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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 롭 마샬 감독 / 장쯔이, 공리, 양자경, 와타나베 켄 주연 / 미국 / 드라마 / 2006년> 개봉되기 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했고, '시카고'의 롭 마샬 감독이 연출을 했으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홍콩을 대표하는 세 여배우가 출연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던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2월 2일 개봉했다. 중국에서는 자국의 자존심 같았던 배우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출연했고, 일본 국적의 남자 배우와 베드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영이 허가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첫 날 10만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는 점도 이 영화를 빨리 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는데, 오늘 드디어 포스터에서만 보던 신비한 눈빛의 소녀 치요와, 당대 최고의 게이샤로 전설이 된 사유리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의 주 내용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팔려가 일본 최고의 게이샤로 성장하는 치요(게이샤가 됐을 때의 이름은 사유리, 장쯔이 역)와, 치요의 성공을 시기하고 방해하는 하츠모모(공리 역), 그리고 사랑하지만 끝내 말할 수 없었고, 결국 사랑을 확인하지만 연인으로만 그 사랑을 이루어야 하는 치요와 회장(와타나베 켄 역)에 대한 것이다. 내용 설정 상으로는 사실 주인공의 시련, 뜻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과 함께 찾아온 기회, 사랑으로 이어지는 도식이기 때문에 여느 드라마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양인들에게는 신비하게 느껴지는 동양의 문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나라 일본이 배경, 하지만 정작 그 내막은 거의 알지 못했던 '게이샤'라는 집단에 대한 탐구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 아닐까하는 짐작을 해봤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게이샤들의 문화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감독은 게이샤가 되기 위해 익히는 훈련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게이샤로 살아가는 이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한계도 보여주며, 등장하는 배우들의 입을 빌어 그들의 역할도 이야기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게이샤들의 삶과 예술에 덧붙여 사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치정이나 부, 권력에 대한 욕망 등)에 얽매어 있는 게이샤라는 독특한 집단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게이샤에 대한 예술성마저도 종래에는 퇴색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마샬 감독은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아울러 다른 언론에서도 몇 차례 지적했던 내용이지만, 일본이나 근접한 동양권 문화에 살고 있는 감독이 아닌 서양의 감독이, 그것도 미국의 감독이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미국의로 대표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주인공 치요는 눈동자만 파란색으로 그려지는데, 하나같이 그 모습을 보면서 '신비롭다'는 반응을 보이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사실 이건 비정상적인 거라고 봐야 정상인 것 아닌가? 물론 그만한 재능이나 특별함이 있는 사람임을 암시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 수 있겠지만, 그 색깔이 너무 서양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이 볼 것 같다. 인접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궁금함을 갖고 있는 게이샤들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앞서 나열한 유명한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자원들의 참여는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훌륭한 연기, 훌륭한 음악과 영상 등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던 '기생'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기생과 일본의 게이샤를 단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단순히 몸을 파는 것이 아닌, 예술을 연마하고 그로써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결국 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게이샤라는 직업(?)이 성행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예전에 '기생'이란 제목을 달고 출간된 책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 이렇게 영상으로 그려진 적은 없는 것 같아, 이런 계기로 우리나라 기생들의 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도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서양식의 관점에서가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말이다. 우리도 얼마든지 예술적으로 그려낼 힘이 있으니 말이다. 곧 우리 '기생'에 대한 조망을 담은 영화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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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아름다움이었다. 광고에서 비춰진 장쯔이는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게이샤라는 직업에 대해서 온전한 이해가 없이 보았다. 예능인으로써 예능만을 판다고 하였지만, 영화에서의 게이샤는 그저 비싼 창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보기는 했지만, 사실 내용은 그냥 그랬다. 생각과 다르다, 이 정도뿐이었을까. 사실 게이샤의 비밀을 밝힌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영화였기에 실화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바라보는 동양문화의 신비감을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마음대로 재창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화는 내내 오네상, 에쿠보 같은 명칭만 제외하면 영어로 대사가 진행되었다. 그 점에서 가장 황당하기도 했으며, 보는 내내 몰입을 깨기도 했다. 굉장히 어이가 없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미국 영화이니 그런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 보았다.
하지만 교토의 기옹에 있는 게이샤는 게이샤가 아닌 게이꼬 라고 부른다고 한다. 게다가 에쿠보라는 것은 있지도 않으며, 그런 식으로 자신의 처녀성을 파는 행위는 진짜 게이샤에게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황당을 넘어 욕지거리가 나올 수준이었다. 진짜 게이샤는 창부 행위를 하게 되면 기옹에서 쫓겨난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숙소는 남성이 출입할 수 없는 절대 금남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공리가 남자를 끌어 들여 섹스를 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한층 더 말하자면, 보는 내내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춤과 음악은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었다. 정말 저게 게이샤의 예능이라면, 앞에서 설명했던 것 처럼 비싼 창부일 수 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춤은 영화 '시카고'에서 안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어이가 없을 수는 없었다.
도쿄 기옹의 견습 게이샤를 마이꼬라고 하는 데, 마이꼬가 아닌 게이꼬(게이샤)도 은퇴할 때까지 학원에서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마이꼬가 되고 나서 연습하는 모습을 한 번도 안 보여 줬을 뿐더러, 게이꼬였던 공리도 시간이 남아 돌아 바람이나 쐬고 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마이꼬는 선배 게이꼬가 없이는 아무데도 나갈 수 없으며, 말도 한 마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장쯔이는 유창한 말빨을 자랑한다.
이건 말 그대로 역사 왜곡이었다. 마치 역사의 고증인 것 마냥 광고해놓고, 결국 픽션일 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옹의 스폰서인 단나는 돈 많은 호색한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질 뿐이었는데, 말 그대로 스폰서의 역할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나서는 제대로 분개하고 말았다.
그저 일본의 문화라는 생각에서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시아이며, 일본도 엄연한 아시아이다. 게다가 그들의 문화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므로 동양적인 신비감에 휩싸인 분위기만을 연출하기 위한 노력밖에 들이지 않은 미국 영화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할리우드 영화는 언제나 끝까지 보고 나서 제대로 당황스러워지는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