평하지 않으므로.

 

또 하나, 류아이가 동경했던 왕자쥔과도 같은 선생님이 내게도 있었다. 기획과 편집,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내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줬지만 또 한편으론 삶의 방향을 제시했던 50% 정도의 왕자쥔이었던 이*락 선생님. 예전 '인생수업' 리뷰를 통해 밝혔듯이 가슴 아팠던 기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소년은 위로가 필요했음을 설파한 은희경 작가의 시선이 새롭다. 유년 시절에 각인된 '순간'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희석되고, 덧대어지지만 결코 상처의 원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오셔, 쑤퉁, 류진운, 다이 시지에 등 중국 근현대 작가들의 소설에 이어 왕강의 소설 또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문득 느끼는 거지만, 동아시아란 이름으로 묶기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중국과 많이 닮았다. 적어도 소설에서만큼은. 그중에서도 왕강의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내 유년시절을 아프게, 기쁘게 추억할 수 있게 한 오브제였다. 부끄럽지만, 류아이의 성적 호기심도 비슷하고 말이다.^^; 



t******2 2010.12.27. 신고 공감 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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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통해 세상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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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통해 세상에 눈뜨다    문화대혁명이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중국의 서쪽 변방 마을 우루무치. 주인공 류아이는 학교에서 위구르어가 폐지되고 새롭게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류아이를 비롯한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든 지루할 것이란 생각에 시큰둥하다. 다만 학교를 떠나는 아름다운 여선생 아지타이가 불쌍할 따름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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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통해 세상에 눈뜨다

 

 문화대혁명이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중국의 서쪽 변방 마을 우루무치. 주인공 류아이는 학교에서 위구르어가 폐지되고 새롭게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류아이를 비롯한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든 지루할 것이란 생각에 시큰둥하다. 다만 학교를 떠나는 아름다운 여선생 아지타이가 불쌍할 따름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어 선생님 왕야쥔은 이 시골학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왕야쥔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없고, 접하는 것이라고는 마오이즘에 함몰된 선동구호가 대부분인, 열악한 환경에 놓인 시골마을의 아이들에게 ‘외부의 존재’와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을 불어넣는다. 소울(soul), 사랑(love), 신사(gentleman), 체념(resignation). 이 단어들을 깨우치면서 류아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함께 자기 안에 무수한 물음표를 새겨 넣는다. 왕야쥔의 손에 들린 영어사전(dictionary)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언젠가-저기’, ‘저 너머’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동경을 키우는 아이들 주변의 현실은 어지럽다.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인하여 소련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인 류아이의 아버지는 툭하면 ‘기술반동’으로 몰려서 곤욕을 치루고, 우루무치의 정치위원들은 마오쩌둥에 대한 찬양고무를 빌미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바쁘다. 류아이의 어머니는 류아이가 ‘마오쩌둥을 타도하자’라는 낙서를 썼다는 누명을 벗기기 위해 대학동창인 교장 선생과 정을 통하고, 기술반동인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그것을 방관한다. 류아이의 동료 황쉬성의 아버지는 국민당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치위원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다가 자살하고, 황쉬성의 어머니는 금방 공산당 간부와 재혼을 한다. 어른들은 아무도 교조적으로 흐르는 타락한 현실과 맞서지 못한다. 존경하던 스승인 왕야쥔도 위구르어 선생이었던 아지타이에 대한 연정으로 잠을 설치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는 사실, 세상은 무수한 오류와 모순들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면서 류아이는 서서히 성장한다. 물론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면서 깊어진 사고를 통해서.

 

 현대 중국작가들의 성장과정은 독특하다. 이 소설의 작가 왕강을 비롯하여 쑤퉁, 위화, 티에닝과 같은 중국 현대작가들은 어린 시절을 이 소설의 주인공 류아이와 흡사하게 보낸다. 외부의 소식이 차단된 채로 선동구호와 ‘반동’, ‘인민’, ‘노동’, ‘마오이즘’의 난무 속에 굴절된 언어를 접하면서 유년기를 보낸 그들은 80년대에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겪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통해서 그들은 진보와 자유에 대해서 뼈아픈 각성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마주한 조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현재의 중국이었다.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자본주의 중국이라는 이질적인 세 개의 현실을 겪으면서 그들의 내면은 격렬한 분열과 갈등을 겪는다. 이것은 현대의 중국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로우예, 이안, 지아장커 등 현대 중국감독들은 지옥 같던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편린들로 가득했던 유년시절과 천안문 사태의 격렬함을 영상으로 옮기고 있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시간과 갈등은 성찰을 제공하고 기억들은 활자와 영상으로 되살아난다. 현대 중국의 작가들과 감독들은 누구보다 단절된 어린시절과 격렬한 상흔으로 가득한 청춘을 보냈지만 그 아픔들은 현대 중국의 문학과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어떤 지옥에서도, 나약한 어른들의 틈새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그 단순한 사실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2*****h 2009.04.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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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lovely하고, 서프라이즈한surprise한 소년, 영어선생을 만나다
"러블리lovely하고, 서프라이즈한surprise한 소년, 영어선생을 만나다" 내용보기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중국 소설답지 않게 발랄한 표지와 상큼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서점에 가서 확인해본 후 인터넷으로 구입. 과연 중국소설이 이렇게 발랄해도 되는 것일까? 작품은 한 소년이 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세계에 반응하고 그 본질에 눈떠가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어단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류아이와 왕야쥔의
"러블리lovely하고, 서프라이즈한surprise한 소년, 영어선생을 만나다" 내용보기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중국 소설답지 않게 발랄한 표지와 상큼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서점에 가서 확인해본 후 인터넷으로 구입. 과연 중국소설이 이렇게 발랄해도 되는 것일까? 작품은 한 소년이 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세계에 반응하고 그 본질에 눈떠가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어단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류아이와 왕야쥔의 대화는 과연 포복절도. 이 책의 본문식으로 말하자면 ''러블리lovely''하고, ''서프라이즈surpriose''하다. 특히나 두 명의 패배자가 <문 리버="">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순간 울컥. 중국소설이 이만큼 모던해졌다니...간만에 유쾌한 독서경험... 특히, 중간중간에 함축적인 문장들은 머릿속에 별똥별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인상깊은구절]
“어린 시절의 우울함은 종종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론 우리의 우울함은 죽음이 아니고 탄생에 관한 것이다. 때때로 마음속 괴로움이 밤보다 더 지루하다는 걸 발견할 때면 견딜 수가 없어 흰눈을 덮고 있는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멍해지곤 했다. […] 나는 어려서부터 우루무치가 고독하거나 아니면 내가 고독한 아이라고 느꼈다.” “우루무치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왕야쥔의 눈물을 마시며 자랐다. 그렇다. 나는 황허(黃河)와 창장(長江)의 물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별종이다. 나는 왕야쥔의 눈물을 마시며 자란 우루무치 놈이다.” (481쪽)
d******i 2006.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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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당신의 생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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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고 신선하고 웃음이 나는 소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나는 누군가는 떠올리고 있었다. 주인공 류아이의 영원한 선생님 왕야쥔의 생을 따라가며 느닷없이 왜 그의 슬픈 눈이 가슴에 밟혔는지 안 것은 마지막 책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가 곁에 있을 때, 나는 그의 생을 응원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해한다는 눈빛도 한번 건네지 못했다. 류아이의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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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고 신선하고 웃음이 나는 소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나는 누군가는 떠올리고 있었다. 주인공 류아이의 영원한 선생님 왕야쥔의 생을 따라가며 느닷없이 왜 그의 슬픈 눈이 가슴에 밟혔는지 안 것은 마지막 책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가 곁에 있을 때, 나는 그의 생을 응원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해한다는 눈빛도 한번 건네지 못했다. 류아이의 English teacher 왕야쥔은 무엇을 내 삶의 중심에 놓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세속적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편안하고 안전함 삶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그의 삶에 맨 앞자리에 놓일 수 없다. 그는 품위 있는 인간, ''젠틀맨''이기 위해 시대의 핍박과 사람들의 살인적 오해를 묵묵히 감수한다. 왕야쥔은 그런 시대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며, 위태롭고 초라한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20년 후 왕야쥔은 ''너무도 젠틀맨''이기를 갈망하는, 그래서 고독하고 주위의 모든 것들과는 잘 맞지 않는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삼은 류아이를 만난다. 그래서 나에게 왕야쥔의 삶은 해피엔딩이다. (최근 1년 안에 읽은 외국 소설 중 최고다)

[인상깊은구절]
그때 우리는 교사나 학생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농장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왕야쥔은 젖소농장에서 끝없이 펼쳐진 녹생 초원을 바라보며 마치 자유를 만끽하는 음유시인처럼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운문을 읊을 때는 좀더 ''비어니즈 리포우즈(viennse repose : 우아)''해야 돼. 그래야 작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엔 일종의 ''피스풀 마인드(peaceful mind : 평화로운 마음)''에 도달해야 돼. 그건 일종의 특수한 ''세레너티(serenity : 평온)'', 즉 ''레지그네이션(resignation : 체념)''에서 생겨난 ''세레너티''를 가리키는 거지."
s******7 2006.05.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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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망가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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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 살 때였나?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내 단짝 친구에겐 누나가 하나 있었다. 누나는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덩치가 웬만한 남자만 했다. 나는 속으로 그 누나가 분홍색 돼지 같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발그레한 뺨 때문이었다. 그 때 난 ‘악한’ 생각을 품었다고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나마 순진했던 것일까?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의 류아이는 버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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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 살 때였나?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내 단짝 친구에겐 누나가 하나 있었다. 누나는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덩치가 웬만한 남자만 했다. 나는 속으로 그 누나가 분홍색 돼지 같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발그레한 뺨 때문이었다. 그 때 난 ‘악한’ 생각을 품었다고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나마 순진했던 것일까?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의 류아이는 버젓이 악행을 저지른다(물론 어른의 잣대에서 그 수준은 아주 미약한 것이지만). 작가 왕강은 류아이라는 인물을 통해 도덕적인 규범에 억눌려 있는 악한 본성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결국 나의 또 다른 모습, 외면해왔던 적나라한 나의 내면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는 잔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발칙하다. 자기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어른들에 맞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해가는 류아이. 결국 대학에 떨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패배자가 되어버리지만, 삶이란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결국 부서지지만 어떻게 잘 부서질 수 있을까,의 문제. 혹은 굴욕적인 삶에서 인간적인 고귀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의 문제. 영어사전이라는 작은 소재를 갖고 전개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영혼을 울리는 반성문을 얼마나 썼는지 몰라. 그런데도 아직까지 영혼이 뭔지를 전혀 모르겠어. 넌 아냐?"
s*****7 2006.05.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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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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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이라고 하면...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협지나 역사 소설 이었다.일본의 하루키와 같이 유명한 현대 소설가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는 없었다.그래서 중국소설 파트에는 손이 잘 안갔던게 사실이었다.그러나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현대 중국의 문화에 대해 소설을 통해 알고 싶다는 열망이 커서,결국 이 책을 찾아내게 되었고가벼운 문체로 쓰여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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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협지나 역사 소설 이었다.
일본의 하루키와 같이 유명한 현대 소설가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중국소설 파트에는 손이 잘 안갔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현대 중국의 문화에 대해 소설을 통해 알고 싶다는 열망이 커서,
결국 이 책을 찾아내게 되었고
가벼운 문체로 쓰여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중국의 현대 문화와 사회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왕강이라는 작가의 광 팬이 될듯-

k***e 2011.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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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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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선생님이 뉴욕과 남경에 일대 정전이 일어났을 당시 두 도시의 시민들의 반응을 비교하여 쓴 글을 보았었다. 뉴욕의 시민들은 폭동이 일어나고 정전이 지속되는 무법 도시가 되었고 그에 반해 남경의 시민들은 질서정연을 유지했다.  이 글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중국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외부 사람에 의한 중국 사회의 고발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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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선생님이 뉴욕과 남경에 일대 정전이 일어났을 당시 두 도시의 시민들의 반응을 비교하여 쓴 글을 보았었다. 뉴욕의 시민들은 폭동이 일어나고 정전이 지속되는 무법 도시가 되었고 그에 반해 남경의 시민들은 질서정연을 유지했다. 

이 글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중국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외부 사람에 의한 중국 사회의 고발이 아니라 내부 사람에 의한 고발이다. 외부 사람은 어쨌든 자신의 잣대로 그 사회를 평가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의 왜곡을 가져온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왜곡이다.

 

주인공 류아이는 신장 지역 오지 아이이다. 당시 중국에는 문화 대혁명이 전 사회를 휩쓰고 있었다. 지식인들 예능인들이 조그만 실수 때문에 오지로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귀양 살이를 해야 하던 시기이다.

 

신장 지역에 왕야쥔 이라는 영어 선생이 부임해 온다. 상하이 출신인 그도 문화대혁명의 기운에 휩쓸려 이곳에 온 것이다. 류아이는 영어를 문명과 진보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믿게 한 것은 왕야쥔 의 품성 때문이었다. 그는 신장에서 볼 수 없었던 교양인이었기 때문이다.

 

류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도 지식인이었지만 류아이의 눈에는 단지 추잡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부모 만이 아니라 그의 눈에는 왕야쥔 이외의 인간은 야만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지만 살기 위해 중국 사회에 시류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추궁한다.

 

류아이가 왕야쥔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와 그의 부모 간의 갈등도 심해지고 왕야쥔은 결국 신장 주민의 잣대 중국 사회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환경에 맞추어 자신들의 삶을 바꾸며 살아간다. 류아이도 그것을 알게 된다. 소설 마지막에 류아이는 그것을 수용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부모 세대와 화해를 하고 왕야쥔과 감동의 재회를 한다.

 

마치 나쁜짓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느낌이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순수한 동기가 아닌 어떤 이해 관계에 얽혀 있다. 작가는 이러한 사람 간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잘 표현했다. 그들은 남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중국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y****2 2009.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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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젠틀맨이라 불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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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분위기의 제목과 신선한 표지. 중국소설의 제목이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라니... 중국소설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염려. 하지만 책은 정말, 정말 의외로 멋졌다! 유머러스한 대화와 간결한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남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 생각났다. 중국의 어느 모퉁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그리고 소녀의 이야기. 주인공 류아이와 아지타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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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분위기의 제목과 신선한 표지. 중국소설의 제목이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라니... 중국소설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염려. 하지만 책은 정말, 정말 의외로 멋졌다! 유머러스한 대화와 간결한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남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북경자전거>가 생각났다. 중국의 어느 모퉁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그리고 소녀의 이야기. 주인공 류아이와 아지타이의 이야기는 또 <러브레터>의 한순간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 무엇보다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삶의 긍정성으로 열려 있는 유쾌함과 유머러스함이 맘에 들었다. 주변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젠틀맨’을 추구하는 류아이의 눈물겨운 투쟁. 그렇다. 삶은, 젊음은 그 자체로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단어로 되어 있고, 영어사전에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실려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사상도 모두 사전에서 나왔다. 그들의 사상이 사전에 있는 단어를 새로 배열하고 조합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만큼 중요하다. 이 말은 누가 한 것인가? 바로 영어선생 왕야쥔이다. 당시에는 무척 심오하게 들렸던 이 말은 고독한 아이를 계몽시켰고, 계몽된 아이는 돌변한 상황 속에서 절망감을 느꼈으며, 절망은 또 그에게 무서운 생각을 낳게 했고, 생각은 그 아이를 부추겼다. -320쪽
s******5 200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상과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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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본문 502쪽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처럼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문화 혁명이 일어나 모든 지식인들이 축출되고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주인공 류아이의 아버지는 텐산 자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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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본문 502쪽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처럼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문화 혁명이 일어나 모든 지식인들이 축출되고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주인공 류아이의 아버지는 텐산 자락의 우루무치라는 시골에서 건물을 지었다. 소련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게챠인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류아이의 어머니 역시 같은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들은 낡은 집의 4층에 살면서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한참 무식한 농군 출신의 당간부에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아도 아버지는 그저 정신 빠진 사람처럼 웃기만 한다.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긴 위구르족들과 한 고장에 살면서 아름다운 위구르인인 아지타이에게 위구르어를 배우던 아이들의 학교에 영어 선생이 온다. 양복을 입고 행커치프를 한 그의 이름은 왕야쥔이다. 향수를 뿌리고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왕야쥔에게 류아이는 홀딱 반한다. 영어 공부를 더 잘하고 싶어서 같은 반의 예쁜 여자아이 황쉬성을 질투하기도 하지만, 황쉬성은 불행하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이나 당에서는 왕야쥔의 사고 방식을 못 마땅해 하고,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한다.

  아름다운 여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으로 아픈 가슴을 간직한 류아이의 섬세한 정서를 부모나 친구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무감각하게 혹은 원초적인 욕망의 충족만으로 만족하며 살기엔 류아이는 너무도 가녀 정린 영혼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격랑 속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당시 중국 인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에서 가족 간의 뜨거운 사랑도, 사춘기 소년의 설레는 첫사랑도 좋았다. 아이에게 영원한 롤모델이었던 잉글리시 보이의 가여운 말년의 `모습이 가슴 아프지만, 평생을 가는 이런 우정이 부럽다.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듯, 사람에게 이상이 있어야한다는 그의 말이 오래 기억이 난다.

 

e*****j 2011.08.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 신장성에서 온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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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은 위화나 쑤퉁을 약간 읽어본 이외에는 잘 모른다. 싼마오도 읽었지만 중국의 근대를 다룬다기 보다는 중국의 사소설, 같은 느낌이 강했고. 그 외에 현대 중국을 다룬 다큐와도 같은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을 읽고 어느정도 문맥을 잡은 상태라고 할까.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한창 분쟁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신장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위구르족의 문화적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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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은 위화나 쑤퉁을 약간 읽어본 이외에는 잘 모른다. 싼마오도 읽었지만 중국의 근대를 다룬다기 보다는 중국의 사소설, 같은 느낌이 강했고. 그 외에 현대 중국을 다룬 다큐와도 같은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을 읽고 어느정도 문맥을 잡은 상태라고 할까.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한창 분쟁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신장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위구르족의 문화적 특수성 (이들은, 이슬람권)으로 인해 더욱 이질감이 있을거라 생각된다. 주인공은 문화혁명을 이제 막 거친 중국에서 위구르어는 더 이상 배우지 않게 되고, 신문물인 영어를 배워야 하는 변화의 시대를 사는 어린 학생이다. 영어, 는 우루무치라는 촌 (town)에 사는 소년에게 외부세계로의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신기한 언어로 다가온다. 성장소설의 틀을 갖춘 이 소설은, 문화혁명과 그 이후 사건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논하기 전에 아름다움과 자기 밖의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어하는 소년의 순진하고 무구한 모습에 포커스를 둔다. 우리나라도, 그리고 그 어떤 다른 나라도.. 전체주의에 휩싸여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획일화되고, 이를 통해 정치성이 오도되고, 오해를 받던 성장의 시절을 거친 곳은 많다. 중국의 근대와 현대도 그런 모습을 많이 갖고 있다. 이 소설은, 그 속에서 어린 아이의 눈으로 삶의 진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쉽사리 다치지 않는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s******7 2009.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