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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뚜렷한 견해 “불교개론”을 읽다. 불교입문서 단계는 지난듯한, 저자의 견해가 강한 주관으로 전개된다. 불교는 인도 게르만족에 의해 성립된 당시는 불교의 관심이 주로 서쪽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결실은 아소카 왕 이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서이다. 대승경전이 붓다를 절대화하는 과오가 있었음에도 붓다를 절대자로 보지 않는, 불교는 상대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아울러 연기(緣起)란 상대성의 원리로, 비유하자면 두 묶음의 갈대 단이 서로 의지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으로 본다. 또 불교는 리얼리스트의 사상이라고 한다. 윤회 사상을 불교 특유의 것인 양 오해하지만, 그것은 인도에 보편화된 하나의 상식이었을 뿐 결코 붓다의 생각이 아니다. 이의 근거로 붓다의 가르침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붓다가 설한 것은 모두 인생의 현실 문제였다. 둘째,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천상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상의 문제에 대한 것이며, 내세의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에 대한 것이다. 셋째,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그것을 불합리한 채로, 또는 그렇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든지, 이방인에게는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제한이 없다.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이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붓다와 그 제자들의 과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였다.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전환이었다. 불교는 동양의 휴머니즘이라고 규정한다. 붓다는 여러 이름으로 위대한 인간임을 찬미 받지만 神的인 존재로 다뤄진 흔적은 없다고 한다. 此岸에서 彼岸에 이르고자 할 때 바른 방법을 가르치고 수범이 되어주는 도사, 선각자이자 지도자일 뿐 그 밖에는 매달릴 하나님도 없고 기도의 대상이 될 신도 없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정신임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는, 불교는 ‘신 없는 종교’라는 무신론의 입장에서 신까지도 하나의 관념, 하나의 우상으로 봄으로써 거기에서부터도 자유롭고자 하는 철저한 인간중심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善知識에 대한 정의는 자못 신선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불교로 이끌어 들이는 고덕.명승을 모두 선지식이라 부른다만, 본디 ‘좋은 벗’으로 모든 성원이 완전한 평등의 원칙하에서 붓다의 교단을 ‘좋은 벗의 집단’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이상과 같이 불교의 본질에 관한 다음으로 사상의 체계, 실천에 이어 불교의 역사에 관해 견해를 피력하되 독특한 정의를 내린다. 인간은 悲器라고 한다. 불교의 보편적 사랑의 개념은 ‘悲’라는 한 글자에서 보게 된다. 사람은 기쁠 때보다 슬픔 속에서야말로 진정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이 슬픔을 통하여 인간의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번져가는 전인류적인 사랑, 그것이 불교에서의 보편적 사랑, 즉 자비라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는 이단의 역사로 본다. 기독교의 역사는 이단을 색출한 역사이며 이단을 추방한 역사이다. 2차 결집 이후 부파 불교인 대중부의 모색으로, 자기 형성을 위해 전념할 것을 설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대중의 구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 대승경전의 출현이 그렇고, 敎外別傳으로 표현되는 중국 불교에서 禪宗의 탄생도 그렇다. 염불 계통에서 최종적으로 정토문의 정행을 택한 것도 이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한 신앙의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76년이었고 구입한 책은 개정 2판 4쇄로 2007년판이다. 적어도 35년 이상 유통되고 읽히는 점을 보아서도 불교에 관한 유익한 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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